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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시 : 2007년 7월 19일

2년전에 다녀왔던 곳을 이제야 포스팅을 한다는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때 당시에 느꼈던 감흥이나 접했던 객관적인 정보등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보니... 이래저래 포스팅을 하면서도 열심히 중국어 독해만해서 옮긴 기분이다.-_-; 그래도 다녀온 곳은 다녀온 곳이니... 이제서야 이싱(宜兴)에 관한 포스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宜兴이라는 곳이 내가 02년에 어학연수를 했던 우시(无锡)와는 그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던지라... 간다, 간다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던 곳이었고, 07년에 그래도 인연이 닿아 허겁지겁 가게되어 그 아쉬움을 풀게 되었으니, 속이 다 쉬원할 정도. (가서 특별히 좋다!~ 이런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봤다!~ 함으로써 뭔가 잃어버렸던 물건을 다시 되찾았다, 라는 느낌 정도.) 하여간 새벽 6시에 기상하여 허겁지겁 다녀왔고, 또 오후 3시까지는 다시 우시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정말 여유 하나없는 정신없는 일정이었지만, 또 그럼으로 인해서 나름 색다른 여행으로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분명히 샨쥬엔동(善卷洞) 관광 코스를 입구를 통해서 제대로 들어간 것 같았는데, 막상 코스를 거의 다 돌고 내려오니, 하나둘씩 우리가 지나왔던 간판떼기(?)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1600년의 역사가 있다는 샨췐스(善权寺)나, 양축(梁祝) 이야기가 담긴 곳...등. 설마 우리가 거꾸로 코스를 돈 것은 아니겠지비?-_-+

善权寺의 입구를 알려주지만, 아시다싶이 산꼭대기에 있으니.

얘네들은 남녀 마음 어쩌고 저쩌고 하면 우째~ 좌물쇠를 강조하시는지.-_-;


이전에 난징(南京)에서 갔던 정려원(情侣园)에서도 봤듯이... 이 동네는 무슨 남녀간의 애정, 혹은 감정을 상징화 시킬 때 왠 '자물쇠'를 이용하는지 모르겠다. 뭐, 쉽게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도 그랬고... 잠그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인 '자물쇠'가 어찌 두 사람의 마음을 이어준다는지. 두 사람의 마음을 어느 곳에 넣고 잠근다는 말인가? 사실 여기에 관련된 이야기는 상당히 단순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에게 사랑의 고백하면서 내 마음은 이제부터 너의 것이니, 이 마음을 잠근 후, 그 열쇠는 니가 가져라... 그리고 맹세를 한다지, (뭐, 중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黄山同心锁에 관한 이야기 참조)

"与你同心, 对你忠心, 一片痴心, 永不变心."

너와 같은 마음으로, 너만을 위한다는 충직한 마음, 일편단심... 그리고 영원히 변심하지 않겠다는.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_- 그냥 이런걸 볼 때마다 이해를 못한다 이 말이지비. 시대가 변해서 그런가...

이거봐, 다보고 내려오니 안내표지가 보이잖우.-_-;


아마도 정말정말 마무리를 하는 코스인 것 같은 곳이 나타났다. 앞서 산정상에서 신나게 타고 내려왓던 华东第一滑도 그랬지만, 확실히 어디어디 제일(第一) 좋아하시는구먼. 宜兴이라는 곳이 紫砂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만큼, '중국 제일 도자기바(中国第一陶吧)'라고 있더라고. 그려~ 중국 제일이라는데 어떤지 실제로 한번 봐보입시더.

입구쪽에는 당연히 이런저런 간단한 소개가 있기 마련이고.

막상 안에는 이것밖에... -_-;;; 평일이라 운영도 하지 않고 있었고.

하여간 이런거 말고... 역시 그나마 맘에 든 것은 개인적으로 소시적 무협물 시리즈에서 봤던 중국의 고전 모습들. 즉,

뭐, 이런 풍경.-_-v

시원한 바람맞으며, 혹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라 할지라도 저기 정자(?)쪽에 앉아서 처자 하나랑 희희낙락거리는 것도 얼마나 운치있는 일이겠슴메. 다만, 이 날처럼 너무나 무더워 숨쉬는 것조차 불편한 날이라면... -_- 망구 환상땡이랍지요. 일단 환상을 뒤로 미뤄두고... 출구를 통해 드디어 이 대단원(?)의 관광코스를 마치고 나오면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바로 관광지 기념품거리.-_-; 이것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기념품들을 보는 재미가 솔솔할 것 같지만, 역시나 호객행위를 하는 아줌니들의 들이대는 수위가 높다보니-_- 중국의 여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꼭 이런 코스는 피하고 싶어지더라고. 이 날은 그나마 낫았다. 왜, 한적한 평일이었지라.-_-v (문닫고 영업을 하지 않던 곳도 적지 않았지비.)

여기 기념품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디카로 찍은 것은 단 두장밖에 되지 않는데, 이도 이유가 있다. 같이 갔던 후배 둘... 이 둘이 또 마침 이 곳에서 살 선물용 기념품을 산다고 이것저것 물건들을 골랐기 때문. 뭘 샀드라... -_- '차상'이라고 부르던데, 茶세트를 올리는 차받침대를 살 모양.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군.) 나야 옆에서 가급적 茶壶 세트는 이 곳에서 사지말거라, 하고... 나중에는 가격 흥정할 때 도와줄려고 폼을 잡았지비. 뭐... 알아서 잘 깎더니만. (후배들아, 너네들은 이제 배울게 없다, 하산혀라.-_-; 근데 나 같았음 더 깎았다.-_-v) 한 보따리 사서 들고 드디어 관광코스를 탈출하기에 이르렀다. 몇개 사지 않았는데, 부피가 좀 컸으니. 으아, 이걸 들고 어떻게 귀국혀... 이 날이 귀국 3일 전인가 그랬지비. 게다가 여기뿐만 아니라 이후 일정에 쑤저우(苏州), 상하이(上海), 저우장(周庄)... 도 있었는디. 하기사 뒤의 관광지에서는 정말 살만한 것이 없지비.

사람이 정말 없다.

평일이었던지라 정말 오래간만에 한적한 중국 관광지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만... 왠지 을씨년스럽더니만. 게다가 돌아가는 차를 찾는 것도 직접 찾아야 했고. 딱 입구쪽에서 택시용의 승용차를 타고 터미널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돈없는 학생들이 어찌 그런 고급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겠소. 타고 들어올 때처럼, 승합차를 찾아... 찾아 해맸다.

밥집도 제대로 영업을 하지 않았기에

슈퍼에서 음료수나... -_-


이런저런 교통수단들이 있는데, 일명 빵차(面包车)나 3륜차로는 터미널까지 갈 수 없었다. 미니버스 그러니까 흔히 小公이라고 부르는 차량을 찾아 드디어 타기에 이르렀지비. 어찌나 덥든지, 그리고 얼른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배고픈 것도 신경쓸 수 없었을 지경. 이 날 아무것도 먹지 않지 않았나?-_-;

문제는... 터미널까지 가더라도 시간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차량을 타고 터미널까지 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을 뿐더러, 터미널까지 간다고 해도 우시터미널에 도착해서, 또 택시를 잡아타고 학교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후배들의 그... 结业式라고 해야하나, 거기 행사시간에 맞추기 힘들기 때문. 게다가 인솔을 맡았던 나까지 늦어버리면-_- 으윽. 사실 이 날 새벽에 일어나서... 나 혼자 가기도 뭐해서,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음직한 얘들을 깨워서 데리고 갔다. 오전수업 들을봐에는 나 따라서 宜兴 한번 구경하고 오는게 더 낫지 않겠느냐... 이런 식으로 꼬득였는데, (물론 선배로써 잘한 짓은 아니지만-_-) 이왕 온거, 그리고 걔네들은 그때까지 수업을 거의 빼먹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도는 감당하고 여기 올만하다, 생각했던 것. 이것도 인솔선배니까 가능한 것이지, 내가 만약 인솔교사였으면-_-;;;

하여간 그래도 공식행사는 꼭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그 미니버스를 타고 가다가, 원래 우리가 이싱에서 내렸던 터미널말고, 또다른 터미널 앞에서 무작정 내렸고, 거기서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가격을 흥정하고-_- 우시의 江南大学로 가자고 했지비. 행여나 싶어서 미터기켜고 가자고 했고. 차 안에서 후배들은 뻗어자기 바빴고-_- 나는 택시 기사 아저씨와 이러쿵 저러쿵 얘길 나누면서 갔는데... 그때 이싱화(宜兴话)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유튜브 동영상 댓글에... 어느 중국인이 친절하게도 번역본을 댓글로 달아줬더군. ㅋ)

하여간 이로써, "宜兴物语"는 드디어 마무리 짓게 되는구마이.


택시 안에서 '潘家'라는 이름을 가진 주유소를 지나쳐 갔다. 그 당시에는 '아, 이런 식으로도 주유소 이름을 짓는구나.' 신기해서 찍어뒀는데... 나는 이 潘家를 보고, '양가장(杨家将)'이라는 홍콩 TVB의 단편 드라마(1985)가 생각이 났다. 이 드라마는 당시 초호화 캐스팅으로 구성하여 만든 드라마였던 것 같은데, (대강의 줄거리는 송나라 개국공신 楊가와 신화의 인물들을 접목시킨 이야기) 남자 배우는 주윤발(周润发), 유덕화(刘德华), 양조위(梁朝伟), 만자량(万梓良), 황일화(黄日华), 오진우(吴镇宇), 모교위(苗侨伟)등이 출연하며, 여자 배우는  유가령(刘嘉玲), 증화청(曾华倩), 장만옥(张曼玉), 사녕(谢宁), 모순균(毛舜筠)등... 당시 홍콩 연예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한꺼번에 대거 출연한 드라마이다.

06년 江西 南昌에선 이런 것도 있더군. 또 양가장.

근데, 극중에서 우리편인 양가(杨家)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집안이 반가(潘家, 거의 진회와 비슷하게 송나라 초기에 금나라에 달라붙는 간신집안으로 나온다.)인데, 그 중 막내 아들이 양가의 막내아들(양조위)와 비무를 벌이다가 죽어버린다. 그 죽은 반가의 막내 아들역을 맡았던 배우! -_-;;; 이 배우가 한때 유덕화(刘德华)와 동성애 관계에 있었다고 떠들썩 했던 남정네더군.-_-+ 이 배우 역시 姓이 潘씨이다.-_-; 반굉빈(潘宏彬)이라는 배우군. 요즘 유덕화 결혼 때문에 중화권 연예계가 떠들썩한데, 마침 이때 무심결에 찍은 사진에서 이 潘家를 보니...-_-;;;

1985년. 이 얼마나 정겨운 모습이던가.-_-+

이 '양가장'이라는 드라마는 이곳에서 관람할 수 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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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uri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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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시 : 2007년 7월 19일

앞서 중국 이싱(宜興)의 샨쥬엔동(善卷洞) 유람기.에 이어.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우는 민간전설이 하나있다. 바로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의 고사인데, 나는 소시적 봤던 영화 '양축'을 보곤 그려러니... 하고 그냥 생각했다. (드라마로도 몇번 채널을 돌리다가 본 적은 있지만, 시선 고정은 아니되더니만.) 뭐, 옛날 고전의 러브스토리는 뻔할 뻔자 아닌가. 신분이 맞지 않은 남녀가, 집안의 반대로 줄행랑을 치고... 잘되면 어디 숨어서 아들딸 잘 낳고 살아가는 것이고, 못되면 결국 둘이 죽음을 택한다... 뭐 이 정도. 다만 공통점이라고 갖다붙일만한 것은... 항상 여자쪽 집안이 남자쪽 집안보다 낫다는 점. 아마도 당시 사회상을 보면, 남자야 '三妻四妾' 할 수 있을만한 여건이 되었기에, 불행한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가 되려면 남자쪽의 신분이 떨어져야 한다는 점 정도. 내가 양채니(杨采妮)라는 배우를 제대로 익식하게 된 것도 바로 서극감독의  '양축(梁祝)'이라는 영화때문인 것 같다. (얼마전에 곰TV의 무료영화에서 '방콕 데인저러스'라는 영화에서 봤는데... 이쁘장한 태국 약사로 나오시더군. 대사 한만디 없는 벙어리역.-_-; 요즘 이 언니 뭐하시지?)

지난번 이싱(宜兴)의 샨쥬엔동(善卷洞) 이야기 이후에... 다음 코스를 포스팅하기가 너무 귀찮아졌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여유'인데, 그 동굴을 빠져나간 후부터는 시간이 촉박해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저 스쳐지나치는대로 사진만 찍어왔기 때문에, 머릿속에 남은 기억도 없거니와, 그런 기억들을 일부로 짜집어서 넣느니 아니 남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어차피 내가 거쳐간 과정이려니... 하고 남겨놓는 것일 뿐이라는거.-_-; (아, 변명 한번 길다.) 하여간, 별로 남지 않은 기억을 더듬어 더듬어, 그리고 평소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양축' 이야기도 알아볼 겸해서 포스팅을 해보기로 한다.


샨쥬엔동을 빠져나오니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바로 자그나만 폭포의 시원한 물소리였고, 그 폭포를 뒤로하고 가야할 길을 가다보니 왠 석상이 하나 보였다. 이건 또 누구시람. 이 양반의 이름은 쉬샤커(徐霞客, 1587~1641)로 명나라 말기의 '지리학자'이다. (쉽게 풀어보면 여행가이자 문학가이다.) 30년동안 열심히 돌아다니시어 260만자에 달하는 <徐霞客游记>를 남겼다. (그 중 200만자는 유실되었고 지금은 60만자만 남았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에서 따지면 '지리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는 정도. 28살때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의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람기를 남겼고, 55세에 윈난(云南) 지방의 리장(丽江)에 이르러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자, 고향인 장인(江阴)으로 돌아왔와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해각지를 떠돌아다니는 것을 결심하는데는 당시 그의 엄니의 영향이 컸다고.

“身为男子汉大丈夫,应当志在四方。你出外游历去吧!到天地间去舒展胸怀,广增见识。怎么能因为我在,就象篱笆里的小鸡,套在车辕上的小马,留在家园,无所作为呢?”

" 사내대장부로써 당연히 사해에 뜻을 두어야 하니, 너는 밖으로 나가 사해각지를 돌아다녀라. 하늘과 땅 사이에 이르게 되면, 가슴에 품은 뜻을 펼치고, 견식을 넓히도록 하여라. 어찌 내가 있다고 해서 너는 우리안의 새장안의 새나,  수레에 걸려있는 말처럼 있느냐. 집안에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으냐."

뭐... 한마디로 집에서 책만 보면서 데굴데굴해봤자 남는게 없으니, 돌아다녀라... 라는 아~주 친절한 말씀.-_-; 이 말을 듣고 뜻한 바 있어 1년동안 여행을 하게된 것이 바로 22살때의 일. 이후 갖은 고생을 하며 동으로는 쩌장(浙江)의 보타산(普陀山), 서로는 윈난의 텅충(腾冲), 남으로는 광시(广西)의 난닝(南宁) 일대, 북으로는 허베이(河北) 지시엔(蓟县, 지금의 텐진)의 판산(盘山)까지... 대부분의 중국 각지에 족적을 남겼다. 이 얘기는 이 정도까지만 하고... 흠흠.

앞서 말한 지명들을 표시하니 뭐 이 정도.


처음엔 사실 이 곳만 지나갈 때만 하더라도 이 곳이 梁祝과 관련있는 곳일 줄은 몰랐다. 왠 남정네? 왠 아낙네? 무슨 예전에 난징에 있을 때 가보았던 정려원(情侣园) 정도라고 생각을 했었지비. 에공... 이런 곳은 또 그냥 지인들과 오기엔 좀 막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비. 그래서 일단은 신경끄고 고고씽. 근데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徐霞客의 석상을 찍고나서, 디카 설정을 잘못해서 이후부터 사진들의 색감이 여엉~ 이상하게 나와버렸다. 뭐랄까... 색소빠진 사진이 되었다고 해야하남. 게다가 무더운 날씨에, 햇빛이 너무나 밝아서 사진 색감이 정말 이상해져 버렸다.-_-; (초간단 색감보정을 해도 별반 차이가 없네.)

조그나만 호수에 아담한 정자. 캬~ 여기서 한잔하면~ -_-;;;

왠 서재?

분명 입구쪽엔 한쌍의 남녀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왠 서재?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무슨 안내표지판도 전혀 없었으니 알 도리가 없었지. 다시 생각교정, '아... 그냥 상하이(上海)의 예원(豫园)과 같은 부호들의 정원이구나.'라고.-_-;

영대각(英台阁) ?

엇... 다시 눈앞에 나타난 누각.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름이 낯익다. 영대? 영대? 누구지? 어디서 많이 들었음직한 이름인디? 당췌 여긴 뭐하는 곳이냐 말이닷.

앗... 蝶園?

이거원... 안내표지 하나 제대로 없이 돌아다니니 발걸음은 더더욱 빨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다지 볼만한 것도 없었고. 에이, 어서 벗어나자고 일행들을 재촉하는데 눈앞에 나타난 蝶園. 여긴 뭐냐... '또 무슨 나비들 박제해서 액자 만들어놓은 그런 곳이냐?' 했지비. 거참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이네... 하면서 별 생각없이 그냥 지나칠려는 찰나, 왠지 모르는 떠오르는 한 이야기에 관한 발상. 에이 설마... 하필 여기 왜?-_-;

다시 나타난 영대. 영대찻집? -_-+

여기서 茶 한잔해도 되겠더니만.

아까 봤음직한 남녀가 다시 나타나고... 이때 눈치를 깠어야 했는디. (팔모양, 날개-_-;)


화원인지... 나비 전시실인지 모를 속닥한 실내를 바로 빠져나가자... 드디어 우리가 지나쳐온 곳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어찌나 힘이 빠지던지, 헛웃음만 연발.-_-; 나 중문과 맞나... 싶었을 정도.ㅠㅠ

드디어 정체가~ -_-;

아까 지나쳐 올 때의 '영대(英台)'는 그렇게 나에게 있어선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내가 그 언니 이름을 불러봤어~ 그렇다고 드라마도 제대로 본 적도 없으니. 그냥 단순히 낯익는 고유명사겠다, 생각을 했는데... 딱 그 곳을 빠져나가자... '양축(梁祝)'이라는 단어가 뇌리속에 팍~ 찔어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곤 속으로 '양채니!'를 외쳤다지.-_-v 무슨 미로찾기 하러 들어간 것도 아니고, 퀴즈대회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지도 모르고 룰루랄라 디카 셔터만 누르면서 지나쳤으니 얼마나 허무했겠는가. 그리 관심있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옆에 있던 후배들에게 아는 체(?)는 할 수 있었겠지비. 그나저나 양산백과 축영대가 여기 왜 있냐고오~ 하는 궁금증이 또 생기더라고.

'양축'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히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동진(东晋) 시대에 한 처자가 남장을 하고 공부를 하러 서당엘 갔다. 거기서 한 남정네를 알게되는데 처음엔 동창으로서 의기투합되었으나 이후에 처자인 축영대는 양산백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축영대의 신분이 밝혀지고 둘은 서로 이성으로써 좋아하게 되는데, 축영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잘난 집안 출신인 축영대는 당연히 부모의 반대에 부딫히고, 양산백은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결국 죽게된다. 양산백의 무덤가에서 통곡하고 있던 축영대. 순간 무덤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그 곳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무담이 닫히면서, 나비 한쌍이 하늘위로 날라가기 시작한다... 뭐, 이 정도가 내가 아는 양축의 이야기.-_-;

근데, 이 민간 설화에 관한 것은 모두 몇가지의 제각기 다른 역사적 기원이 있다고 한다. 그 中 이싱과 관련된 기원을 이야기해 보자면, 역사의 기재에 따르면 양축 이야기가 최초로 문헌에 기재된 것은 이싱에서였다고 한다. 중국 짱수성의 학술계, 역사계, 여행계(?)에서의 전문가들은 宋咸淳의 <毗陵志>에서부터 명대의 冯梦龙의 전기소설 속에서, 모두 대량의 증거가 되는 글들이 나타났다고. 거기에 따르면 양산백과 축영대는 모두 이싱 사람이라는 것. 뭐, 毗陵志나 冯梦龙의 전기소설을 내가 읽지 않아서 이러쿵 저러쿵은 못하고... 다만, 중국내에서도 이 양축 이야기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허난성의 여남(汝南)현, 후베이의 马坡村, 쩌장의 닝뽀(宁波)와 같이 지리적인 기원도 의견이 다를 뿐더러, 심지어 진(晋), 동진(东晋), 송(宋), 명(明)등과 같이 시대적인 기원도 의견이 제각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포스트의 제목과 관련된 글은 이 정도까진데...
아, 쓰는 김에 나머지 부분도 써놓는게 낫겠다. 또 다른 제목으로 새 포스트를 쓸려면 몇달 걸릴 듯.-_-;


그건 그렇고... 이싱의 샨쥬엔동 코스 中에 두번째는 이렇게 끝난다. '양축' 관련 건물 몇채 지나서 마무리는 나비전시실(?) 정도. 그 다음 코스는, 샨췝스(善权寺)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절과 궈샨비(国山碑)를 살짝 구경하고나면, 어쩌면 이 관광지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华东第一滑'이다. 이게 뭔고하니,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이래저래 구경 좀 하고 내려갈려고 하면, 도보로 갈 수 있는 길이나 케이블카가 아닌... 돌로 만든 긴 미끄럼틀이 나온다.-_-; 이게 말이 미끄럼틀이지, 경사도 만만치 않고, 게다가 돌로만든 미끄럼틀인지라... 겉보기에는 무서웠을 정도였다.-_-; 문제는 옷차림과 손인데... 만약 이것을 탈 때 짧은 반바지를 입어 살깢이 많이 데이면... 그리 쉽지 않은 놀이가 될 것이며, 아무래도 길이도 길이인만큼 손잡이를 잡고 사는 손을 보호해야 한다. (이래서 역시 따로 손장갑을 시중보다 비싸게 팔고 있더라고.) 우째우째 타고 내려오긴 했는데, 역시나 또 상업성~ 타고내려가는 찰나를 찍어 사진을 또 팔더라고. 이건 뭐 굳이-_-;;;

산정상에 있는 善权寺.

이 절도 생각치도 않게 오래된 곳이더군.

뭐가... 분명 '善卷洞'이라는 이름을 걸고 만든 관광코스인데, 없는 것이 없었다. 정상에서 또 보게된 것은 샨췐스(善权寺)라는 절. 이 절은 역사서에 따르면 중국의 남북조 시대, 즉 서기 480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2000년 보수공사를 하여 보존해 놓은 것. 그냥 향 하나 피우고 내려가면 끝.-_-; 입구 현수막에 자랑스레 절의 역사를 알려주는 샨췐스 탄생 1603주년.-_-; 오른쪽 사진의 길상종(吉祥钟)은 일반인들도 칠 수 있다. 아니, 일반인들을 위해 나둬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점. 종소리 한번은 무엇을 기원하고, 두번은 무엇을... 이런 식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표지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종 세번치는데 RMB 5元.-_-; 이건 뭐... 난징의 부자묘(夫子庙) 안에서도 몇번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관심끄고 돌아섰지비.

종 한번은 우리말로 하자면 만사형통, 모든 일이 돛을 단 배가 바람을 잘 받아 나아가는 듯이 되길 기원하는 것이고,
종 두번은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각인이 되어 잘 이루어져라, 라는 말 같고,
종 세번은 우리 가까이 있는 세 별, 즉 복성(福星), 녹성(禄星), 수성(寿星)의 신선들로 하여금 복, 재물, 장수를 기원,
종 네번은 사계절 항시 돈 많이~ 벌길 기원...
종 다섯번...이랑 여섯번은 안 보인다. (이것까지 지금 찾기엔... -_-;)

하여간 산정상에서 바라보는 이름모를 산-_-의 경치는 참 좋았다. 날 더웠던 것외엔 괜찮은 코스였3.

조용한 산길을 걷다보면...

또 나타난 왠 영님. 아... 누구세염!?

이 곳은 빠이도우탄(拜斗坛)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남북조 시대에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어느날 밤, 당시 수도였던 난징의 자금산(紫金山)에 왠 선인이 꿈에 나타나 阳羡国山에 물의 신(水神)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이후 양무제는 신하를 파견하여 여기에다가 기우제를 위한 제단을 만들었고... 뭐, 과연 영험했다고.-_-; 그래서 저 영감님은 水神이라는 말인가?-_-; 아님, 양무제? 아님 제단을 쌓은 신하?-_-;;;


아마도... 확실치는 않으나 이 산의 이름은 '阳羡国山'인 것 같다. 이 곳에 만든 비석이기 때문에 줄여서 '国山碑'라 하는 것 같고. 이 비석의 역사는 또 우리가 '삼국지'를 통해 잘 아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서기 276년, (물론 우리가 잘 아는 조조, 유비, 손권등은 다 세상을 떠난 이후다.-_-;) 그러니까 이 강남 지방은 알다싶이 오나라(吴)의 영토였고, 당시 오나라의 황제는 폭군으로 알려진 손호(孙皓)였다. 이 아저씨를 끝으로 삼국시대가 완전히 끝이 나고 사마염(司马炎)이 세운 서진(西晋)이 시작되지요. 하여간 당연히 제대로 된 황제가 아니니 나라는 망했을터인데, 손호가 한 짓이 또 만만치 않아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날 지방관료가 왠 동굴을 발견했는데, 이 동굴이 바로 善卷洞이었다. 이 일을 상서롭다고 여겨 손호에게 알렸고, 손호는 신하를 파견해 원래 묵산(墨山)이라 부르던 이 산을 국산(国山)이라 개명하고, 이 곳에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비석의 내용이야 뭐... 비석을 세운 기원, 상서로운 조짐이니 공덕을 노래하고... 뭐 이 정도. 장수성(江苏省)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이라고 하는데... 이 비석이 세워진 후... 5년 뒤에 동오(东吴)는 멸망하지비. 비석하나가 중요하기보다는... 역시 사람이 문제였지비. 시간관계상 안에까지 들어가서 비석을 직접보진 못했는데... 대강 이런 모양.

그리고 끝으로... 산을 내려올 때 타야했던 华东第一滑.

아무래도 현장에 집중하다보니 사진 찍을 생각을 못했다.-_-;

이번 포스트는... 에고야~ 이 정도까지 합시다.


하여간 이 샨쥬엔동(善卷洞) 코스의 표값(全价)은 120元이라는 것.-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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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3 17:54

    "집에서 책만 보면서 데굴데굴 해봤자 남는 게 없으니, 돌아다녀라... "라는 말이 콕콕 가슴에 와서 박히네요. 흐~
    저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니셨다니! 부러워요~ㅎㅎㅎ

    • 2009/09/03 18:04

      사실 경제적인 여건만 된다면 저라도 해보고 싶습니다요. ㅠㅠ 중국에 있을 당시에도 정말 여러 곳들을 돌아다니고 싶었습니다만, 항상 걸리는 것은 '시간'보다도 '돈'이었지요. 徐霞客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중에라도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찾아 읽어야겠군염. ㅎ (돈얘기가 제일 궁금합니다만.-_-;)

      저는 저 영감님 돌아다닌 여러 곳들 中에서도, 특히 普陀山이 가고싶어지는군염.-_-+

여행일자 : 2007년 7월 19일 앞의 포스트에 이어서.


동굴이다. 뭐, 우리나라의 유명한 제주도의 무슨 동굴은 근처도 안 가봤지만서도, 소시적 기억을 돌이켜보니... 동굴은 아니라도 배를 타고 어두컴컴한 곳, 혹은 칡흑같은 어둠속에서 조심조심 한발자국씩 앞사람을 따라 나갔던 것이 떠올라서인지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입구에선 조그나만 후레쉬도 팔고 있던데... 만다꼬~ 걸어서 가든 배를 타든 일단 가봅시다요. 그래도 이싱(宜兴)의 대표적인 관광지라는디.


앞서 언급한대로, 이 샨쥬엔동굴(善卷洞)샨쥬엔(善卷)이라는 사람이 은거하여 면벽수행을 하던 곳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것까지 읽어볼려고 했다만, 사실 그때도 그렇고... 또 이 영감님이 그렇게 나와는 관련있는 인물인 것 같지 않아 대강만 찾아보았더니 뭐, 별다른거 없더니만. 단지 간단하게 소개를 하자면 중국의 요순(尧舜)시대의 은사(隐士)라고 한다. 《庄子》、《吕氏春秋》에 기록되어 있길, 요(尧) 임금이 남방을 순시(?)하고 북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샨쥬엔을 만나 가르침을 청했다고 한다. 일개 평민에게 예를다 갖추어 제자가 스승을 대하듯 가르침을 청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신하에게, 샨쥬엔은 득도를 한 사람이니 당연히 예를 갖추어 한다, 뭐 어쩌구 저쩌구... 이후 샨쥬엔은 帝者师라고 칭해졌다 하고. 다음 대(代)인 순(舜)임금 역시 즉위 후 그를 찾아 가르침을 청했고, 왕위를 양위하려고 했으나 자신의 삶에 만족한 그는 사양하고 산속으로 들어가버렸다고. 뭐 이 정도.-_-;


하여간 이런 산신령같은 영감님이 있었다치고-_- 얼른 동굴이나 구경하러 가봅시다. 나와랏~ 동굴. 근데 들어갈 때까지도 매표소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공짜일려구. 그러나, 역시... 한참을 들어가자 우리를 반긴 것은 매표소.-_- (일단 들어오고나면 다시 나가기가 상당히 애매해지지.)

이..이.. 검표구가 뭐니, 뭐? 차라리 '검표처'라고 한자발음 그대로 쓰지.

중국의 어지간한 관광지에서 볼 수 있겠지만서도, 역시나 엉성한 한글표기. 입장료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꽤나 쌨다. 동굴만 관람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패키지를 모아져 있기 때문에, 동굴을 지나 다른 곳까지 지나갈려면 할 수 없이 패키지표를 구입해야 했다. (이것도 다 돈 벌어먹는 방법이지비.) 입장료가 기억나지 않아 찾아봤더니... 무려 RMB 120元...!


표검사를 하고 들어가자 조그나만 건물이 보였다. 아, 이제 여기서부터 시작이군.


근데 이 아저씨는 또 누구람.-_-; 추난창(储南强)이라는 인물은 청나라 말기에 태어난 사람으로, 간단하게 설명하자고 하면 이싱 관광사업의 개척자라고 한다. 왠 청말에 관광업?-_-; 신해혁명 후에 난징 임시정부의 정부인사로 장쑤성과 쩌장성에서 일을 했다. 특히 수리(水利)관련 업무에서 탁월한 업적이 있었다고. 50여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이싱으로 돌아와 이 곳 善卷洞과 张公洞을 개발시키고, 관리를 했다고. 뭐 이정도까지.


건물을 빠져나가자 드디어 볼만한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연경관. 그리고 꽤나 고전적인 자그나만 집. 이제부터 동굴탐험(?) 시작.-_-+ 마치 무슨... 속세와는 단절된 절정곡(绝情谷)을 보는 듯한 느낌.-_-;;; 나 이런데 왕~ 좋아하는디... 다만 살으라면 못 살지.-_-;;;


동굴에 들어가자 그저 게게한 냄새가 나는 암흑천지. 조명이 있긴 있었지만 워낙 어두웠기에 역시나 밖에서 왜 후레쉬를 팔고 있는지 알 수 있겠더라고. 딱 눈에 띄는 것. 바로, 동굴의 벽에 새겨진 '百病消除'라는 글자. 말그대로 만가지 병을 없애준다는 뜻인데, 그래서인지 이 벽만은 매끈매끈했다.-_-; 사람들도 꼭 여길 들려서 만지작만지작하고 가더라고. 뭐, 나 역시도... -_-v (사실 미신은 잘 안 믿지만서도, 남들하는거는 잘 따라하니까.-_-;;;)


불상을 찍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_- 제대로 찍을만한 곳도 없고, 설사 찍더라도 조명이 너무 약해서 제대로 건진 사진도 없다. 그냥 이런게 있었다는 것만 기념할 뿐.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며 이동을 하자, 드뎌 '배'를 타게 되었다. 동굴속의 배. 그나마 덜 위험하겠지비. 이 날은 워낙 무더웠기 때문에, 운동화를 신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쪼리 슬리퍼를 신고 갔는데, 워낙에나 바닥이 미끄러워서 꽤나 애를 먹었다.


사진이 정말 제대로 안 나왔다니께로. 이런저런 설정도 잡아주고, 플래쉬까지 터트려봤지만... 왠걸. 똑딱이 디카에 뭘 바라겠가는가마는. 하여간 배를 타고 다시 앞으로 전진.


사실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별다르게 볼거리는 없었다. 단지 벽면에 새겨진 글자들... 뭐 나름 '기원'을 뜻하는 글자들이겠거니, 했는데 해서(楷书)체외엔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글자가 없으니.-_-; 당시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인가, 여유없이 전진, 전진을 거듭하다보니 시간관념이 없어져 버렸다. 얼른 보고, 얼른 찍고 가자, 라는 마음밖에 없었으니. 그러다보니 드뎌 배를 내릴 시간. 시커먼 동굴안에서 헤매다 와서 그런지, 왠지 바깥경치가 더 아름답게 보였다.

드디어 탈출...!

그럼 잠시 여기서 휴식. 날이 무지 더웠기도 더웠고... 이싱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숨 한번 고르고 다시 앞으로 가기로 했다. 일단 계획없이 무작정 처음가는 동네를 온 것도 성공을 했고, 또... 그 곳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동굴도 구경은 했으니... 적어도 2/3는 성공한 셈이 아닌가. 이제 다시 숙소로 돌아가도 별다른 미련은 남을 것 같지 않았다.

유튜브에 동영상 올린거 링크 걸때까지 잠시 사진 감상.





중국에서의 동굴 관광지는 처음이었다. 뤄양(洛阳)에 갔을 때도 소림사(少林寺)에 너무 시간을 할애해 버려서 그 유명하다고 유명한 용문석굴(龙门石窟)을 못 본 것이 한이었는데, 그라나... 동굴 구경했으니 된 셈. (물론 정도의 차이는 엄청나겠지만.) 이싱 근처의 난징(南京)이나 상하이(上海), 혹은 우시(无锡) 같은 도시들은 생활이 너무 빡빡하고 공기도 좋지 않다. 그 곳에서 장기생활을 하는 이들은 주말에 당일치기로 시간을 잡아서 바람쐬러 오기 딱 좋을 것 같더라고. 물론 이 동굴외에 다른 코스도 있지만, 이 동굴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 같더라고. 조용허이... 개구리 소리나 듣고-_- 자그나만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 듣고... 별로 한건 없는데, 스트레스는 양껏 풀리는 것 같더니만.

뭐, 그러다가 발견한 현대문명의 이기지.-_-+

동굴 안에서 플래쉬 터트린 사진이 어떻게 나오나 실험삼아 들고있던 생수를 찍었는데, 이거 결국 나두고 나왔지비.-_- 갈증나서 괘나 고생했다. 그렇다고 우린 절대 관광지에선 뭐 절대 안 산다.-_-v

그나 이 다음코스가 어디드라? 기억이 안 나노.-_-; 하여간 善卷洞 이야기도 여기서 시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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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자 : 2007년 7월 19일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중국으로 두학기짜리 어학연수 코스를 갔던 곳이 상당히 낯설었던 중국 짱수성(江苏省)의 우시(无锡)라는 곳이었다. 이 곳을 정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어학연수 준비기간 中에 알았으니까. 원래는 북방의... 정말정말 촌구석, 그러니까 기숙사비만 따져보더라도 1인 1실 하루에 2달러짜리 방이 있다고 하는 대학(당시 이름 좀 있는 일반 대학들은 2인 1실 4달러 정도로 기억한다. 南京大学이 그랬다.)을 선택했었는데, 어찌나 외진 곳에 있는지... 결국엔 선뜻 결정을 못내리고 있었다. 무조껀 한국인이 적은 곳으로 가고자 맘을 먹었는데, 사실... 어지간한 중국의 각 대학, 그러니까 유학생들을 받는 곳들에는 한국인들이 다 있다.-_-;

그러다가 어떻게하다가 학부때 중문과 조교를 했던 누나와 연락이 메일로 닿았고, 나의 하소연에... 돌아온 대답은 "일로 온나."였다.-_-+ 그 누나는 조교직을 그만두고 상하이(上海)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거기서 만난 한국인과 결혼을 해 중국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그 곳이 바로 이 우시라는 동네였다. 어디지? 몰라, 하여간 기본적인 서류들만 보내면 등록이야 알아서 다 해준다고 했고, 더욱이나 내가 상하이의 푸동공항(浦东机场)에만 도착하면 알아서 택시를 보낼터이니... 잡다한 것 생각하지 말고 한국생활 정리 잘 하고, 어학연수 준비만 잘 하라는 얘기만 들었다. (내가 또 살면서 이렇게 남의 도움을 쉽게 받았던 것도 유일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웃긴 것이... 당시 알바 일 좀 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이 동네를 지도에서 찾아보지도 않은 채 떠나게 되었다.-_-v

중국 우시라는 도시, 상하이에서 기차로는 당시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 정도 걸렸다. 나야, 불러준 택시를 타고 갔으니 지리를 어떻게 알았겠소. 연수를 시작하고 두어달이 지나고 근처의 난징(南京)에 HSK를 치러 간 이후부터는 대강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우시에 도착하자마자 서점에서 우시 지도를 샀다. 우시 지리에만 신경쓰다보니까 이때까지도 우시가 정확하게 어디에 붙어있는지 신경쓰지 않았다.) 우시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대형 호수인 타이후(태호, 太湖)가 있다. 그래서 이 지역맥주 이름 역시 太湖水啤酒이다. 연수 초기에는 이리저리 빨빨거리는 것보다는 근처, 그리고 내가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는 곳만 찾아다닌다고 행동반경이 매우 좁았다. 간간히 수업시간 中에 선생들로부터 도시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 역사 정도를 들었는데, 하루는 그때  얘기를 듣고 혼자 찾아간 우시에서 나름 번화한 시내 근처의 南禅寺라는 곳에 가게되었다. (사실 목적을 세워서 가게된게 아니라, 국제전화 IC카드가 판다는 얘기에 한번 가봤지비. 아, 그때 거기 있는 서점에서 같은 층에 있던 일본인 유학생 코다마(兒玉)상과 토모키(智基)를 만났었군. 흐~ 자슥들 잘 살고 있으려나.)

이게 이싱차후래.(宜兴茶壶). 뭐 여기에 마시면 차맛이 좋다고들 하겠지비.

그때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서 팔고있는 차주전자 세트를 보게되었는데, 그때 이 이싱(宜兴)이라는 지명을 보게 되었다. '宜兴紫砂'라고 하면 보통 중국인들도 모두 알만한 것으로, 거기서 난 모래로 만든 차주전자(茶壶)가 특산품이다. 이 곳에서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었다. 근데 이래저래 물어보니 그저 촌이래.-_-+ 게다가 관광객들이 그 곳으로 가면 그저 진주나 차주전자 세트나 사들고 오는게 다라고 하길래... 그때부터 갈 마음을 접었던 것 같다.

07년 여름이지비. 당시 다시 우시를 찾았을 때... 나름 '직무'라는 것이 있었지만, 나도 불쑥 내 개인행동이 하고싶어졌다. 이왕 이렇게 왔는데, 어찌 남의 뒷바라지만 할 수 있겠소. 게다가 당시 일정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인지라, 내가 있으나, 없으나... 그다지 영향은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고.. 그래서 그때 내가 큰맘먹고 갈려던 곳이 바로 중국의 古镇 중의 하나인 우쩐(乌镇)이라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때 우시에서 가는 시외버스가 주말에만 있는 것을 알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비. 어쩌냐... 다음날이면 일행들을 이끌고 상하이로 이동을 해야하는디. 상하이야 그래도 내가 난징과 우시외에 가장 많이 가본 곳이기 때문에 별다른 기대감도 없었을 뿐더러, 역시나 이 넘의 일행들과 함께 해야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시간을 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상하이로 떠나기 바로 전날, 그리고 그 날 아침. '에라이 모르겠다.~'라며 일행 中에서 아침 일찍 깨어난 아해, 그리고 한명 더 추가로 해서 무작정 근처의 이싱이라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이면 갈수 있다고 들어서 일찍 출발하면 오후쯤에는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싱을 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거길 왜 가?-_-+ 하지만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_-;;;) 그래서 두 아낙을 이끌고 숙소를 나왔다. 그래, 가는기야. 마음이 급했기 때문에 택시라도 잡아타고 가야되지 않나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버스로.-_-; 이싱으로 가는 버스는 우시의 기차역 옆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터미널로 가야했다. (뭐, 이거야 1년 어학연수 시절의 짬밥이지 뭐.)

적힌 바와 같이 왕복 첫차와 막차 시간은 다음과 같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도 처음으로 가는 곳에 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간', '여유'이다. 시간을 아껴 여유를 가지고 돌아다닌다면 그만큼 수확도 많다. 하지만 이 날은 출발때부터 이싱으로 가는 버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정말 정신없었다. 계획하지 않았던 불시의 여행, 아무리 내가 중국물 좀 먹었고, 무대뽀로 빨빨거리긴 한다지만 막상 처자 둘을 이끌고 갈려니까 덤벙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때까지의 사진은 Zero이다.-_-;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그때 우시에서 이싱으로 가는 버스 요금은 25元~30元 정도였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걸린 시간은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 정도. 같이 간 일행이야 버스 탔다고 잠부터 잤지만서도-_- 나는 오래간만에 우시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느랴 정신이 없었다. 썩어빠지고 있다는 에메랄드빛 타이후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흠흠.

세상에 얼마만에 가보는 내가 안 가본 곳의 여행이라더냐.

한창 발전 中인, 아니 이젠 거의 발전이 끝난 우시의 외곽 모습을 보니 그 몇년전 내가 우시에 첫발을 딛었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정말 무슨 공사 전쟁터였다. 이래저래 부수고, 짓고... 그 먼지에 민공(民工)들에... 이제는 정갈된 우시의 모습을 보니 가히... 이러니 중국이 발전할 수 밖에 없지... 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도착. 근데 병원 이름이...

이싱의 시외버스 터미널. 특이하게 번체로 해놨군.

사실 이싱을 오긴 왔지만 아무런 준비없이-_- 그저 이싱에는 차주전자만 유명하다, 라는거 하나만 가지고 왔기 때문에 막상 도착하니 멍~ 해졌다. 어딜 가야 하누... 당시 숙소에는 인터넷이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찾아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음 복무원(服务员)들이나 그 학교 선생들 만났을 때 좀 물어봤을거로... 어차피 특정 행선지를 잡아놓은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 이싱에 왔으면 됐지 뭐. 그리고 갈만한 곳은 물어서 가면 되지 않은가. 이싱도 사람사는 곳이고, 이 곳도 관광객들이 적지 않을터인데, 이래저래 묻다보면 갈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싱 시외버티널의 내부 전경.

처음에는 그냥 이싱의 시내버스를 이용하려고 했다. 터미널의 건너편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려다가 잠시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고, 그냥 터미널 안에서 이래저래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그 터미널에서 바로 이싱의 관광지로 가는 미니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바꾸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을 때는 그냥 남들 가는대로 가면 된다, 라는게 나의 개똥지론. 그 미니버스는... 하여간 쌌다. 5元~10元 정도로 기억. 그래도 관광지로 가는 버스인데... 라며 갔건만, 이게 왠 일. 이거 10년전에 베이징 시내를 활보라던 미니버스(小公)보다 더 구려.-_-+ 에어컨은 당연히 없을 뿐더러, 그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거의 그냥 오고가는 중국인들.-_-; 관광객은 우리가 유일.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뭐, 평일이었고... 외국인들이 이싱을 찾을 때는 어지간하면 상하이나 난징, 우시등의 근처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뭐.

출입문 바로 옆의 아줌마가 버스언니야.-_-;

버스도 구리고... 차 속도는 안 나오고-_- 시내를 통해 가다가 나중에는 무슨 산길로 꾸불꾸불 올라가길래 '어이구야~' 했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소득은 있었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대화들을 통해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중국의 吴语계의 이싱화(宜兴话)를 지대로 들을 수 있었다는 것. (宜兴话나 无锡话가 비슷하다고는 하는데... 뭐 글쎄요.-_-; 그래도 宜兴话는 宜兴话지 뭐.)

사실 내가 우시라는 곳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학교외의 사람들, 그리고 젊은층외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었던 이유 中의 하나가 바로 이 사투리 때문이었다. 어찌나 심한지-_- 특히 재래 시장에 가면 '내가 왜 보통화를 공부하고 있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언젠가는 어느 장사치 아저씨가 나보고,

你的普通话比我好啊~ (니 표준어 내보다 낫네~)

라는 얘기까지 들은 적이 있었다. (사실, 이 말도 발음이-_- 난감하긴 했다. 이 말은 내가 하는 중국어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그 아저씨가 그만큼 중국어에서 표준어라는 보통화의 구사가 별로였다는 말이 된다.) 몇년만에 또 징~한, 왠지 불어처럼 들리는 이 알송달송한 사투리를 듣자, 그저 별다른 이유없이 재미있었다. 알아듣는 말이 나오면 좋은거고, 못 알아들어도 할 수 없다. 어차피 나한테 하는 소리도 아닌디.-_-; (지금 내가 기억하는 이 동네 사투리는 딱 하나다.-_-; 10元의 회화용인 十块(shi kuai, 스콰이)를 이 동네에서는 '썩카이'라고 발음한다. 물론 성조도 틀리다. 아마 '썩'이 4성 정도일 듯. 숫자도 이 모양인데 다른 말들은, 그리고 또 사투리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어휘들은 또 우짜고.-_-;)

도로에 차가 별로 없더라고.

이런 이름으로 길이름 만든 곳도 거의 없을 듯.-_-; 아무래도 차후(茶壶)가 유명한 곳이니.

대강 짐작으로 이 곳이 가장 번화한 곳 같았는디... 한적~ 평일 오후라니께~

간다간다~ 달리는 미니버스라지만 상태가 워낙에 아니좋아서, 엄청 흔들거렸다. 그 와중에 디카를 꺼내든 나. (우린 일단 찍고본다.-_-v) 정말 이 도시는 관광지외엔 아무 것도 볼만한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중국의 도시라 할지라도, 어지간하면 시내나 몇몇 골목길 정도는 다 빨빨거렸는데, 이 동네는 우째...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지게 만들더라니께.-_-; 그냥 '사람 사는 곳'이다 생각하고 마음을 접었다. 시간도 얼마 없었으니께로. (우리는 적어도 오후 3시 반까지는 우시로 돌아가야 했다.)

결국 산으로...!

아, 우리가 갔던 행선지에 대한 얘기가 없었는데,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그 곳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_-; 그냥 관광지라길래 버스에 올랐을 뿐, 뭐가 유명한지 이름이 뭐였는지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을 정도로 시간에 쫒겼었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바로...


바로 이 곳. 善卷洞. 이 곳에 대해 방금 찾아보니... 4000년전에-_- 善卷선생이라는 사람이 은거하며 참선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뭐꼬?-_-+ 일단 이번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여간 우시에서 이싱까지 가는데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역시 어딜가나... 사전지식과 계획은 필수라는 점. 헐~ 이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도보로 근처의 관광지들을 둘러봤다. 대강 기억나기론 동굴, 미끄럼틀, 양산백과 축영대 어쩌구... 하는 곳을 둘러봤던거 같으이. 이건 다음 포스트에.-_-;

아, 이 버스... 어찌나 냄새가 심하든지.-_-+

돌아가는 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구린 미니버스를 타고, 터미널쪽으로 갔는데... 그때 시간의 한계를 넘어선 관계로, 결국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장거리 택시를 타게 되었지비.

우시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이때 타고가면서 이싱 토박이라는 택시기사 아저씨와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 아저씨가 불쑥 다음 손님과의 통화를 하고 있을 때 살포시 녹음을 해둔 것이 바로 요것이지비.



근데 웃긴게~ 이거 듣다보니까 대강 알아먹겠다. 말은 쉽지만, 이때 아저씨 말 받아준다고 정말 진땀뺐다. ㅠ.ㅠ



无锡과 宜兴 한자어의 한글발음은 '무석'과 '의흥'이다. 의흥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우시(혹은 우씨)보다는 '무석'으로 부르고 있다. 일본인들 역시 원래 이 无锡가 중국진출 계획경제 도시였던 이유에서인지, '무샤꾸'라는 일본어 발음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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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3 01:45

    헉 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저걸 알아들으시다니..대단하세요

    • 2009/06/13 08:20

      알아듣는게 아니라, 듣고 눈치까고 대강 무슨 말인지 짐작을 한 겁니다.-_- 물론 간혹 알아듣는 어휘가 있기 때문이지만, 听懂이라기보다는 猜测了解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근데 이 동네, 吴语는 또 단어가 보통화와 다른 것도 많지요. 떱. 지금 생각해보면 방언공부 시작안한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ㅋ

방문일시 : 2007년 7월 11일


고육수(꾸위시우, 顾毓琇, 1902~2002) 원사(院士)는 대게 장쩌민(江泽民) 전 주석의 스승으로 알려져있는데, 중국 현대 현대시기의 걸출한 문리대사(文理大师)이다. 문리대사라는 이름 글자뜻 그대로 교육가, 과학자, 시인, 희극가, 음악가, 불교학자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학자이다. 아, 주롱지(朱镕基)의 스승이었기도 하다. 워낙 경력이 화려하여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들 듯 싶은데, 청화대, 중앙대의 교수 겸 주임, 소장등을 역임했으며, 후에 중앙대학(南京), 정치대학(台湾)의 교장... 또한 음악악단이나 학원의 단장과 원장을 겸했다. 이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교수생활을 하였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종신 명예교수, 또 청화대 북경대의 명예교수가 되었다.


바로 중국의 江苏 우시(无锡)에서 1902년에 출생하여, 청화대를 거쳐 미국에 유학하여 MIT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적을 가진 화인으로 되어있는데, 1950년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거주하다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살았다. 이래저래 경력을 보니, 그의 일생은 문과와 이과를 가리지 않는 정말 박학다식한, 진정한 박사(博士)라 칭할 수 있다하겠다. 몸은 미국에 있고, 옷은 양장을 입고 있었지만, 중국을 오고가며 중국인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덩샤오핑(邓小平)의 시기에도 두번이나 초청을 받아, 개혁개방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하며, 장쩌민 역시 중국 정치의 메카인 중남해(中南海)로 초청하여 대접을 했다고 한다. 2002년 9월 9일, 향년 100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02년에 우시에서 어학연수를 할 당시에는 顾毓琇와 관련된 것을 전혀 몰랐는데, 작년 여름에 이 곳을 찾았을 때, 자주 가던 시내 근처의 도로변에서 기념관이 들어선 것을 보았다. 그때까지는 중국의 江苏 无锡 하면 떠오르던 사람이 전종서(钱钟书)였는데, 이 작가의 故居를 가기도 전에 顾毓琇 선생의 기념관부터 가게 되었다니. 흠흠. (2004년까지 이 기념관은 顾毓琇 선생의 故居로 남겨놓았다가, 2004년에 市에서 기념관으로 개수공사를 했다고 한다.) 이 기념관은 무료다.-_-; 우시 시내를 나갈 일이 있다면, 잠시 들렸다가 한바퀴 둘러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대강 훑어본다면 30분도 안 걸릴 정도로 규모는 작은 편이다.)


기념관 안의 물품들을 보면, 각 대학의 명예교수 증서 및 장쩌민 전주석과의 사진, 대만 장개석(蒋介石)의 후계자였던 장경국(蒋经国)등의 친필 서신들이 진열되어 있다. (각 사진에 일일히 주석을 달고싶으나, 1년 반이나 지나서인지 당췌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_-;)

钱钟书故居 방문을 두번이나 실패했는데, 정말 가까운데 있었구마이. ㅠ.ㅠ



无锡에서 기념관을 갔을 당시에는 귀국하면 자료 좀 찾아보겠다, 라고 생각만 했으나 이제서야 포스트로나마 기억을 남겨놓는다. 재미난 것이 옥돌 수()자가 중국의 지능abc 입력기에는 없었는지, 인터넷상으로 검색을 해보면 顾毓王秀라는 검색어가 상당히 많이 잡혔다. 심지어 百度 백과사전 페이지에도 顾毓琇, 顾毓秀 두페이지가 모두 등록되어 있으며, 내용 역시 다르게 되어있다. 물론 동일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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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자 : 2007년 7월 22일

이 곳이 바로 周庄游览의 매표소이다.

중국 강남에는 대강 여덟 곳의 물의 도시(水乡)이 있다고 한다. 周庄、西塘、乌镇、同里、甪直、木渎、锦溪、南浔. 이 中에 내가 직접 다녀온 곳은 조우장(周庄)이 유일하다.-_- 재작년 8월에 가족들과 함께 찾았던 조우장(周庄), 이제는 워낙 관광지로 잘 알려진 곳인지라 다시 갈 일이 있겠는가 싶었건만, 본의 아니게 일정에 맞춰 움직이다보니 결국 다시 한번 이 곳을 찾았다. 재작년엔 상하이(上海)의 上海体育馆에서 오전에 당일치기로 떠나 오후 5시쯤에 돌아오는 여행버스(游览巴士)를 타고 다녀왔는데 비해, 이번에는 아~주 편하게도 단체에 속해 갔다오다보니, 지난번 갔을 때와는 사못 느낌이 달랐다.

周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万三蹄'이다.

이날 직접 먹었는데, 생각외로... -_-

이전에 포스팅한 바와 같이 이 저우장(周庄)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유명 관광지라, 시간계산을 잘 세워놓고 가야한다. 도착 당시, 그리고 떠날 때는 별 상관없으나, 周庄의 명소인... 沈厅이나 张厅과 같은 주택 안에 입장하며... 좁은 골목길과 또 내부 역시 비좁기 때문에... 인파가 몰렸을 때에 상당히 귀찮을 수도 있고, 사진촬영에도 애를 먹을 수가 있다. (단체 여행시엔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 일행을 잃어버리면 찾아나서기도 쉽지 않다.)

周庄 코스 전경.

사실 이 곳은 관광객 수만 적어 한적하기만 하다면야 최고의 관광지일 수도 있다. 한 여름이라도 소르르 부는 바람에, 그 바람을 탄 물가변의 느타나무를 보며 시원한 맥주 한잔하면 딱이겠구만, 그럴만한 분위기를 많은 관광객들 때문에 못하니... 흠흠. 이래저래 인파들을 따라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바로 周庄 코스를 시작하는데, 좁은 골목길을 따라 가는지라, 각별히 신경 써서 움직여야 한다.

첫코스는 张厅.

옛 모습 그대로 가지고는 있건만.

내부 실내를 통과하면 옛 가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 이제 沈厅으로.

돌아다니다보면 재미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하수도 아닌 것이 집안 내부에 조그나만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당시 이 곳의 하인들이 그 하천을 배를 타고 움직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하천은 부엌으로까지 통해져 있고... 흠흠. 물론, 지금 그 곳에도 조그나만 배가 있던데, 그것 아마도 그 하천 청소용.-_-+

沈厅은 각기 이러한 문(?)을 통과한다.

沈万三과 朱元璋의 이야기를 담은 동판벽화.

내부 모습은 그리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다. 다만, 明代때의 부상(富商)이었던 沈万三의 이야기, 그리고 그와 주원장(朱元璋)애 얽힌 이야기들이 동판(?)으로된 벽에 그림과 설명이 깃들여져 있다. 재작년에 갔을 때, 얼핏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우째 기억이 하나도 안 나누... 암튼, 주원장이 명초, 난징(南京)에 도읍을 정하고, 심만상에게 돈을 내어 궁을 지어라 하고, 대신에 그의 아들 둘에게 관직을 주는데, 결국엔 심만상을 운남(云南)으로 귀향보냈다... 뭐 이런 얘기였던거 같은데... -_-+ 나중에 여유닿으면 제대로 한번 찾아봐야겠다.

沈厅의 沈万三상이 있는 방.

沈万三의 상. 이걸 만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어색한(!) 한국어 표지판. 이 곳의 모든 한국어 표지판은 다 엉터리였다.

배타고 룰루랄라~

대강 张厅과 沈厅 관람을 마치면, 周庄에 들어올 때 바로 한눈에 들어왔던 배를 직접 타게 되는데, 한 척당 8명씩 타게 된다. 그리고, 대강 10元 정도의 小费(팁)을 주면, 苏州 지역 뱃사공의 노랫가락을 직접 들을 수가 있는데, 가급적이면 배를 탈 떄에도 아줌마 뱃사공을 택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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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24 18:27

    허헛..전 작년 여름에 同里를 갔었죠.
    역시 물의 도시더군요ㅎ 사진기고 뭐고 없어서 그냥 눈에만 담아 왔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너무 더워서 느긋히 구경할수가 없었어요ㅠㅠ
    이제 다시는 여름에 苏州를 가지 않겠다는..-_-

    • 2007/09/24 18:30

      더워도 더운만큼 기억에는 많이 남는 것이 중국 여행이지요. 뭐, 편하기만 하면 그게 여행이겠습니까, 관광입지요. 저 역시 여름때마다 이런저런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봤는데, 가끔씩 찾아들어간 '은행'은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더군요.-_-+ 한국도 그렇지만, 날 더울 땐 은행이 최곱니다. ㅋㅋ

여행일자 : 2007년 7월 20일

졸정원(拙政园) 입구와 매표소 앞에 있는대형 안내판.

한국어로도 설명이 되어 있다.

중국 고대의 이름있는 정원은 대부분 강남(江南)에 위치해 있고, 중국 4대 명원(名园)중의 하나이자, 쑤조우(苏州) 원림 중의 대표작품이 바로 이번에 가게된 쭤쩡위엔(拙政园, 졸정원)이다. (중국의 4대 명원은 北京 颐和园, 承德避暑山庄, 苏州 留园과 拙政园이다.) 중국 강남에 유명하고도 규모가 큰 정원이 많은 이유는 딴게 아니라, 일단 강남은 자연환경이 중국내에서 최고였으며, 또한 부자들도 많았고, 마지막으로 황제의 권한이 닿기에는 거리면에서도 안전한 지역이었다. 아무래도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보니 외적의 침입이나 전란등도 다른 지방에 비해 적었기 때문에, 정치가들이 낙향하는 곳 혹은 당시 중국의 부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돈을 써서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양조우(扬州), 난징(南京), 상하이(上海), 쪼우장(周庄)등지의 비슷한 곳을 돌아다녀본터라, 별다른 기대없이, 별다른 흥미없이-_- 단지 많은 관광객이 즐겨찾는 이 拙政园의 문표값을 아낀다는 일념하에 안으로 들어갔었다. (만약 개인 자유여행이었다면, 이런 곳은 찾지도 않는다.-_-v)

매표소

비수기엔 RMB 50元, 성수기엔 70元이나 한다.

拙政园은 苏州 고성의 동북 성문쪽 위치해 있다. 면적은 관리소나 화원관리용 면적 0.67 헥타르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4.1 헥타르에 이른다.(百度 백과사전 참조) 명正德 4년(1509년)에 만들기 시작해, 어사 왕헌신(王献臣)이 첫번째 주인으로, 이후 400년간 명崇祯(1631), 청乾隆, 청光绪(1877) 때마다 주인도 바뀌고 또 부분적으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청나라 咸丰때의 <拙政园图>, 同治때의 <拙政园图> 光绪때의 <八旗奉直会馆图>은 지금도 남아있어 당시의 수목과 자연경관 모습을 볼 수 있다.

拙政园의 내부평면도. '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拙政园이 높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인데, 첫째는 중국 민족문화 유산으로 설계, 건축조형, 서화조각, 조화, 수목예술 방면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중국 강남의 고전 원림중의 걸작인지라 '天下园林之母'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또다른 이유는 이 拙政园이 역사적으로 갖은 풍파를 거친 인물들이 활약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명나라 말의 어사(御史) 钱牧斋와柳如, 형부시랑 王心一, 태평천국의 충왕 王李秀. 강남순부였던 李鸿章과 张之洞등의 인물들이 있었다.

뭐, 내부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또 각 방마다의 쓰임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하지만, 당시 너무나 더웠고, 또 워낙 많은 관광객들에 치이다보니 제대로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굉장히 넓었는데, 역시나 단체여행의 단점인 '시간관계상' 일부만 한바퀴 도는걸로 끝나 더 큰 아쉬움이 남았지만, 뭐 중국 정원들이야... 그려러니.-_-;;; 몇장의 사진으로 대체할까 한다. 실제 중국 고전건축이나,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일일히 하나하나에 의미를 가지고 세세하게 보고, 찍고, 또 공부할진 모르겠으나...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뭘봐도 다 똑같은-_- 그냥 옛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가이드 아저씨의 말 中에 기억나는 것이, 당시 낙향했던 王献臣은 자신의 정원에서라도 황제가 되고싶어, 군데군데마다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형상들을 숨겨놓았다고 했다. 그래놓고, 이름을 졸할 拙, 정치 政이라고 한걸 보면... 참~ -_-;;;

이백(李白)의 詩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兰雪堂.

여기선 拙政园의 전체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서재인데, 이곳에선 인공으로 만든 돌산을 감상할 수 있다.

배를 타고 다녔기보다는 현재의 호수 청소용일 듯.

호수에는 연꽃들로 뒤덮혀 있다.

唐때의 시인 李商隐의 詩에서 착안하여 만든 留听阁.

연꽃잎이나 난간에 떨어지는 빗물소리를 감상했다.

<真率笔记>라는 글에서 착안하여 만든 州六鸳鸯馆이다.

조각물 사이로 두 대청이 합쳐져 있고, 여러 문물들이 있다.

그래서일까, 아래에는 실제 원앙들이 있더라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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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시 : 2007년 7월 20일

호구산(虎丘山)으로 올라가는 입구.

호구산(虎丘山)은 쑤조우(苏州)성 서북쪽에 위치해 있으면 시내로부터 5Km 정도 떨어져 있다. 전해지기를, 춘추시대의 오왕 부차(夫差)는 이 곳에 아버지를 묻었는데, 장례 3일 후 백호가 그 위에서 보았다하며 호구산 혹은 호구(虎丘)라고 부른다. 산의 높이가 36m밖에 되지 않아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평지가 대부분인 苏州인지라, 그다지 높지 않은 이 곳에 올라도 주위의 멋진 苏州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역시 이 虎丘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호구탑(虎丘塔)으로, 오래전부터 명승지로써 이름을 날렸다. 송나라때의 소동포(苏东坡)"到苏州不游虎丘者, 乃憾事也." (소주에 와서 虎丘를 즐기지 않은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虎丘는 옛 유적지가 많으며, 전해오는 이야기들도 풍부하다. 그래서인지 이 곳을 "吴中第一名胜"라고 불려지고 있다. 이 곳에서 유명한 곳은 断梁殿、试剑石、枕头石、真娘墓、千人石、剑池、天下第三泉、孙武亭、望苏台등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곳에 와서 가장 뿌듯했던 점은, 바로 天下第三泉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이로써, 镇江에 제1, 无锡에 제2, 苏州에 제3... 흠흠. 이게 재미난 발견이지 모.-_-;;;

우짜등가, 우리 일행은 입구에서부터 찬찬히 虎丘塔까지 걸어 올라갔는데, 그 중에 사진이 있고, 기억나는 것만 정리해 보기로 한다. 사실 이 날 워낙 무더웠던지라, 가이드 아저씨가 한 말에 그리 집중할 수도 없어 거의 듣지도 못했고, 또 앞서 한산사(寒山寺)와 마찬가지로 유명 관광지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 이 포스트내에서의 虎丘塔에 대한 설명은 중국쪽 사이트에서 발췌를 해, 번역을 하여 덧붙인 것들이다.

감천(憨泉).

돌두꺼비가 되었다는 노스님.-_-+

입구로 들어와 얼마되지 않은 곳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은 감천(憨泉)이라 부른다. 전설에 따르면, 양나라때 憨憨이라는 동자승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부모를 잃고, 의지할 데가 없었다. 게다가 눈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虎丘에 있는 절에 성깔 더러운 노스님과 함께 지냈는데, 그 노스님은 동자승을 하인처럼 부려먹으며 매일같이 괴롭혔다. 당시 虎丘에는 물이 없어 항상 동자승이 산아래로까지 내려가 길러와야 했고, 눈이 먼 동자승에겐 매우 힘든 일이었다. 어느날 동자승은 물놀이를 하는 꿈을 꾸었는데, 어찌나 신나게 놀았던지, 자다가 그만 다리를 삐게 되었다. 그걸 본 노스님은 허벌나게 욕을 해대버렸고… 꿈에 실망한 동자승은 꿈에서나마 두 눈을 뜨고 날이 밝을 때까지 울었다고 한다.

다음날, 동자승은 산아래에 물을 기르러 내려가 물놀이를 했는데, 조심하지 않아 정말로 다리를 다치게 되었다. 산아래에서 虎丘까지 엉금엉금 기어올라가던 동자승은 올라가는 도중, 바닥의 축축함을 느꼈고, 순간적으로 虎丘山의 옛이름이 海涌山이라는 것을 떠올렸고, 전해들은 소리로 산의 우물이 바다로 통한다라는 얘기가 생각이나, 그 곳이 바로 우물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 열심히 파기 시작한다. 그 광경을 본 노스님은 바닥이 보기엔 물기도 없고 그냥 마른 땅이었는지라, 동자승의  말을 믿지 않는다. 노스님은 비웃으며 그 곳에서 물이 나오면, 자기가 두꺼비가 되겠다고 하는데, 시간이 흘러흘러 동자승이 판 구멍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어느날 그 구멍에서 물이 샘솟게 되는데, 그 물줄기를 맞은 동자승은 눈을 뜨게되어, 본인이 직접 물이 샘솟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그 물이 눈을 뜨게해준다는 말에 병을 치료하러 찾아오게 되고… 이후 그 동자승 憨憨은 경전을 열심히 연구해, 일대 고승이 된다. 뭐, 이런 전설인데, 이 우물이 바로 그 감천(憨泉)이라는 우물이고,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속담의 어원이기도 하다. 아, 그 노스님… 그 영감님 말 한번 잘못했다가, 우물 바로 옆에서 두꺼비가 되었다고 하니, 바로 지금 남아있는 우물 옆의 돌덩이란다.-_-+
 

검을 주조하고, 그 위력을 알아보기 위해 베어봤다는 시검석(试剑石).

이 시금석(试剑石)은 검을 좋아했던 오왕 합려가 당시 최고의 검 주조자에게 명을 내려 보검을 만들게 했는데, 그 사람은 처와 함께 열심히 검을 주조하고자 했으나, 불이 약해 결국 처가 불속에 뛰어들어 천자 제일의 보검을 만들었다. 그 후 그 검은 합려에게 받쳐졌고, 검을 보고 크게 기뻐한 합려는... 그 칼을 시험하기 위해 돌을 잘랐으니, 이것이 바로 사진 속의 시금석인 것이다.

真娘의 묘.

묘에 대한 간략한 설명.

真娘, 본명은 호서진(胡瑞珍)으로 당나라때 소주의 가기(歌妓, 노래를 전문으로 하는 기녀)였다. 원래 수도 장안(长安, 현재의 서안西安)의 학자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아리따웠으며, 금을 잘 탔고, 서화에 능통했다. 안록산의 난때 부모와 함께 남방으로 피난을 왔으나, 도중에 가족들과 헤어져 쑤조우(苏州)에 이르게 된다. 후에 山塘街의 '乐云楼''이라는 기원에 속아 들어가는데, 재능과 용모가 뛰어나 금새 고을에서 유명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재능만을 팔뿐, 몸은 팔지 않았다. 당시 성안에 부유한 집안의 자제 王荫祥라는 젊은이가 그녀에게 반하게 되는데, 청혼을 하지만 그녀는 부모의 승낙이 없다는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을 한다. 王荫祥는 포기하지 않고 기원(妓院)의 사람을 매수해 그녀와 동침을 시도하는데, 완강히 반항하던 그녀는 결국 자살을 한다. 그제서야 후회를 한 王荫祥는 그녀를 후하게 장례를 치뤄주고, 다시는 아내를 얻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이후 문인들이 그녀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묘에다가 글을 써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모리화(茉莉花)는 본디 향기가 없었다고 한다. 真娘의 사후 그녀의 영혼이 꽃에 옮겨져 모리화가 향기를 지니게 되었다고. 그래서 모리화를 香魂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모리화차(茉莉花茶, 자스민차)를 香魂茶라고도 한다.

'剑池'에 대한 설명. 역시 오왕 합려, 부차에 대한 얘기가 실려있다.

이 연못 아래에 수많은 보검들이...! -_-;

虎丘塔으로 올라오는 길에 계곡의 벽면에 虎丘剑池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네글자는 당나라때의 서법가 颜真卿의 필체이라는데, 지금의 虎丘 두 글자는 顔씨의 원래 필체가 아니라, 후인들이 보충해서 새겨져 넣은 것이라, "真剑池、假虎丘"라는 말도 있다. 이 剑池의 안래에는 오왕 합려(阖闾)의 묘가 있다고 하며, 검을 좋아하던 부왕 합려를 위해 당시 오왕 부차가 아버지를 묻을 때 어장검(鱼肠剑)을 비롯 기타 보검 3천점이 같이 묻었다고 전해졌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진시황 역시 사람들을 보내 합려의 묘를 파 보검을 찾고자 했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그 웅덩이에 물이 생겨 지금의 검지(剑池)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껏 많은 도굴꾼들이 이 보검을 꺼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고, 또한 현대과학의 발달로 여러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시도했으나, 이제껏 성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 두 구멍은 剑池를 건너가는 다리에 뚫은 것인데, 오왕 부차가 서시와 함께 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일부로 뚫은 것이라고 한다. 그냥  보기엔 위험하니까, 일부로 아랫쪽으로 얼굴을 집어넣고 감상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래도 일국의 왕과  그의여인이  몸을  숙이고 이 구멍에 얼굴을 집어넣는 모습이 상상이 안되긴 하다.-_-;;;

호구탑(虎丘塔)은 운암사탑(云岩寺塔)라고도 한다.

동양의 '피사의 사탑' 호구탑(虎丘塔)

이 탑 보수공사 기록비석.

계곡을 따라 虎丘의 꼭대기에 올라오는 길에 虎丘에서 유명한 虎丘十八景을 볼 수 있는데, 각각의 유적지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 신화들을 다 가지고 있다. 이 중 역시 가장 유명한 것은 호구탑(虎丘塔) 혹은 운암사탑(云岩寺塔)인데, 송나라(961년)때 벽돌로 만들어진 8각탑이다. 총 7층이며 높이는 47.5m이다. 수나라의 문제가 이 곳에 탑을 지었다는데 그것은 목각탑이었다. 송대부터 청말까지 여러 차쳬 훼손이 있어 원래의 높이는 알 수 없다. 건축설계의 원인으로, 탑은 400년전부터 서북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뭐, 동양의 '피사의 사탑'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탈리아 피사탑의 중심에서 기울진 정도는 4.4m이고, 이 虎丘塔는 2.3m이다. 1956년에 탑내부에서 대량의 문물이 발견되었고, 그 中 '越窑莲花碗'는 보기드는 예술 진품이다.

호구산(虎丘山)에서 내려오는 길에 멀리서 나마보이는 호구탑(虎丘塔)


아, 이러나 저러나... 정말 관광지 포스터는 정말 재미없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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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자 : 2007년 7월 20일

사실, 여행 가이드를 끼고 단체로 움직이는 것을 상당히 꺼려한다. 아니, 글고보면 가이드와 함께 중국의 관광지를 돌아다닌 것이 세번밖에 되지 않으니... (한번은 03년 南京 학회때 南京, 扬州 여행, 또 한번은 04년 周庄 여행... 그리고 이번.) 이런저런 핑계보다도, 단체로 함께 움직여야 하고, 또 한정적인 시간동안 가이드의 고정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귀찮음의 이유겠지만... 사실 성격 자체가 어디에 메어있는걸 싫어하기 때문에,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갔었고, 내가 보고싶은 곳을 봤기 때문에... 이제까지 어딜가더라도 내가 보고, 느낀 것들과, 그리고 여행 후... 내가 따로 찾아보고 정리해서 모아놓은 것들이 바로 내 재산이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쑤조우(苏州), 상하이(上海), 쪼우장(周庄)은 그러지 못했다. 일행들과 함께 여행사에 소속된 조선족 가이드를 끼고 돌아다녀야 했는데, 무려 3박 4일... 꼭 무슨 한국에서 중국 관광 패키지 사서 오는 여행과 비슷하게 했던 것 같다. 물론, 혼자 여행 다닐때처럼 거리를 헤매거나, 또 밥 먹는다고 몇시간씩 지체하거나 하는 일들은 없었지만,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찍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한 시간이,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기는 하다. 상당히 무더웠는데, 아마 개인적으로 여행을 갔다면 그렇게까지 더위를 참으면서 돌아다니진 않았으리라. 게다가 중요한 것은... 苏州를 제외하곤, 이미 다녀온 곳이란 말씀. 上海야... 너무 자주 돌아다녀서-_- 周庄은 작년 여름에 엄니를 모시고 다녀온 적이 있다.

소주는 江苏 최대의 공업도시이다. 그러나,

시외곽의 얘기이고, 관광지 근처는 그대로 환경 보존 中.

无锡를 떠나 버스로 1시간 좀 더 가니 苏州가 나왔다. 사실 이 苏州는 나와 상당히 인연이 없는 도시이기도 하다. 无锡에 10개월을 있으면서, 기차로 40분 거리인 이 곳을 그냥 무시때리고 上海로 향했고-_- 南京에 있을 때에도 항상 上海 갈 때의 경유지였지, 한번도 이 도시를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뭐 사실, 杭州를 이미 두어번 갔다오고나니, 苏州 는 별거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고. 흠흠. 암튼, 도착하자마자 단체 식사를 했고, 차려진 밥상에 앉아서 끼니를 떼웠다. 뭐, 나름 분위기가 있는 식당이었는데, 이번에 체험한 사실이지만, 아무리 이벤트가 있고, 뽀대가 나는 식당이라 할지라도, 단체 여행객이 많은 식당은 다 거기서 거기다.-_-;

뭐 별거 아니지만, 우리는 차도에서 버스를 내렸고, 서양 코재이들 차는 인도, 식당 바로 앞에 정차해서 내리더라.-_-;

식사 후, 바로 목적지로 향했으니... 그 곳이 바로, 한산사(寒山寺)라는 절이었다. 상해,소주,항주... 이 코스를 패키지로 묵은 한국 관광상품이 많은건 익히 알고 있엇지만, 방금 네이버에서 '한산사'를 한번 쳐보니... 와, 많다.-_-+ 정말 많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온단 말이냐. 버스 안에서 조선족 가이드 아저씨의 이런저런 이바구들을 듣고, 그래도 처음 온 곳이니 제대로 좀 들어야겠구나... 싶었는데, 일행 수도 만만치 않았고, 또한... 날이 어찌나 덥든지, 가이드 아저씨도 진이 빠질려고 하고... 근데, 개인적으로-_-+ 조선족 말투 듣는걸 꺼려해서, 대강만 듣다가, 그냥 寒山寺 구경이나 했다.

이곳이 바로 寒山寺.

寒山寺 입구 벽에 그려진 풍경도.

입구를 들어서고.

한산사(寒山寺)는 502년 梁나라때 지어졌다. 그리고 200년 후 당나라때의 승려인 寒山僧이 절에 머물러 예전의 이름을 한산사(寒山寺로 고쳤다. 여러 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화재도 있어 훼손이 되었고, 청나라 말기에 다시 고친 것이 지금 현재의 모습이다. 이 곳에 유명한 시(詩)가 있는데 바로 张继의 <枫桥夜泊>로 이 절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뭐 역시나 이 절을 돌아다니다보면 이런저런 비석, 혹은 벽에 이 시가 새겨져 있는 것을 지겹도록(?) 볼 수 있다. 한산사에서 가야할 코스는 대웅보전(大雄宝殿), 장경루(藏经楼), 종루(钟楼), 비문(碑文) <枫桥夜泊>, 풍강제일루(枫江第一楼)가 있다.

이것이 청말 이토 히로부미가 기증했다는 동종(铜钟).

寒山과 拾得가 있는 곳.

이 둘은 연꽃(和)과 꽃병(平)을 들고 있는데, 평화를 의미한다.

대웅보전의 내부 벽에는 36수의 시가 적힌 비가 있으며, 양측에는 16 나한상이 있다. 실내에 있는 두 석각으로 된 화상(스님)은 바로 寒山(혹은 寒山子라고도 한다)과 拾得이다. 이 둘은 모두 당나라 정관(贞观), 그러니까 당태종 이세민때의 사람으로, 막역지우였다. 대전 앞에 있는 정원에는 여섯그루의 五针松이 있는데, 이는 일본 爱媛县의 각계 우호방문단이 1976년에 심은 것으로, 爱媛县에서 이미 5년동안 자란 것을 이 곳에 심은 것이다. 대웅주전의 우측에는 또한 동종(铜钟)이 하나 걸려 있는데, 이 것 역시 일본인이 전해준 것으로, 바로 이토 히로부미가 선물한 것이라 한다. 절내에 종이 몇 개 있긴 있는데, 우째 이 종만큼은 손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_-;

대웅보전의 16나한상.

종루는 2층으로 되어 있으면 8각이다. 건물 아래의 석비는 한산사 보수때 새로 세워진 것이며, 정면의 비문들은 민국시기에 강소도독이었던 程德全이 고른 것으로, 비석의 뒷면에는 한산사 보수때의 헌금한 사람들의 이름과 금액이 있다. 张继의 시속의 종은 원래 이 종루에 있었다고 전해졌었으나, 현재의 종은 모두 당대의 것이 아니라, 청나라 광서제 32년에 새로 주조된 것으로,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역시 중공 성립 후, 원래 모양으로 복원했다.

이 것이 张继의 <枫桥夜泊>가 새겨진 석비.

당나라때의 시인 张继가 슨 <枫桥夜泊>라는 시의 석각에는 “月落乌啼霜满天,江枫渔火对愁眠。姑苏城外寒山寺,夜半钟声到客船。”라고 새겨져 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시인 张继는 당시의 수도였던 장안(지금의 서안)에 과거를 치러 갔고, 떨어지기를 반복 寒山寺에 들렸는데, 야밤에 枫桥 부근의 배에서 잠을 못 이루던 차, 寒山寺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이 시를 지었다. 이 시는 많은 일본인들이 알고 있다는데, 이는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인들이 쑤조우여행을 하면 이 곳은 당연히 들린다는 것.


<枫江第一楼>

이 누각에 오르면 바로 앞 기와에 무언가가 보이는데,

기와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빈다.

풍강제일루는의 전신인 枫江楼는 300여년전에 이미 사라졌다. 지금의 건축물은 쑤조우시 인민정부가 유적지 보호를 위해 1954년 한산사를 보수공사할 때 성내의 저명한 花篮楼를 이 곳에 옮겨 지은 것이다.

높은 누각에서 보이는 寒山寺 내부 모습.

이 곳은 법당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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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30 11:08

    맞아요. 소주는 지리적으로 그야말로 뻘쭘합니다.
    지나가다? 아니면 거기에서 묵으며? 쉽게 선택되질 않죠.


无锡 교외에서 나가는 길 중간에 常州 지역을 거쳐가게 된다.

중국의 江苏省에 이싱(宜兴)이라는 곳이 있다. 우시(无锡)는 요최근부터 상하이(上海), 쑤조우(苏州)등의 관광 패키지 코스에 포함될 정도로,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으나, 이 곳 宜兴은 그렇게 관광도시로써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다. (宜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紫砂茶壶이다.) 일단, 관광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고, 일단 이 곳 宜兴 사람들은 창조우(常州) 건너편에 있는 无锡와는 형제 도시라고 한다. 물론 버스로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거리라 이해는 된다만, 그래도 중간에 常州라는 도시도 있는디. 흠흠. (常州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룡 화석이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뭐, 그려러니... 했는데, 宜兴 출신인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투를 들어보니 짐작을 할 수 있었다.



无锡의 사투리인 无锡话는 바로 옆 동네 苏州 사람들도 못 알아들을만큼 그 차이가 크다. 물론 나 역시도 거의 못 알아듣는다. 근데, 宜興 사투리가 우째 無錫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거다. 아, 이래서 형제의 도시라 하나... 흐흐. 나중에 宜兴 출신이라는 吳여사 귀국하시면 제대로 한번 물어봐야겠군.


행여, 중국어를 접한 이라면... 자신의 중국어 사투리 감을 테스트 해봐도 좋을 듯. ㅋ~


<추가> 07.08.28 12:51

아까 몇시간 전에 어제 上海에서 귀국한 宜兴 출신의 언니야에게 아저씨의 사투리를 들려줬더니 굉장히 감개무량해 했다. 정말 오래간만에 듣는 老乡话라믄서. 하기사, 나도 중국에 있을 때, 부산 사투리 듣고 싶어서 영화 '친구'를 수십번도 더 봤으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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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27 15:33

    go2map의 흔적이...
    저도 무척 애용하는 사이트랍니다.

    • 2007/08/27 16:17

      Google맵일겁니다. iask.com에서 찾았으니까요. 근데, 중국내 지도 서비스가 생각외로 많더군요. 아까 宜兴 지도 찾는데, 심지어 3D로까지 보여주는 지도 사이트도 찾았습니다. 건물까지 세세하게 보여주고요.-_-+

  2. 2007/08/27 18:19

    source자체가 google맵일지는 몰라도 중국지도는 www.go2map.com 을 애용하는 편이죠. go2map은 map.sogou.com 로 포워딩되구요. wurifen님의 본문 캡쳐이미지가 언뜻보기에 그사이트의 인터페이스와 유사하여 제가 착각한 것 같네요.

  3. 2009/01/30 02:02

    무슨 베트남말 같애 광동어가 본래 중국 말에 가깝다더군요. 본래 중국인이 동남아 인종이니 일리가있겠죠

    • 2009/01/30 15:13

      宜兴이라는 중국 남방 어느 도시의 사투리인데, 또다른 특이한 사투리 맛이 나더군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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