요즘 중국의 상하이(上海)는 세계박람회, 일명 엑스포가 한창이다. 우리나라도 대전에서 했었는데, 가보긴 했지만 그땐 학교에서 단체로 간 1박 2일짜리 여행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기억이 없다.-_-; 그냥 당시 도우미 언니야들이 이뻤다는 것 밖에.-_-; 하여간 덕분에 엑스포 기간에는 중국 비자가 면제된다는 얘길 들은 바가 있는데... 아, 그 전에 넘어가야 되는데~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괜시리... 몇년전 사진을 뒤적거리다가 그래도 내가 상하이에서 가장 많이 오고간 곳, 상하이의 기차역 사진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사부지기 포스팅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지. 일단, 이 포스트에 게재되는 이미지는 모두 08년 이전의 것들임을 알려두는 바이다.


내가 상하이 기차역을 처음 간 것은 03년 1월 경이다. 그때 한창 보수공사 中이었는데, 아마 지금도 이 모습은 유지하고 있을거라 생각된다. 크게 달라진 점이 있었다면, 내부에 각 열차들의 대합실이 베이징시짠(北京西站)처럼 실내공간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중소도시의 기차역인 경우 따로 기차 대합실이 있는 것은 롼쭤(软座) 대합실 밖에 없고, 값싼 잉쭤(硬座)의 경우는 단지 개찰구만 나뉘어져 있고 모두 한공간에서 기다리곤 했었다. (아마 크게 개보수를 했다는 난징(南京)역도 여전히 이렇게 되어있을 듯.) 상하이역은 07년인가, 08년쯤에 각 열차들의 대합실을 따로 만들었더라고. 08년 겨울에 이용했을 때 그렇게 바뀌어져 있는걸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겉모습은 그리 변한 것도 없었고, 또 1년 사이에 그런 대대적 공사를 완성했다는게 참 신기하더라고. 뭐, 중국이려니~ 하여간 이 상하이짠(上海站)... 참 많이 오고가고 했었다. 떱~

새로이 단정한 상하이역의 硬座 내부 모습.


엑스포, 즉 세계박람회를 중국어로 줄여서 '스뽀(世博)'라고 불렀다. 참... 이때만 하더라도 중국 상하이에서 엑스포를 한다는게 실감나지도 않았거니와, 뭐 그렇다고 특별히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저 이 엑스포를 위해 상하이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캠페인 표지판 정도가 눈에 띄였는데, 그 中에 생각나는 것이... '손을 자주 씻기', 그리고 '잠옷 입고 외출하지 않기' 였다. 전자는 모르겠지만, 후자는... 글쎄, 지금 엑스포 기간에 예전처럼 잠옷입고 활보한다가 경찰한테 잡히면 벌금형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아놔, 나 중국에 얼마나 안 간거야. ㅠ)


자고로(?), 중국의 화장실 시설은 참으로 열악하다. 특히 공중 화장실의 경우는 유료가 아닌 이상... 아니 유료라 할지라도 코를 잡을만큼의 악취와 지저분한 바닥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이 당시 또 뜬금없이 상하이역 앞에 생긴 공중 화장실, 이 역시도 엑스포를 위해 부리나케 지은 것이리라. 지금보니 별거 아닌데... 당시엔 정말 깜놀했다지비.


저어기 시계탑(钟楼) 밑에 보이는 숫자... 이 날부터 1443일 후에야 상하이 세계박람회가 시작하는 날이었는데, 햐... 지금 한창이겠구나.-_-; 정말 이 당시에만 해도... 저 숫자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만 생각되었건만... 그렇다, 모든 것은 역시 '시간'이 해결해준다. ㅎ


상하이는 내가 알기로 중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뭐, 외세에 의해 개항이 되어 조계지를 만든 외국인들에 의해 발전/발달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외세를 역이용해 지금의 상하이의 모습을 유지/발전시킨 중국 역시 만만치 않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동안 이 상하이라는 동양의 대도시를 오고간다. '동양의 파리'라는 말까지는 인정 못하겠지만-_- 하여간 동양을 대표하는 대도시임에는 틀림없다. 사람이 많으면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도 많아지는 법, 그래도 상해 시가지쪽은 중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서는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편이라 생각되는데, 이 유동인구가 많은 상하이역 주변은 당췌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등장한 인물이 있으니...


상하이역으로 건너가는 신호등만으로는 부족하다. 교통경찰도 아닌 아저씨 둘이서... 사람들을 저 '노란줄'을 가지고 통제를 하고 있을 정도. 앞서 언급했다싶이 상하이시민의 교통질서에 관한 인식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워낙 유동인구가 많다보니 별에 별 지역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먼저 횡단보도를 건널려고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차시간까지 문제가 있다면 물불 안 가릴려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이 말이지비. 참 사소한 문제인 것 같은데, 이런 아저씨들까지 있는 것을 본다면, 역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법'만으로는 통제가 부족하며, 결국 사람이 사람을 통제할 수 밖에 없다, 라는 결론에 이른다.


상하이의 이중적인 모습, 몇년전 이것에 대해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다.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떵떵거릴 수 있을만한 상하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TV에서 보는 화려한 모습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동네도 높은 고층 아파트 뿐만 아니라, 언제 철거될 지 모르는 허름한 주택들도 아직 남아있기도 하다. 대게 우리가 TV에서 보는 상하이의 모습이라면, 와이탄(外滩)에서 보이는 동방명주(东方明珠) 주변 모습인데... 와이탄에서 보이는 푸동(浦东) 모습이야 이제는 더이상 발전을 시킬래도 발전할거리가 없는 완성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당연히(?) 그렇겠지만 상하이 외곽으로 나갈수록... '아, 여기도 결국 중국이구나.'나 할 정도로... 이제껏 머리속에 가지고 있던 상하이에 대한 환상은 점차 깨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3층짜리 고가도로도 한국에선 찾기가 힘들지비.

푸동지구(浦东地区)로 들어가는 길.

솟아오르는 고층건물들.

어디 상하이 뿐이겠는가,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도 그렇다. 고대때부터 아시아의 중심이었던 나라,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에 대한 소시적 환상을 가진 이들이나, 혹은 중국사람들은 지저분하다, 혹은 중국은 그저 발전중인 값싼 나라이다라며 나름 무시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역시... 직접 중국을 겪고, 여기저기를 오고가며 들게되는 단 하나의 결론은 역시... '중국은 직접 겪어야만 알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리라.


개인적인 추억거리, 뭐 역시나 먹거리만한게 있겠는가마는...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마땅히 먹을건 없고, 허기는 지고해서 찾았던 이런 허판(盒饭)이나... '엇? 중국에도 생겼구나...' 하면서 한국에선 쳐다보지도 않던 버거킹(汉堡王)의 햄버거를 먹었던 기억, 또 누군가를 마중을 나가서 근처 식당가를 찾아 먹었던 것들... 그리고 근처의 단골 체인점 숙밥업소등, 참 지나고나니 그땐 그랬구나... 하면서 나도 모르게 씨익 한번 웃음이 나온다.


아, 상하이에 몇번 들린 적이 없던 시기에 대학동기인 黃군의 배웅을 하러 상하이까지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상하이역이 아니라 상하이서역(上海西站) 근처에서 묵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 동네는 정말 상하이답지 않은 열악한 환경의 동네였지비. 물론, 지금은 많이 발전했겠지만. 중국에 오래 머문 사람들이 부러운 점 中의 하나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또 생활했다는 점이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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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9 06:52

    상하이 가보고 싶다는...

    • 2010/06/10 18:25

      전 글고보니 베이징에 마지막으로 갔던 것이 00년이었슴다. ㅠ 그 동네도 많이 그립네욤.


2008년 1월 6일

07년을 보내야 하는 12월 말, 명목상(!) 인솔자 신분으로 아해들을 이끌고 낯선 중국의 칭다오(青岛)를 찾았다. 중국의 칭다오는 아름다운 해양도시이다, 관광특구다, 뭐 이런 말들을 많이 들어왔지만,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 이 곳에 가면 칭다오에서 만든 '칭다오 맥주(青岛啤酒)'를 마실 수 있다, (일명 Made in tsingtao) 외엔 별다른 기대감이 없었다.-_-; 이유인즉, 아무래도 내가 찾았던 시기가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하는 때였고, 이 곳이 설경이나 산의 경치 보다는, '바다'를 끼고있는 모습이 유명하다보니, 이뻐봐야 얼마나 이쁘겠는가, 하는게 나의 예상이었다. 그렇다, 이 예상은 적중했다. 한겨울의 칭다오는 칭다오를 꾸미는 모든 수식어의 개념을 모두 잊게 만들어 버린다. 차라리 겨울에 칭다오를 찾는다면, 근처의 라오산(崂山)이나 황산(黄山)을 찾는 편이 훨씬 낫다.

그래도 이왕 칭다오를 찾았고, 또 2주간이라는 적지 않는 시간을 보낼 것이니 볼 것은 보고, 돌아다닐 곳은 돌아다니자는 마음은 당연했다. (대강 유명하다는 곳은 이 정도)


근데 여기서 딱 빠진 곳이 있었으니... '만국 건축박람회'라고 불리어진다는 빠다관(八大关)이라는 곳이었다. 바다를 낀 세계 각국의 양식으로 지어진 별장들이 즐비하여 그렇게 이쁠 수 가 없다, 라고 들은 적이 있었으니... 당췌 어딘지를 알아야지. 게다가 당시 숙소에선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했었고. 그렇다고 근처 겜방에서 퀘퀘한 분위기에서 이런저런 칭다오에 관한 자료를 찾기보다는 직접 찾아다니는 것이 성격에도 맞는터라... 어느 날, 타이똥(台东)이라는... 그러니까 대강 제2의 칭다오 시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갔다가, 그 곳에 있는 DVD 가게에 들어간 김에 주인 아줌니한테 빠다관이 어디냐고 물어봤지비. (경험이라는 것이 참 재미난게, 난 그 어느 중국인들보다도 DVD 가게 주인과의 대화가 가장 편하다.-_-;)

그 아줌니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여기서 멀다, 지금 가면 볼거 없다.-_-;;; 당시 나의 생각은 그래도 关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니,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는, 산위의 별장들이 있는 곳이라 생각하여 칭다오의 외곽쪽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_-; 그런데 왠걸, 칭다오 제2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더니만.-_-;;; 숙소에서 버스 한번 타니 근처까지 가더라고. 으헐~ (이때 참 허무하긴 했다.)

당시 같이 갔던 일행의 수가 꽤나 많았다. 어지간하면 나까지 포함해서 4명 정도가 빨빨거리기 가장 적합한 인원이라 생각하는데, 이 날은 무려 나까지 해서 무려 6명.-_-; 버스에 내렸지만 어디가 어딘지를 알아야지. 사전정보가 거의 없이 걷다걷다보면 나오겠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일행들이 많다보니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지사. 2,3명을 데리고 다녔다가 헤매게 되면 "에이, 미안하다. 밥 사줄께." 하면 그만이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 감당하기 좀 힘들지, 아무리 중국이라 할지라도.


일단 대강 별장삘 나는 건물들이 보임직한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보시다싶이 저걸 별장이라고 보기엔 좀 무리이지 않은가. 그닥 이쁘지도 않고. 더욱 더 불안한 마음에 열심히 앞장서서 걸을 수 밖에 없었지비. 그러다가 눈에 띈 반가운 표지.

얘들아, 여기가 빠다관(八大关)이란다.-_-;;;

일단 '빠다관 관리 사무소(八大关办事处)'가 있는 것을 보니, 바로 근처인 것 같았다. 적어도 잘못 찾아왔다고 발길을 돌릴 일은 없겠구만. 그나마 안심을 좀 하고 아까보다는 힘차게, 자신있게 걸어나가기 시작했지.


근데 뭔가 좀 이상해. 평소에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집들이긴 했지만, 이걸 별장이라고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의문이 가더라고. 게다가 여기저기서 하구수 공사도 벌여놓고 있었고. 설마 도로변에 이런 집들 좀 있다고 해서 '만국 건축박람회'니, 아름다운 풍경이니 하진 않을 것 아니우. 그래서 좀 더 걸어가보기로 했지.

이 두 사진의 제목은

'빈부격차'이다.-_-v


한참 걷다보니 넓어진 도로가 나왔고 이런저런 가로수들을 보니, '아, 이 곳도 여름에는 좀 볼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설마 이런 곳이 빠다관일려구?-_-+ 에이,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다.-_-; 그 '역시나'라는 결론을 내게 해준 힌트가 바로...


이 표지판을 보고 눈치를 채게 되었던 것이, 길 이름에 '关'가 있는 것. 이런 '关'자가 들어가는 길 여덟게 모아두고 여길 八大关이라 부르는구나...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으니, 그렇다... 정답, 딩동댕~ 2,30년대에 이 곳을 개발할 때는 여덟개의 길이었는데, 해방 후에는 길 두개가 더 생겨 모두 열개라고 한다.-_-; 이래서 어딜 가든지 사전정보를 좀 준비하고 가야되는겨~ 물론 다 알고 가버리면 또 새로운 곳을 찾는다는 신선함도 떨어지긴 하지만. 아마,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굳이 이 곳에 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다싶이 겨울이기 때문에, 이쁘다, 이쁘다 해도... 겨울날씨의 '한계'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눈'도 없는데.-_-;;;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뭔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걸었고.

그래도 그렇지 그 유명한 八大关에서 이런게 보일 줄이야... -_-;

난 왜 이 건물이 이쁘기보다는, '춥겠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을까.-_-;

그래, 걷는게 답이었다. 걷다걷다보니... 아까 추측했던대로 역시나 하나둘씩 길표지판들이 八大关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었다.

자 봐라... 길이름들에

전부 '关'자가 들어가지.

엇... 가곡관(嘉峪关)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디.

설마 산해관(山海关)도 있을까?


이 날은 무슨 '찍기'의 날이었는가보다. 설마 했는데 모두 역시나로 결론이 났으니. 맨 아랫쪽에 역시나 산해관(山海关)이 있다. 산해관은 만주족이 명(明)을 치고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당시 수문장이었던 오삼계(吴三桂)가 여색(?)에 눈이 멀어 길을 열어주고, 명나라가 망하게 되지비. 그... 최인호氏의 상도(商道)에도 나올꺼로. 함곡관(函谷关)은 삼국지에서 봤던 곳 같은디... 하.여.간.


아래 설명은 도로와는 상관없이 예전에 만들어진 关에 대한 설명으로 끝.-_-;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잖아... 왜 하필 관문 이름으로 도로명을 지었는지 설명이나 좀 해주지! -_-;;;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정체를 알 수 있게 되자 뒤에서 따라오던 일행들의 원망소리.-_-; "이쁘다메요!" ...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 "여름엔 이뻐."-_-+


뭐 할 수 있겠는가... 대강 어떤 건물들이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나 봐야지. 근데 건축에 대해선 문외한인지라, 봐도 모르겠던데.-_-; 그렇다고 집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까 빠다관에 관한 것을 찾을 때 봤는데, 예술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날이 추워서인지... 길거리에 사람들이 있어야지 원. 또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일반인들이랑 확연히 차이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우리가 예술가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눌 것인가.-_-+ 단지 그 이쁘다던 빠다관에 대한 실망을 얼른 없앨려면, 그 곳을 벗어나는 것외엔 방법이 없지비.

얘들아 이게 중국의 우체통이란다... "퍽!~" -_-;


여기서부턴 좀 괜찮았던 것 같다. 호수를 낀 공원 비슷한 곳이었는데, 유유자적하게 산보삼아 걸어다니기 좋은 곳이었고, 또 이 날 결혼사진도 찍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야외촬영을 여기서 해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문제는 겨울이라는 점.-_-;

분명히 이 곳은 여름에 오면 이쁠 것 같았다.

겨울의 모습이란... -_-;


나야 뭐, 중국인들의 결혼 야외촬영을 적지 않게 봐와서 그려러니 했지만, 아해들은 꽤나 신기하게 쳐다보더라고. 뭐, 별거 있나... 날도 추운데, 신부가 수고가 많지.-_-; 두 커플이 같이 촬영하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는 일. 나는 세 커플이 같이 야외촬영하는 것도 봤다.-_-v

점심을 먹은 후에 출발을 해서 이 곳에 도착한 시간이 꽤나 늦은 시간이었다. 얼른 다른 곳도 보기 위해서는 발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고. 열심히 또 걷다 걷다보니... 드디어 바다가 보이더군. 에구...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몇일 전에... 칭다오의 해수욕장을 갔던 적이 있는데, 그 곳과 다른 곳이더라고. 그때는 제1 해수욕장, 이때 가게된 곳은 제2 해수욕장. 뭐, 위치외엔 별다른 차이는 없겠지만, 칭다오 백사장을 처음 찾은 아해들도 있었기 때문에 또 들어가게 되었지비. 아해들은 백사장으로 달려가고, 나는 드디어 산해관(山海关) 찾았다고... 나 혼자서 속으로만 반가워하고.-_-+


이 날 시간이 늦어서 바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별탈없이, 바로 옆 잔교(栈桥)도 갔었고, 나중에는 독일 감옥까지도 갈 수 있었다. 이 모두를 도보로 해결한 것치고는 빨리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지비. 뭐, 이 정도. 그때 데리고 갔던 남정네들, 이제 상병 달았겠군. ㅋ

이후에 이 八大关이라는 곳의 사진을 여러장 찾아봤는데, 역시 이쁘긴 이뻤다. 그러나 분명한 곳은, 이 곳은 우리처럼 직접 들어온다고 이쁜 모습을 볼 수 있기보다는, 멀리서, 바다나 석양과 함께 봐야지 '이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 같다. 그래도 칭다오에서 "红瓦绿树、碧海蓝天"라는 것을 내세운 곳인디. (빨간 지붕, 녹색 나무, 푸른 바다, 파란 하늘... 이렇게 풀어쓰니 정말 없어보이는군.-_-;)


글고보니 잔교(栈桥)에 관한 포스팅도 안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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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uri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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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4 23:43

    겨울의 모습도 좋아보이는데요? 춥지만 않다면 유유자적하며 걸어다니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기회 있으면 가보고 싶네요. ^^

    • 2009/09/24 23:55

      겨울 모습이 나쁘다라기보다는, 이 곳의 '여름' 모습에 비해서 차이가 많이 난다, 라는 것이 정답일테죠.
      말씀하신대로 유유자적하게 걸어다니면... 얼어버립니다. ㅎ
      농담이고요, 어지간한 중무장을 하고 돌아다니면 빨빨거릴만 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서 황도(黄岛)까지 배타고 건너가봤지요. (나 홀로ㅠㅠ)

  2. 2009/09/25 00:16

    '황도'를 처음 들어봐서 포스트 보고 왔습니다.^^ 전 하얼빈, 북경, 천진, 승덕, 상해, 온주, 양주 정도만 가보았거든요. 청도의 추위는 잘 실감이 안나네요. 근데, 상해의 겨울에도 그렇게 벌벌 떤 저는 분명 못 견딜 정도겠죠-_-; 나이가 들면서 계속 남쪽으로만 이동하는 것 같아요^^

    • 2009/09/25 10:42

      추위로 따져본다면 확실히 북방쪽이 기온이 더 낮겠지만, 체감온도가 남방이 만만치가 않지요. 게다가 중앙 暖气 설치 역시 뒤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욤. 저도 거의 남방에만 있었습니다. 북방쪽은 잠깐잠깐 있었다지요. ㅎ

      전 왠지 개인적으로 서쪽으로 나아가고픈 욕망이 들끓습니다. 현실이라는 것이 뭔지. 떱~



여행일시 : 2007년 7월 19일

2년전에 다녀왔던 곳을 이제야 포스팅을 한다는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때 당시에 느꼈던 감흥이나 접했던 객관적인 정보등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보니... 이래저래 포스팅을 하면서도 열심히 중국어 독해만해서 옮긴 기분이다.-_-; 그래도 다녀온 곳은 다녀온 곳이니... 이제서야 이싱(宜兴)에 관한 포스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宜兴이라는 곳이 내가 02년에 어학연수를 했던 우시(无锡)와는 그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던지라... 간다, 간다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던 곳이었고, 07년에 그래도 인연이 닿아 허겁지겁 가게되어 그 아쉬움을 풀게 되었으니, 속이 다 쉬원할 정도. (가서 특별히 좋다!~ 이런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봤다!~ 함으로써 뭔가 잃어버렸던 물건을 다시 되찾았다, 라는 느낌 정도.) 하여간 새벽 6시에 기상하여 허겁지겁 다녀왔고, 또 오후 3시까지는 다시 우시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정말 여유 하나없는 정신없는 일정이었지만, 또 그럼으로 인해서 나름 색다른 여행으로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분명히 샨쥬엔동(善卷洞) 관광 코스를 입구를 통해서 제대로 들어간 것 같았는데, 막상 코스를 거의 다 돌고 내려오니, 하나둘씩 우리가 지나왔던 간판떼기(?)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1600년의 역사가 있다는 샨췐스(善权寺)나, 양축(梁祝) 이야기가 담긴 곳...등. 설마 우리가 거꾸로 코스를 돈 것은 아니겠지비?-_-+

善权寺의 입구를 알려주지만, 아시다싶이 산꼭대기에 있으니.

얘네들은 남녀 마음 어쩌고 저쩌고 하면 우째~ 좌물쇠를 강조하시는지.-_-;


이전에 난징(南京)에서 갔던 정려원(情侣园)에서도 봤듯이... 이 동네는 무슨 남녀간의 애정, 혹은 감정을 상징화 시킬 때 왠 '자물쇠'를 이용하는지 모르겠다. 뭐, 쉽게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도 그랬고... 잠그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인 '자물쇠'가 어찌 두 사람의 마음을 이어준다는지. 두 사람의 마음을 어느 곳에 넣고 잠근다는 말인가? 사실 여기에 관련된 이야기는 상당히 단순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에게 사랑의 고백하면서 내 마음은 이제부터 너의 것이니, 이 마음을 잠근 후, 그 열쇠는 니가 가져라... 그리고 맹세를 한다지, (뭐, 중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黄山同心锁에 관한 이야기 참조)

"与你同心, 对你忠心, 一片痴心, 永不变心."

너와 같은 마음으로, 너만을 위한다는 충직한 마음, 일편단심... 그리고 영원히 변심하지 않겠다는.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_- 그냥 이런걸 볼 때마다 이해를 못한다 이 말이지비. 시대가 변해서 그런가...

이거봐, 다보고 내려오니 안내표지가 보이잖우.-_-;


아마도 정말정말 마무리를 하는 코스인 것 같은 곳이 나타났다. 앞서 산정상에서 신나게 타고 내려왓던 华东第一滑도 그랬지만, 확실히 어디어디 제일(第一) 좋아하시는구먼. 宜兴이라는 곳이 紫砂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만큼, '중국 제일 도자기바(中国第一陶吧)'라고 있더라고. 그려~ 중국 제일이라는데 어떤지 실제로 한번 봐보입시더.

입구쪽에는 당연히 이런저런 간단한 소개가 있기 마련이고.

막상 안에는 이것밖에... -_-;;; 평일이라 운영도 하지 않고 있었고.

하여간 이런거 말고... 역시 그나마 맘에 든 것은 개인적으로 소시적 무협물 시리즈에서 봤던 중국의 고전 모습들. 즉,

뭐, 이런 풍경.-_-v

시원한 바람맞으며, 혹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라 할지라도 저기 정자(?)쪽에 앉아서 처자 하나랑 희희낙락거리는 것도 얼마나 운치있는 일이겠슴메. 다만, 이 날처럼 너무나 무더워 숨쉬는 것조차 불편한 날이라면... -_- 망구 환상땡이랍지요. 일단 환상을 뒤로 미뤄두고... 출구를 통해 드디어 이 대단원(?)의 관광코스를 마치고 나오면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바로 관광지 기념품거리.-_-; 이것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기념품들을 보는 재미가 솔솔할 것 같지만, 역시나 호객행위를 하는 아줌니들의 들이대는 수위가 높다보니-_- 중국의 여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꼭 이런 코스는 피하고 싶어지더라고. 이 날은 그나마 낫았다. 왜, 한적한 평일이었지라.-_-v (문닫고 영업을 하지 않던 곳도 적지 않았지비.)

여기 기념품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디카로 찍은 것은 단 두장밖에 되지 않는데, 이도 이유가 있다. 같이 갔던 후배 둘... 이 둘이 또 마침 이 곳에서 살 선물용 기념품을 산다고 이것저것 물건들을 골랐기 때문. 뭘 샀드라... -_- '차상'이라고 부르던데, 茶세트를 올리는 차받침대를 살 모양.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군.) 나야 옆에서 가급적 茶壶 세트는 이 곳에서 사지말거라, 하고... 나중에는 가격 흥정할 때 도와줄려고 폼을 잡았지비. 뭐... 알아서 잘 깎더니만. (후배들아, 너네들은 이제 배울게 없다, 하산혀라.-_-; 근데 나 같았음 더 깎았다.-_-v) 한 보따리 사서 들고 드디어 관광코스를 탈출하기에 이르렀다. 몇개 사지 않았는데, 부피가 좀 컸으니. 으아, 이걸 들고 어떻게 귀국혀... 이 날이 귀국 3일 전인가 그랬지비. 게다가 여기뿐만 아니라 이후 일정에 쑤저우(苏州), 상하이(上海), 저우장(周庄)... 도 있었는디. 하기사 뒤의 관광지에서는 정말 살만한 것이 없지비.

사람이 정말 없다.

평일이었던지라 정말 오래간만에 한적한 중국 관광지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만... 왠지 을씨년스럽더니만. 게다가 돌아가는 차를 찾는 것도 직접 찾아야 했고. 딱 입구쪽에서 택시용의 승용차를 타고 터미널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돈없는 학생들이 어찌 그런 고급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겠소. 타고 들어올 때처럼, 승합차를 찾아... 찾아 해맸다.

밥집도 제대로 영업을 하지 않았기에

슈퍼에서 음료수나... -_-


이런저런 교통수단들이 있는데, 일명 빵차(面包车)나 3륜차로는 터미널까지 갈 수 없었다. 미니버스 그러니까 흔히 小公이라고 부르는 차량을 찾아 드디어 타기에 이르렀지비. 어찌나 덥든지, 그리고 얼른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배고픈 것도 신경쓸 수 없었을 지경. 이 날 아무것도 먹지 않지 않았나?-_-;

문제는... 터미널까지 가더라도 시간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차량을 타고 터미널까지 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을 뿐더러, 터미널까지 간다고 해도 우시터미널에 도착해서, 또 택시를 잡아타고 학교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후배들의 그... 结业式라고 해야하나, 거기 행사시간에 맞추기 힘들기 때문. 게다가 인솔을 맡았던 나까지 늦어버리면-_- 으윽. 사실 이 날 새벽에 일어나서... 나 혼자 가기도 뭐해서,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음직한 얘들을 깨워서 데리고 갔다. 오전수업 들을봐에는 나 따라서 宜兴 한번 구경하고 오는게 더 낫지 않겠느냐... 이런 식으로 꼬득였는데, (물론 선배로써 잘한 짓은 아니지만-_-) 이왕 온거, 그리고 걔네들은 그때까지 수업을 거의 빼먹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도는 감당하고 여기 올만하다, 생각했던 것. 이것도 인솔선배니까 가능한 것이지, 내가 만약 인솔교사였으면-_-;;;

하여간 그래도 공식행사는 꼭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그 미니버스를 타고 가다가, 원래 우리가 이싱에서 내렸던 터미널말고, 또다른 터미널 앞에서 무작정 내렸고, 거기서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가격을 흥정하고-_- 우시의 江南大学로 가자고 했지비. 행여나 싶어서 미터기켜고 가자고 했고. 차 안에서 후배들은 뻗어자기 바빴고-_- 나는 택시 기사 아저씨와 이러쿵 저러쿵 얘길 나누면서 갔는데... 그때 이싱화(宜兴话)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유튜브 동영상 댓글에... 어느 중국인이 친절하게도 번역본을 댓글로 달아줬더군. ㅋ)

하여간 이로써, "宜兴物语"는 드디어 마무리 짓게 되는구마이.


택시 안에서 '潘家'라는 이름을 가진 주유소를 지나쳐 갔다. 그 당시에는 '아, 이런 식으로도 주유소 이름을 짓는구나.' 신기해서 찍어뒀는데... 나는 이 潘家를 보고, '양가장(杨家将)'이라는 홍콩 TVB의 단편 드라마(1985)가 생각이 났다. 이 드라마는 당시 초호화 캐스팅으로 구성하여 만든 드라마였던 것 같은데, (대강의 줄거리는 송나라 개국공신 楊가와 신화의 인물들을 접목시킨 이야기) 남자 배우는 주윤발(周润发), 유덕화(刘德华), 양조위(梁朝伟), 만자량(万梓良), 황일화(黄日华), 오진우(吴镇宇), 모교위(苗侨伟)등이 출연하며, 여자 배우는  유가령(刘嘉玲), 증화청(曾华倩), 장만옥(张曼玉), 사녕(谢宁), 모순균(毛舜筠)등... 당시 홍콩 연예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한꺼번에 대거 출연한 드라마이다.

06년 江西 南昌에선 이런 것도 있더군. 또 양가장.

근데, 극중에서 우리편인 양가(杨家)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집안이 반가(潘家, 거의 진회와 비슷하게 송나라 초기에 금나라에 달라붙는 간신집안으로 나온다.)인데, 그 중 막내 아들이 양가의 막내아들(양조위)와 비무를 벌이다가 죽어버린다. 그 죽은 반가의 막내 아들역을 맡았던 배우! -_-;;; 이 배우가 한때 유덕화(刘德华)와 동성애 관계에 있었다고 떠들썩 했던 남정네더군.-_-+ 이 배우 역시 姓이 潘씨이다.-_-; 반굉빈(潘宏彬)이라는 배우군. 요즘 유덕화 결혼 때문에 중화권 연예계가 떠들썩한데, 마침 이때 무심결에 찍은 사진에서 이 潘家를 보니...-_-;;;

1985년. 이 얼마나 정겨운 모습이던가.-_-+

이 '양가장'이라는 드라마는 이곳에서 관람할 수 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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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시 : 2007년 7월 19일

앞서 중국 이싱(宜興)의 샨쥬엔동(善卷洞) 유람기.에 이어.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우는 민간전설이 하나있다. 바로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의 고사인데, 나는 소시적 봤던 영화 '양축'을 보곤 그려러니... 하고 그냥 생각했다. (드라마로도 몇번 채널을 돌리다가 본 적은 있지만, 시선 고정은 아니되더니만.) 뭐, 옛날 고전의 러브스토리는 뻔할 뻔자 아닌가. 신분이 맞지 않은 남녀가, 집안의 반대로 줄행랑을 치고... 잘되면 어디 숨어서 아들딸 잘 낳고 살아가는 것이고, 못되면 결국 둘이 죽음을 택한다... 뭐 이 정도. 다만 공통점이라고 갖다붙일만한 것은... 항상 여자쪽 집안이 남자쪽 집안보다 낫다는 점. 아마도 당시 사회상을 보면, 남자야 '三妻四妾' 할 수 있을만한 여건이 되었기에, 불행한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가 되려면 남자쪽의 신분이 떨어져야 한다는 점 정도. 내가 양채니(杨采妮)라는 배우를 제대로 익식하게 된 것도 바로 서극감독의  '양축(梁祝)'이라는 영화때문인 것 같다. (얼마전에 곰TV의 무료영화에서 '방콕 데인저러스'라는 영화에서 봤는데... 이쁘장한 태국 약사로 나오시더군. 대사 한만디 없는 벙어리역.-_-; 요즘 이 언니 뭐하시지?)

지난번 이싱(宜兴)의 샨쥬엔동(善卷洞) 이야기 이후에... 다음 코스를 포스팅하기가 너무 귀찮아졌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여유'인데, 그 동굴을 빠져나간 후부터는 시간이 촉박해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저 스쳐지나치는대로 사진만 찍어왔기 때문에, 머릿속에 남은 기억도 없거니와, 그런 기억들을 일부로 짜집어서 넣느니 아니 남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어차피 내가 거쳐간 과정이려니... 하고 남겨놓는 것일 뿐이라는거.-_-; (아, 변명 한번 길다.) 하여간, 별로 남지 않은 기억을 더듬어 더듬어, 그리고 평소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양축' 이야기도 알아볼 겸해서 포스팅을 해보기로 한다.


샨쥬엔동을 빠져나오니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바로 자그나만 폭포의 시원한 물소리였고, 그 폭포를 뒤로하고 가야할 길을 가다보니 왠 석상이 하나 보였다. 이건 또 누구시람. 이 양반의 이름은 쉬샤커(徐霞客, 1587~1641)로 명나라 말기의 '지리학자'이다. (쉽게 풀어보면 여행가이자 문학가이다.) 30년동안 열심히 돌아다니시어 260만자에 달하는 <徐霞客游记>를 남겼다. (그 중 200만자는 유실되었고 지금은 60만자만 남았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에서 따지면 '지리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는 정도. 28살때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의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람기를 남겼고, 55세에 윈난(云南) 지방의 리장(丽江)에 이르러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자, 고향인 장인(江阴)으로 돌아왔와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해각지를 떠돌아다니는 것을 결심하는데는 당시 그의 엄니의 영향이 컸다고.

“身为男子汉大丈夫,应当志在四方。你出外游历去吧!到天地间去舒展胸怀,广增见识。怎么能因为我在,就象篱笆里的小鸡,套在车辕上的小马,留在家园,无所作为呢?”

" 사내대장부로써 당연히 사해에 뜻을 두어야 하니, 너는 밖으로 나가 사해각지를 돌아다녀라. 하늘과 땅 사이에 이르게 되면, 가슴에 품은 뜻을 펼치고, 견식을 넓히도록 하여라. 어찌 내가 있다고 해서 너는 우리안의 새장안의 새나,  수레에 걸려있는 말처럼 있느냐. 집안에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으냐."

뭐... 한마디로 집에서 책만 보면서 데굴데굴해봤자 남는게 없으니, 돌아다녀라... 라는 아~주 친절한 말씀.-_-; 이 말을 듣고 뜻한 바 있어 1년동안 여행을 하게된 것이 바로 22살때의 일. 이후 갖은 고생을 하며 동으로는 쩌장(浙江)의 보타산(普陀山), 서로는 윈난의 텅충(腾冲), 남으로는 광시(广西)의 난닝(南宁) 일대, 북으로는 허베이(河北) 지시엔(蓟县, 지금의 텐진)의 판산(盘山)까지... 대부분의 중국 각지에 족적을 남겼다. 이 얘기는 이 정도까지만 하고... 흠흠.

앞서 말한 지명들을 표시하니 뭐 이 정도.


처음엔 사실 이 곳만 지나갈 때만 하더라도 이 곳이 梁祝과 관련있는 곳일 줄은 몰랐다. 왠 남정네? 왠 아낙네? 무슨 예전에 난징에 있을 때 가보았던 정려원(情侣园) 정도라고 생각을 했었지비. 에공... 이런 곳은 또 그냥 지인들과 오기엔 좀 막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비. 그래서 일단은 신경끄고 고고씽. 근데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徐霞客의 석상을 찍고나서, 디카 설정을 잘못해서 이후부터 사진들의 색감이 여엉~ 이상하게 나와버렸다. 뭐랄까... 색소빠진 사진이 되었다고 해야하남. 게다가 무더운 날씨에, 햇빛이 너무나 밝아서 사진 색감이 정말 이상해져 버렸다.-_-; (초간단 색감보정을 해도 별반 차이가 없네.)

조그나만 호수에 아담한 정자. 캬~ 여기서 한잔하면~ -_-;;;

왠 서재?

분명 입구쪽엔 한쌍의 남녀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왠 서재?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무슨 안내표지판도 전혀 없었으니 알 도리가 없었지. 다시 생각교정, '아... 그냥 상하이(上海)의 예원(豫园)과 같은 부호들의 정원이구나.'라고.-_-;

영대각(英台阁) ?

엇... 다시 눈앞에 나타난 누각.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름이 낯익다. 영대? 영대? 누구지? 어디서 많이 들었음직한 이름인디? 당췌 여긴 뭐하는 곳이냐 말이닷.

앗... 蝶園?

이거원... 안내표지 하나 제대로 없이 돌아다니니 발걸음은 더더욱 빨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다지 볼만한 것도 없었고. 에이, 어서 벗어나자고 일행들을 재촉하는데 눈앞에 나타난 蝶園. 여긴 뭐냐... '또 무슨 나비들 박제해서 액자 만들어놓은 그런 곳이냐?' 했지비. 거참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이네... 하면서 별 생각없이 그냥 지나칠려는 찰나, 왠지 모르는 떠오르는 한 이야기에 관한 발상. 에이 설마... 하필 여기 왜?-_-;

다시 나타난 영대. 영대찻집? -_-+

여기서 茶 한잔해도 되겠더니만.

아까 봤음직한 남녀가 다시 나타나고... 이때 눈치를 깠어야 했는디. (팔모양, 날개-_-;)


화원인지... 나비 전시실인지 모를 속닥한 실내를 바로 빠져나가자... 드디어 우리가 지나쳐온 곳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어찌나 힘이 빠지던지, 헛웃음만 연발.-_-; 나 중문과 맞나... 싶었을 정도.ㅠㅠ

드디어 정체가~ -_-;

아까 지나쳐 올 때의 '영대(英台)'는 그렇게 나에게 있어선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내가 그 언니 이름을 불러봤어~ 그렇다고 드라마도 제대로 본 적도 없으니. 그냥 단순히 낯익는 고유명사겠다, 생각을 했는데... 딱 그 곳을 빠져나가자... '양축(梁祝)'이라는 단어가 뇌리속에 팍~ 찔어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곤 속으로 '양채니!'를 외쳤다지.-_-v 무슨 미로찾기 하러 들어간 것도 아니고, 퀴즈대회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지도 모르고 룰루랄라 디카 셔터만 누르면서 지나쳤으니 얼마나 허무했겠는가. 그리 관심있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옆에 있던 후배들에게 아는 체(?)는 할 수 있었겠지비. 그나저나 양산백과 축영대가 여기 왜 있냐고오~ 하는 궁금증이 또 생기더라고.

'양축'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히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동진(东晋) 시대에 한 처자가 남장을 하고 공부를 하러 서당엘 갔다. 거기서 한 남정네를 알게되는데 처음엔 동창으로서 의기투합되었으나 이후에 처자인 축영대는 양산백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축영대의 신분이 밝혀지고 둘은 서로 이성으로써 좋아하게 되는데, 축영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잘난 집안 출신인 축영대는 당연히 부모의 반대에 부딫히고, 양산백은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결국 죽게된다. 양산백의 무덤가에서 통곡하고 있던 축영대. 순간 무덤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그 곳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무담이 닫히면서, 나비 한쌍이 하늘위로 날라가기 시작한다... 뭐, 이 정도가 내가 아는 양축의 이야기.-_-;

근데, 이 민간 설화에 관한 것은 모두 몇가지의 제각기 다른 역사적 기원이 있다고 한다. 그 中 이싱과 관련된 기원을 이야기해 보자면, 역사의 기재에 따르면 양축 이야기가 최초로 문헌에 기재된 것은 이싱에서였다고 한다. 중국 짱수성의 학술계, 역사계, 여행계(?)에서의 전문가들은 宋咸淳의 <毗陵志>에서부터 명대의 冯梦龙의 전기소설 속에서, 모두 대량의 증거가 되는 글들이 나타났다고. 거기에 따르면 양산백과 축영대는 모두 이싱 사람이라는 것. 뭐, 毗陵志나 冯梦龙의 전기소설을 내가 읽지 않아서 이러쿵 저러쿵은 못하고... 다만, 중국내에서도 이 양축 이야기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허난성의 여남(汝南)현, 후베이의 马坡村, 쩌장의 닝뽀(宁波)와 같이 지리적인 기원도 의견이 다를 뿐더러, 심지어 진(晋), 동진(东晋), 송(宋), 명(明)등과 같이 시대적인 기원도 의견이 제각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포스트의 제목과 관련된 글은 이 정도까진데...
아, 쓰는 김에 나머지 부분도 써놓는게 낫겠다. 또 다른 제목으로 새 포스트를 쓸려면 몇달 걸릴 듯.-_-;


그건 그렇고... 이싱의 샨쥬엔동 코스 中에 두번째는 이렇게 끝난다. '양축' 관련 건물 몇채 지나서 마무리는 나비전시실(?) 정도. 그 다음 코스는, 샨췝스(善权寺)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절과 궈샨비(国山碑)를 살짝 구경하고나면, 어쩌면 이 관광지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华东第一滑'이다. 이게 뭔고하니,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이래저래 구경 좀 하고 내려갈려고 하면, 도보로 갈 수 있는 길이나 케이블카가 아닌... 돌로 만든 긴 미끄럼틀이 나온다.-_-; 이게 말이 미끄럼틀이지, 경사도 만만치 않고, 게다가 돌로만든 미끄럼틀인지라... 겉보기에는 무서웠을 정도였다.-_-; 문제는 옷차림과 손인데... 만약 이것을 탈 때 짧은 반바지를 입어 살깢이 많이 데이면... 그리 쉽지 않은 놀이가 될 것이며, 아무래도 길이도 길이인만큼 손잡이를 잡고 사는 손을 보호해야 한다. (이래서 역시 따로 손장갑을 시중보다 비싸게 팔고 있더라고.) 우째우째 타고 내려오긴 했는데, 역시나 또 상업성~ 타고내려가는 찰나를 찍어 사진을 또 팔더라고. 이건 뭐 굳이-_-;;;

산정상에 있는 善权寺.

이 절도 생각치도 않게 오래된 곳이더군.

뭐가... 분명 '善卷洞'이라는 이름을 걸고 만든 관광코스인데, 없는 것이 없었다. 정상에서 또 보게된 것은 샨췐스(善权寺)라는 절. 이 절은 역사서에 따르면 중국의 남북조 시대, 즉 서기 480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2000년 보수공사를 하여 보존해 놓은 것. 그냥 향 하나 피우고 내려가면 끝.-_-; 입구 현수막에 자랑스레 절의 역사를 알려주는 샨췐스 탄생 1603주년.-_-; 오른쪽 사진의 길상종(吉祥钟)은 일반인들도 칠 수 있다. 아니, 일반인들을 위해 나둬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점. 종소리 한번은 무엇을 기원하고, 두번은 무엇을... 이런 식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표지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종 세번치는데 RMB 5元.-_-; 이건 뭐... 난징의 부자묘(夫子庙) 안에서도 몇번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관심끄고 돌아섰지비.

종 한번은 우리말로 하자면 만사형통, 모든 일이 돛을 단 배가 바람을 잘 받아 나아가는 듯이 되길 기원하는 것이고,
종 두번은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각인이 되어 잘 이루어져라, 라는 말 같고,
종 세번은 우리 가까이 있는 세 별, 즉 복성(福星), 녹성(禄星), 수성(寿星)의 신선들로 하여금 복, 재물, 장수를 기원,
종 네번은 사계절 항시 돈 많이~ 벌길 기원...
종 다섯번...이랑 여섯번은 안 보인다. (이것까지 지금 찾기엔... -_-;)

하여간 산정상에서 바라보는 이름모를 산-_-의 경치는 참 좋았다. 날 더웠던 것외엔 괜찮은 코스였3.

조용한 산길을 걷다보면...

또 나타난 왠 영님. 아... 누구세염!?

이 곳은 빠이도우탄(拜斗坛)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남북조 시대에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어느날 밤, 당시 수도였던 난징의 자금산(紫金山)에 왠 선인이 꿈에 나타나 阳羡国山에 물의 신(水神)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이후 양무제는 신하를 파견하여 여기에다가 기우제를 위한 제단을 만들었고... 뭐, 과연 영험했다고.-_-; 그래서 저 영감님은 水神이라는 말인가?-_-; 아님, 양무제? 아님 제단을 쌓은 신하?-_-;;;


아마도... 확실치는 않으나 이 산의 이름은 '阳羡国山'인 것 같다. 이 곳에 만든 비석이기 때문에 줄여서 '国山碑'라 하는 것 같고. 이 비석의 역사는 또 우리가 '삼국지'를 통해 잘 아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서기 276년, (물론 우리가 잘 아는 조조, 유비, 손권등은 다 세상을 떠난 이후다.-_-;) 그러니까 이 강남 지방은 알다싶이 오나라(吴)의 영토였고, 당시 오나라의 황제는 폭군으로 알려진 손호(孙皓)였다. 이 아저씨를 끝으로 삼국시대가 완전히 끝이 나고 사마염(司马炎)이 세운 서진(西晋)이 시작되지요. 하여간 당연히 제대로 된 황제가 아니니 나라는 망했을터인데, 손호가 한 짓이 또 만만치 않아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날 지방관료가 왠 동굴을 발견했는데, 이 동굴이 바로 善卷洞이었다. 이 일을 상서롭다고 여겨 손호에게 알렸고, 손호는 신하를 파견해 원래 묵산(墨山)이라 부르던 이 산을 국산(国山)이라 개명하고, 이 곳에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비석의 내용이야 뭐... 비석을 세운 기원, 상서로운 조짐이니 공덕을 노래하고... 뭐 이 정도. 장수성(江苏省)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이라고 하는데... 이 비석이 세워진 후... 5년 뒤에 동오(东吴)는 멸망하지비. 비석하나가 중요하기보다는... 역시 사람이 문제였지비. 시간관계상 안에까지 들어가서 비석을 직접보진 못했는데... 대강 이런 모양.

그리고 끝으로... 산을 내려올 때 타야했던 华东第一滑.

아무래도 현장에 집중하다보니 사진 찍을 생각을 못했다.-_-;

이번 포스트는... 에고야~ 이 정도까지 합시다.


하여간 이 샨쥬엔동(善卷洞) 코스의 표값(全价)은 120元이라는 것.-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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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3 17:54

    "집에서 책만 보면서 데굴데굴 해봤자 남는 게 없으니, 돌아다녀라... "라는 말이 콕콕 가슴에 와서 박히네요. 흐~
    저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니셨다니! 부러워요~ㅎㅎㅎ

    • 2009/09/03 18:04

      사실 경제적인 여건만 된다면 저라도 해보고 싶습니다요. ㅠㅠ 중국에 있을 당시에도 정말 여러 곳들을 돌아다니고 싶었습니다만, 항상 걸리는 것은 '시간'보다도 '돈'이었지요. 徐霞客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중에라도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찾아 읽어야겠군염. ㅎ (돈얘기가 제일 궁금합니다만.-_-;)

      저는 저 영감님 돌아다닌 여러 곳들 中에서도, 특히 普陀山이 가고싶어지는군염.-_-+


여행일자 : 2007년 7월 19일 앞의 포스트에 이어서.


동굴이다. 뭐, 우리나라의 유명한 제주도의 무슨 동굴은 근처도 안 가봤지만서도, 소시적 기억을 돌이켜보니... 동굴은 아니라도 배를 타고 어두컴컴한 곳, 혹은 칡흑같은 어둠속에서 조심조심 한발자국씩 앞사람을 따라 나갔던 것이 떠올라서인지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입구에선 조그나만 후레쉬도 팔고 있던데... 만다꼬~ 걸어서 가든 배를 타든 일단 가봅시다요. 그래도 이싱(宜兴)의 대표적인 관광지라는디.


앞서 언급한대로, 이 샨쥬엔동굴(善卷洞)샨쥬엔(善卷)이라는 사람이 은거하여 면벽수행을 하던 곳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것까지 읽어볼려고 했다만, 사실 그때도 그렇고... 또 이 영감님이 그렇게 나와는 관련있는 인물인 것 같지 않아 대강만 찾아보았더니 뭐, 별다른거 없더니만. 단지 간단하게 소개를 하자면 중국의 요순(尧舜)시대의 은사(隐士)라고 한다. 《庄子》、《吕氏春秋》에 기록되어 있길, 요(尧) 임금이 남방을 순시(?)하고 북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샨쥬엔을 만나 가르침을 청했다고 한다. 일개 평민에게 예를다 갖추어 제자가 스승을 대하듯 가르침을 청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신하에게, 샨쥬엔은 득도를 한 사람이니 당연히 예를 갖추어 한다, 뭐 어쩌구 저쩌구... 이후 샨쥬엔은 帝者师라고 칭해졌다 하고. 다음 대(代)인 순(舜)임금 역시 즉위 후 그를 찾아 가르침을 청했고, 왕위를 양위하려고 했으나 자신의 삶에 만족한 그는 사양하고 산속으로 들어가버렸다고. 뭐 이 정도.-_-;


하여간 이런 산신령같은 영감님이 있었다치고-_- 얼른 동굴이나 구경하러 가봅시다. 나와랏~ 동굴. 근데 들어갈 때까지도 매표소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공짜일려구. 그러나, 역시... 한참을 들어가자 우리를 반긴 것은 매표소.-_- (일단 들어오고나면 다시 나가기가 상당히 애매해지지.)

이..이.. 검표구가 뭐니, 뭐? 차라리 '검표처'라고 한자발음 그대로 쓰지.

중국의 어지간한 관광지에서 볼 수 있겠지만서도, 역시나 엉성한 한글표기. 입장료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꽤나 쌨다. 동굴만 관람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패키지를 모아져 있기 때문에, 동굴을 지나 다른 곳까지 지나갈려면 할 수 없이 패키지표를 구입해야 했다. (이것도 다 돈 벌어먹는 방법이지비.) 입장료가 기억나지 않아 찾아봤더니... 무려 RMB 120元...!


표검사를 하고 들어가자 조그나만 건물이 보였다. 아, 이제 여기서부터 시작이군.


근데 이 아저씨는 또 누구람.-_-; 추난창(储南强)이라는 인물은 청나라 말기에 태어난 사람으로, 간단하게 설명하자고 하면 이싱 관광사업의 개척자라고 한다. 왠 청말에 관광업?-_-; 신해혁명 후에 난징 임시정부의 정부인사로 장쑤성과 쩌장성에서 일을 했다. 특히 수리(水利)관련 업무에서 탁월한 업적이 있었다고. 50여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이싱으로 돌아와 이 곳 善卷洞과 张公洞을 개발시키고, 관리를 했다고. 뭐 이정도까지.


건물을 빠져나가자 드디어 볼만한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연경관. 그리고 꽤나 고전적인 자그나만 집. 이제부터 동굴탐험(?) 시작.-_-+ 마치 무슨... 속세와는 단절된 절정곡(绝情谷)을 보는 듯한 느낌.-_-;;; 나 이런데 왕~ 좋아하는디... 다만 살으라면 못 살지.-_-;;;


동굴에 들어가자 그저 게게한 냄새가 나는 암흑천지. 조명이 있긴 있었지만 워낙 어두웠기에 역시나 밖에서 왜 후레쉬를 팔고 있는지 알 수 있겠더라고. 딱 눈에 띄는 것. 바로, 동굴의 벽에 새겨진 '百病消除'라는 글자. 말그대로 만가지 병을 없애준다는 뜻인데, 그래서인지 이 벽만은 매끈매끈했다.-_-; 사람들도 꼭 여길 들려서 만지작만지작하고 가더라고. 뭐, 나 역시도... -_-v (사실 미신은 잘 안 믿지만서도, 남들하는거는 잘 따라하니까.-_-;;;)


불상을 찍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_- 제대로 찍을만한 곳도 없고, 설사 찍더라도 조명이 너무 약해서 제대로 건진 사진도 없다. 그냥 이런게 있었다는 것만 기념할 뿐.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며 이동을 하자, 드뎌 '배'를 타게 되었다. 동굴속의 배. 그나마 덜 위험하겠지비. 이 날은 워낙 무더웠기 때문에, 운동화를 신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쪼리 슬리퍼를 신고 갔는데, 워낙에나 바닥이 미끄러워서 꽤나 애를 먹었다.


사진이 정말 제대로 안 나왔다니께로. 이런저런 설정도 잡아주고, 플래쉬까지 터트려봤지만... 왠걸. 똑딱이 디카에 뭘 바라겠가는가마는. 하여간 배를 타고 다시 앞으로 전진.


사실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별다르게 볼거리는 없었다. 단지 벽면에 새겨진 글자들... 뭐 나름 '기원'을 뜻하는 글자들이겠거니, 했는데 해서(楷书)체외엔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글자가 없으니.-_-; 당시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인가, 여유없이 전진, 전진을 거듭하다보니 시간관념이 없어져 버렸다. 얼른 보고, 얼른 찍고 가자, 라는 마음밖에 없었으니. 그러다보니 드뎌 배를 내릴 시간. 시커먼 동굴안에서 헤매다 와서 그런지, 왠지 바깥경치가 더 아름답게 보였다.

드디어 탈출...!

그럼 잠시 여기서 휴식. 날이 무지 더웠기도 더웠고... 이싱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숨 한번 고르고 다시 앞으로 가기로 했다. 일단 계획없이 무작정 처음가는 동네를 온 것도 성공을 했고, 또... 그 곳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동굴도 구경은 했으니... 적어도 2/3는 성공한 셈이 아닌가. 이제 다시 숙소로 돌아가도 별다른 미련은 남을 것 같지 않았다.

유튜브에 동영상 올린거 링크 걸때까지 잠시 사진 감상.





중국에서의 동굴 관광지는 처음이었다. 뤄양(洛阳)에 갔을 때도 소림사(少林寺)에 너무 시간을 할애해 버려서 그 유명하다고 유명한 용문석굴(龙门石窟)을 못 본 것이 한이었는데, 그라나... 동굴 구경했으니 된 셈. (물론 정도의 차이는 엄청나겠지만.) 이싱 근처의 난징(南京)이나 상하이(上海), 혹은 우시(无锡) 같은 도시들은 생활이 너무 빡빡하고 공기도 좋지 않다. 그 곳에서 장기생활을 하는 이들은 주말에 당일치기로 시간을 잡아서 바람쐬러 오기 딱 좋을 것 같더라고. 물론 이 동굴외에 다른 코스도 있지만, 이 동굴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 같더라고. 조용허이... 개구리 소리나 듣고-_- 자그나만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 듣고... 별로 한건 없는데, 스트레스는 양껏 풀리는 것 같더니만.

뭐, 그러다가 발견한 현대문명의 이기지.-_-+

동굴 안에서 플래쉬 터트린 사진이 어떻게 나오나 실험삼아 들고있던 생수를 찍었는데, 이거 결국 나두고 나왔지비.-_- 갈증나서 괘나 고생했다. 그렇다고 우린 절대 관광지에선 뭐 절대 안 산다.-_-v

그나 이 다음코스가 어디드라? 기억이 안 나노.-_-; 하여간 善卷洞 이야기도 여기서 시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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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자 : 2007년 7월 19일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중국으로 두학기짜리 어학연수 코스를 갔던 곳이 상당히 낯설었던 중국 짱수성(江苏省)의 우시(无锡)라는 곳이었다. 이 곳을 정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어학연수 준비기간 中에 알았으니까. 원래는 북방의... 정말정말 촌구석, 그러니까 기숙사비만 따져보더라도 1인 1실 하루에 2달러짜리 방이 있다고 하는 대학(당시 이름 좀 있는 일반 대학들은 2인 1실 4달러 정도로 기억한다. 南京大学이 그랬다.)을 선택했었는데, 어찌나 외진 곳에 있는지... 결국엔 선뜻 결정을 못내리고 있었다. 무조껀 한국인이 적은 곳으로 가고자 맘을 먹었는데, 사실... 어지간한 중국의 각 대학, 그러니까 유학생들을 받는 곳들에는 한국인들이 다 있다.-_-;

그러다가 어떻게하다가 학부때 중문과 조교를 했던 누나와 연락이 메일로 닿았고, 나의 하소연에... 돌아온 대답은 "일로 온나."였다.-_-+ 그 누나는 조교직을 그만두고 상하이(上海)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거기서 만난 한국인과 결혼을 해 중국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그 곳이 바로 이 우시라는 동네였다. 어디지? 몰라, 하여간 기본적인 서류들만 보내면 등록이야 알아서 다 해준다고 했고, 더욱이나 내가 상하이의 푸동공항(浦东机场)에만 도착하면 알아서 택시를 보낼터이니... 잡다한 것 생각하지 말고 한국생활 정리 잘 하고, 어학연수 준비만 잘 하라는 얘기만 들었다. (내가 또 살면서 이렇게 남의 도움을 쉽게 받았던 것도 유일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웃긴 것이... 당시 알바 일 좀 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이 동네를 지도에서 찾아보지도 않은 채 떠나게 되었다.-_-v

중국 우시라는 도시, 상하이에서 기차로는 당시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 정도 걸렸다. 나야, 불러준 택시를 타고 갔으니 지리를 어떻게 알았겠소. 연수를 시작하고 두어달이 지나고 근처의 난징(南京)에 HSK를 치러 간 이후부터는 대강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우시에 도착하자마자 서점에서 우시 지도를 샀다. 우시 지리에만 신경쓰다보니까 이때까지도 우시가 정확하게 어디에 붙어있는지 신경쓰지 않았다.) 우시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대형 호수인 타이후(태호, 太湖)가 있다. 그래서 이 지역맥주 이름 역시 太湖水啤酒이다. 연수 초기에는 이리저리 빨빨거리는 것보다는 근처, 그리고 내가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는 곳만 찾아다닌다고 행동반경이 매우 좁았다. 간간히 수업시간 中에 선생들로부터 도시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 역사 정도를 들었는데, 하루는 그때  얘기를 듣고 혼자 찾아간 우시에서 나름 번화한 시내 근처의 南禅寺라는 곳에 가게되었다. (사실 목적을 세워서 가게된게 아니라, 국제전화 IC카드가 판다는 얘기에 한번 가봤지비. 아, 그때 거기 있는 서점에서 같은 층에 있던 일본인 유학생 코다마(兒玉)상과 토모키(智基)를 만났었군. 흐~ 자슥들 잘 살고 있으려나.)

이게 이싱차후래.(宜兴茶壶). 뭐 여기에 마시면 차맛이 좋다고들 하겠지비.

그때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서 팔고있는 차주전자 세트를 보게되었는데, 그때 이 이싱(宜兴)이라는 지명을 보게 되었다. '宜兴紫砂'라고 하면 보통 중국인들도 모두 알만한 것으로, 거기서 난 모래로 만든 차주전자(茶壶)가 특산품이다. 이 곳에서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었다. 근데 이래저래 물어보니 그저 촌이래.-_-+ 게다가 관광객들이 그 곳으로 가면 그저 진주나 차주전자 세트나 사들고 오는게 다라고 하길래... 그때부터 갈 마음을 접었던 것 같다.

07년 여름이지비. 당시 다시 우시를 찾았을 때... 나름 '직무'라는 것이 있었지만, 나도 불쑥 내 개인행동이 하고싶어졌다. 이왕 이렇게 왔는데, 어찌 남의 뒷바라지만 할 수 있겠소. 게다가 당시 일정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인지라, 내가 있으나, 없으나... 그다지 영향은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고.. 그래서 그때 내가 큰맘먹고 갈려던 곳이 바로 중국의 古镇 중의 하나인 우쩐(乌镇)이라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때 우시에서 가는 시외버스가 주말에만 있는 것을 알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비. 어쩌냐... 다음날이면 일행들을 이끌고 상하이로 이동을 해야하는디. 상하이야 그래도 내가 난징과 우시외에 가장 많이 가본 곳이기 때문에 별다른 기대감도 없었을 뿐더러, 역시나 이 넘의 일행들과 함께 해야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시간을 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상하이로 떠나기 바로 전날, 그리고 그 날 아침. '에라이 모르겠다.~'라며 일행 中에서 아침 일찍 깨어난 아해, 그리고 한명 더 추가로 해서 무작정 근처의 이싱이라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이면 갈수 있다고 들어서 일찍 출발하면 오후쯤에는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싱을 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거길 왜 가?-_-+ 하지만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_-;;;) 그래서 두 아낙을 이끌고 숙소를 나왔다. 그래, 가는기야. 마음이 급했기 때문에 택시라도 잡아타고 가야되지 않나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버스로.-_-; 이싱으로 가는 버스는 우시의 기차역 옆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터미널로 가야했다. (뭐, 이거야 1년 어학연수 시절의 짬밥이지 뭐.)

적힌 바와 같이 왕복 첫차와 막차 시간은 다음과 같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도 처음으로 가는 곳에 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간', '여유'이다. 시간을 아껴 여유를 가지고 돌아다닌다면 그만큼 수확도 많다. 하지만 이 날은 출발때부터 이싱으로 가는 버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정말 정신없었다. 계획하지 않았던 불시의 여행, 아무리 내가 중국물 좀 먹었고, 무대뽀로 빨빨거리긴 한다지만 막상 처자 둘을 이끌고 갈려니까 덤벙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때까지의 사진은 Zero이다.-_-;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그때 우시에서 이싱으로 가는 버스 요금은 25元~30元 정도였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걸린 시간은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 정도. 같이 간 일행이야 버스 탔다고 잠부터 잤지만서도-_- 나는 오래간만에 우시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느랴 정신이 없었다. 썩어빠지고 있다는 에메랄드빛 타이후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흠흠.

세상에 얼마만에 가보는 내가 안 가본 곳의 여행이라더냐.

한창 발전 中인, 아니 이젠 거의 발전이 끝난 우시의 외곽 모습을 보니 그 몇년전 내가 우시에 첫발을 딛었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정말 무슨 공사 전쟁터였다. 이래저래 부수고, 짓고... 그 먼지에 민공(民工)들에... 이제는 정갈된 우시의 모습을 보니 가히... 이러니 중국이 발전할 수 밖에 없지... 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도착. 근데 병원 이름이...

이싱의 시외버스 터미널. 특이하게 번체로 해놨군.

사실 이싱을 오긴 왔지만 아무런 준비없이-_- 그저 이싱에는 차주전자만 유명하다, 라는거 하나만 가지고 왔기 때문에 막상 도착하니 멍~ 해졌다. 어딜 가야 하누... 당시 숙소에는 인터넷이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찾아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음 복무원(服务员)들이나 그 학교 선생들 만났을 때 좀 물어봤을거로... 어차피 특정 행선지를 잡아놓은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 이싱에 왔으면 됐지 뭐. 그리고 갈만한 곳은 물어서 가면 되지 않은가. 이싱도 사람사는 곳이고, 이 곳도 관광객들이 적지 않을터인데, 이래저래 묻다보면 갈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싱 시외버티널의 내부 전경.

처음에는 그냥 이싱의 시내버스를 이용하려고 했다. 터미널의 건너편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려다가 잠시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고, 그냥 터미널 안에서 이래저래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그 터미널에서 바로 이싱의 관광지로 가는 미니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바꾸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을 때는 그냥 남들 가는대로 가면 된다, 라는게 나의 개똥지론. 그 미니버스는... 하여간 쌌다. 5元~10元 정도로 기억. 그래도 관광지로 가는 버스인데... 라며 갔건만, 이게 왠 일. 이거 10년전에 베이징 시내를 활보라던 미니버스(小公)보다 더 구려.-_-+ 에어컨은 당연히 없을 뿐더러, 그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거의 그냥 오고가는 중국인들.-_-; 관광객은 우리가 유일.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뭐, 평일이었고... 외국인들이 이싱을 찾을 때는 어지간하면 상하이나 난징, 우시등의 근처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뭐.

출입문 바로 옆의 아줌마가 버스언니야.-_-;

버스도 구리고... 차 속도는 안 나오고-_- 시내를 통해 가다가 나중에는 무슨 산길로 꾸불꾸불 올라가길래 '어이구야~' 했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소득은 있었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대화들을 통해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중국의 吴语계의 이싱화(宜兴话)를 지대로 들을 수 있었다는 것. (宜兴话나 无锡话가 비슷하다고는 하는데... 뭐 글쎄요.-_-; 그래도 宜兴话는 宜兴话지 뭐.)

사실 내가 우시라는 곳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학교외의 사람들, 그리고 젊은층외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었던 이유 中의 하나가 바로 이 사투리 때문이었다. 어찌나 심한지-_- 특히 재래 시장에 가면 '내가 왜 보통화를 공부하고 있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언젠가는 어느 장사치 아저씨가 나보고,

你的普通话比我好啊~ (니 표준어 내보다 낫네~)

라는 얘기까지 들은 적이 있었다. (사실, 이 말도 발음이-_- 난감하긴 했다. 이 말은 내가 하는 중국어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그 아저씨가 그만큼 중국어에서 표준어라는 보통화의 구사가 별로였다는 말이 된다.) 몇년만에 또 징~한, 왠지 불어처럼 들리는 이 알송달송한 사투리를 듣자, 그저 별다른 이유없이 재미있었다. 알아듣는 말이 나오면 좋은거고, 못 알아들어도 할 수 없다. 어차피 나한테 하는 소리도 아닌디.-_-; (지금 내가 기억하는 이 동네 사투리는 딱 하나다.-_-; 10元의 회화용인 十块(shi kuai, 스콰이)를 이 동네에서는 '썩카이'라고 발음한다. 물론 성조도 틀리다. 아마 '썩'이 4성 정도일 듯. 숫자도 이 모양인데 다른 말들은, 그리고 또 사투리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어휘들은 또 우짜고.-_-;)

도로에 차가 별로 없더라고.

이런 이름으로 길이름 만든 곳도 거의 없을 듯.-_-; 아무래도 차후(茶壶)가 유명한 곳이니.

대강 짐작으로 이 곳이 가장 번화한 곳 같았는디... 한적~ 평일 오후라니께~

간다간다~ 달리는 미니버스라지만 상태가 워낙에 아니좋아서, 엄청 흔들거렸다. 그 와중에 디카를 꺼내든 나. (우린 일단 찍고본다.-_-v) 정말 이 도시는 관광지외엔 아무 것도 볼만한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중국의 도시라 할지라도, 어지간하면 시내나 몇몇 골목길 정도는 다 빨빨거렸는데, 이 동네는 우째...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지게 만들더라니께.-_-; 그냥 '사람 사는 곳'이다 생각하고 마음을 접었다. 시간도 얼마 없었으니께로. (우리는 적어도 오후 3시 반까지는 우시로 돌아가야 했다.)

결국 산으로...!

아, 우리가 갔던 행선지에 대한 얘기가 없었는데,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그 곳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_-; 그냥 관광지라길래 버스에 올랐을 뿐, 뭐가 유명한지 이름이 뭐였는지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을 정도로 시간에 쫒겼었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바로...


바로 이 곳. 善卷洞. 이 곳에 대해 방금 찾아보니... 4000년전에-_- 善卷선생이라는 사람이 은거하며 참선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뭐꼬?-_-+ 일단 이번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여간 우시에서 이싱까지 가는데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역시 어딜가나... 사전지식과 계획은 필수라는 점. 헐~ 이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도보로 근처의 관광지들을 둘러봤다. 대강 기억나기론 동굴, 미끄럼틀, 양산백과 축영대 어쩌구... 하는 곳을 둘러봤던거 같으이. 이건 다음 포스트에.-_-;

아, 이 버스... 어찌나 냄새가 심하든지.-_-+

돌아가는 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구린 미니버스를 타고, 터미널쪽으로 갔는데... 그때 시간의 한계를 넘어선 관계로, 결국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장거리 택시를 타게 되었지비.

우시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이때 타고가면서 이싱 토박이라는 택시기사 아저씨와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 아저씨가 불쑥 다음 손님과의 통화를 하고 있을 때 살포시 녹음을 해둔 것이 바로 요것이지비.



근데 웃긴게~ 이거 듣다보니까 대강 알아먹겠다. 말은 쉽지만, 이때 아저씨 말 받아준다고 정말 진땀뺐다. ㅠ.ㅠ



无锡과 宜兴 한자어의 한글발음은 '무석'과 '의흥'이다. 의흥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우시(혹은 우씨)보다는 '무석'으로 부르고 있다. 일본인들 역시 원래 이 无锡가 중국진출 계획경제 도시였던 이유에서인지, '무샤꾸'라는 일본어 발음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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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3 01:45

    헉 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저걸 알아들으시다니..대단하세요

    • 2009/06/13 08:20

      알아듣는게 아니라, 듣고 눈치까고 대강 무슨 말인지 짐작을 한 겁니다.-_- 물론 간혹 알아듣는 어휘가 있기 때문이지만, 听懂이라기보다는 猜测了解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근데 이 동네, 吴语는 또 단어가 보통화와 다른 것도 많지요. 떱. 지금 생각해보면 방언공부 시작안한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ㅋ


이전 황도(黄岛)관련 포스트들.

여행일자 : 2008년 1월 7일

일전에 중국 청도(青岛) 옆에 있는 황도(黄岛) 관련 포스트를, 황도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건너간 이야기까지 포스트를 했는데, 우째... 황도에 관한 포스트를 제대로 하고싶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분명 내 딴에는 재미난 혼자만의 빨빨거림이었고, 또 당시 나름대로 생각도 많이 한 여행이었건만. 사실 여행이라는 단어까지 쓸만큼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없었지만... 그냥 무작정 아무것도 모르는 곳, 게다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어느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도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추억이 된 것 같다. 암튼, 황도 여객터미널에 도착하고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황도 터미널이 곧 버스 정류장의 종점이었다. 이래저래 버스 표지판을보니,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해서... 또 황도의 번화가 이름조차도 몰랐으니, 아무거나 잡아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고른 것이 바로 18번.-_-; (번호 좋자나~) 버스 아줌마가 있긴 있던데, 어딜 가야되는지 잘 몰라서, 대강 근처에 앉은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 말해서 2元인가를 건내줬다.

뭐하는 곳인지.-_-+

콘테이너 산을 보라.-_-;

반가운 한진-_-;

버스 안에서 본 황도 도로변의 모습은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黄岛가 아닌 荒岛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_-; 가다가 가다가... 에라이, 그냥 내리자는 생각에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내렸다.

귀족 자동차?

오... Volvo의 중문표기 이름이군.

내렸더니 역시나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갈대밭 좀 보다가 걷고, 또 걷고... 택시조차 보이지도 않거니와, 도로에는 콘테이너 트럭들만 신나게 오고가고 있었다. 여기 당췌 뭐하는 동네더냐? 무슨 전문적으로 콘테이너 선적을 하는 섬인 듯... 그래도  멀리서 보이는 아파트를 보니 사람들이 제대로 사는 곳인 듯 싶었고, 그렇다면 또 사람들이 붐비는 중심가도 있으니... 일단 버스 정류장 2개 정도를 더 걸어가봤다.

왠 新街口?

고가도로가 시작되는 곳까지 가니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이름이 新街口? 신제코(新街口)는 내가 3년간 있었던 난징(南京)의 중심가인데, 황도의 신제코는... 그저 고가도로가 있는 버스 정류장의 이름이었을 뿐.-_-; 그리고 시외로 나가는 미니버스(小公)들도 이 곳을 오고가고 었다. 대강 버스 표지판의 이름들을 살펴보니 기차역도 있었는데... 거기보다는 일단 간단하게 요기라도 할 수 있는 시내를 찾아가고 싶어서 일단, 다시 대강 아무 버스나 골라탔다. 일단은 버스 아줌마가 있는 버스가 아닌, 그냥 1元짜리 버스에 올랐다.

오~ 드디어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中医院 발견.

버스 안에서 창밖을 계속보고 있으니, 중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오고가고 있었고, 또 몇몇은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던지라, 걔네들은 자기네들 집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 그러다가 중의원(中医院)이 보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판단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어랏? 그래도 뭔가(?)가 안 보이는디... 흠흠. 우짜겐노, 일단 걸어야지.


생판 처음간 곳에서 이리저리 목적지도 없이 돌아다닌다는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어디 갈만한 곳이라도 준비해서 돌아다닌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도 잡아서 물어볼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간 것이다보니, 무작정 발길가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그래도 뭐, 원래부터 이렇게 빨빨거릴려고 아침부터 움직였던 것이 아니더냐.

소금을 관리하는 공기관, 盐政.

이름이 특이한 겜방이길래.-_-;

중국 도시에선 한번도 본적이 없던 盐政을 지나서... 겜방이 보이길래 슬~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딘진 모르겠지만, 끼니라도 떼울 수 있는 곳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라는 소박한 바람을 가진 채.-_-; 걷다 걷다... 보니, 결국에 나타난건 재래시장. 사실 이름도 잘 모르겠다. 황도가 얼마나 큰 동네인진 모르겠지만, 암튼 내가 돌아다닌 곳 中 가장 많은 인파들이 몰려있던 곳이었다. 재래시장이라... 사실 지저분한거로는 둘째가라 할 정도의 중국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그래도 나름 무작정 여행에 있어서는 신기한 것들이 많은 곳이다.


烧饼, 馄饨, 面条, 烤鱿鱼등 노점상에는 이런저런 중국의 小吃가 즐비해 있었다. 사실 저녁녘에 간단하게 2차로 맥주 한잔하는 자리가 아니면, 이런 먹거리들을 잘 먹지 않는다. (위생상의 문제가 좀... -_-;) 그래서 가게안에 들어가서 뭘 먹을려고 했는데... 또 긴가민가 해지는 것이, 중국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도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닌지라-_- 그러다가 新疆요리를 하는 식당이 보이길래 들어갈려고 딱! 폼을 잡았으나... 마침 눈 앞에 보이는건 또 어느 시장통의 입구였다.

小意思는 대게 선물을 줄때 '작은 성의' 정도의 뜻으로 사용된다.

암튼, 신장요리 하는 곳을 이리저리 많이 가봤지만, '快餐'(중국식 패스트푸드)이라는 이름을 단 곳은 또 처음봤다. 중국의 시장통 안에는 이래저래 도시의 시내에서 보지 못하는 재미난 것들이 산재해 있다니께로.

晨X园... 같은데, 중국 고문체는 역시나 잼뱅인 관계로.-_-+

와우~ 여긴 또 무엇을 하는 동네더냐.

완전 오리지널 재래시장의 표본이었다. 상가처럼 늘어진 이 곳은 꽤나 넓었고, 처음 들어간 입구쪽은 이런저런 생필품과 공산품, 그리고 의류등의 가게가 있었고... 바로 옆 비슷한 규모의 상가는 어패류나 육류를 파는 곳이었다. 이래저래 디카로 사진을 찍기가 뭐해서리, 동영상 잡아놓고 디카를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상가 1.


상가 2.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니고, 또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시장통의 모습이지만, 왠지 중국의 재래시장은 언제나 반갑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있었던 그리고 자주 갔던 无锡, 南京, 上海, 青岛등의 도시에선... 항상 발전 中인 중국 도시의 모습을 봐야만 했고, 왠지 정감있는 재래 건물들이나, 시장보다는 마트나, 지하상가들만 볼 수 밖에 없어서인지... 우연찮게 혹은 일부로 찾아간 재래시장의 모습이 반가운 것이다. 물론 난징에도 재래시장은 있었긴 했다만. 일단 한바퀴 돈 것을 만족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에 펼쳐진 도박판(?). 왜 컵 3개 중 한 곳에 뭘 넣고... 맞추는거.


마침 증명사진을 찍으러 칭다오의 시내에 나간다는 후배들과 연락이 닿았다. 혼자서 처량하게 끼니를 떼울봐엔, 조금만 더 참고... 걔네들이랑 같이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핸펀으로 계속 연락이 닿아야 했기 때문에, 핸드폰 카드 충전을 했다. 사실 한두번도 아니지만서도, 중국에서 핸드폰 충전을 할 때는... 본인이 카드만 사서 전화 걸고 이래저래 번호 입력할 수고를 할 필요까진 없다. "你帮我重卡吧." 이 한마디만 하면, 별다른 불평없이 알아서 자기네들 전화로 충전해준다.-_-;

시장통의 당구장. 포켓볼밖에 없다.

중국 장기에서 수를 풀면 돈주는? 아마 그럴 것이다.

이 시장통은 입구부터 300m 정도가 전부 노점상들로 북적였다.

시내에 나가고 있다는 후배들을 잡으러(?) 일단 황도를 빠져나와야만 했다. 더이상 돌아다녀봤자 뭐 더 있을 것 같진 않았고, 또 혼자 점심 먹기도 그렇고 해서... 여객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찾으러 나갔다.

앗, 글고보니 아까 못 알아봤던 재래시장의 이름이 '晨光园'이었군.

돌아갈 때는 2元짜리 버스를.-_-v

황도 여객터미널 근처에 한국식당도 있었다.

여객 터미널로 다시 돌아와선... 허겁지겁 다시 배표를 사러 갔다. 그리 급한 건 없었는데, 괜히 애매하게 배 떠나보내고 혼자서 3,40분을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빠른 걸음으로 가서 표를 샀건만... 역시나, 내가 탈 배는 딱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빠른 걸음도 부족하다, 달리자.-_-;

열심히 달린 증거.-_-; 달리면서 디카를 찍으니... 이런 결과가.-_-;;;

에공~ 배가 보이는군.

쾌속선 선내 입구.

안은 세자리씩... 공간이 쾌적했다.

사실 아침부터 출발해서 6시간 정도를 빨빨거린 간단한 일정이었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간 것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소득따위는 없었다. 뭐 또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대해서 공부한다, 라는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왔다갔다 배표값도 얼마 들지 않았고, 또 黄岛라는 곳도 알았다, 정도의 느낌으로 다시 칭다오로 돌아왔다. 칭다오 여객 터미널에 도착해선...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몰라도 좀 헤매긴 했는데-_- 우째우째 칭다오의 中山路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로써 질질 끌어오던 황도(黄岛) 여행기는 드디어 끝.-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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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0 03:25

    사진을 보니 예전에 저도 중국 여행다녀왔을때가 생각나네요 ^^
    이전 포스트랑 연결된 포스팅을 보니 배타고 다녀오신거 같은데 멀미는 안하셨나요 -ㅇ-;;;
    전 멀미를 해서 한창 고생했던...

    • 2008/10/20 03:32

      체질적으로 배멀미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군복무를 해군으로 하다보니... -_- 다른 사람들 멀미하는 모습을 보면 즐기기까지 합니다.-_-v 사실 배 안에서 맥주 한잔하는 것도 나름 운치(?) 있지요.

  2. 2008/10/20 10:23

    저 이름이 희한한 겜방.. 이란 곳에서 시간을 떼운적이 있어서리
    왠지 모르게 사진으로 보니깐 그냥 막 아련하네요.. ㅠ_ㅠ

    • 2008/10/20 12:52

      오... 전 근처에 다른 겜방에서 30분 정도 떼운 적이 있습니다만.-_-; 신분증 확인없이 배째라, 하고 들어가서 사장까지 불러내서-_-v 컴터를 사용했었지요. ㅋ


여행일자 : 2008년 1월 7일

A가 青岛 轮渡이며, 화살표가 黄岛로 가는 길이다.

올해 겨울에 중국의 칭다오에서 2주간 머물렀던 당시, 개인 행동을 가급적 자제(?)했던지라, 사실 내가 보고싶은 칭다오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단체여행식은 아니었지만-_- 항상 일행들(적어도 남정네 한넘)은 끌고 다녔기 때문에, 내가 이래저래 내가 가고싶은 곳으로 끌고가기보다는, "거기 가까?", "저긴 어때?" 이런 식으로 일단 의견을 물어보고 다녔었는데, 사실 이렇게까지 예의상으로 물어봤다고는 하지만, 대강 일행들의 반응을 대강 예상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내가 가고싶어서 제대로 가 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나름 중국학을 전공으로 하는 얘들이다보니, 나름 도움이 될만한 곳들, 예를들어 해군박물관, 루쉰공원, 독일감옥 유적박물관, 浙江路 천주교당(天主教堂)을 다니긴 했었다만, 나에게는 그다지-_-; 별다른 흥미나 감흥을 주진 못했다. 차라리 문을 닫아 입장하지 못했던 康有为故居와 같이 안내표지판에서 봤던 역사적 인물들의 故居를 따로 찾아가보지 못했던 적이 조금은 아쉽다.

青岛의 해안변이 한눈에 보이는 小鱼山 부근에는 여러 명인들의 故居가 많다.

그러다가 칭다오를 떠나기 바로 전날, 아침에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게 되어서 뭘할까... 하다가, 그냥 아무런 이유없이 외출준비를 했다. 당시 숙소에서는 인터넷이 불가능했기에, 노트북을 들고 시내 별다방(星巴克)에나 갈까도 싶었지만, 왠지 칭다오를 떠난다는게 섭섭하여,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고, 조그나만 가방 하나에 디카와 지갑, 그리고 핸드폰만을 집어넣고 무작정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칭다오에 머문 기간이 고작 2주일 남짓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래저래 빨빨거린 덕분에, 꽤나 작은 도시임을 알 수 있었고, 또 어지간히 갈만한 곳은 다 가봤다는 망구 내 생각에, 그냥 무작정 외곽으로 벗어나보자, 라 생각하고 시내버스의 종점으로 향했다. 차창밖에는 익숙한 곳들, 대게 익숙치 않은 곳을 빨빨거릴 때는 무식하게 도보로 돌아다니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지나가며 2주간의 칭다오 생활들을 정리도 할 수 있었다. 빨빨거림의 호기심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은 이제 막 나이 스물이 된 아해들보다 더 낫은 체력을 솟구치게 했음은 당연하리라.-_-v

중국 도시의 시외곽을 돌아다니다보면, 중국의 8,90년대 모습이 보인다. 요즘이야 중국의 어느 도시든지, 삐까번쩍한 높은 빌딩들이 어렵지 않게 보여, '아, 발전했구나, 하고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이들 도시들도 다 나름대로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법, 그 도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그리 볼만한 것들은 없지만, 시외곽 쪽도 나름 재미난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암튼, 종점 이름을 확인해보니, 어랏... 轮渡다. 이전에 이 중국의 轮渡 라는 곳을 겪어본 것이 상하이(上海)의 외탄쪽에서 浦东으로 건너갈 때였는데, 지하철이나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좀 더 서민적이고, 또 볼거리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커다란 배에, 사람들이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끌고 타는 모습들, 또 그들의 깨끗하지 않지만 삶을 다부지게 살아가는 모습은, 분명 내 생활의 역동력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그런 생각으로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배타고 건너가보자... 라고 생각하고, 轮渡의 배표를 파는 매표소 건물로 들어갔다.

매표소 앞.

시간 확인하고~

드디어 표를 구매~

어랏, 그러나 이게 왠 일. 행선지가 한 곳이 아니라 두곳이었으며, 처음에는 青黄, 青薜가 무엇을 떠나는지조차 헷갈렸었다. 青黄이라는 곳이 있는가보다, 青薜라는 곳이 있는가보다.-_-; 하지만, 곧 영문을 알 수 있었으니, 青黄은 青岛에서 黄岛로 가는 배를 말했으며, 青薜는 青岛에서 薜로 시작하는 어느 곳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아, 당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떤 섬이었던 것 같은디.-_-; 薜 뭐더라.-_-+ 방금 찾아보니 薜家岛였다.-_-v) 일단 행선지를 선택해야 했기에, 별 생각없이 황다오를 택했다. 이유는 별거 없다. 내가 칭다오에 있기 때문에, 황다오는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었으니. 그리고 또 하나 정해야 하는 것이 일반(轮渡客船)이나, 고속(高速客船)이냐 하는 문제였다. 뭐, 당연히 싼 것으로... -_-v  일반 여객선을 을 타더라도 30분 정도 걸린다라고 얘기를 들어서, 넉넉하게 여유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_-;

일반 여객선의 모습.

鲁胶渡 2는 04년부터 운행되었다. 10호까지 있다.

터미널 내부를 돌아다니며 보니, 업무를 보러 황다오로 가는듯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내 딴에는 무작정 여행이었으나, 결국에는 일명 출퇴근 인파들 사이에 섞인거더라고.-_-; 뭐 그럼 어떠냐, 황다오라는 곳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 업무를 보러 가는지... 사못 기대가 되었다. 탑승 알림이 나왔고... 수많은 인파에 끼어-_- 쫄랑쫄랑 표검사를 받고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쪽으로 향했다. 사실 이 짓도 쉬운 짓거리는 아니다.-_-; 워낙에 사람들이 많았는지라, 처음에 표를 끊을 때도 고속 여객선으로 끊을까...도 생각은 했었다만, (아무래도 중국의 교통편을 이용할 때는 비싼만큼 사람들의 수준이나 좌석에서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곳까지 오게된 것도 일반 중국인들, 중하층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뭐... 끼어드는게 문제가 될지도 없었다. 단지, 냄새가 좀 많이 났을 뿐.-_-;;;

이 이런거야 예의상으로 한번 찍어주고.-_-;

여객선 내부모습.

갑판에서 본 여객터미널의 모습.

선착장 주변의 모습. 저 배가 고속여객선.

수많은 인파에 끼어, 나도 모르게 자리에 앉기는 했다만, 황다오까지 걸리는 시간이 긴 것도 아닐 뿐더러, 그래도 나름-_- 군생활을 뱃넘으로 한 경험이 있기에, 조금 앉아있다가 얼른 갑판으로 나와버렸다. 어차피 실내쪽에서 내가 싸워야 할 것은 고독과 함께 따르는 심심함과-_- 사방에서 몰려드는 사람냄새, 중국인들의 체취이기 때문에... 후다닥 갑판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자 했다. 왠걸... 내가 2주간 칭다오에 있던 시간동안 맑은 바다를 본 것이 한두어번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날 역시 뿌연 안개와 함께 한 겨울의 쌀쌀함은 자못 매서웠다. 괜히 나왔나? 이왕 이렇게 된거 돌아다니기나 하자. 이 배가 유람선도 아니고-_- 또 시간이 지나자 이런저런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도착을 기다렸기 때문에 빨빨거리고 돌아다닌 것은 나밖에 없더라.-_-; 아, 이 뻘줌함. 그래도 빨빨거림을 위해 나온 것이기에... 여기저기 기웃기웃 여객선의 내부나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도 했고, 뿌옇지만 그래도 바다모습을, 아니 안개를 보기도 했다. 춥긴 허벌나게 춥더라만.

바다 날씨가 참..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배가 보일랑 말랑.

여객선 갑판쪽의 좌석.

여객선 실내 좌석.

차량으로도 탈 수 있다.

그래, 좋은 말이야.-_-;

한정 탑승인원 480명.

한정 탑승인원이 480명이라는데, 나중에 내릴 때보니까 사람이 더 많이 탄 듯한-_- 기분이 들었다. 대게 중국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가급적 중국인들의 개인 모습을 안 찍을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공간은 찍질 않아서 남아있질 않으나, 실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따리와 함께 쭈그려 앉아있든지, 기대어 서 있든지 하고 있었다. 참 이런 모습들 보면 별에 별 생각이 다 난다. 옛날에 이 배가 생기기 전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바다를 건넜을까, 저 사람들은 무슨 관계이길래 저토록 언변을 늘어놓으며 대화를 하고 있을까, 뭐 등등 잡다한 생각.-_-; 바다를 봐도 눈에 보이는건 안개뿐이고, 괜한 불안한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귀에 이어폰 꽂고 프렌즈(Friends) 음성화일을 들었다.-_-; 주변에서 들리는 중국어 소리도 들을만도 하고, 재미도 있다만, 산동 사투리가 제법 많이 들리길래-_- 그냥 듣다가 말았다. 산동쪽 사투리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작년 옌타이(烟台)와 올해 칭다오에서의 경험에 미루어 비춰볼 때... 너무 깊이 빠지면, 보통화 성조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 라는 것이다.-_- 발음은 둘재치고, 성조 무시가-_- 흠흠.

黄岛에서 青岛로 들어가는 여객선.

黄岛 여객터미널 선착장 모습.

자, 이제 내리자...!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과 귀에서 들리는 조이(Joey)의 말에 신나게 웃고있다보니 어느새 30분이 훌러덩 지나가버렸다. 사실 무작정 여행에는 별다른 계획이 없다. 그래서 별다른 생각이 없다. 그냥 가서 보고, 찍고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굳이 필요한 것은 이런저런 사람을 붙잡고 물어도 보지만, 그외에는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도 보고, 또 다른 중국인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는 문제다. 한정된 시간에, 넓디넓은 중국땅에서 내가 가는 시간과 보는 시간만 하더라도 부족하기 때문에, 가급적 별다른 계획없이 떠난다는게 나의 무작정 여행이다. 예전에 江西 난창(南昌)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지간하면 출발전에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고, 계획을 하고 갔어야만 하지만, 사실 정해놓고 떠나는 여행, 이미 찾아볼거 다 찾아보고 떠나는 여행은 여행의 즐거움을 반으로 줄이는 것 같다. 물론, 제대로 가지 못해 헤매게 된다면 고생을 바가지로 하게 되지만서도.-_-;

아따 사람이 많기는 많다. 그나마 통로가 좁으니, 줄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짜등가 선착장이 보였고...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했다. 중국의 교통편을 이용할 때, 이때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 우르르 정신없이 몰리기 때문에, 이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기우라 할지도 모르지만, 괜한 기우로 여유가졌다가, 나중에 피눈물 흘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인들도 조심한다.-_-;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타이어들이 보인다. 어랏, 저렇게 배와 선착장 사이를 보호하는 물건을 뭐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당췌 기억이 나질 않았다.-_-+ 군생활 할 때 나도 저런거 가지고 많이 놀았는디... -_-; 사실 지금까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저거 사람이 대는 경우도 있는데, 잘못 되다가 큰일 나는 수도 있다. 암튼, 타이어가 많기는 많구마이.

黄岛 여객터미널 모습.

아니, 이게 뭐지?-_-;

내린다고 사람들 속에서 세월아~ 내월아~ 하고 있는데, 여객터미널의 부근, 선착장 부근의 모습이 좀 이상하다. 뭐가 이래? 칭다오쪽과는 다르게, 뭔가 운반하고, 만들고... 기계의 굉음소리에 뚝딱거리고 장난이 아니다.  이게 황다오야? 이게 바로 황다오의 첫인상이었고, 왜 그런지... 나중에 황다오를 돌아다니며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아, 이게 황다오구나... 하면 룰루라라 여객터미널을 빠져났으니... 흠흠.

가장 먼저 반겨주었던 것은 각국의 국기. 한국있데이~

황다오의 여객터미널 역시 칭다오와 마찬가지로 황다오 시내버스의 종점이 같이 있었다. 어디로 갈지도 정하지 않았고, 또 황다오가 어떤 모습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도착한 이때... 뭐, 이 이야기는 다음에.-_-;

黄岛에서 青岛로 가는 고속여객선표.

고속여객선의 모습.

돌아갈 때는 일반 여객선이 아닌 고속여객선을 택했다. 가격차이야 두배였지만, 그리 비싸지도 않았기 때문에 (RMB 8元, 우리돈으로 1300원 정도. 아, 환율 정말 많이 떨어졌다.-_-;) 가격이 두배인만큼 걸리는 시간도 딱 반이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몇몇 일행들과 칭다오 시내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고속여객선 타고 휭~허니 갔다가... 시내버스 잡아타고, 칭다오의 시내인 远洋广场으로 향했던 것이 기억이 나네.


<덧>
황다오(黄岛)에 갔던 포스팅은 이미 한 바가 있다. 당시 황다오의 어느 시장바닥에 있는 PC방에서 잠시 끌쩍인 적이 있는데, 여행 도중 왠 컴터질이냐, 하겠지만서도... 당시 빨빨거리다가, 좀 쉴만한 공간을 찾은 곳이 바로 PC방이었다. 물론 30분도 채 되지 않아, 포스트 하나 남기고 바로 나왔고.-_-;

青岛轮渡 운행시각표와 표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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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0 09:46

    포스팅보다 눈물이..ㅋㅋㅋ(이런 어이 없는 일이...ㅋㅋ)

    黃島는 사연이 많은 곳이였답니다.

    반갑게 잘 봤습니다.

    • 2008/10/20 12:51

      어떤 사연이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黄岛에도 한국분들이 적지 않게 계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갔을 때는 한인촌을 찾을 엄두를 못 냈었지요.

  2. 2008/10/21 12:30

    몇년전 아이들를 황도에 있는 유명(?)한 학교에 보냈지요
    아이들을 기숙사에 입학시키고 배를 타고 나오는데, 눈물이 나서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이들도 많이 울었겠지요.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나면 가슴이 ㅠ,ㅠ

    (그 유명한 학교는 결국 돈 사고를 크게 내서 - 차 한대 값을 황도 가는 바닷가에 빠뜨렸다고 - 괴로운 추억을 한답니다.)

    그냥 별 사연을 아닌데 (사진 보다 반가워서) 궁금하게 했군요..ㅎㅎ

    답글 감사합니다.

    • 2008/10/21 13:50

      국제학교를 말씀하시는거 같은데, 차 한대값을 바다속에 던져버렸을거 같으면, 다신... 쳐다보지 않으실 듯 싶네요.-_-; 별 사연 맞습니다. 어떻게 위로의 말씀이라도.-_-+

      방금 대강 검색을 해보니... 학비가 정말 만만치 않네염. 07년 1월에 1년 학비가 1800만원 정도였으면... 지금은-_-;;;



역사적인 유적지를 찾아가는 것은 언제 가도 즐거운 일이고, 또 옛모습을 찾는 흥분되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좀 꺼려지는 것이 역사의 슬픔을 간직한 곳을 가는 곳이다. 몇년전 난징(南京)의 난징대학살 박물관(南京大屠杀博物馆)에 처음 갔을 때 그랬고, 얼마전 히로시마(広島)에서 원폭 자료관을 갔을 때도 그랬다. 들어가서 그리 좋은 모습을 보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전혀 그 역사적 사건(?)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닌데, 책에서 보고, 또 듣고한 것들을 직접 가서 보는 것이... 이제는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더라고.


근데 지난 겨울 칭다오(青岛)에 있을 때도, 본의 아니게(?) 일명 칭다오 독일감옥 유적 박물관(정식명, 青岛 德国监狱旧址博物馆)에 가게 되었는데, 이제서야 살포시 포스팅을 해본다. 사실 이 곳에 대해 아무런 자료나 정보없이 돌발적으로 가게 되었다. 언젠가 이 근처를 버스로 지날 때, 표지판에 뭔가(?) (감옥 비스무리 짭짭한거) 있다, 라는 것을 보고... 한번쯤 도보로 직접 와서 찾아봐야겠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이 날은 점심을 먹자마자 숙소를 나서서, 그 유명하다던 칭다오의 빠다관(八大关)을 지나, 제2 해수욕장(第二海水浴场)까지 갔었고, 저녁 먹기까지 시간이 애매하다 싶어 버스로 栈桥까지 갔다가 여기 근처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어차피 대게 중국의 관광지나 기념관들은 오후 5시까지는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남았었다.


먼저 칭다오의 1900년대 초반 얘기를 하자면, 중국 청나라 말부터 제국주의 열강들이 이래저래 중국을 찢어먹고, 볶아먹기 시작하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면 끝도 없지만서도. 간단하다, 영화 '황비홍'을 보라.-_-;) 결국 칭다오는 독일에게 넘어가게 된다. 1차대전에 패한 독일은 이 조계지를 다시 반환하게 되는데, 중국이 아니라 일본에게 넘어간다. 맥주로 유명한 독일이 이 곳 칭다오에다가 맥주 공장을 만들게 되고, 나중에 일본인들이 그 공장을 물려받아 시설을 잘 운용하는데, 그게 바로 곧 지금 중국 맥주 브랜드 中에 가장 대외적으로 유명한 칭다오 맥주(Tsingdao Beer)이다. 암튼, 이외에도 독일인이 칭다오에 남기고 간 것이 천주교당(天主教堂)... 그리고 바로 이 감옥인 것이다. (천주교당과 청도맥주 박물관 모두 다녀왔으나, 귀차니즘으로 인해, 여전히 포스팅을 미루고 있다.-_-;;;)


뭐, 감옥은 자고로 사람을 가두는 곳이고, 독일인들이 만들었다고 하니, 칭다오 통치 당시 중국인 범죄자들을 집어넣은 곳이 아니겠는가. 꽤나 꺼림직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또 언제 오겠는가 싶어서 15元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나중에 기사를 통해 안 사실이지만, 이 곳은 작년 5월에서야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떻게보면 꽤나 운이 좋았던 셈. 1900년에 지어졌으며,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식민지 감옥이라고 하고, 또한 박물관 내부에 소장되어 있는 문서자료나 문화재는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할 것이다. 뼈저린 중국 현대사의 한면을 볼 수 있겠지비.


솔직히 말해서 들어가봤자 볼거리는 없다. 현대사 관련 자료도 있고, 또 옛 감옥내부의 모습을 복원했다고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그리 흥미나 혹은 무언가의 의미를 찾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중국인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는데, 하물며... 외국인들에게는.-_- 몰라, 독일인들은 찾을지도 모르겠다만. 흠흠. 우짜등가, 우리 일행이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다른 팀들은 단 한명도 없었으니... -_-;;; 1층 입구를 통해 잠시 중국 현대사에 대한 간략한 자료들을 보고나면 감옥 내부로 들어가는데, 조명은 있지만, 상당히 어두침침해서 사진이 그리 잘 나오진 않았다.-_-+


몇몇 방에는 모형으로 된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당시 실제로 투옥된 주요 인물인 것 같다. 사실 중국 현대사에 대해 지난 몇년간 관심을 가지고 이래저래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접하면 꼭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었는데, 이 곳에서 본 인명은 사실 처음 봤다.-_-; 그래서 포스팅을 하던 도중 대강 찾아보니, 李慰農이나 胡信之는 당시 반일운동을 하던 인물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공산당쪽이라는 것.-_-;;; 암튼, 이 둘은 같은 날에 사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舒群 역시 공산당쪽 작가, 그러니까 당시엔 左联(좌련)이라고 있었지비. 그 작가는 그래도 당시 동북쪽 대표 작가로 유명해서인지, 따로 자료실을 마련해, 사진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독일 감옥 유덕 박물관의 내부 모형도.

뭐 이 정도겠구나... 했는데, 그리 달갑지 않은 곳이 남았었다. 바로 일본이 썼다는 고문실.-_-;;; 아~ 정말 여기는 내부 분위기도 흉흉했고 해서 아니 갈려고 했는데, 같이 간 일행들이 워낙 호기심을 만발하던 아해들이었던지라-_- 일단 따라가긴 갔다.

뭐 사실, 별거 없지만서도.-_-;

이제는 끝났겠다... 싶어서 밖으로 나왔는데 더 남았다. 여기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넓은 것이야. 근데, 이 곳은 원래 26개동이었는데, 지금은 9개동만 남아있다고 한다. 참 크게도 지었다. 우째 사람들도 없는 휭한 공터로 나오자 분위기가 더 을씨년스럽더니만.


남은 곳은 감옥욕실과 각 义,智,礼 이름을 딴 감옥 건물이었는데, 35년에 개명되었다고 하니, 아마 칭다오가 중국으로 복귀된 후 예전에 감옥에서 고생했던 인물들을 위해 이름을 일부로 바꾸지 않았나 싶다. 35년에 바꿨다고는 하지만, 37년에 중일전쟁터지는데... 무슨.-_-;;; 암튼, 안에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바깥에서 대강 엿보기만 했다.



드디어 관람 끝. 건물을 복잡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녀서인지, 본 것에 비해서는 생각외로 시간이 많이 잡아먹혔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룰루랄라 일행들과 함께 칭다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자 했는데... 왠걸, 또 재미난 것 봤으니... 이 독일감독 유적 박물관 바로 옆에는 꽤나 고급스러운 중식 레스토랑이 같이 불어 있었다.-_-; 우째 입구 오는 길에서 내려오는데, 모택동 글자가 있다구 했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입장료는 내고 들어오는 입구로 다시 나가도 되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레스토랑 입구를 통해 나가도 상관없다.-_-;;; 식당뿐만 아니라 숙박업도 겸해서 하는 것 같던데 (이건 확인하지 않아서리) 만약 그렇다면... 여기 투숙하는 사람들은 꽤나 찝찝하지 않을까나.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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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1 19:51

    칭타오 맥주 이야기로군요...
    저도 얼마전 중국사 수업중에 알게되었죠

    독일감옥, 반일분자수감, 중국에 위치...
    뭔가 인터네셔널 감빵이네요 ;;

    • 2008/04/12 08:18

      독일애들이 자기네들 써먹을려고 중국땅에다가 만들었는데, 그걸 나중에 일본이 먹은거고, 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거고... 중국은 그걸 보존해놓고 기념관으로 만들어서 관광수익 겸 역사교육 자료로 삼고...

      결국 돌고도는게 '역사'란 물건 아닐까요.

  2. 2008/04/12 12:09

    죽쒀서 개줬다 일까요 -_-


여행일자 : 2007년 7월 22일

이 곳이 바로 周庄游览의 매표소이다.

중국 강남에는 대강 여덟 곳의 물의 도시(水乡)이 있다고 한다. 周庄、西塘、乌镇、同里、甪直、木渎、锦溪、南浔. 이 中에 내가 직접 다녀온 곳은 조우장(周庄)이 유일하다.-_- 재작년 8월에 가족들과 함께 찾았던 조우장(周庄), 이제는 워낙 관광지로 잘 알려진 곳인지라 다시 갈 일이 있겠는가 싶었건만, 본의 아니게 일정에 맞춰 움직이다보니 결국 다시 한번 이 곳을 찾았다. 재작년엔 상하이(上海)의 上海体育馆에서 오전에 당일치기로 떠나 오후 5시쯤에 돌아오는 여행버스(游览巴士)를 타고 다녀왔는데 비해, 이번에는 아~주 편하게도 단체에 속해 갔다오다보니, 지난번 갔을 때와는 사못 느낌이 달랐다.

周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万三蹄'이다.

이날 직접 먹었는데, 생각외로... -_-

이전에 포스팅한 바와 같이 이 저우장(周庄)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유명 관광지라, 시간계산을 잘 세워놓고 가야한다. 도착 당시, 그리고 떠날 때는 별 상관없으나, 周庄의 명소인... 沈厅이나 张厅과 같은 주택 안에 입장하며... 좁은 골목길과 또 내부 역시 비좁기 때문에... 인파가 몰렸을 때에 상당히 귀찮을 수도 있고, 사진촬영에도 애를 먹을 수가 있다. (단체 여행시엔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 일행을 잃어버리면 찾아나서기도 쉽지 않다.)

周庄 코스 전경.

사실 이 곳은 관광객 수만 적어 한적하기만 하다면야 최고의 관광지일 수도 있다. 한 여름이라도 소르르 부는 바람에, 그 바람을 탄 물가변의 느타나무를 보며 시원한 맥주 한잔하면 딱이겠구만, 그럴만한 분위기를 많은 관광객들 때문에 못하니... 흠흠. 이래저래 인파들을 따라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바로 周庄 코스를 시작하는데, 좁은 골목길을 따라 가는지라, 각별히 신경 써서 움직여야 한다.

첫코스는 张厅.

옛 모습 그대로 가지고는 있건만.

내부 실내를 통과하면 옛 가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 이제 沈厅으로.

돌아다니다보면 재미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하수도 아닌 것이 집안 내부에 조그나만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당시 이 곳의 하인들이 그 하천을 배를 타고 움직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하천은 부엌으로까지 통해져 있고... 흠흠. 물론, 지금 그 곳에도 조그나만 배가 있던데, 그것 아마도 그 하천 청소용.-_-+

沈厅은 각기 이러한 문(?)을 통과한다.

沈万三과 朱元璋의 이야기를 담은 동판벽화.

내부 모습은 그리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다. 다만, 明代때의 부상(富商)이었던 沈万三의 이야기, 그리고 그와 주원장(朱元璋)애 얽힌 이야기들이 동판(?)으로된 벽에 그림과 설명이 깃들여져 있다. 재작년에 갔을 때, 얼핏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우째 기억이 하나도 안 나누... 암튼, 주원장이 명초, 난징(南京)에 도읍을 정하고, 심만상에게 돈을 내어 궁을 지어라 하고, 대신에 그의 아들 둘에게 관직을 주는데, 결국엔 심만상을 운남(云南)으로 귀향보냈다... 뭐 이런 얘기였던거 같은데... -_-+ 나중에 여유닿으면 제대로 한번 찾아봐야겠다.

沈厅의 沈万三상이 있는 방.

沈万三의 상. 이걸 만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어색한(!) 한국어 표지판. 이 곳의 모든 한국어 표지판은 다 엉터리였다.

배타고 룰루랄라~

대강 张厅과 沈厅 관람을 마치면, 周庄에 들어올 때 바로 한눈에 들어왔던 배를 직접 타게 되는데, 한 척당 8명씩 타게 된다. 그리고, 대강 10元 정도의 小费(팁)을 주면, 苏州 지역 뱃사공의 노랫가락을 직접 들을 수가 있는데, 가급적이면 배를 탈 떄에도 아줌마 뱃사공을 택하는 것이 좋다.



Posted by wuri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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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24 18:27

    허헛..전 작년 여름에 同里를 갔었죠.
    역시 물의 도시더군요ㅎ 사진기고 뭐고 없어서 그냥 눈에만 담아 왔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너무 더워서 느긋히 구경할수가 없었어요ㅠㅠ
    이제 다시는 여름에 苏州를 가지 않겠다는..-_-

    • 2007/09/24 18:30

      더워도 더운만큼 기억에는 많이 남는 것이 중국 여행이지요. 뭐, 편하기만 하면 그게 여행이겠습니까, 관광입지요. 저 역시 여름때마다 이런저런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봤는데, 가끔씩 찾아들어간 '은행'은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더군요.-_-+ 한국도 그렇지만, 날 더울 땐 은행이 최곱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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