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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보면 나는 참 노래방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고딩은 노래방 출입이 되지 않던 시절에, 韓군을 끌어다가 동네 노래방에서 첫 곡으로 부른 푸른하늘의 '꿈에서 본 거리'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어느 일정 나이때까지는 참으로 뺀질나게 다녔던 곳이 바로 노래방이었다. 술 한잔 마시고 습관처럼? 아님 분위기에 이끌려 따라 갔던 노래방이 아니라... 대낮에도 갈 수 있었던, 아니 심지어 신곡나오는 날이면 들려야 했던 곳이 바로 내 기억속의 노래방이었다. 뭐, 그렇다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닌데... 단지, 내가 아무리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뭐라할 수 없는 곳이 바로 노래방 아니던가.

군입대 바로 전에는 아예 야심한 밤에 노래방의 방 하나를 잡아놓고, 맥주 한박스 까면서 다음날 오후 2시까지 노래를 불렀을 정도였으니... 아는 노래도 많았고, 또 그만큼 좋아하는 장소였다. 분명히 그랬는데... 내가 지금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노래를 안 부른 것이 거의 4년이 다되어 간다. 그렇다고 그 사이동안 노래방을 아니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노래를 主로 하기보다는, 노래주점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지비. 아, 글고보니 작년에 殷군이 부산에 잠시 들렸을 때 그때 노래를 부르긴 부른 것 같다... 한곡? 두곡? ... 거의 殷군 혼자 다 불렀지 뭐.-_-;;; 하여간 지금은 굉장히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아무리 친한 넘들을 만나도 쉽게 노래방에 가자는 얘길 하지 못한다. 그만한 분위기도 조성이 안되고... 또 왠지 남정네끼리 노래방 가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동네가 많아서리.-_-;

중국에 있을 때에도 노래방을 당연히 갔었지비. 특히 한국 사람들과는 조선족이 운영하거나, 아니면 한국인이 운영하거나... 아니면 한국 노래방 업체인 금영이 있는 곳이라면 부담없이 찾을 수 있었지.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었고... 또 정말 편하게 맥주는 실컷 마실 수 있었으니까. 하여간 그랬다. 분명 그랬는데, 우째 귀국을 하고부터는 노래방이나 노래주점에 갈 일이 있어도 노래는 아니 부르게 되는 것일까.-_-; 아, 그렇다. 나이 좀 먹었다고... 최신곡 챙기기도 귀찮고-_- 또 젊은 얘들 나와서 빠른 노래를 부르거나 하는거보면 도저히 그 세대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나마 최신곡 목록 中에 박효신, 이승기, 이승철... 혹은 부활 정도라면 따라가는 척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노래방을 갈 기회가 거의 없는게 지금의 현실.

중국에서 갔던 한국계의 노래방외에... 오리지날 중국식 일명 KTV도 간간히 몇번 갔었다. 내가 굳이 찾은 것은 아니었고, 특히 한국어 가르치는 알바를 마친 후 계속 연락하면서 종종 식사를 했던 학생들과 자리를 같이 해서 몇번 따라가봤는데... 그 中에서 끝내주는 시설의 노래방이 있더니만. 중국에선 아예 체인점 형식으로 된 KTV도 즐비하나, 이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단 대강 모습부터.


자, 일단 무대는 대강 이런 분위기. 저기 앉아서 부르게 되어 있더라고. 물론 몇년전(2006년)인지라, 지금은 훨씬 좋아졌을터이다. 모니터에 보이다싶이 한국노래도 있더라고. 룸 자체가 워낙 넓어서 적어도 15~16명 정도는 거뜬히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 우리 맴버는 고작 7명.-_-;


이게 관객석(?)에 비치된 노래선곡 기계. 아, 나도 분명 기계치는 아닐터이지만, 아, 적응안되더라. 가수 찾을 때도 획수 따져가며, 병음 순서 따져가며... 여기까지와서 중국어 사전 찾을 연습할 일 있냐.-_-; 근데 한번 배우고 나서 요령만 익히면 정말 쉽지비. 이후에 일본 가라OK에서도 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지.


자, 예약노래 목록이다. 누구 18번까지 딱 보인다.-_-; 당시 좀 유행했던 노래가 바로 성룡, 김희선 주연의 '신화(神话)'의 주제가였지비. (햐, 오래됐네.-_-;) 내 노래... 두곡도 살포시 있구만. I miss you랑 单身情歌.-_-; 근데, 한국노래가 별로 없다. 오죽했음 내가 대학교때 종종 불렀던 노래를 선곡했겠는가. 지현(林志炫)형님의 单身情歌는 솔로일 당시에 워낙 많이 불러서-_- 우짜다보니 18번이 되어버린 노래다. 미안하다... 커플일 때도 부를게 없어서 부를 수 밖에 없었다.-_-+ 캬... 명곡이지, 单身情歌. -_-+ 솔로들 가심을 팍팍 찌르는... ㅠㅠ 들어보실려우?-_-; (너무 중화틱해서 촌시러울스도. ㅋ)


하여간 이 날 참석인원을 보니, 딱 그 맴버들이군. 赵군, 王양, 赵양, 汤양, 沈군... 그리고 한분. 근데 우째 무대가 넓어서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사못 진지해. 이 날 재미없었나?-_-; 당연, 우리가 먹었던건 고작 과일... 끝.-_-; 아, 살포시 보이는...扎啤.-_-v



이 날 찍은 맴버들의 표정을 다시 살펴보니 정말 엄숙하다. 디카를 들이대서 그런가, 아님 다들 나름대로 노래방 연구를 하고 있었나. 그때 참 노래 잘 부른다고 생각했었던, 그리고 동방신기의 골수팬이었던 조진진이... (얘가 아마 이때 갓 우리나이로 갓 스물이었을 듯.) 南京 LG에서 열심히 근로하는 王언니... (흠. 나보다 많이 어린뒈-_-) 고등학교때부터 길~게 연애해서 지금은 당연히 중국 아줌마로 거듭났을 汤언니... 그리고 의리도 있고, 울컥도 있고, 덴장 키도 나보다 훨씬 컸던-_- 그러나 주량은 나보다 약했던 赵군... 다들 잘 있겠지비. 기다리봐라, 이 형아, 어빠야...가, 조만간 너네들 떼거리로 모아서 한때까리 할 웅대한 꿈을 갖고 있다.우히히. 한... 15명만 딱 모여도 좋겠구먼, 이래저래 뿔뿔히 흩어져 있는걸 내가 뻔히 아니, 10명도 감지덕지겠군. (그래도 미쿡으로 유학간 얘들이 가장 충성심이 높았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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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2 03:46

    북경 우다코에는 한국 노래방도 많이 있어서 종종 가곤했는데..
    시설 죽이더군요..-_-;;

    • 2010/01/22 11:41

      五道口야~ 한국인들의 천국 아니겠슴까.

      저는 환전하러 종종 갔던게 기억나네요. ㅎ

  2. 2010/01/27 15:03

    오랜만입니다 ㅎㅎ북경에 있는 이런 KTV들은 대부분 실내에 간단한 뷔페를 가지고 있더군요 ㅎ 물론 가격도 한국보다 비싸더라구요. 시설과 서비스에 비하면 적절한 것 같기도 하지만서두 자주는 못가게 되더군요.

    계시는 곳이 북경이신지요?

    • 2010/01/27 17:13

      전 부산(釜山)입니다.-_-v

      예전에 다녀왔던 곳 사진이 보이길래 포스팅한거에염. 그래도 저긴 나름 건전한(?) 곳이니... ㅎ 과일에 맥주 정도는 시켜먹었지요.

      언젠가 좀 음침한(?) 곳을 가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깡패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러니까 형님 하나가 아가씨 한명차고 놀고 있고, 바로 룸밖에서 보초 둘이 서 있는-_- 모습을 보고 질겁을 했던 적이 있었지요. ㅋㅋ

본격적인 운전을 하고부터는... 우리나라가 참 땅이 좁디 좁다라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 어딜가더라도 100km가 넘지 않으며 멀리간다 하더라도 400~450km 정도이니 이제서야 한국땅의 실제 크기의 감이 잡혔다는 말이지비. 물론 부산<->서울 거리 운전만해도 만만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운전을 좋아한다거나, 잘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동차 여행'이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날까... 라는 생각을 하니, 우리나라의 토지면적이 좁다, 라는 것을 알겠더라고. 왜... 영화에서 본 미쿡땅 자동차 여행은 무슨 사막에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에... 지평선까지 볼 수 있지 않은가.

내가 그렇다고 미쿡까지 간다는 것도 아니고... 거기까지 가는 뱅기값이 더 아깝지비. 또 멀리갈 것 있겠수... 중국이라는 바로 옆 동네, 땅넓기로 소문(?)난 이 땅에서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직 한번도 구체적인 계획은 잡질 못했다. 그랬으면 이런 포스트도 쓰지 않았을 듯. 예전에는 어딜 가든지간에 기차, 고속버스, 국내선 비행기로 특정장소만 옮겨다녔지만... 이 역시도 어떤 의미에서 보게된다면 여행의 의미가 살포시 떨어지지 않겠는가.


일단 내가 대강 생각한 코스가 베이징에서 쿤밍이다. 대강(!)이다. 사실 시작은 어딘지 나중에라도 확실친 않으나 상하이(上海)보다는 북쪽이 더 낫을 듯 싶었다. 이유인즉, 베이징에서 시작해서 내려오는 길이 곧... 중국의 중원땅이라는 곳이다. 생각같아서는 교통의 요지인 정주(郑州)나, 제남(济南)도 들리고는 싶으나, 길이 길인지라, 일단 석가장(石家庄)과 태원(太原)만이라도 마음에 든다. (사실 베이징->석가장->태원->서안 코스는 기차로 다녀왔었다.) 낙양(洛阳)도 들릴 수 있으면 좋고... 하여간 그렇다. 대강 자동차길 코스가 2700Km. 물론 하루이틀만에는 절대 못가는 거리지비. 게다가 기름값.-_-; 발로 하는 여행이 가장 의미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먼 거리는 차마 도전해보고 싶지가 않다. (종종 중국 전국을 발품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인도 있었고.) 발대신 바퀴로 돌아다니며 좀 더 가깝게 볼 수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고.

그냥 생각만 한 것이다. 차 렌트를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또 구체적인 정차 도시를 정한 것도 아니고. 말이 쉽지 그냥 한국처럼 떠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지 않은가.-_-; 생각만으로 끝날지, 실행할 수 있을지... 그건 앞으로의 내 상황에 따라 결과가 나오겠지비. 그래도 생각, 상상만 하더라도 재밌지 않겠는가? 중원을 누비며-_- 이것저것 또 공부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쿤밍에 도착했다고 끝이 아니라, 광서성을 거쳐 홍콩(香港)을 들리고 해변길을 따라 하문(厦门)까지도 들릴 수 있다. 정말 생각만큼은 재미난 일이군. ㅠㅠ 몇일이 걸릴지도 확실치 않고... 금전적으론 얼마나 필요할진 몰라도, 이 소망만큼은 한동안 가지고 지내야겠다. 우헤~


아, 중국 면허증... 이거 새로 시험쳐서 따야한다는데, 뭐. 이 정도 쯤이야.

금연 24시간이 넘어가니 머리가 어질어질.-_-; 3일만 버티면 반은 성공임세. 후다닥 마트나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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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귀국한 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다. 고로, 아직 적응이 덜 되었을터이다. 자, 얼른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면서 한국생활에 좀 적응을 해보자. 분명 내 입에선 유창한(?) 한국어, 아니 표준어보다 더 구사하기 어렵다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_-가 자연스레 나오고 있는데, 어째 티는 안 나지만 남들과의 대화가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아, 그러니까 가족이나 주변의 지인들과의 대화말고... 가게 같은데... 가서 얘길 나누면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자꾸 들게되더라고. (내가 방금 한말이 맞나? 내가 지금 이렇게 돈 주는게 맞나? 혹, 돈을 던지진 않았나?)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중국에서 간혹 돈을 건내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 황당할 경우가 있잖우. 이래저래 실수 아닌 실수를 할까봐 나름 노심초사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름이 대장금인 식당을 지나갔다. 대장금? 난 한편도 본 적이 없다.-_-; 근데 '오나라~ 오나라~' 노래는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중국에서의 대장금 붐이 장난 아니었지비. 근데 난 이영야와 지진희가 주인공이라는 것외엔 전혀 아는 바가 없다.-_-+ 하기사 내가 한국 드라마 전편을 다 본 것이라고 해봤자 딱 한편이 유일하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_-; 이 드라마는 군대에서 할 수 없이(?) 보게 되었는데, 나중에 중국에 와선 DVD로 구입까지 했다. 나름 연구를 한다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장편의 현대물인 우리나라 드라마는 적응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주인공 연애 얘기가 나오면 또 금방 주변 사람의 연애 이야기가 튀어나온다.-_-; 그리곤 그 주변 사람의 이모나 삼촌까지도 연애를 하고 있다. 뭐가 이리 복잡하냐고. 내 머릿속의 배용준의 이미지는 이 드라마가 거의 유일하다. 힙겹게 살아가는, 그러나 그러한 현실을 참아내며 더 좋은 인생을 고대하는 모습. 우째 잘 알려진대로 귀공자 타입의 모습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보니 이 드라마의 캐스팅은 무시할 수만도 없구만. 배용준, 김혜수, 윤손하, 박상민, 이나영, 이재룡... 그리고 왕고참 배우인 주현, 김영애, 윤여정. 뭐 또 알게모르게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찾기 어려운 배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비. 아, 궁금한게 하나 있다.


贵溪 라는 강서성(江西省)의 조그나만 도시의 시내에서 이런 옷(?)을 팔고 있던데... 여기에 왜 대장금이 써있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_-; 그때 이 집 사장 아줌마한테 못 물어봤던데 지금도 걸린다. 실제로 대장금에 비슷하게 생긴 옷이 나오는가, 아니면 황당하지만서도 사람들이 이 옷을 입은 채 대장금을 시청하는 것은 아닌가.-_-; 아니면 단순하게 그냥 드라마 유행 때문에 이름만 붙인 것인가. 물론 시험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니, 그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_-+


이 사진을 가지고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하여간 순간이지만 잠시 움찔했었다. 어랏... 南京이라닛. 내가 3년이나 서식할 수 밖에 없었던 그 곳, 난징이라니. 근데 우리나라에 '남경'이라는 이름의 상호도 만만치 않게 많더라고. 중국의 난징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겠지비. 그래도 한자로 보인 것이다보니... 좀 그렇데???


아... 태극권. 개인적으로 태극권 수업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요즘은 대학에서 방학때 단기연수를 가면 수업으로, 아니면 특별활동으로도 넣는 곳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기회도 없었고, 사실 그만한 부지런함이 없었다는게 사실이겠지비. 허나, 구경은 참 많이 했다. 학교든, 공원이든, 운동장이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남의 이목도 신경쓰지 않고 무공수련을 하고 계신다. 장소가 어디든 공통점은... 평균연령이 퍽이나 높다는 것이겠지. 한국에서 하는 태극권... 흠. 나쁠거야 없겠지만서도, 태권도부터...? 퍽~


또 떡볶기다. 허나 여긴 조금 다르다. 여긴 앉아서 먹는 떡볶기가 있는 곳이다. 그냥 분식점이라 봐도 무방하다. 근데 여기 허벌나게 유명한 곳이래. 나 이 동네 근처에 있는 교회에 1년 넘게 다닌 적도 있는데, (내 종교는 무교.-_-v 고2때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짝지의 꼬임에 넘어가버렸지.) 그때도 못 본 것 같은데... 우째 유명하다더라고. 메뉴에 적힌 가격은 그리 비싸진 않으나, 알제... 양이 적은거.-_-; 둘이서 대강 먹어도 4~5,000원치는 먹어야 간에 기미가 갈 듯. 그래도 노점상보다는 깔끔하고, 또 맛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니 괜찮은 것 같더라고. 그래도 굳이 찾아서 갈 것까지야... -_-+ 언젠가 한번은 외제차가 이 집 주차장에 부룽~하면서 오더니, Take-out 해서 사라지시더니만. 뭐, 동네가 동네인지라.


한국에 귀국해서 처음 만든 단골집이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눈치 채겠지만, 여기 중국집이여.-_-; 위에 고춧가루... 식초통을 보라. 24시간 영업하고, 또 위치도 위치인지라 알만한 사람이라면 다 안다. 대신 여기도 손님들의 평균연령이 꽤나 높은 편이다. 단골로 삼게된 특별한 이유는 없고, 일단 우리집에서 가깝고-_- 또... 탕수육 빠짝 튀겨달라고 하면 참 맛있다. 짜장면도 맛있고. 단지 분위기가 좀 우리한 편이라... 분위기 타령하시는 처자들에겐 반감을 살 수 있는 곳. 이때부터 단골로 삼고 그래도 자주 간편인데... 여기 이모는 절대 친한 척 안 해주신다.-_-; 흥, 도도한 이모.-_-;;;


내가 들어온 무렵에... 부산 시내에 유명한 커피샵이 생겼다. 나도 서울에서 몇번 간 적은 있는데... 재미난건 몇번을 간 적이 있어도 여기서 먹어본거라곤 물밖에 없다는거.-_-+ 내 기억엔 당시 동호회 사람들이 여기서 종종 스터디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부산서 힘겹게 올라온 내가 그 스터디에 참가를 할리가 없었지비. 뭐,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부산에도 생겼길래 와! 했는데... 역시나 이 날도 그냥 지나쳐야만 했다. 아... 글고보니 PIFF군. 이 날 운이 좋은지 일명 '연예인' 아니 전문용어(?)로 '영화배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한국인 영화배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류승룡 아저씨 정도?-_-;;; 그래도 아직은 젊은 척 하기 위해 어디어디? 하면서 그 많은 인파속에서 허우적거렸지.


이때 '가족의 탄생' 출연자들이 인사를 했었다. 문소리 아줌마-_-, 정유미... 그리고 봉태규. 공효진씨와 엄태웅씨는 미안하지만 내가 사진을 너무 이상하게 찍어서-_- 차마 올릴 수가 없네. 문소리 아줌마는 부산 출신이면서 꿋꿋히 서울말로 또박또박 말씀을 잘 해주시더니만. 뭐, 그래도 한두어마디 부산말로 하셨던거 같은데... 솔직히 어색했습니다.-_-;;; 연예인을 가까이서 실제로 보는 것은 참 호기심 만빵의 일이나, 이로부터 1년 후... 12회때 알바를 통해 평생 볼 연예인을 다 봤다라는 망구 내 마음대로의 자부심 때문에, 이제는 더이상 관심이 없어졌다. 단 하나... 연예인도 사람입니다.-_-+


내가 이 날 이걸보고 질겁을 했었지. 이걸 파는 사람이나... 이걸 사가는 사람이나... 무슨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_-+ 특히 분홍색은 징그럽기까지 하다. 하기사 나도 01년까지는 머리를 노랗게 해다녔으니 그리 할 말은 없지만서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슴메? 중국에서도 본 적이 없는지라 그때의 충격은 말이 아니었다. 이것도 설마 중국에서 넘어왔겠어? 걔네들은 그냥 먹고 말거 같은디.-_-+


아, 이걸 왜 굳이 사진으로까지 찍었냐면... 나는 이때서야 양곱창을 일본어로 '호루몬'이라고 하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곱창을 이때까지도 먹어본 적도 없었고, 또 설마설마 했는데... 하여간 양곱창을 ホルモン이라고 한다더군. 중요한건 양곱창이다. 돼지곱창은... 모르겠다. 일본얘들 돼지곱창을 먹긴 먹나?


원래 부산의 남포동은 일본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이 찾는 곳이다. 근데 중국어도 같이 적혀있더라고. 게다가 간체(!). 와, 그럼 중국인 관광객도 늘었다는 말이네? 했지비. 그려러니 했는데... 이 날 나중에 결국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을 보게 된다.


100% 중국인 관광객들이다. 왜냐, 중국어 하는걸 들었거든.-_-; 게다가 중국인 관광객은 티가 꼭 난다.-_-+ 나는 담배냄새로도 구별할 수 있을터이다.-_-v 용두산 공원 타워에 올라갈까 말까 상의를 하고 있던데... 사실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무엇을 보고가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하다. 그 사람들이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밝은 것도 아니며, 또... 그래서 무슨 명승고적을 가보니, 중국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규모도 작고. 도시... 상해 아니 난징만 치더라도 부산보다 더 번화하고 사람도 많은디.-_-;;; 그냥 한국에 관광왔다, 이 정도일까나.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 한국인의 소개로 한국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단체여행와서 당췌 뭘 주로 보고, 뭘 느끼고 가는지 상당히 궁금하다. 아... 말이라도 한번 걸어볼껄 그랬나.-_-+ 저 아저씨들 행색은 평범하게 보여도... 쩐이 많은 아저씨인 것은 분명하고. 사실 한중일 사람들 비슷하게 보인다고는 하지만, 어디 돌아다닐 때 행색만 봐도 티가 팍팍난다.-_-+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화려하지비. 개인적 취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처자들은 어디 좀 돌아다닐 때 제발 또깍또깍 소리나는 신발 좀 안 신었으면 좋겠다. 그래놓고 발 아프다고 칭얼거리면 우짜라고.-_-;;; 빨빨거릴 때는 운동화, 단화... 혹은 슬리퍼가 최곱니데이.


용두산 내려가는 길에 있는 '사랑의 다리'. 소시적엔 여기서 새점봐주는 아줌니들이 많았다. 뭐 직접 점을 본 적은 없지만 (와, 글고보니 나는 이제까지 한번도 돈 내고 점이란걸 본 적이 없다. 아니, 공짜라도 점을 본 적이 없다.-_-;) 이 다리를 통과하면 조그나만 실내 놀이동산이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100원이나 200원 넣고 뭐 타는거... 있잖우. 하지만 해 떨어지기 전에 얼른 내려와야만 했지. 지금은 아니겠지만, 한때 이 동네 치안이 말이 아니었지비.-_-+ 나도 고딩때 저녁 즈음에 여기 지나가다가 나쁜 아해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 내가 달리기를 하긴 하는구나 싶었을 정도다.-_-; 아, 36계 줄행랑은 인생의 최대 무기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나름 유명한, 그리고 고급인 일식집이다. 여기 딱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급실망했었다. 뭐, 음식맛이나 그런거 말고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난징에 있을 때 타베호다이(食べ放題)로 갔었던 일식당 中에 여기 이름과 똑같은 大漁라는 곳이 두곳 있었는데... 여기 우리돈 22,000원만 주면 시간제한없이 무제한으로 타베호다이를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알콜도 니혼슈까지 포함. 근데 언젠가 우연찮게 여길 간 적이 있는데... 가격에 햐... -_-; 것도 점심이었는데... 햐.


이 날 조촐하게 친구넘 불러다가 생일파뤼(?)를 했는데... (파뤼는 무슨. 그냥 술 푼거지.-_-;) 집에 걸어가는 길에 눈에 딱 왠 여관의 간판떼기. 헐... 이 곳이랑 桂林이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 전혀 없겠지? 주인 아줌마가 거기 관광이라도 다녀오셨남. '성인방송'에 눈이 더 가는 것은 왜일까. *.*


흠. 절대 술 때문에 해롱해롱해서 찍은 것이 아니다. 뚝딱이 디카로 걸어가면서 찍으면 이런 작품이 나오니께. 여전히 중국생활의 티를 벗어내지 못했다. 무슨 중국 지명 들어간 간판만 보면 디카부터 꺼내니까.-_-; 여기가 길림성이고... 언젠가 구룡포에 갔을 때 본게 하남성이고... 그리고 이번에 벌교에서 본 중국집 이름은 무려... '삼국지'였다.-_-;;; 내가 만약 중국집을 개업하게 된다면 상호를 어떻게 지을까. 헐~ 나도 궁금하네 그려.

아... 이제 좀 정리하자. 대강 귀국 후 한달동안 정말 아무것도 하는 일없이 잘 놀았다.-_-; 이후로 다시 계획잡고 중국에 다시 들어와 짐정리해서 다시 귀국했지비. 사실 그렇게까지는 한국생활하는데 힘든 것은 없었지만... 가끔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생활이 겹쳐져서 적응을 못한 것이 아니라, 중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호기심내지, 혹은 뭐라도 하나씩 진지하게 보는 습관 때문인지... 망구 별 결과도 없는 생각이 많아졌던 것 뿐이라는거.

중국에서 살던 습관으로 한국에서 살면 어떨까? 반대로... 한국에서 살던 습관으로 중국에서 살면 어떨까. 뭐, 그냥 되는대로 살지 그런 것까지 일일히 따질 필요있겠는가,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집을 떠나 어디엘 가든지 그 곳 현지생활에 가장 빨리 적응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은 결과를 이루어 낼 확률이 높으며, 혹은 제대로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장시간동안 그 곳에서의 생활을 버틸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4년간의 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향수병이라는 것이 없었다. 왜? 이전에 이미 6주간의 단기연수를 하면서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향수병 가져봐야 귀국하지 않는 이상 답이 없다. 또 새로운 곳에서 뭔가 새로운 모험을 한다든지, 뭔가 색다른 흥미거리를 찾는 것 또한 그 곳 생활에 조금이라도 빨리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목표를 가지고 유학하는거 아니냐고요? 글쎄요, 목표가 산 정상에 걸려있어도 산으로 오르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가에 따라서 늦에 오르게 되거나 아예 포기하지 않겠슴메. 생활의 적응, 그리고 대인관계의 원만함이 공부를 하든 돈을 벌든 먼저 필요한 것이지 않겠슴까요.

나는 그래도 중국에서 생활비를 그리 많이 쓴 편도 아니며, 또 알바를 하면서 번 것도 있으니까 조금 건방진 소리를 하자면... 제발 중국땅에 돈 좀 뿌리지 맙시다.-_-; 괜한 생각같지만, 학교 건물 새로 올라갈 때마다 저게 왜 우리나라 유학생이 지어주는 것 같누...-_-;


아... 오늘은 하루가 매우 길 듯 한데... 열심히 자판을 두드려도 잠은 아니오는구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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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3년이나 지난 일이다. 다시 꺼집어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데... 그래도 대한민국 남정네가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내 조국을 떠나서 처음으로 장기생활을 하고 돌아와보니, 이거 무슨 군복학 후의 사회적응보다 더 힘들더라고. 군복학 후에는 그래도 이미 알던 사람들도 있거니와 또 적응에 힘들제? 하면서 위로해 주는 사람도 있었건만... 외국서 살다오니까 '어, 왔나?'라는 반응밖에 없었으니. 사실 어, 왔나? 라는 말은 그렇게 가슴 아프지 않았다. 언제 또 가노? 얘길 들었을 때... 흑.-_-; (나의 소심한 복수는 이 말을 건낸 친구넘에게 지난 3년간 술 자~알 얻어먹었다.-_-v) 하여간... 다시 옛날 얘기나 해보자.


머리가 귀신같이 길러져 있었다. 참다참다 못해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래도 당시까지 아직은 '아가씨' 소리를 듣고있던 여동생에게 살포시 물었다. "미장원 어디가야 되노?' ... 그러더니 시내 몇군데 알려준다. 공통점은 '균일가 20,000원'. 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모른다.-_-; 파마가 20,000원인가? 스트레이트가 20,000원인가? 설마 남자 커트가 20,000원인 것은 아니겠지. '균일'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허나, 일단 머리는 잘라야 하는 법, 동생이 처음에 소개해줬던 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 제2의 가게를 찾았다. 아... 오래간만에 2층 이상의 미장원을 보는구나. 내가 중국에서 봤던, 그리고 갔던 미장원은 죄다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제는 중국 도시에서의 미장원이 아니 헤어샵이 겉으로는 우리나라와 별다른 점이 없다. 다만 남자 머리를 커트해줄 때 거의 95% 이상을 가위로만 잘라서 머리 한번 깎는데 한시간 가까이를 소비해야 한다. 허나 한국은 다르다. 바이깡으로 휙휙~ 가위로 찰칵찰칵하니... "수고하셨습니다." 한다. 아... 머리안마는 안 해주는군. 중국 미장원에선 5元만 더주면 상체 안마도 해줬었는데... (한번도 받아본 적은 없었지만) 이젠 한국 미장원에 적응해야지. 그나마 머리 샴푸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하지만... 너무 비싸다. ㅠㅠ 난 중국에서 15元 이상 주고 머리 깎은 적이 없는디.


바로 길건너편에 맥도날드가 있다. 나 한국 맥도날드 햄버거 이제까지 살면서 먹은 것이 5개도 아니될 것이다.-_-; 한국은 햄버거가 와이래 비싸누. 아~주 예전에 처음 일본땅을 밟았을 때도 그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햄버거는 고급음식이다.-_-+ 물가에 비해 너무 비싸다. 뭐,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슨 세트 하나 먹으면 5천원이다. 난 차라리 5천원으로 된장찌개 하나 사먹고 말겠다.-_-+ 아직 주위를 둘러보면 4,000원짜리 된장찌개도 허벌나다. 첫번째 글에서 언급했다싶이 중국에서 꽤나 살을 찌웠는데... 그 공범 中의 하나가 바로 패스트푸트일 것이다. 맥도날드(麦当劳), KFC(肯德基), 버거킹(汉堡王)... 열심히 쫓아다녔지. 그나마 나는 적게 다닌 편이다. 글고보면 한번도 내 의지에 따라 찾아간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


한국에 오고난 후, 나름 기분이 좋았던 것은... 이제는 서서 떡볶기를 먹을 수 있겠구나... 였다.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중국에선 서서 떡볶기를 먹는다는 것이 어색하다. 아니, 한국식당의 요리 하나쯤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맛이라도 있겠는가... 귀국 후, 종종 떡볶기나 튀김을 떡볶기 양념에 찍어먹곤 했다. 살이 빠질리가 있나... -_- 또 하나 좋았던 것은, 가볍게 술 한잔한 후 느지막하게 동네 근처에 있는 떡볶기 노점상에 가면 떠러미 장사를 한다는 점이었다. 가뜩이나 음주할 때 안주를 그닥 먹지도 않는 습관이 있어서... 언제나 한잔 후의 귀가길엔 배가 고팠다. 솰라솰라만 잘 하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사다갈 수 있다. 떡볶기든, 튀김이든. 누가 대한민국 도시에 인심이 야박하다고 하는가. 떡볶기집 떠러미 장사에는 아직도 후한 인심이 남아있다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5,000원치 떠러미로 사갔다가 2,3일동안 반도 못 먹고-_- 버리고나서부턴 이 버릇은 고쳤다.


종종 아침에는 엄니와 함께 근처 공원에 올랐다. 이전 같으면 관심도 아니 가졌을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또 끝까지 올라와보니 나름 역사적인 건물까지 있었다. 아, 안내표지판을 읽어보니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게 아니다. 일본얘들이 지은거래.-_-; 살포시 반일감정 업뎃 시켜주고 그냥 내려왔다. 가끔 중국에 있을 때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특히 반일감정이 심한 난징(南京)이라는 곳에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만, 참 애매한 반일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싫어할려면 아예 적대시를 하든가, 친할려면 아예 친해져 버리던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중간적 입장이 이해가 안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중국얘들 역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_-; 한국은 반일감정은 가지고 있지만, 중국보다는 일본을 더 가까이 한다는. 뭐, 미국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비.


시내에 갈려고 살포시 걸어가는데 한때 부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단과학원을 지나쳤다. 오... 나도 여기 중학교때 다닌 적 있는디. 아직도 기억난다. 어느 영어선생이 '관계대명사'를 설명하는데... 얘들 귀에 잘 들어오도록, 아니면 기억을 쉽게 시켜준답시고 관계대명사를 중국어로 발음을 해준 적이 있다. 이 발음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리라. "깡까이 따밍쓰". 얼핏 들어보면 중국어 같기도 한데, KBS 개그맨 변승윤이 하는 중국어가 훨씬 낫다.-_-; 당신은 그때 가르쳤던 얘들 中에 내가 중국어를 접할지 생각도 못했겠지. 아예 다른 말로 하든지... '깡까이 다밍스'가 뭐꼬.-_-+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다섯글자 아니다. 네글자다. (关系代词) 대강 혼자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지. 하기사 살다보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전 학창시절에 선생님들이 잘못 가르쳐준 것들이 이뿐만이겠는가.-_-;


부산에서 유명한 똥강.-_-; 그 이름도 유명한 똥(!)천강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사못 깨끗하게 보였는데, 어랏... 정화 사업을 벌린단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더냐. 여름만 되면 여기 똥물 냄새 때문에 주변 아파트들 악취 때문에 고생을 했고, 더우기나 창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심하면 ㅅ 중학교는 얘들을 조퇴를 시켰던 적도 있었다. 정화사업이라...? 오홋... 부산시에서 나름 마음에 드는 활동을 한다. 근데... 근데, 이 곳 얼마전부터 매립사업하드라.-_-; 물은 거의 다 말랐고, 포크레인이 삽질하고 있고. 대통령이 바껴서인가... 운전을 하면서 시민회관 뒷쪽 길로 오는 날이면 여기 공가구간 때문에 살포시 짜증이 나기도 한다. 왜 우리나라는 공사를 해서 불편을 주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는걸까.-_-+


어랏. 서면에 다왔다. 열심히 걷다보니 말많고 탈많았던 부산의 대형서점이다. 이 서점이 생긴지는 오래되었는데, 다른 서점들의 반대로 꽤나 오랜시간동안 개업을 하지 못했었다. 당시 뭣몰랐던 우리들은 이 건물 지하에 벙커가 있니, 아니면 최루탄이 있을꺼니...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지비.-_-;;; 하여간 언젠가 오픈이 되었고, 당시 이 곳을 지나는데 멋드러진 문구가 바로 눈에 띈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인지, 아니면 문학적인 것에 관심이 적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열매', '낙엽', '오늘'의 상관관계를 모르겠다. 열매가 아름다울리만은 없고, 또 낙엽이 외로울리만도 없다. 걔네들을 위해 오늘을 사랑하면 무슨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난 당췌 이 문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 다시봐도 그냥 멍~하다.게다가 '가장'이라는 수식어는 왠지 과장으로 보이지 않는가.-_-; 아, 쓸데없는 생각... 얼른 내 갈 길이나 가자.


대형 백화점. 나는 '롯데'라 하면 야구팀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성적이 좀 그래서 그렇지 요 2년간은 중간은 한다.-_-; 소시적엔 몰랐는데, 이 롯데라는 기업을 보면 이상스레 서비스업종에만 열을 올리는 것 같다. 아니면 꽤나 명당자리 하나 잡고 백화점이나 마트 건물을 지어올리고 있다. 해운대에서 옆 백화점에 한방 먹은 것 같더니... (구) 부산시청 자리를 차지하곤 다시 열을 내고 있다. 백화점이라... 많이 파십셔!~ 하여간 대강 나의 목적지는 다왔다. 이제 버스를 기다리면 된다.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나.


공항이다.-_- 좌석버스 타고 공항에 왔다. 누군가를 마중나온 것이다. 마중 나가는 일이야 습관처럼(?) 몸에 익은 일이지만, 우째 지금까지 살아온걸 돌이켜보니, 가족외엔 그 누구도 내 마중을 나온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_-; 꼭 그렇다고 바라는 것만은 아니지만, 그냥 상대적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할 수 없나보다. 아, 그래 내 마음약하다. 차라리 마중이나 배웅 아니나오는게 서로를 위해 편하다. 가는 사람 마음 굳게 먹고 가야할 길 가면 되는 것이고, 남아있는 사람은 그대로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면 된다. 하여간 귀국한지 몇일 되지도 않았는데, 중국에서 오는 누군가를 마중나갔다. 나는 언제 다시 중국땅을 밟아볼 수 있으려나... 라는 생각을 당연히 했는데, 이후... 반년만에 다시 나도 뱅기타고 훌쩍 상해로 날라갔었지비.-_-; (당시엔 상상도 못했건만.)


예전엔 몰랐는데 이 표지판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오래간만에 고향으로 찾아오는 느낌. 위에도 언급했다싶이 마중 나오는 이가 없다보니... -_- 이 표지판에서 환영한다고 말해주는 것조차도 감사하게 생각해야만 했다. 그래, 너라도 반겨주는구나.-_-; 부산아, 잘 있었느냐, 내가 왔도다... 뭐 이 정도. 이제는 이 표지판을 보면 '에구... 그래도 안즉 남았네.' 하지만, 당시에는 '와~ 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좋아하기에도 애매한 고향. 고향은 분명 하나인데, 제 2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두곳이니... (어쩌면 살아가면서 더 늘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참... 애매한 인생을 살아왔구나... 싶다.


부산의 지하철은 아직까지는 상당히 단순하다. 고작 3호선. 것도 그렇게 헷갈릴 정도로 복잡한 곳도 없다. 그래도 일단 알아두면 좋을 것이, 잘못 타더라도 범내골, 중앙동과 같이 오고가는 지하철을 다 탈 수 있는 곳은 숙지해 둬야 한다. 처음 부산에 지하철이 생겼을 때는 범내골 <-> 범어사가 고작이었건만... 이젠 지하철로 그럭저럭 어디든 갈 수 있다. 다만, 내가 서식하는 곳은 1호선과 2호선의 사이에 있는지라-_- 귀가할 때 어디서 내리는 호선의 지하철을 타야할 지 가끔 애매할 때가 있다. 사실 아직까지도 정립되지 않은 상태.-_-; 아, 물론 버스도.-_-;


버스정류장에 있는 가판대를 지날 때면 아직도 여전히 중국의 가판대가 떠오른다. 딱보니, 음료수, 담배, 혹은 교통카드 충전하는 곳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중국에서 봤던 가판대는 주로 신문,잡지 아니면 공용전화였는디. 편의점이 대한민국 전국에서 판치고 있는 마당에 저런 가판대 역시 나름대로는 옛날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추억이다. 그나저나 저기서 담배파는 아줌마는 학생 얼굴이나 확인하고 담배를 팔려나.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니 패스.-_-;


봐... 지난 포스트에도 언급했지만, 이런게 자꾸자꾸 눈에 띄더라고.-_-; 아, 급 궁금해진건... 지금 가도 비슷한게 붙어있을까나. 우리나라 대통령 경제 대통령이라미.-_-; 살림살이 좀 낫아졌을까!?


영화관 그리 자주도 못간 촌넘이 중국에서 귀국 후에 처음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이때 본게 타짜...였나. 어찌나 떨리든지, 왜냐... 이전까지는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걸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 그전까지 유일하게 극장에서 봤던 한국영화가 아마... '투캅스' 일꺼로.-_-+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아직 남아있어서인지, 우리나라 영화의 발전, 혹은 1000만 관객 뭐라해도... 이후 내가 고작 한국영화 극장에서 본거는 얼마전에 본 '내사랑 내곁에' 밖에 없다. 근데... 사실 중국에 있으면서 한국영화를 즐겨 보게된 것이지, 특별히 한국영화라고 해서 관심갖은 적은 별로 없었다. 다들 아는 사실이다싶이, 중국에 널리고 널린게 해적판 DVD인데... 되려 중국에 있으면서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 사실 1000만 관객했다고 해서 영화 표값을 깎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1000만 관객짜리 영화가 내 평생에 기억남을 대작도 아니었던 것 같다.-_-; 불법 다운로드 다운로드 하실려면 이제는 해외로, 특히 중국쪽 해적판 쪽도 관심을 가지는게 낫지 않겠슴까. 해적판은 둘째라치고라도 허덥한 대강의 조선족 번역으로 된 자막으로 영화 내용 자체가 엉성해져 버리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디. 떱. 우리나라 영화 국제화 시킬려면 대본 번역을 확실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슴까. 가뜩이나 한국어 얼마나 어려운디.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날 영화를 보고 친구넘들 불러다가 모대학 앞에서 한잔했다. 그리고 찾은 곳이 무슨무슨 객잔이니 중국식 퓨전 술집. '퓨전'이라는 단어가 정말 중요하다. 그냥 중국식이라고 하면 이 대학 다니는 중국 유학생들이 얼마나 웃어재끼겠는가. 난 사실 우리나라 중국집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아니 심지어 짜파게티에 대한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다. 우리는 흔히 다른 메뉴보다는 값싸다는, 아니 중국집에서 가장 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싼취급을 해버리는 '짜장면'이지만, 한국의 여느 중국집에서 만든 짜장면의 맛은... 중국 현지에서 그대로 맛보기가 어렵다. 짜장면만 그럴까. 탕수육도 100%는 아니더라도, 50%는 우리나라꺼다. 맛이 틀린걸 어떻해. 중국의 유명한 중식 주방장 불러다가 우리나라 탕수육 만들어 보라해라. 절대 같은 맛 내지 못할 뿐더러, 우리나라식 탕수육을 모를 수도 있다. 중국에 첫발을 들이는 순수한 한국인들의 입맛을 맞춘다고, "이거는 탕수육 같은거니 입맛에 맞을겁니다."라고 하는 糖醋里脊는 우리나라 탕수육하고 차이점이 많다. 이거 제대로 만들지 못한 곳에서 잘못 먹으면 어르신들 이빨 깨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_-+ 뭘 비슷해. 중국식 주점 역시, 빨간등에, 한자 몇글자 써놓는다고 중국식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필요한게 '퓨전' 아니겠는가. 어떤 곳이 정말 중국식인지 나 역시도 기준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지난 3년간 이런저런 중국집, 혹은 고가의 중국 레스토랑일지라도... 중국에서 느꼈던 분위기, 혹은 먹어봤던 맛을 보인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뭐 그럴수도 있지... 하는데, 이상하게 일식집은 또 안 그렇단 말이여.-_-+ 일식집은 우째 일본보다 더 일본틱한 곳이 많냐고.-_-;;; 이 문제는 정말 아리송할 수 밖에 없다. 아, 물론 개인적 취향 차이기 때문에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서도. (나도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랍니다.-_-;)

아... 일단 여기까지만 하자. 옛날 일 떠벌리는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데, 기억력의 한계로 이것저것 생각이 나지 않으니, 처음에 의도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낙서를 하고 말았다.-_-+ 이 글의 주제로 몇탄까지 나올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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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 꽤나 오랜시간동안 살다가 대한민국으로 귀국한 경우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내가 4년동안 있었던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해 한동안 적응하느라 꽤나 힘뺀 경우는 종종 보아왔고, 또 적응부족으로 다시 중국으로 건너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얘기 또한 들었었다. 중국도 분명히 사람사는 나라이며, 요즘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예전보다는 훨씬 더 살만하게 된 것은 틈림없는데... 그럼에도 간간히 적응이 힘들다, 혹은 차라리 중국이 낫다... 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국에서 일을 하고, 또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야 뭔가 마음가짐도 다를터이고, 또 나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겠지만, 그래도 학비에 생활비에 집값에 관리비 때문에 이래저래 '돈'에 구속받고, 또 변변한 지위없이 생활을 했던 유학생들은 더욱 이런 부적응 현상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이러쿵 저러쿵하기엔 너무나 할 말이 많아... -_- 일단 생략하고, 간단하게나마 내가 귀국을 하고 종종 겪었던 한국생활 부적응 에피소드를 돌이켜 보기로 한다. (그냥 사진 정리를 하다가 눈에 띄는 넘들이 있길래 문득 생각나서... -_-; 별다른 취지는 없다. 다... 옛날 얘기지 뭐.)


중국에서 귀국 후 어느날 하루... 나는 간만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부산대 근처로 향했다. 물론 지하철을 타고. 중국에서도 지하철이야 종종 타고 다녔지만, 그래도 우째 눈 앞에 보이는 안내표지의 글자 中에 좀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은 한자(漢字)였다.-_-; 사실 나도 나름 부산토박이인데, 별로 필요는 없지만 지하철 표지판을 보며 고마웠던 것은 바로 지명을 한자로도 표기했다는 점이었다. '아... 장전동은 저렇게 쓰는 것이었구나.' 했지. 긴 화살... 분명 이 지명이 쓰이게 된 원인이 있었을터인데, 뭐, 이건 그냥 동사무소에 맡기자... 하고 지하철 출구로 나왔다.


지금은 '온천천'으로도 유명한 곳이라지만 그때 당시에는 이상하게 옛날 생각부터 났다. 저렇게 벽에다가 스프레이로 그림 그린걸 뭐라하더라.-_-+ 하여간 그 언젠가 부산대에서 술 한잔하고, 저기 저 음침한 곳에서 꽤나 기억에 오래남을만한 일들이 있었다. 참 땀나도록 많이 뛰어다녔는데... 그때 열심히 달리기를 했던 아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괜히 한번 옛날 추억에 빠져봤다가... 약속시간에 맞춰 목적지로 향했다. (어, 미안하다. 지금은 전혀 그 아해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다.-_-;)


집에 가자. 지하철 막차를 놓치지 않을려는 처절한 몸부림은 예전부터 익혀진 본능인가보다. 달려야 한다. 그리고 뛰어야 한다. 놓치면 X 된다. 버스라면 소리라도 외치며 기사아저씨를 불러라도 보겠지만, 지하철은 정말 알짤없다. 중국에선 술 한잔 마시고 귀가할 때 이런 급박함은 전혀 없었는데 말야. 어디에서 술을 한잔하든, 택시비 2~3000원이면 집앞까지 모셔다 줬는데... 아, 이제 그런 것들은 옛날 일들이 되어버렸구나.-_-;


너무 열심히 달린 탓일까. 아니면 달린 후 지하철을 탔다, 라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괜히 자리에 앉았다가 눈 좀 붙이는 바람에 눈 떠보니 생판 딴 곳을 지나고 있었다. 허겁지겁 내렸으나... 으아, 여기까지 왔나.-_-; (내가 내려야 할 곳 대략 8,9 정거장은 지나간 듯.-_-;) 부산대에서 우리집까지도 만만치도 않은 거리인데... 여기까지 오면서까지 눈을 못 뜬 것은 한국 알콜, 즉 소주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하기사 중국에서 거의 맥주, 아니면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백주나 소주를 마셨지... 라며 소주에 대한 주량이 약해진 탓만 하며 일단 내릴 수 밖에 없었지비. 와... 그래도 그렇지, 부산대에서 동아대까지 거리가 어딘뒈.-_-+


어랏. 분명 내가 중국 생활을 하기전에도 있었음직한 팝콘 자동판매기인데 왠지 신기하게 느껴진다. 있다고 신기한게 아니라, 이거 중국엔 없잖아? 라는 생각이 불쑥든다. 본능적으로 중국에 이 기계 들여놓으면 장사 좀 될까? 싶다. 하기사 과자 자판기는 물론이고, 간단한 소화제나 진통제도 자판기에 넣고 파는데... 팝곤 기계라 해서 특별한게 있겠누. 게다가 나도 먹어봐서 아는데, 노점상에서 파는 값싼 팝콘이 위생은 좀 그래도 맛은 더 있더라. 초콜렛맛 팝곤... 종종 먹었는데. 아, 오늘따라 땡기네.


오... 공중전화다. 참, 이때까지 내가 핸드폰이 없었으. 지난 4년간 1년에 한번씩 한국에 들어왔었는데, 보통 3주간 머물면서 가장 많이 애용했던 물건이었다. 친구와 약속을 하고 연락을 한답시고 공중전화 찾아 삼만리를 했던 적도 몇번 있었고, 왜 있던 공중전화마저 없애고 있냐고 내 딴에 KT를 욕하기도 많이 했다. 아직도 모르느뇨, 윤종신의 명곡 '텅빈 거리에서'의 마지막 소절에 나오는 가사, '외로운 동전 두개'를.-_-; 이젠 아예 몇천원짜리 카드를 챙겨야 되는구나... 싶었지.


난 무슨 대한민국에 IMF가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버스 좌석에 붙은 좌석 뒤에도 파산, 지하철에도 파산, 공공 통지판에도 파산... 파산파산파산.-_-; 귀국한지 몇일 됐다고 가장 많이 눈으로 본 글자가 '파산'이냐. 하기사, 벌어놓은게 있어야 '파산'이라도 하지.-_-; 그냥 조용히 사업만 안 하면 된다, 신용카드만 안 쓰면 된다, 라고 자기보호, 세뇌를 시킨 후... 다시 지하철을 기다렸다. 아... 재수, 지하철이 왔다. 오긴 왔는데, 이거 신평에서 오는 막차인지라, 우리집까지 안가고 부산진역까지만 간다. 그래도 예전에 동아대 출신 사람들과 교류를 했던 적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것도 몰랐으면, 괜한 객기에, "왜 여기까지밖에 안 가는데요?"라고 따졌을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배운 것은 원리원칙 따지는 척 하며 큰소리 치는 것이었으니까.-_-+ (그마나 내가 남방지역에서 생활해서 그렇다. 북방지역은 쌈 한번 일어나면 주먹부터 나간다.-_-+)


아, 집으로 가는 지하철 타기 전에 이 '당리'라는 곳과의 인연이 떠올랐다. 여기 오래된 친구가 살았고, 또 결혼까지해서도 살고 있는 곳이라는게 생각이 나더라고. 고등학교땐가, 친구 얼굴 한번 본다고 나와 그닥 관련이 없는 이 곳까지 온 적이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살짝 웃음이 나지만, 아무래도 이 동네 아파트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험해서인지, 당시 친구네 아부지는 저녁에 집밖으로 나가는 그 얘에게 살포시 워키토키를 건내주셨다지.-_-; 시집간 후로 딱 한번 메일을 주고받았을 뿐 연락을 할 수도, 받아본 적도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인가. 뭐, 연락은 안 하더라도 얘들 가르치면서 잘 살아가고 있을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사람의 기억력이란게 정말 무서운 것이... 상당히 오랜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또 내가 특히 숫자에 약한 넘임에도 불구하고... 얘네 집, 그러니까 지금은 친정집일터인데... 그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다. 그 집에 전화 몇번이나 걸어봤다고... 허허. 그래서인지 나도 나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다.-_-;;;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집근처에는 왔다. 그냥 들어갈 수가 있나. 간만에 추억의 '도시락' 하나 사먹어보자. 중학교때 매점에서 유일하게 팔았던 컵라면. 이 컵라면을 먹는 날이면 국물을 노리는 수많은 적들 때문에 철저한 분배를 해야만 했다. 국물 따르는 것도 기술이다. 잘못하면 불어터진 면발만 남는다. 아... 나이를 먹으니 이젠 면발은 물론이고, 국물도 다 내 것이구나. 나도 여유롭게 국물에 밥 말아먹을 수 있다.-_-v 하여간 이 날 10여년만에 추억의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먹고 먹었으니 중국에서 찐 살이 빠질리 없었고...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놀랄만큼, 놀릴만큼의 뚱띵이가 되어 있었는데, 3년이 흐르니... 결국 12Kg나 빠져있더라.-_-v 남들 한다는 변변한 다이어트도, 그렇다고 술도 따로 끊어본 적이 없다. 그냥 살다보니 빠져있었고, 살다보니 체중계 바늘이 친절하게도 아래숫자로 향해져 있더라고. 더욱 감격스러운 것은 어디 앉을 때마다 접혔던 뱃살이었다. 맥주로 단련된 啤酒肚, 이거 쉽사리 빠질 넘도 아니고... 게다가 나잇살도 있으니 얼마나 신경쓸 수 밖에 없었는가. 이제 접히는 일 없다.-_-v 이제는 접힐리도 없다. 2010년이 밝아온 지 1주일이 지난 후... 내 딴에는 가벼운 몸뚱아리로 시작한다고 다짐하는 이때, 울 엄니의 앙칼진 잔소리 한마디,


"이제 6,7kg만 더 빼면 되겠네."

억장이 무너진다, 무너져.-_-;;;


이것도 '루저'의 恨인가... 키에 몸무게 맞추기가 정말정말 불가능한 일 같다. 우리가 작은게 아니다... 너네가 커버린 것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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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땔래야 땔 수 없는 휴대용기기 핸드폰. 중국어로는 쇼우지(手机, 손기계?-_-;)라고 하며, 일본어로는 케~따이(携帯, 휴대-_-;)라고 흔히들 부른다. 뭐 두 나라는 나름 자기네 나라의 언어를 이용해 이름을 붙였는데, 우째 우리나라만 콩글리쉬화 된 '핸드폰'이라는 어휘가 가장 각광받으며 사용되는지 모르겠다. 뭐, 쓰잘데기 없는 소리.-_-; 휴대전화의 가장 큰 기능은 역시 '전화'와 '문자메세지' 기능이다. 이 문자메세지라는 말도 의미가 중첩된 단어 아닌가?-_-+ 문자나... 메세지나~ 흠흠. 또 쓰잘데기 없는 소리. 하여간...

개인적으로 언젠가부터 휴대폰을 사용함에 있어 전화보다는 문자를 선호하게 되었다. 전화야 급한 일이 있을 경우, 아니면 음성으로 구체적인 얘기를 나눠야 할 경우에 사용하게 되었고, 그냥 평소에는 나이게 걸맞지 않게(?) 습관적으로 문자를 더 자주 이용하게 되더란 말씀. 이 넘의 얄궂은 습관 때문에 지인들에게 여러 차례 쓴소리를 들었음은 당연지사, 근데 내딴에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고려한 것인디... 너무 앞서 나갔다는 말씀. 언젠가 약속을 정해놓고 이제 출발한다고 문자를 보냈었는데, 나중에 따로 전화 연락이 없었다고 엄청 구박당했던 적도 있었다. 뭐, 문자는 전송되지 않을 수도 있대나~ 모래나.-_-+ 물론 서로 통화를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특정한 날외엔 문자 전송실패는 잘 일어나지 않는거 아닌감.

와... 이거 몇년전 문자래.-_-+

중국에서 문자는 뚜안씬(短信)이라 부르며, 솔직히 정확하게 한번에 몇글자까지 보낼 수 있는지를 까먹었다. (...우리나라와 같지 않남?) 어지간하면 두번이상 문자를 보내는 일이 없었는데, 이유인즉 아무래도 뜻글자인 한자(漢字)를 쓰다보니, 평소 주고받는 문자의 내용이라면 그렇게 길게 쓸 필요가 없었다는 말씀. 또 뭐, 개인적으론 아무래도 외국인이다보니, 굳이 모양새를 갖춘 중문으로 문자를 보낼 필요있겠나... 하는 안일함과 한자 한글자 입력하는 영문병음을 적어도 2번, 많게는 6번씩이나 불편하기 그지없는 휴대폰의 숫자버튼을 눌러야 하는 것이 귀찮았던 것도 있었겠지비.

헐~ 세로쓰기도 되는 핸펀이 있는가보군.-_-;

이것이 구구절절 문자. (출처불명.-_-;)

일본에서 문자는 메이루(メール)라고 부른다. 나는 이제껏 일본 핸드폰을 써본 적, 아니... 단 한번도 만져본 적조차 없다. 허나, 이런저런 일본 드라마에서 나오는 일본 사람들의 문자 보내기 모습을 허벌나게 봤기에, 그래도 나름 익숙하다. 뭐, 처자들은 이런저런 이모티콘에, (-_-;. ^^와 같은 문자 이모티콘 말고 이미지 아이콘) 저네들끼리 연락을 하자면서 알려주는 것은 전화번호가 아닌 메일주소이다. (많이들 쓰이는게 ezweb이던가 뭔가. 뭐, 요즘은 적외선으로 편하게들 주고 받겠지만서도... 상대가 휴대폰이 없다면 열심히 글로 적어줘야 한다.-_-; 내가 지금껏 받은 것도 몇장된다. 헐~) 처음에 일본인으로부터 메일 주소를 받았을 때는 그냥 컴퓨터로 주고받는 메일이려니 생각을 했었다. 왠걸... 일본 휴대폰의 자세한 사정까진 모르겠고, 하여간 얘네들은 그 '메일'이라는 것을 이용해 꽤나 장문의 문자를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로서는 퍽 적응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 사람은 컴퓨터로 메일을 보내고, 받는 사람은 휴대전화로 그 메일을 받을 수 있으니.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 일이나, 그리 보편화 되진 않지.)

우리나라 얘기로 돌아와서... 나도 그럭저럭 휴대폰을 오래 사용한 사람이다보니, (아, 올해가 휴대폰 개통 10주년이군.-_-v) 80Kbyte 즉, 한글로 40글자로 보내는 메일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다. 지금은 한통당 20원으로 천만다행(!) 인하가 되었지만, 원래는 30원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할 수 없지만, 하여간 휴대폰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당시, 공중전화 한통당 요금이 50원 아니었나? 30원짜리 문자가 40글자가 넘어가버리면 공중전화 한통보다 더 비싸게 계산되는 것이다.-_-; 그러다보니 문자를 이용해 상대에게 연락을 할 때에도 어지간하면 40글자내에 압축해서 의미전달을 하는 것이 필요했다. 게다가 자랑스런 우리 글에는 띄워쓰기까지 있으니-_- 실제로 40글자를 완전히 채워서 보내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는 말씀. (굳이 띄워쓰기를 하지않고 40글자 꽉꽉 채워서 자주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보낸 사람도 수고했고, 그걸 또 보는 사람도 꽤나 수고한 것이리라. 또 한때는 왜 띄워쓰기 한 공간까지 계산에 넣냐면 혼자서 불평을 했던 적도 있긴 있었다.-_-+) 조심스럽게 따져보건만, 이런 언어의 압축을 요하는 현상 역시 외계어들이 늘어나느데 한몫 하지 않았을까나.

자, 여기까지 구구절절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하다보니... 딱!~ 떠오르는 것이 바로 외국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관심도 없는 MMS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나는 이제껏 80Kbyte 이상의 장문 메세지라 하면 MMS를 떠올렸는데, (사실 비SMS는 전부 MMS-_-;) 문자만 들어간 1000글자내의 문자를 LMS라 하고, 사진이나 동영상이 들어간 멀티메일을 MMS라 부른다고 하더라. (뭘, 보낼 일이 있어야지 이런 곳에도 관심을 가질터인데.-_-;) 와... 1000글자라. LMS는 통당 30원이다. *.* 돈 10원 차이에 글자 차이가 엄청나다.-_-;;; 하여간 이미지나 동영상만 아니라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요금으로 상대에게 훨씬 더 긴 문자를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근데 왜 이제껏 대부분의 내 주위 사람들은 SMS만을 고집했는가, 하는 것이다.-_-+ 문자가 좀 길어질 것 같으면 그대로 길게 적어서 LMS로 보내도 될법한디... 굳이 짧은 문자 두세통을 보냈다는 말씀이여.-_-; (사실 나도 따지고보면 비SMS는 몇번 보낸 것 같지가 않다.-_-+ 지금 쓰는 P100라는 스마트폰으로는 접때 영상통화가 불가능해서 본의 아니게 사진전송을 해서 보낸 적이 딱 한번(!) 있다.-_-;;;)

MMS가 되야 이런 것도 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이지비.-_-;

일반폰이 아닌 스마트폰을 쓰면서 SMS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유인즉 흔히들 MS-sms라 불리우는 문자 시스템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주고받은 문자들이 문자를 받은 시간 순서로 나열되는 방식이 아닌, 주고받은 번호로 일괄 정리되어 메신저로 채팅하듯이 주고받는 장점 때문인지, 문자를 주고받는게 더더욱 편해지더라고. 게다가 요최근엔 조금은 구닥다리인 UI인 MS-SMS를 벗어나 Vito SMS Chat라는 어플을 사용하고 있다보니 예전에 일반폰으로 어떻게 문자를 주고받았는지 그 불편함을 이해할 수가 없게 되더라고.-_-+

이것이 MS-SMS로 주고받는 문자창. 사생활 문제상, 이미지 떡칠 작업을.-_-;;;

Vito SMS Chat에, 스킨을 입힌 것. 내가 쓰는 폰은 절대 아이폰(!) 아님.-_-v

하여간 그래서 간만에 햔펀을 갖고노는 야심한 밤에... 겸사, 문자를 약간 더 저렴하게 보낼 수 있는 이런저런 부가서비스를 뒤져보기도 했는데, 현실적으로 신청할만한 부가서비스가 없더라고.-_-+ 문자에 관련된 부가서비스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전체 부가서비스까지 뒤져보니까 시간이 엄청 흘렀다는 말씀. 와... 이것들을 만들어 낸 직원들도 대단들 하시우. 아까는 또 보니까 문자쿠폰을 충전식으로 사용하는 것도 있더니만. 한통에 비싸게는 17원 정도? 제일 싸게는 11원 정도로 하는 문자 쿠폰도 있더라만. (언제나 그렇지만 평소 관심없던 미지의 세계를 구경하는 일은 잠시나마 재미난 일이다.) 개인적으로 볼 땐 1,20원 차이... 많게는 1,2만원 차이 나는 것이 휴대폰이지만, 이동3사에서의 밥그릇 싸움 역시 치열하다는걸 새삼 느낄 수 밖에 없더구마이. 문자 부가서비스를 신청할 마음을 접게 된 것은... 요즘 내 생활습관에... 한달에 웹문자 130통을 다 소진하는 것도 버거우니 굳이 몇백원 더 싸게 먹힌다고 신청할 필요가 있겠나, 했지비.

아이폰이 나올 때 즈음해서리, KT에서 스마트폰 요금제를 새롭게 단장했고, 또 스마트폰 요금제에 적용되지 않았던 P100 역시 신청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라고 wifi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는가... 한동안 요금제를 살펴보며 이래저래 고심을 했건만, 결국엔 있는 그대로 가자, 라고 결론냈을 수 밖에.-_-; 아이폰처럼 시원시원한 액정에, 어플 실행시의 반응속도가 날라다닌다면야 신청해볼만 하겠건만... 사실 말많고 탈많다는 P100을 그만큼 사용하기엔 사용자의 인내심이 필요한만큼, 그냥 쓰던 그대로 쓰기로 했다.-_-; (괜히 신경쓰지 않은 부분에 신경\쓰게 되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처음에 언급했다싶이 핸드폰의 기본 기능은 전화와 문자... -_- 라는 사실을 다시 다짐하며... 이번 낙서는 딱 여기까지.


나도 액정 안 보고 문자입력 해보고 싶다.-_-+ 이것만은 요즘 얘들 못 따라가겠더라. 문자 입력 속도가 그리 느린 편도 아닌디.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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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년부턴가... 하여간 중국에서 알고지냈던 박사생 형님이 귀국하시고, 그 형님이 사시던 집으로 내가 이사를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저런 다른 장점보다도, 책상 배치나, 혹은 학습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도 그 형님이 공부하셨던 곳에서 살면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을까.-_-; 당시 시세로 보면 집값도 싸긴 쌌다. 보증금(押金)도 없었고.) 햇빝이 그닥 들어오지 않는 창문을 마주한 커다란 책상,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이제까지 써봤던 책상 中에서 가장 컸던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절대 그 곳에는 컴퓨터를 올리지 않겠다라는 다짐도 미리 했었고. (이미 그 집에는 따로 컴퓨터 책상도 있었다.) 근데, 내가 살던 집에서 쓰던 책상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가지고 들어오게 되었는데, 본의 아니게 조그나만 방에 책상이 세개나 되었던 것.-_-; 원래 ┏━ 구조의 책상에서 ┏━┓ 구조가 되어버렸는데, 기존보다 편했던 점은 마우스를 쓰는 오른팔, 그러니까 오른팔 팔꿈치가 편하다는거 밖에 없더라고. 그때부터의 습관 때문인지 얼마전까지, 불과 1,2주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쓰지도 않으면서 괜히 잡다한 물건들이나 올려두고, 컴퓨터 마우스를 쓸 때 오른팔이 조금이라도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 구조로 책상을 써왔었지비. 그러다가 과감히 방 책상 하나를 빼버렸다. 사실 지금까지도 완전히 적응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은 방이 넓어진 것 같아 그럭저럭 쓰고있는 편이다.

아직까지 책상 정리를 아니, 책장 정리를 완전히 다 하지 못했다. 06년에 귀국을 하고, 중국에서 가져온 책들 中에 딱 필요한 것들만 방안의 책장에 꽂아두고 이후 정신없이 뺐다 꽂았다가를 반복했는데, 이제는 필요치 않게된 책들, 그다지 볼 일이 없는 책들을 상자안에 집어넣고 베란다에다가 쳐박아 두었다. 이래저래 책장을 채웠던 책들을 빼놓고보니, 막상 지금에와서 나에게 필요한 책들은 뭘까, 라는 쓰잘데기 없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그 고민이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버려니... 결국엔 이게 책장인지, 아니면 그냥 진열대에 너질러진 종이더미들인지도 모르게 되어버린 채, 지금까지 방치해 두고 있다.-_-;;; (일명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의 책장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가끔 너질러진 책들 中에 손에 잡히는대로 이것저것 손대며 보곤 했는데, 아까 저녁을 먹고 바로 손에 잡힌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일본어 작문 학습서이다.

가격은 단돈 14元, 당시 환율로 치면 엄청 싸지.

이 책 시리즈를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한 그 해 여름 베이징(北京)에 6주간 단기연수를 갔을 때 몽땅 사와버렸는데, ('군대 갔다오고나니 전공을 버릴 수 없다.'라는 사명감이 생기더니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을 그래도 이래저래 봤는데, 이 책만큼은 앞장에 '내꺼다' 표시 하나 달랑해두고 챕터 2를 못 넘긴 채 그대로 책장에 꽂혀 있었다. 그 죄책감 때문인지 책장 정리 할 때마다 따로 빼두지 않은 채 그대로 꽂아두어놨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이 책은 시간의 무게에 낡아가고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새 책인 것이다.-_-;

이 얼마나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수준으로 챕터를 시작하는가.

당시 중국에서 일본어 학습서를 살 것이라는 생각은 애시당초 없었다. 그래봤자 연수생답게 제일 먼저 HSK 관련 교재들을 구입했었고, 또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중영/영중 사전, 혹은 한어사전을 먼저 구입했었다. 뭐, 간혹 이 책만큼은 내가 읽을 수 있겠지, 라는 허황된 생각에 별다른 목적없이 산 내 취향의 책들도 구입하고 나니 이후부터는 그다지 서점에 갈 일이 없더군. 아니, 더이상 샀다간, 연수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를 때 상당히 귀찮아질만큼의 짐무게가 될 것 같더라고.

근데,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내가 있었던 북경외대(北京外大) 근처에는 정말 갈만한 곳이 없었다. 자전거도 없었을 뿐더러 연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어 어디 돌아다니기도 귀찮을 따름이었다. 6주... 그것도 길다면 길다고, 한 4주 지나니까 중국 생활의 무료함이 도지기 시작해서 그냥 그 허송세월이 얼른 지나가버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비. 그래도 천성적으로 빨빨거리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더이상 방안에서 시간을 떼울만한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같이 놀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단기 연수생이 10명 약간 넘었는데, 예비역은 나 혼자-_- 게다가 타과생-_- 룸메는 당시 다른 후배와 눈 맞아서 나랑 안 놀아주고-_-+) 결국 간간히 학교 정문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나오는 서점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시원허이 에어콘도 빵빵하겠다, 오래 있는다고 뭐라하는 사람도 없고... 또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서점에 대해서 그리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까 얼마나 신기한 보고같이 느껴졌겠는가. 잡지도 보고, 내가 좋아하는 역사서 코너에서 내가 알고있는 중국사와 책에 나온 것을 비교도 해보고... 하여간 그러다보니 시간은 정말 잘 가더라고. (해질 때까지를 기다려, 이후 음주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이 지금에와서 결정내리는 진실이다.-_-+)

그러다가 나중에 가장 많이 시간을 할애했던 곳이 바로 외국어 코너였는데, 전공도 전공이지만 중국사람들은 외국어를 어떤 식으로 공부할까가 궁금하기도 했다. 뭐, 지금이야 별 일 아니지만 당시 한국어 교재 두세권 꽂혀있는 것을 보고 나름 뿌듯하기도 했고, 또 조선족 말투로 적힌 회화문을 보면서 혼자서 실실 웃었던 기억도 있다. 바로 옆이 일본어 코너였는데, 와... 내가 한국의 서점에서 봤던 일본어 학습서들보다 더 많이 있는 것 같더라고. 사전이면 사전, 또 활용 사전도 많았고, 교재 역시 이런저런 그림이나 사진, 그리고 괜히 종이질만 높혀 가격만 올린 우리나라의 교재들과는 또 다르더라고. 겸사 일본어 능력시험 수험에 관한 책들도 뒤지기 시작했는데, 사실 당시엔 히라가나와 카타가나를 외우고 있는 정도, 또 간단한 기초회화와 문법이나 머릿속에 넣고 있었던 불쌍한 새내기 군복학 예비역이었던지라 일본어 능력시험 수험서를 보고 그 레벨을 가늠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미래를 보고-_- 아니, 솔직히 어차피 전공이 전공인데, 나중에라도 필요할 것이고, 책값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니까 일단 사두자, 라는 생각에... 어느날 하루,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대로 사게 된 것이다. (근데 위의 アクス 시리즈는 일본어 능력시험과는 그다지 관련없는데 왜 사버렸을까나.)

책상 서랍의 어느 봉투를 뒤져보니 그 당시의 영수증이 들어가 있더라.-_-v

시간상으로보면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산거 같기도 한디.-_-+

그때 한 무더기로 사왔던 일본어 교재들, 지금 그대로 집안 어디엔가에 있다. 아니 이후 중국에서 장기생활을 할 때도 간간히 샀던 것도 있으니 권수가 만만치 않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 산 일본어 시험 관련 책은 딱 한권 있더라고.-_-;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이것을 샀을까 싶을 정도.) 대학 졸업 무렵에 이래저래 같은과 학생들이 들고다니는 일본어 능력시험이나 JPT에 관련된 한국출판의 수험서들을 볼 때마다, '나는 집에 쌓여있다.'라는 자기만족으로 버텨야만 했다. 무슨 1급 완전 공략이라니, 혹은 900점 목표 어쩌구 저쩌구하는 한국 출판의 일본어 시험 관련 수험서들의 표지를 볼 때마다 나는 또 왜 훅~ 하지 않았겠는가.-_-;

그래도 내딴에는 본다고 봤는데, 그 당시에도 그랬고, 또 지금에 와서 이래저래 곰곰히 생각을 해본다면 딱 드는 생각이, 중국쪽 수험서들의 수준이 우리보다 쌘거 같다, 라는 다소 모호한 감(感)이다. 분명 같은 일본어 능력시험 2급 문제집인데 우째 문제 수준이나 단어수준은 중국쪽이 더 높았던 것일까. 당시 내가 샀던 수험서에는 기출문제와 같은 표본이 되는 문제들이 많지 않아서 내딴에는 그냥 그 수준에 맞추어 이래저래 책을 봐야만 했는데, 모르는 단어가 많아 문제를 푼다라기보다는 사전을 찾는 시간이 더 많았었다. 다시 말하자면, 일본인이 직접 만들어 출판한 것이나, 혹은 일본 사람이 이미 만든 것을 그대로 번역해서 출판한 것이든지간에 하여간 나에게 워낙 수준이 높아서 시험을 대비한다라기보다는 그냥 일본어 공부한다, 라는 생각을 더 들게 해주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 책들을 가지고 내가 일본어 능력시험을 준비하는데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 라는 결론.-_-; (물론 시험에 대해 나일론 준비를 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후, 일본어 능력시험을 치긴 쳐야겠는데 그 중국에서 출판된 수험서들의 수준에 기가 죽어서인지, 접수하는 당일에 '1급'이 아닌 '2급'을 신청했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한번씩은 겪는 것이겠지만서도, 접수하는 당일에는 뭔가 고군분투한다, 라는 마음가짐을 갖게되지만 이후 시험당일 2,3일 전까지는 팅가팅가~ 나일론 공부를 했었었다.-_-+ 가끔 그 문제의 책들을 뒤져봐도 결국엔 사전놀이로 진을 다 빼버리고 실제 연습해야 할 문제유향내지,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을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다가 대망의 시험날이 다가왔고, 시험 당일... 매서운 겨울바람을 헤치며 서면에 있는 중앙중학교던가? 그 곳으로 향했다. 아 떨리... 그때의 빌빌거림과 떨어져서 접수비 날리면 우짜노~라는 걱정은 이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괘나 오랜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시험문제지를 접했던 느낌은 아직도 기억할 수 있다. '정.말.쉬.웠.다.' 그러니까 당시 내가 시험준비를 착실히 하거나, 혹은 내가 원래부터 일본어에 대해 가깝게 생각해서 드는 자신감에서 나온 얘기가 절대 아니다.-_-; 평소에 일본어와 그리 가깝게 지내지 않았고, (조금 오버해서 말하자면, 그 당시까지만해도 내가 유일하게 일본어를 본 시간은 대학 수업시간이 대부분이었다다, 할 정도로 일본어에 관심이 없었다.) 또 나일론 공부를 통해 시험을 결국 보게 되었는데... 이게 왠 횡재인가, 싶을 정도로 문제의 레벨이 낮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유인즉,  나름 어렵다고 느껴졌던 중국 출판을 책들을 보고나니 문제에 나오는 어휘나 문장 길이가 좀 더 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험문제 자체가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지,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_-;;; (아니 어쩌면 이 날 밤을 새고 치른 시험인지라 머리가 해롱해롱했었을 수도.-_-+) 그래도 접수비 본전은 건질 수 있었다. 전체 점수가 생각보다 덜 나와 잠시 시무룩은 했었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내 수준, 그리고 시험준비의 엉성함에도 불구하고 합격통지서를 받았으니, 얼레리~ 또 겸사 기념으로 한잔하러 갈 수 밖에 없었지비.

이후... 토익이든, 혹은 HSK든 여느 문제집을 볼 때에도 해당 수험서나 문제집의 레벨을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쉽든, 어렵든 아니 차라리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좋을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쉬운 문제를 풀고 자신감을 갖고 시험에 임하든, 어려운 물제를 풀고 당일 시험문제에 대해 자신감을 갖든... 어차피 준비는 한 것이니만큼 자기 소신껏 잘 치르면 된다,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고. 어차피 시험은 죽어라 기계처럼 죽어라 풀다보면 감이 생기기 나름이고, 또 그러다보면 그 시험을 통해 한층 레벨업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 중국얘들이 치는 한국어 능력시험 문제를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다. 한국인이 보기엔 너무나 쉽게 생각되는 것인데, 이게 문제로 나올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외국인 학습자 입장에선 또 그렇지가 않다. 여느 외국어든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결국 출제자들도 외국인 학습자들이 틀리기 위해 만든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 함정만이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다면 자신이 목표로 했던 결과에 더욱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이걸 시험에 대한 요령이라고 하더군.)


그러고보니 작년엔 외국어 시험을 한번도 쳐보지 않았다.-_-; 2010년은 시험으로 시작되는 한해겠구마이. 근데 원서비가 너무 비싸.-_-; 하기사 지금 대한민국에서 안 비싼게 있는가마는.

언젠가 중국어 시작한지 반년만에 HSK 8급을 손에 넣은 형님의 간단한 무용담을 들었던 적이 있다. 문제집 자체를 통째로 외웠다고 한다.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나.-_-; 외국어를 잘한다고 시험을 잘 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언어는 언어고, 시험은 시험이라는 얘기지비.

책상 하나를 빼면서 기본 책상 바로 옆에 복합기를 설치했다. 아마 프린터기를 이렇게 높이 두고 쓴 것은 처음일 듯. 아, 좋다. 앉아서도 스캔과 복사와 출력을 할 수 있다니.-_-v 겸사 기념으로 이것저것 스캔놀이를 해봤는데... 햐~ 옛날에 스캐너 처음 가지고 놀았을 때의 설레임이 팍팍나는구마이.

겸사 기념으로,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중국 공항이용료 티켓.-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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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5 08:15

    그니깐...중국어로 일본어를 공부하시는 거네요?
    커헉..부럽습니다...ㅠ.ㅠ

    • 2009/12/25 15:01

      -_- 값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책을 사와서 봤다, 라는 얘기입니다. 글쎄요, 중국어까지 볼 여유가 있었을까요? ㅎ

05년 무렵부터 난징(南京) 구로우취(鼓楼区)에 있는 구로우신춘(鼓楼新村)이라는 곳에서 1년 반 정도 서식했었다. 월세 1,100元짜리에 보증금(押金)은 없었고, 방 하나에 부엌과 욕실이 딸린 조그나만 아파트 1층 집이었다. 주변 아파트 때문에 햇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다는 단점을 제외하곤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무엇보다도 그때까지 살았던 곳들 中에서 가장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는지라, 이래저래 조용히(?) 살 수 있었지비. 그래도 바로 옆에 있는 닝하이중학(宁海中学)의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조금 떠들썩했었는데 뭐 이 정도야, 전까지 살았던 곳에 비하면 양반이었지비.

뭐, 구식 아파트가 다 이렇지. 이넘들 때문에 나의 일조권이.-_-;;;

점심시간 후 학교로 들어가는 학생들.

근데 쟤는 무슨 일진이냐?-_-;

점심을 집에 가서 해결하지 않고 근처 식당에서도 많이들 해결한다.

학교 근처 문방구. 근데 왜 여사장이 흰가운을 입었을까.-_-;

간혹 동네에 인부 아저씨들 뜨면... 죽음.-_-;

이래저래 생활비나 밥값을 아껴보기 위해 학교 기숙사 대신 외주를 선택했건만, 생각보다 살림을 한다는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자취생활 1,2년을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 당시엔 일단 주변에 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규모가 비교적 큰 마트가 없었고, 또 밤이나 낮이나 방안의 형광등에 의지해야 하는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가면 갈수록 생활 패턴이 게을러질 수 밖에 없더라고. 다만 책은 좀 더 볼 수 있었지만. (왜 어두운 곳에서만 집중력이 늘어나는지 원.-_-;) 당시 월말이면 생활비가 바닥나는 상황까지 간 적도 있었고, 그러다보니 아예 장을 보러 갈 엄두도 못내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나마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닝하이 중학 근처에 있는 자그나만 식당들이었다. 刀削面이나 볶음밥을 줄기차게 먹기 시작했지비. 언젠가 학생들이 등교시에 사서 먹길래 나도 따라먹은 乌糯饭에 관한 포스팅을 한 바도 있다. (그 당시엔 아줌마의 발음만 듣고 乌罗饭으로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검은색에 찹쌀이 들어간 밥, 乌糯饭으로 추정을 해본다.)

학교앞 중국식 패스트푸드점.

가격은 적당 편. 제일 비싼 햄버거가 5元.

아, 추억의 란저우라면(兰州拉面)...!~

나는 당시 炒刀削面(볶은 칼국수? 정도)을 자주 먹었다.

이 곳에선 면이나 군만두를 주로 먹었다.

내부환경은 좀 처참했지만.-_-+

이 후, 조금씩 형편이 낫아지면서 살포시 집근처의 다른 식당들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는데, 딱 마침 메뉴나, 주인장 인심이 맘에 든 곳이 있었다. 대강 기억하기로는 이름이 '小渔村餐厅'[각주:1]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싶이 어류 요리가 많았는데, 그다지 시켜먹지는 않았고)이었던 것 같고... 사장 부부, 그리고 아직 소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딸래미가 있었다. 이 집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것이 28元인가 하는 탕에 새우가 듬뿍 들어간 요리였고, 이외에도 옥수수에 밀가루 혹은 튀김가루에 뭍혀, 파전 크기만하게 튀긴 것을 자주 먹었다. 뭐, 끼니를 위해서라기보단 거의 술안주였지만서도.-_-; 당시 내가 딱 기억하고 있는 특색있는 넘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윈난 볶음밥(云南炒饭)이다. 대게 중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볶음밥이 저렴한 계란볶음밥(蛋炒饭)이나 양주 볶음밥(扬州炒饭)인데... 왠 운남? 싶었는데, 우째 한번 시켜보게 되었다. 햐... 싶더니만. 맛이 없다기보다는 입맛에 맞지 않았다. 사천식 요리를 만드는데 많이 들어가는 향신료 때문인지, 영~ 아니더라고.

보기엔 저래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새우도 실컷 먹었고.

가끔 '사자두'라며 무협지에 나오던데 이 집의 狮子头 역시 괜찮았지비.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리... 가끔 집에서 손수 끼니를 해결할 때에 자주 해먹는 것이 일식 돈부리나 볶음밥이다. 뭐, 사실 일식 돈부리라고 해봤자 오야꼬돈(아주 가끔 오야꼬돈(親子丼), 거의 꼬돈(子丼) 수준.-_-;)이 전부이고-_- 볶음밥이라고 해봤자 '계란볶음밥 + 알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들어서는 라면 끓여먹는 것보다 이 두가지를 해먹는게 더 편하더라고. 언젠가 마파두부(麻婆豆腐)가 땡기는 바람에 이금기(李锦记)에서 나온 마파두부 소스를 사와서 한번 해먹은 적이 있는데, 딱 한번 해먹고는 소스를 그냥 냉장고에 방치했었다. 그러다 볶음밥을 해먹는데 '한번 넣어볼까?' 했지비.-_-; 딱... 맛이 몇년 전 딱 한번 맛만 봤었던 윈난 볶음밥(云南炒饭) 맛이더군.-_-+ 나름 특이해서인지 바로 생각이 났던 것이다.

조명이 흰색 스탠드라-_- 색깔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원래는 많이 붉다.

중국에서 윈난 볶음밥을 먹었을 때, 이거 무슨 가짜다... 윈난(云南) 가도 없을꺼다, 라며 이런저런 무분별성 추측을 해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구마이. 이름이야 무슨 상관이랴, 이래저래 특색있게 만들어서 이름 하나 갖다붙이면 그게 곧 요리가 되는 것을. 청나라 건륭제 덕에(?) '天下第一菜'라고 붙여진 요리 역시 우리가 동네 중국집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해물누룽지탕과 비슷하다.-_-; (정확하게는 虾仁锅巴, 우리 동네 '서부의 사나이'라는 중국집에서는 18,000원 한다.)

18,000원짜리 누룽지탕. 맛이야 한국틱하지만, 그래도 부담없이 소주 한잔 즐길만하다.

하여간 방치해둔 소스 하나 넣었을 뿐인데 본의 아니게 나도 윈난 볶음밥(云南炒饭)을 만들어 냈으니... 뭐, 殷군이 특히 요넘을 좋아했는데 있었으면 맛이라도 보여줬겠건만. 뭐, 지가 알아서 난징에서 사먹겠지.-_-+



  1. 이전에 동네 사진을 종종 찍어뒀는데, 이 가게 정면사진도 그렇고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_-; 이런이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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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년 7월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웹메일계정'이란걸 만들어봤는데, 당시 중국에서 단기연수를 하던 시기라, 그냥 급하게, 대충 계정 하나 만들었었다. ID가 뭐드라... 마땅히 생각나는 것도 없었고, 또 이전까지 사용하던 ID는 당연히(?) 사용 中이었던터라, 나름 새롭게 생각해놓은 otravez라는 ID를 만들려고 했건만, 이런... ID가 있데.-_-+ 차기작으로 생각해뒀던 otra 역시 사용중.-_-; 뭐, 할 수가 있겠3... 할 수 없이 '-' 하나 더 붙여버렸지. 그래서 만든 ID otra-vez, 참... 뭐, 당연하겠지만서도 계정을 만들었던 사이트는 당시 대한민국의 대표 메일계정을 자랑하던 다음의 hanmail, 그래서 부랴부랴 만든 계정이 otra-vez였다.

근데, 나중에 자취집에 메가패스를 깔면서 HiTEL 계정을 무료로 pop3/smtp까지 사용할 수 있었던터라, 난생 태어나서 처음 만든 웹계정의 사용은 점차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후에는 쓸만한 다른 사이트의 계정이 늘어나면서... 점점 hanmail과는 멀게 지냈었다. (서브 계정으로 orgio, kebi와 같은 지금은 찾기 힘든 계정들을 사용했었지비.) 다만, 메일계정에 아무래도 관심이 많았던지라,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wurifen이라는 ID로 다시 ID를 만들긴 했는데, 거의(?) 쓸 일이 없었다. 다만, 한동안 맡았던 다음 까페의 운영진 ID로 1년 정도 썼던 것이 전부.

언제였더라... 이런저런 변화를 꾀한다는 다음 hanmail에서, 지금 한창 사용 中인 Express가 생길 무렵에, 하나의 어떤 이벤트를 했으니, 바로 3.4 ID라고 해서, 다른 계정에서는 불가능(?)했던 세자리로 ID를 만드는 이벤트를 했고, 그 이벤트를 통해 sbj라는 이름의 영문 이니셜을 딴 ID를 살포시 만들었다.

왠만한 사람들은 알다싶이 ID가 짧거나 혹은 유명 메일계정을 쓰면 늘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스팸메일, 설마설마 했는데... 이런저런 아니, 기계로 돌린 스팸메일 뿐만 아니라, 컴터와 거리가 먼, 그러니까 메일 계정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분들, 나와 영문 이니셜이 같은 분들이 sbj@hanmail.net이라는 계정으로 이런저런 카드나 사이트 등록 메일주소로 사용했었더라고. 언젠가 포스팅도 했지만, 이런저런 스팸이야 그려러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개인정보가 든 메일들, 특히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 목록으로 해서 주민등록 번호나, 주소, 핸펀번호까지 딸려 첨부화일로 날라오는 메일은 감당키 좀 그렇더라고. 뭐, 한메일 입장에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것 같았고. (사실 따져보면, 우리나라 계정에서는 스팸신고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가 스트레스다. 전체 삭제하느니만 못하다.)

그러던 와중, 어제 저녁부터 날라온 메일이 있었으니, 기계로 돌린 메일이라기엔 띄엄띄엄 날라오는 것이 아닌 것 같았고, 같은 메일 주소로 6시간내에 여러통 날라오는 것보니 대강보니 스팸이라기보다는 개인이 아무나(?) 보낸 메일이라고 짐작은 되더라고. 처음에는 그냥 안부삼아 물어보는 메신저성 메일인 줄 알았건만, 가면 갈수록 더 하네?

이 메일 전의 메일에는 아예 詩까지 -_-;

분명 내용상으로는 뭔가 인연을 바라는, (표현에 의하면 13억 中에서 알게되는 사이라지만서도.) 내용일터인데, 어떻게 이 계정으로 왔느냐가 사못 궁금해지더라고. 흔하고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계정임에는 틀림없지만, 혹 메일을 보낸 이가 (qq계정) hanmail 계정의 사람에게 중국어로 보낼 수 있겠는가... 싶더라고. 설마 중국어 안다고 보냈을까나.

간만의 중국쪽에서 날라온 메일 덕분에, 이래저래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니만. 글고보니 중국어로 메일을 안 쓴 것도 오래된 것 같고. 내일이나 생각나면 나도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지인들에게 중국어로 메일이나 뿌려볼까나. ㅋ


나는 중국 인터넷을 대표한다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qq와는 정말 이제까지 그 어떤 인연도 없었다. 계정도 만든 적이 없고, 메신저 역시 깔아본 적이 없고.-_-+ 근데 왜~!?

근데, 净土는 알겠는데... 静土는 뭐꼬!? 조용한 땅이라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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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날라온 Spam ?  (2) 200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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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3 10:47

    네이버계정으로도 온갖 언어의 스팸이 오는 판이니 한메일로도 오겠네요. 근데 내용이 참 독특한 것 같네요..;;

2009/09/30 13:30
자전거 한대가 새로 생겼다. 동생네에서 무슨 행사던가 이벤트로 받은거라던데, 그 동네는 탈만한 동네도 아니고, 또 자전거를 탈만한 사람도 없어서인지, 내가 새것을 받게되었다.-_-v 초딩 2학년때부터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는데, 일반 자전거보다 휴대가 간편한(?) '접이식' 자전거는 또 처음 타본다. 요즘 몰고다니는 카니발과 같이 이용하면 우째 활용도는 높아질 것 같은데... 접았다가 폈다가 하는게 만만치 않은지라, 그냥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자전거 주차장에 고이 모셔다놓고, 마트 장보기용으로 타고다니고 있다. (아, 오늘부터 배드민턴을 치러 갈 때에도 타고 다니겠군.) 사는 곳이 시내 근처인지라 교통량이 많아 자전거를 타고다니기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운전을 하고부터는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를 타고 도로변에 나간다는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실감할 수 있겠더라고.


하여간, 무슨 정책이더라... 녹색정책인가 뭔가를 한다고 한 이후, 도로변이나 골목길에서 자전거가 부쩍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글쎄요... 자전거만 많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자전거 전용 도로' 정도는 있어야 자전거를 탈만하지 않을까... 싶다우. 07년 늦가을 즈음에... 학교 연구실을 오고가며 자전거를 타고 다녔었는데, 무작정 집에까지 끌고간답시고 가다가... 허벌난 차량들과, 그 차들의 속도에 겁에 질려... 고마 자전거를 지하철역 자전거 주차장에다가 세워놓고, 지하철로 귀가한 적이 있었다. 물론 찾아갔어야 했는데... 이런저런 핑계아닌 핑계로 방치하기 시작했고, 더욱이 그해 겨울 중국과 일본을 몇주간 오고갔는지라 자전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당3...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지하철역을 찾았건만, 두어달 방치해둔 자전거가 그대로 있을리 만무했다.-_-; (아, 그 자전거 꽤나 비싼거였는디.) 스스로 반성에 반성을 하며... 고마, 한국은 자전거를 타고 다닐만한 동네가 아니다, 라며 세뇌를 하고 살았건만, 뜬금없이 자전거가 새로 생긴 것이다.

여길 접고펴는게 만만치 않더라.

안장... 바꾸고 싶어서 미치겠다.

그래도 자전거의 천국(?)이라는 중국땅에서 2,3년동안을 타고다녔는데... 나름 자전거는 익숙하지만, 역시나 한국에서의 자전거를 타고 생활권을 움직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으니... 도난사고없이 계속 타고 다녔으면 하는구마이.


아직 한국에선 자전거 음주운전을 해본 적이 없다.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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