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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어휘에 Madarin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 나 영어 약하다. 사전 찾아볼꾸마.-_-;


보시다싶이 이렇다. 왜 만다린이 관리이고, 북경 관화인지... 설명이 없다. 냅두자, 결국 만다린은 대게 '중국어'로 통용되지 않은가. 몇년 전의 일인데... 부산 진시장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걷고 걸어서... 또 걸었던 적이 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도 아니고(!), 열심히 걸었다지비. 열심히 걷다보니 부산진역이 나왔고, 열심히 걷다보니 부산역 도착 전에 이런저런 화교들의 식당, 즉 華商이라는 글자가 찍혀있는 간판의 식당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발견한 이 곳... 딱 걸렸으~ 였지비.


와... 중국집 이름이 만다린이다. 아, 그렇다. 그런데... 한자(漢字)가 좀 이상해.-_-; 분명 우리 한자식 발음으로는 만다린이 맞는데, 내가 알고있는 한자는 아니란 말씀. 내가 알고 있기로는 Mandarin은 중국어의 满大人으로부터 나왔다. 근데 이 满大人을 우리식 한자로 읽으면 만대인이 되어버리지. 아마 그래도 Mandarin을 우리식 발음에 맞추기 위해 한자를 살포시 고친 것 같다. 그나저나 저렇게 하면 무슨 뜻이 된디야?-_-; 중국 설화에서는 기린(麒麟)이라는 신비로운 동물이 길하다고 생각해서 집어넣었다는 망구 내 생각.-_-; (동물원에 있는 그 기린이 아니다...) 뭐,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비. 당연히 多.

Mandarin이라는 어휘는 따지고보면 500년도 되지 않은 영단어이다. 앞서 언급했다싶이 满大人이 그 어원이고. 满은 满清, 즉 만주족(满洲族)이 세운 청나라를 의미한다. 그 곳에 대인을 붙였으니 청나라 관리가 되는 것이고. 이들은 지금의 중국어 보통화와는 다른, 당시 관리들이 썼다하는 일명 관화(官话)를 썼다. 한 나라 수도의 문무대신들이 쓴 말이니... 외국 코쟁이들에게는 그게 곧 중국어로 들렸을테다. 고로, Mandarin은 중국어의 의미가 된 것이다. 설명이 좀 복잡한가?-_-;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던데... 당췌 무슨 말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_-;

아, 또 하나... Cantonese라는 단어가 있지비. 쉽게 광동어라고 하는데... 이는 광동방언과는 또 다른 언어이다. 질리도록 듣는 얘기지만, 중국땅이 워낙 넓다보니 사투리 역시 만만치 않다. 광동방언에는 객가어(客家语), 조주어(潮州语), 福佬话, 雷州话와 같은 민어(闽语) 그리고 그 동네의 각종 소수민족 언어를 포함해서 말한다. 광동어는 광동성의 封开县을 중심으로 사용하는 말이라는데, 이게 또 좀 복잡한 것이... 중국의 하나라(夏朝) 시대때부터 북방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쓴 말이 변형되어 정착된 언어이다. 그러니까 광동방언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말이겠지비. 나도 중국 사투리 관련 공부를 좀 할려다가 복잡에, 또 복잡한 역사적 사건, 지형적 특성등에 머리를 아파하다, 그냥 책 한권 사두고 관심을 끊어버렸다.-_-; (중국의 언어학 中에서 특히 방언 연구자들에게 심심한 존경의 표시를 해본다.) 하여간 광동어는 홍콩이라는 지역이 여타 지역보다 현격한 차이로 발전을 하면서 빛을 발하게(?) 된 언어이며... 97년까지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니 따로 부르는 어휘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대강 이렇게 생각하고 살련다. 좀 더 관심을 가지실 분들은 여기를 참고해서 죽~ 읽어보시공. 근데, 광동어... 粤语라는 넘이 2008년에서야 UN으로부터 정식 언어로 인정을 받았다하네. 이건 좀 의외.

뭐... 그렇다고. 이 또한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들외엔, 그저 술안주거리 밖에 안되는 이야기겠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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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방과 북방 (南方與北方)

    2010/01/20 00:17 | Tracked from 湘來's 空間

    1, 남방과 북방 (南方與北方) 천지현황, 오곡과 잡곡,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방과 북방. 남방과 북방은 다르다, 그렇게나 다르다. 남방과 북방은 먹는 것부터가 다르다. 남방 사람들은 쌀을 먹고, 북방 사람들은 밀을 먹는다. 벼의 알갱이는 껍질만 벗겨내면 바로 먹을 수 있어 미(米)라고 부르고, 밀은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야 먹을 수 있기에 면(麵)이라고 부른다. 미(米)란 껍질을 벗겨낸 알갱이를 뜻하므로, 쌀은 도미(稻米), 율무는 의미(薏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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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발음과 북쪽 악센트 (南腔與北調)

    2010/01/20 00:19 | Tracked from 湘來's 空間

    지난 시간 먹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는 단신(短身)의 성룡이 어째서 현란한 팔동작을 위주로 한 권법을 주무기로 삼고 있는지까지 시원하게 풀이해 주었던 역중천 선생께서 이번에는 방언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2. 남쪽 발음과 북쪽 악센트 (南腔與北調) 방언은 일단 남북을 기준으로 크게 나눠 볼 수 있다. 남방과 북방의 방언은 그렇게나 다르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남방과 북방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이 있다. 남원북철(南轅北轍)이니, 남정북전(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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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0 00:18

    첨부한 사진이 참 재미있습니다. 오랜만에 뭐 트랙백하나 걸고 갑니다.ㅋㅋ

사실 따지고보면 나는 참 노래방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고딩은 노래방 출입이 되지 않던 시절에, 韓군을 끌어다가 동네 노래방에서 첫 곡으로 부른 푸른하늘의 '꿈에서 본 거리'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어느 일정 나이때까지는 참으로 뺀질나게 다녔던 곳이 바로 노래방이었다. 술 한잔 마시고 습관처럼? 아님 분위기에 이끌려 따라 갔던 노래방이 아니라... 대낮에도 갈 수 있었던, 아니 심지어 신곡나오는 날이면 들려야 했던 곳이 바로 내 기억속의 노래방이었다. 뭐, 그렇다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닌데... 단지, 내가 아무리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뭐라할 수 없는 곳이 바로 노래방 아니던가.

군입대 바로 전에는 아예 야심한 밤에 노래방의 방 하나를 잡아놓고, 맥주 한박스 까면서 다음날 오후 2시까지 노래를 불렀을 정도였으니... 아는 노래도 많았고, 또 그만큼 좋아하는 장소였다. 분명히 그랬는데... 내가 지금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노래를 안 부른 것이 거의 4년이 다되어 간다. 그렇다고 그 사이동안 노래방을 아니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노래를 主로 하기보다는, 노래주점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지비. 아, 글고보니 작년에 殷군이 부산에 잠시 들렸을 때 그때 노래를 부르긴 부른 것 같다... 한곡? 두곡? ... 거의 殷군 혼자 다 불렀지 뭐.-_-;;; 하여간 지금은 굉장히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아무리 친한 넘들을 만나도 쉽게 노래방에 가자는 얘길 하지 못한다. 그만한 분위기도 조성이 안되고... 또 왠지 남정네끼리 노래방 가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동네가 많아서리.-_-;

중국에 있을 때에도 노래방을 당연히 갔었지비. 특히 한국 사람들과는 조선족이 운영하거나, 아니면 한국인이 운영하거나... 아니면 한국 노래방 업체인 금영이 있는 곳이라면 부담없이 찾을 수 있었지.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었고... 또 정말 편하게 맥주는 실컷 마실 수 있었으니까. 하여간 그랬다. 분명 그랬는데, 우째 귀국을 하고부터는 노래방이나 노래주점에 갈 일이 있어도 노래는 아니 부르게 되는 것일까.-_-; 아, 그렇다. 나이 좀 먹었다고... 최신곡 챙기기도 귀찮고-_- 또 젊은 얘들 나와서 빠른 노래를 부르거나 하는거보면 도저히 그 세대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나마 최신곡 목록 中에 박효신, 이승기, 이승철... 혹은 부활 정도라면 따라가는 척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노래방을 갈 기회가 거의 없는게 지금의 현실.

중국에서 갔던 한국계의 노래방외에... 오리지날 중국식 일명 KTV도 간간히 몇번 갔었다. 내가 굳이 찾은 것은 아니었고, 특히 한국어 가르치는 알바를 마친 후 계속 연락하면서 종종 식사를 했던 학생들과 자리를 같이 해서 몇번 따라가봤는데... 그 中에서 끝내주는 시설의 노래방이 있더니만. 중국에선 아예 체인점 형식으로 된 KTV도 즐비하나, 이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단 대강 모습부터.


자, 일단 무대는 대강 이런 분위기. 저기 앉아서 부르게 되어 있더라고. 물론 몇년전(2006년)인지라, 지금은 훨씬 좋아졌을터이다. 모니터에 보이다싶이 한국노래도 있더라고. 룸 자체가 워낙 넓어서 적어도 15~16명 정도는 거뜬히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 우리 맴버는 고작 7명.-_-;


이게 관객석(?)에 비치된 노래선곡 기계. 아, 나도 분명 기계치는 아닐터이지만, 아, 적응안되더라. 가수 찾을 때도 획수 따져가며, 병음 순서 따져가며... 여기까지와서 중국어 사전 찾을 연습할 일 있냐.-_-; 근데 한번 배우고 나서 요령만 익히면 정말 쉽지비. 이후에 일본 가라OK에서도 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지.


자, 예약노래 목록이다. 누구 18번까지 딱 보인다.-_-; 당시 좀 유행했던 노래가 바로 성룡, 김희선 주연의 '신화(神话)'의 주제가였지비. (햐, 오래됐네.-_-;) 내 노래... 두곡도 살포시 있구만. I miss you랑 单身情歌.-_-; 근데, 한국노래가 별로 없다. 오죽했음 내가 대학교때 종종 불렀던 노래를 선곡했겠는가. 지현(林志炫)형님의 单身情歌는 솔로일 당시에 워낙 많이 불러서-_- 우짜다보니 18번이 되어버린 노래다. 미안하다... 커플일 때도 부를게 없어서 부를 수 밖에 없었다.-_-+ 캬... 명곡이지, 单身情歌. -_-+ 솔로들 가심을 팍팍 찌르는... ㅠㅠ 들어보실려우?-_-; (너무 중화틱해서 촌시러울스도. ㅋ)


하여간 이 날 참석인원을 보니, 딱 그 맴버들이군. 赵군, 王양, 赵양, 汤양, 沈군... 그리고 한분. 근데 우째 무대가 넓어서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사못 진지해. 이 날 재미없었나?-_-; 당연, 우리가 먹었던건 고작 과일... 끝.-_-; 아, 살포시 보이는...扎啤.-_-v



이 날 찍은 맴버들의 표정을 다시 살펴보니 정말 엄숙하다. 디카를 들이대서 그런가, 아님 다들 나름대로 노래방 연구를 하고 있었나. 그때 참 노래 잘 부른다고 생각했었던, 그리고 동방신기의 골수팬이었던 조진진이... (얘가 아마 이때 갓 우리나이로 갓 스물이었을 듯.) 南京 LG에서 열심히 근로하는 王언니... (흠. 나보다 많이 어린뒈-_-) 고등학교때부터 길~게 연애해서 지금은 당연히 중국 아줌마로 거듭났을 汤언니... 그리고 의리도 있고, 울컥도 있고, 덴장 키도 나보다 훨씬 컸던-_- 그러나 주량은 나보다 약했던 赵군... 다들 잘 있겠지비. 기다리봐라, 이 형아, 어빠야...가, 조만간 너네들 떼거리로 모아서 한때까리 할 웅대한 꿈을 갖고 있다.우히히. 한... 15명만 딱 모여도 좋겠구먼, 이래저래 뿔뿔히 흩어져 있는걸 내가 뻔히 아니, 10명도 감지덕지겠군. (그래도 미쿡으로 유학간 얘들이 가장 충성심이 높았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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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2 03:46

    북경 우다코에는 한국 노래방도 많이 있어서 종종 가곤했는데..
    시설 죽이더군요..-_-;;

    • 2010/01/22 11:41

      五道口야~ 한국인들의 천국 아니겠슴까.

      저는 환전하러 종종 갔던게 기억나네요. ㅎ

  2. 2010/01/27 15:03

    오랜만입니다 ㅎㅎ북경에 있는 이런 KTV들은 대부분 실내에 간단한 뷔페를 가지고 있더군요 ㅎ 물론 가격도 한국보다 비싸더라구요. 시설과 서비스에 비하면 적절한 것 같기도 하지만서두 자주는 못가게 되더군요.

    계시는 곳이 북경이신지요?

    • 2010/01/27 17:13

      전 부산(釜山)입니다.-_-v

      예전에 다녀왔던 곳 사진이 보이길래 포스팅한거에염. 그래도 저긴 나름 건전한(?) 곳이니... ㅎ 과일에 맥주 정도는 시켜먹었지요.

      언젠가 좀 음침한(?) 곳을 가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깡패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러니까 형님 하나가 아가씨 한명차고 놀고 있고, 바로 룸밖에서 보초 둘이 서 있는-_- 모습을 보고 질겁을 했던 적이 있었지요. ㅋㅋ

본격적인 운전을 하고부터는... 우리나라가 참 땅이 좁디 좁다라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 어딜가더라도 100km가 넘지 않으며 멀리간다 하더라도 400~450km 정도이니 이제서야 한국땅의 실제 크기의 감이 잡혔다는 말이지비. 물론 부산<->서울 거리 운전만해도 만만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운전을 좋아한다거나, 잘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동차 여행'이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날까... 라는 생각을 하니, 우리나라의 토지면적이 좁다, 라는 것을 알겠더라고. 왜... 영화에서 본 미쿡땅 자동차 여행은 무슨 사막에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에... 지평선까지 볼 수 있지 않은가.

내가 그렇다고 미쿡까지 간다는 것도 아니고... 거기까지 가는 뱅기값이 더 아깝지비. 또 멀리갈 것 있겠수... 중국이라는 바로 옆 동네, 땅넓기로 소문(?)난 이 땅에서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직 한번도 구체적인 계획은 잡질 못했다. 그랬으면 이런 포스트도 쓰지 않았을 듯. 예전에는 어딜 가든지간에 기차, 고속버스, 국내선 비행기로 특정장소만 옮겨다녔지만... 이 역시도 어떤 의미에서 보게된다면 여행의 의미가 살포시 떨어지지 않겠는가.


일단 내가 대강 생각한 코스가 베이징에서 쿤밍이다. 대강(!)이다. 사실 시작은 어딘지 나중에라도 확실친 않으나 상하이(上海)보다는 북쪽이 더 낫을 듯 싶었다. 이유인즉, 베이징에서 시작해서 내려오는 길이 곧... 중국의 중원땅이라는 곳이다. 생각같아서는 교통의 요지인 정주(郑州)나, 제남(济南)도 들리고는 싶으나, 길이 길인지라, 일단 석가장(石家庄)과 태원(太原)만이라도 마음에 든다. (사실 베이징->석가장->태원->서안 코스는 기차로 다녀왔었다.) 낙양(洛阳)도 들릴 수 있으면 좋고... 하여간 그렇다. 대강 자동차길 코스가 2700Km. 물론 하루이틀만에는 절대 못가는 거리지비. 게다가 기름값.-_-; 발로 하는 여행이 가장 의미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먼 거리는 차마 도전해보고 싶지가 않다. (종종 중국 전국을 발품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인도 있었고.) 발대신 바퀴로 돌아다니며 좀 더 가깝게 볼 수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고.

그냥 생각만 한 것이다. 차 렌트를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또 구체적인 정차 도시를 정한 것도 아니고. 말이 쉽지 그냥 한국처럼 떠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지 않은가.-_-; 생각만으로 끝날지, 실행할 수 있을지... 그건 앞으로의 내 상황에 따라 결과가 나오겠지비. 그래도 생각, 상상만 하더라도 재밌지 않겠는가? 중원을 누비며-_- 이것저것 또 공부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쿤밍에 도착했다고 끝이 아니라, 광서성을 거쳐 홍콩(香港)을 들리고 해변길을 따라 하문(厦门)까지도 들릴 수 있다. 정말 생각만큼은 재미난 일이군. ㅠㅠ 몇일이 걸릴지도 확실치 않고... 금전적으론 얼마나 필요할진 몰라도, 이 소망만큼은 한동안 가지고 지내야겠다. 우헤~


아, 중국 면허증... 이거 새로 시험쳐서 따야한다는데, 뭐. 이 정도 쯤이야.

금연 24시간이 넘어가니 머리가 어질어질.-_-; 3일만 버티면 반은 성공임세. 후다닥 마트나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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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년 무렵부터 난징(南京) 구로우취(鼓楼区)에 있는 구로우신춘(鼓楼新村)이라는 곳에서 1년 반 정도 서식했었다. 월세 1,100元짜리에 보증금(押金)은 없었고, 방 하나에 부엌과 욕실이 딸린 조그나만 아파트 1층 집이었다. 주변 아파트 때문에 햇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다는 단점을 제외하곤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무엇보다도 그때까지 살았던 곳들 中에서 가장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는지라, 이래저래 조용히(?) 살 수 있었지비. 그래도 바로 옆에 있는 닝하이중학(宁海中学)의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조금 떠들썩했었는데 뭐 이 정도야, 전까지 살았던 곳에 비하면 양반이었지비.

뭐, 구식 아파트가 다 이렇지. 이넘들 때문에 나의 일조권이.-_-;;;

점심시간 후 학교로 들어가는 학생들.

근데 쟤는 무슨 일진이냐?-_-;

점심을 집에 가서 해결하지 않고 근처 식당에서도 많이들 해결한다.

학교 근처 문방구. 근데 왜 여사장이 흰가운을 입었을까.-_-;

간혹 동네에 인부 아저씨들 뜨면... 죽음.-_-;

이래저래 생활비나 밥값을 아껴보기 위해 학교 기숙사 대신 외주를 선택했건만, 생각보다 살림을 한다는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자취생활 1,2년을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 당시엔 일단 주변에 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규모가 비교적 큰 마트가 없었고, 또 밤이나 낮이나 방안의 형광등에 의지해야 하는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가면 갈수록 생활 패턴이 게을러질 수 밖에 없더라고. 다만 책은 좀 더 볼 수 있었지만. (왜 어두운 곳에서만 집중력이 늘어나는지 원.-_-;) 당시 월말이면 생활비가 바닥나는 상황까지 간 적도 있었고, 그러다보니 아예 장을 보러 갈 엄두도 못내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나마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닝하이 중학 근처에 있는 자그나만 식당들이었다. 刀削面이나 볶음밥을 줄기차게 먹기 시작했지비. 언젠가 학생들이 등교시에 사서 먹길래 나도 따라먹은 乌糯饭에 관한 포스팅을 한 바도 있다. (그 당시엔 아줌마의 발음만 듣고 乌罗饭으로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검은색에 찹쌀이 들어간 밥, 乌糯饭으로 추정을 해본다.)

학교앞 중국식 패스트푸드점.

가격은 적당 편. 제일 비싼 햄버거가 5元.

아, 추억의 란저우라면(兰州拉面)...!~

나는 당시 炒刀削面(볶은 칼국수? 정도)을 자주 먹었다.

이 곳에선 면이나 군만두를 주로 먹었다.

내부환경은 좀 처참했지만.-_-+

이 후, 조금씩 형편이 낫아지면서 살포시 집근처의 다른 식당들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는데, 딱 마침 메뉴나, 주인장 인심이 맘에 든 곳이 있었다. 대강 기억하기로는 이름이 '小渔村餐厅'[각주:1]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싶이 어류 요리가 많았는데, 그다지 시켜먹지는 않았고)이었던 것 같고... 사장 부부, 그리고 아직 소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딸래미가 있었다. 이 집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것이 28元인가 하는 탕에 새우가 듬뿍 들어간 요리였고, 이외에도 옥수수에 밀가루 혹은 튀김가루에 뭍혀, 파전 크기만하게 튀긴 것을 자주 먹었다. 뭐, 끼니를 위해서라기보단 거의 술안주였지만서도.-_-; 당시 내가 딱 기억하고 있는 특색있는 넘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윈난 볶음밥(云南炒饭)이다. 대게 중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볶음밥이 저렴한 계란볶음밥(蛋炒饭)이나 양주 볶음밥(扬州炒饭)인데... 왠 운남? 싶었는데, 우째 한번 시켜보게 되었다. 햐... 싶더니만. 맛이 없다기보다는 입맛에 맞지 않았다. 사천식 요리를 만드는데 많이 들어가는 향신료 때문인지, 영~ 아니더라고.

보기엔 저래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새우도 실컷 먹었고.

가끔 '사자두'라며 무협지에 나오던데 이 집의 狮子头 역시 괜찮았지비.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리... 가끔 집에서 손수 끼니를 해결할 때에 자주 해먹는 것이 일식 돈부리나 볶음밥이다. 뭐, 사실 일식 돈부리라고 해봤자 오야꼬돈(아주 가끔 오야꼬돈(親子丼), 거의 꼬돈(子丼) 수준.-_-;)이 전부이고-_- 볶음밥이라고 해봤자 '계란볶음밥 + 알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들어서는 라면 끓여먹는 것보다 이 두가지를 해먹는게 더 편하더라고. 언젠가 마파두부(麻婆豆腐)가 땡기는 바람에 이금기(李锦记)에서 나온 마파두부 소스를 사와서 한번 해먹은 적이 있는데, 딱 한번 해먹고는 소스를 그냥 냉장고에 방치했었다. 그러다 볶음밥을 해먹는데 '한번 넣어볼까?' 했지비.-_-; 딱... 맛이 몇년 전 딱 한번 맛만 봤었던 윈난 볶음밥(云南炒饭) 맛이더군.-_-+ 나름 특이해서인지 바로 생각이 났던 것이다.

조명이 흰색 스탠드라-_- 색깔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원래는 많이 붉다.

중국에서 윈난 볶음밥을 먹었을 때, 이거 무슨 가짜다... 윈난(云南) 가도 없을꺼다, 라며 이런저런 무분별성 추측을 해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구마이. 이름이야 무슨 상관이랴, 이래저래 특색있게 만들어서 이름 하나 갖다붙이면 그게 곧 요리가 되는 것을. 청나라 건륭제 덕에(?) '天下第一菜'라고 붙여진 요리 역시 우리가 동네 중국집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해물누룽지탕과 비슷하다.-_-; (정확하게는 虾仁锅巴, 우리 동네 '서부의 사나이'라는 중국집에서는 18,000원 한다.)

18,000원짜리 누룽지탕. 맛이야 한국틱하지만, 그래도 부담없이 소주 한잔 즐길만하다.

하여간 방치해둔 소스 하나 넣었을 뿐인데 본의 아니게 나도 윈난 볶음밥(云南炒饭)을 만들어 냈으니... 뭐, 殷군이 특히 요넘을 좋아했는데 있었으면 맛이라도 보여줬겠건만. 뭐, 지가 알아서 난징에서 사먹겠지.-_-+



  1. 이전에 동네 사진을 종종 찍어뒀는데, 이 가게 정면사진도 그렇고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_-; 이런이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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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년 7월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웹메일계정'이란걸 만들어봤는데, 당시 중국에서 단기연수를 하던 시기라, 그냥 급하게, 대충 계정 하나 만들었었다. ID가 뭐드라... 마땅히 생각나는 것도 없었고, 또 이전까지 사용하던 ID는 당연히(?) 사용 中이었던터라, 나름 새롭게 생각해놓은 otravez라는 ID를 만들려고 했건만, 이런... ID가 있데.-_-+ 차기작으로 생각해뒀던 otra 역시 사용중.-_-; 뭐, 할 수가 있겠3... 할 수 없이 '-' 하나 더 붙여버렸지. 그래서 만든 ID otra-vez, 참... 뭐, 당연하겠지만서도 계정을 만들었던 사이트는 당시 대한민국의 대표 메일계정을 자랑하던 다음의 hanmail, 그래서 부랴부랴 만든 계정이 otra-vez였다.

근데, 나중에 자취집에 메가패스를 깔면서 HiTEL 계정을 무료로 pop3/smtp까지 사용할 수 있었던터라, 난생 태어나서 처음 만든 웹계정의 사용은 점차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후에는 쓸만한 다른 사이트의 계정이 늘어나면서... 점점 hanmail과는 멀게 지냈었다. (서브 계정으로 orgio, kebi와 같은 지금은 찾기 힘든 계정들을 사용했었지비.) 다만, 메일계정에 아무래도 관심이 많았던지라,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wurifen이라는 ID로 다시 ID를 만들긴 했는데, 거의(?) 쓸 일이 없었다. 다만, 한동안 맡았던 다음 까페의 운영진 ID로 1년 정도 썼던 것이 전부.

언제였더라... 이런저런 변화를 꾀한다는 다음 hanmail에서, 지금 한창 사용 中인 Express가 생길 무렵에, 하나의 어떤 이벤트를 했으니, 바로 3.4 ID라고 해서, 다른 계정에서는 불가능(?)했던 세자리로 ID를 만드는 이벤트를 했고, 그 이벤트를 통해 sbj라는 이름의 영문 이니셜을 딴 ID를 살포시 만들었다.

왠만한 사람들은 알다싶이 ID가 짧거나 혹은 유명 메일계정을 쓰면 늘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스팸메일, 설마설마 했는데... 이런저런 아니, 기계로 돌린 스팸메일 뿐만 아니라, 컴터와 거리가 먼, 그러니까 메일 계정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분들, 나와 영문 이니셜이 같은 분들이 sbj@hanmail.net이라는 계정으로 이런저런 카드나 사이트 등록 메일주소로 사용했었더라고. 언젠가 포스팅도 했지만, 이런저런 스팸이야 그려러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개인정보가 든 메일들, 특히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 목록으로 해서 주민등록 번호나, 주소, 핸펀번호까지 딸려 첨부화일로 날라오는 메일은 감당키 좀 그렇더라고. 뭐, 한메일 입장에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것 같았고. (사실 따져보면, 우리나라 계정에서는 스팸신고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가 스트레스다. 전체 삭제하느니만 못하다.)

그러던 와중, 어제 저녁부터 날라온 메일이 있었으니, 기계로 돌린 메일이라기엔 띄엄띄엄 날라오는 것이 아닌 것 같았고, 같은 메일 주소로 6시간내에 여러통 날라오는 것보니 대강보니 스팸이라기보다는 개인이 아무나(?) 보낸 메일이라고 짐작은 되더라고. 처음에는 그냥 안부삼아 물어보는 메신저성 메일인 줄 알았건만, 가면 갈수록 더 하네?

이 메일 전의 메일에는 아예 詩까지 -_-;

분명 내용상으로는 뭔가 인연을 바라는, (표현에 의하면 13억 中에서 알게되는 사이라지만서도.) 내용일터인데, 어떻게 이 계정으로 왔느냐가 사못 궁금해지더라고. 흔하고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계정임에는 틀림없지만, 혹 메일을 보낸 이가 (qq계정) hanmail 계정의 사람에게 중국어로 보낼 수 있겠는가... 싶더라고. 설마 중국어 안다고 보냈을까나.

간만의 중국쪽에서 날라온 메일 덕분에, 이래저래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니만. 글고보니 중국어로 메일을 안 쓴 것도 오래된 것 같고. 내일이나 생각나면 나도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지인들에게 중국어로 메일이나 뿌려볼까나. ㅋ


나는 중국 인터넷을 대표한다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qq와는 정말 이제까지 그 어떤 인연도 없었다. 계정도 만든 적이 없고, 메신저 역시 깔아본 적이 없고.-_-+ 근데 왜~!?

근데, 净土는 알겠는데... 静土는 뭐꼬!? 조용한 땅이라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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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날라온 Spam ?  (2) 2009/12/02
Posted by wuri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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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3 10:47

    네이버계정으로도 온갖 언어의 스팸이 오는 판이니 한메일로도 오겠네요. 근데 내용이 참 독특한 것 같네요..;;

2008년 1월 6일

07년을 보내야 하는 12월 말, 명목상(!) 인솔자 신분으로 아해들을 이끌고 낯선 중국의 칭다오(青岛)를 찾았다. 중국의 칭다오는 아름다운 해양도시이다, 관광특구다, 뭐 이런 말들을 많이 들어왔지만,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 이 곳에 가면 칭다오에서 만든 '칭다오 맥주(青岛啤酒)'를 마실 수 있다, (일명 Made in tsingtao) 외엔 별다른 기대감이 없었다.-_-; 이유인즉, 아무래도 내가 찾았던 시기가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하는 때였고, 이 곳이 설경이나 산의 경치 보다는, '바다'를 끼고있는 모습이 유명하다보니, 이뻐봐야 얼마나 이쁘겠는가, 하는게 나의 예상이었다. 그렇다, 이 예상은 적중했다. 한겨울의 칭다오는 칭다오를 꾸미는 모든 수식어의 개념을 모두 잊게 만들어 버린다. 차라리 겨울에 칭다오를 찾는다면, 근처의 라오산(崂山)이나 황산(黄山)을 찾는 편이 훨씬 낫다.

그래도 이왕 칭다오를 찾았고, 또 2주간이라는 적지 않는 시간을 보낼 것이니 볼 것은 보고, 돌아다닐 곳은 돌아다니자는 마음은 당연했다. (대강 유명하다는 곳은 이 정도)


근데 여기서 딱 빠진 곳이 있었으니... '만국 건축박람회'라고 불리어진다는 빠다관(八大关)이라는 곳이었다. 바다를 낀 세계 각국의 양식으로 지어진 별장들이 즐비하여 그렇게 이쁠 수 가 없다, 라고 들은 적이 있었으니... 당췌 어딘지를 알아야지. 게다가 당시 숙소에선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했었고. 그렇다고 근처 겜방에서 퀘퀘한 분위기에서 이런저런 칭다오에 관한 자료를 찾기보다는 직접 찾아다니는 것이 성격에도 맞는터라... 어느 날, 타이똥(台东)이라는... 그러니까 대강 제2의 칭다오 시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갔다가, 그 곳에 있는 DVD 가게에 들어간 김에 주인 아줌니한테 빠다관이 어디냐고 물어봤지비. (경험이라는 것이 참 재미난게, 난 그 어느 중국인들보다도 DVD 가게 주인과의 대화가 가장 편하다.-_-;)

그 아줌니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여기서 멀다, 지금 가면 볼거 없다.-_-;;; 당시 나의 생각은 그래도 关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니,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는, 산위의 별장들이 있는 곳이라 생각하여 칭다오의 외곽쪽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_-; 그런데 왠걸, 칭다오 제2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더니만.-_-;;; 숙소에서 버스 한번 타니 근처까지 가더라고. 으헐~ (이때 참 허무하긴 했다.)

당시 같이 갔던 일행의 수가 꽤나 많았다. 어지간하면 나까지 포함해서 4명 정도가 빨빨거리기 가장 적합한 인원이라 생각하는데, 이 날은 무려 나까지 해서 무려 6명.-_-; 버스에 내렸지만 어디가 어딘지를 알아야지. 사전정보가 거의 없이 걷다걷다보면 나오겠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일행들이 많다보니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지사. 2,3명을 데리고 다녔다가 헤매게 되면 "에이, 미안하다. 밥 사줄께." 하면 그만이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 감당하기 좀 힘들지, 아무리 중국이라 할지라도.


일단 대강 별장삘 나는 건물들이 보임직한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보시다싶이 저걸 별장이라고 보기엔 좀 무리이지 않은가. 그닥 이쁘지도 않고. 더욱 더 불안한 마음에 열심히 앞장서서 걸을 수 밖에 없었지비. 그러다가 눈에 띈 반가운 표지.

얘들아, 여기가 빠다관(八大关)이란다.-_-;;;

일단 '빠다관 관리 사무소(八大关办事处)'가 있는 것을 보니, 바로 근처인 것 같았다. 적어도 잘못 찾아왔다고 발길을 돌릴 일은 없겠구만. 그나마 안심을 좀 하고 아까보다는 힘차게, 자신있게 걸어나가기 시작했지.


근데 뭔가 좀 이상해. 평소에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집들이긴 했지만, 이걸 별장이라고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의문이 가더라고. 게다가 여기저기서 하구수 공사도 벌여놓고 있었고. 설마 도로변에 이런 집들 좀 있다고 해서 '만국 건축박람회'니, 아름다운 풍경이니 하진 않을 것 아니우. 그래서 좀 더 걸어가보기로 했지.

이 두 사진의 제목은

'빈부격차'이다.-_-v


한참 걷다보니 넓어진 도로가 나왔고 이런저런 가로수들을 보니, '아, 이 곳도 여름에는 좀 볼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설마 이런 곳이 빠다관일려구?-_-+ 에이,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다.-_-; 그 '역시나'라는 결론을 내게 해준 힌트가 바로...


이 표지판을 보고 눈치를 채게 되었던 것이, 길 이름에 '关'가 있는 것. 이런 '关'자가 들어가는 길 여덟게 모아두고 여길 八大关이라 부르는구나...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으니, 그렇다... 정답, 딩동댕~ 2,30년대에 이 곳을 개발할 때는 여덟개의 길이었는데, 해방 후에는 길 두개가 더 생겨 모두 열개라고 한다.-_-; 이래서 어딜 가든지 사전정보를 좀 준비하고 가야되는겨~ 물론 다 알고 가버리면 또 새로운 곳을 찾는다는 신선함도 떨어지긴 하지만. 아마,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굳이 이 곳에 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다싶이 겨울이기 때문에, 이쁘다, 이쁘다 해도... 겨울날씨의 '한계'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눈'도 없는데.-_-;;;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뭔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걸었고.

그래도 그렇지 그 유명한 八大关에서 이런게 보일 줄이야... -_-;

난 왜 이 건물이 이쁘기보다는, '춥겠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을까.-_-;

그래, 걷는게 답이었다. 걷다걷다보니... 아까 추측했던대로 역시나 하나둘씩 길표지판들이 八大关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었다.

자 봐라... 길이름들에

전부 '关'자가 들어가지.

엇... 가곡관(嘉峪关)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디.

설마 산해관(山海关)도 있을까?


이 날은 무슨 '찍기'의 날이었는가보다. 설마 했는데 모두 역시나로 결론이 났으니. 맨 아랫쪽에 역시나 산해관(山海关)이 있다. 산해관은 만주족이 명(明)을 치고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당시 수문장이었던 오삼계(吴三桂)가 여색(?)에 눈이 멀어 길을 열어주고, 명나라가 망하게 되지비. 그... 최인호氏의 상도(商道)에도 나올꺼로. 함곡관(函谷关)은 삼국지에서 봤던 곳 같은디... 하.여.간.


아래 설명은 도로와는 상관없이 예전에 만들어진 关에 대한 설명으로 끝.-_-;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잖아... 왜 하필 관문 이름으로 도로명을 지었는지 설명이나 좀 해주지! -_-;;;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정체를 알 수 있게 되자 뒤에서 따라오던 일행들의 원망소리.-_-; "이쁘다메요!" ...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 "여름엔 이뻐."-_-+


뭐 할 수 있겠는가... 대강 어떤 건물들이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나 봐야지. 근데 건축에 대해선 문외한인지라, 봐도 모르겠던데.-_-; 그렇다고 집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까 빠다관에 관한 것을 찾을 때 봤는데, 예술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날이 추워서인지... 길거리에 사람들이 있어야지 원. 또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일반인들이랑 확연히 차이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우리가 예술가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눌 것인가.-_-+ 단지 그 이쁘다던 빠다관에 대한 실망을 얼른 없앨려면, 그 곳을 벗어나는 것외엔 방법이 없지비.

얘들아 이게 중국의 우체통이란다... "퍽!~" -_-;


여기서부턴 좀 괜찮았던 것 같다. 호수를 낀 공원 비슷한 곳이었는데, 유유자적하게 산보삼아 걸어다니기 좋은 곳이었고, 또 이 날 결혼사진도 찍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야외촬영을 여기서 해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문제는 겨울이라는 점.-_-;

분명히 이 곳은 여름에 오면 이쁠 것 같았다.

겨울의 모습이란... -_-;


나야 뭐, 중국인들의 결혼 야외촬영을 적지 않게 봐와서 그려러니 했지만, 아해들은 꽤나 신기하게 쳐다보더라고. 뭐, 별거 있나... 날도 추운데, 신부가 수고가 많지.-_-; 두 커플이 같이 촬영하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는 일. 나는 세 커플이 같이 야외촬영하는 것도 봤다.-_-v

점심을 먹은 후에 출발을 해서 이 곳에 도착한 시간이 꽤나 늦은 시간이었다. 얼른 다른 곳도 보기 위해서는 발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고. 열심히 또 걷다 걷다보니... 드디어 바다가 보이더군. 에구...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몇일 전에... 칭다오의 해수욕장을 갔던 적이 있는데, 그 곳과 다른 곳이더라고. 그때는 제1 해수욕장, 이때 가게된 곳은 제2 해수욕장. 뭐, 위치외엔 별다른 차이는 없겠지만, 칭다오 백사장을 처음 찾은 아해들도 있었기 때문에 또 들어가게 되었지비. 아해들은 백사장으로 달려가고, 나는 드디어 산해관(山海关) 찾았다고... 나 혼자서 속으로만 반가워하고.-_-+


이 날 시간이 늦어서 바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별탈없이, 바로 옆 잔교(栈桥)도 갔었고, 나중에는 독일 감옥까지도 갈 수 있었다. 이 모두를 도보로 해결한 것치고는 빨리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지비. 뭐, 이 정도. 그때 데리고 갔던 남정네들, 이제 상병 달았겠군. ㅋ

이후에 이 八大关이라는 곳의 사진을 여러장 찾아봤는데, 역시 이쁘긴 이뻤다. 그러나 분명한 곳은, 이 곳은 우리처럼 직접 들어온다고 이쁜 모습을 볼 수 있기보다는, 멀리서, 바다나 석양과 함께 봐야지 '이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 같다. 그래도 칭다오에서 "红瓦绿树、碧海蓝天"라는 것을 내세운 곳인디. (빨간 지붕, 녹색 나무, 푸른 바다, 파란 하늘... 이렇게 풀어쓰니 정말 없어보이는군.-_-;)


글고보니 잔교(栈桥)에 관한 포스팅도 안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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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4 23:43

    겨울의 모습도 좋아보이는데요? 춥지만 않다면 유유자적하며 걸어다니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기회 있으면 가보고 싶네요. ^^

    • 2009/09/24 23:55

      겨울 모습이 나쁘다라기보다는, 이 곳의 '여름' 모습에 비해서 차이가 많이 난다, 라는 것이 정답일테죠.
      말씀하신대로 유유자적하게 걸어다니면... 얼어버립니다. ㅎ
      농담이고요, 어지간한 중무장을 하고 돌아다니면 빨빨거릴만 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서 황도(黄岛)까지 배타고 건너가봤지요. (나 홀로ㅠㅠ)

  2. 2009/09/25 00:16

    '황도'를 처음 들어봐서 포스트 보고 왔습니다.^^ 전 하얼빈, 북경, 천진, 승덕, 상해, 온주, 양주 정도만 가보았거든요. 청도의 추위는 잘 실감이 안나네요. 근데, 상해의 겨울에도 그렇게 벌벌 떤 저는 분명 못 견딜 정도겠죠-_-; 나이가 들면서 계속 남쪽으로만 이동하는 것 같아요^^

    • 2009/09/25 10:42

      추위로 따져본다면 확실히 북방쪽이 기온이 더 낮겠지만, 체감온도가 남방이 만만치가 않지요. 게다가 중앙 暖气 설치 역시 뒤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욤. 저도 거의 남방에만 있었습니다. 북방쪽은 잠깐잠깐 있었다지요. ㅎ

      전 왠지 개인적으로 서쪽으로 나아가고픈 욕망이 들끓습니다. 현실이라는 것이 뭔지. 떱~


여행일시 : 2007년 7월 19일

2년전에 다녀왔던 곳을 이제야 포스팅을 한다는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때 당시에 느꼈던 감흥이나 접했던 객관적인 정보등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보니... 이래저래 포스팅을 하면서도 열심히 중국어 독해만해서 옮긴 기분이다.-_-; 그래도 다녀온 곳은 다녀온 곳이니... 이제서야 이싱(宜兴)에 관한 포스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宜兴이라는 곳이 내가 02년에 어학연수를 했던 우시(无锡)와는 그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던지라... 간다, 간다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던 곳이었고, 07년에 그래도 인연이 닿아 허겁지겁 가게되어 그 아쉬움을 풀게 되었으니, 속이 다 쉬원할 정도. (가서 특별히 좋다!~ 이런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봤다!~ 함으로써 뭔가 잃어버렸던 물건을 다시 되찾았다, 라는 느낌 정도.) 하여간 새벽 6시에 기상하여 허겁지겁 다녀왔고, 또 오후 3시까지는 다시 우시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정말 여유 하나없는 정신없는 일정이었지만, 또 그럼으로 인해서 나름 색다른 여행으로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분명히 샨쥬엔동(善卷洞) 관광 코스를 입구를 통해서 제대로 들어간 것 같았는데, 막상 코스를 거의 다 돌고 내려오니, 하나둘씩 우리가 지나왔던 간판떼기(?)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1600년의 역사가 있다는 샨췐스(善权寺)나, 양축(梁祝) 이야기가 담긴 곳...등. 설마 우리가 거꾸로 코스를 돈 것은 아니겠지비?-_-+

善权寺의 입구를 알려주지만, 아시다싶이 산꼭대기에 있으니.

얘네들은 남녀 마음 어쩌고 저쩌고 하면 우째~ 좌물쇠를 강조하시는지.-_-;


이전에 난징(南京)에서 갔던 정려원(情侣园)에서도 봤듯이... 이 동네는 무슨 남녀간의 애정, 혹은 감정을 상징화 시킬 때 왠 '자물쇠'를 이용하는지 모르겠다. 뭐, 쉽게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도 그랬고... 잠그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인 '자물쇠'가 어찌 두 사람의 마음을 이어준다는지. 두 사람의 마음을 어느 곳에 넣고 잠근다는 말인가? 사실 여기에 관련된 이야기는 상당히 단순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에게 사랑의 고백하면서 내 마음은 이제부터 너의 것이니, 이 마음을 잠근 후, 그 열쇠는 니가 가져라... 그리고 맹세를 한다지, (뭐, 중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黄山同心锁에 관한 이야기 참조)

"与你同心, 对你忠心, 一片痴心, 永不变心."

너와 같은 마음으로, 너만을 위한다는 충직한 마음, 일편단심... 그리고 영원히 변심하지 않겠다는.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_- 그냥 이런걸 볼 때마다 이해를 못한다 이 말이지비. 시대가 변해서 그런가...

이거봐, 다보고 내려오니 안내표지가 보이잖우.-_-;


아마도 정말정말 마무리를 하는 코스인 것 같은 곳이 나타났다. 앞서 산정상에서 신나게 타고 내려왓던 华东第一滑도 그랬지만, 확실히 어디어디 제일(第一) 좋아하시는구먼. 宜兴이라는 곳이 紫砂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만큼, '중국 제일 도자기바(中国第一陶吧)'라고 있더라고. 그려~ 중국 제일이라는데 어떤지 실제로 한번 봐보입시더.

입구쪽에는 당연히 이런저런 간단한 소개가 있기 마련이고.

막상 안에는 이것밖에... -_-;;; 평일이라 운영도 하지 않고 있었고.

하여간 이런거 말고... 역시 그나마 맘에 든 것은 개인적으로 소시적 무협물 시리즈에서 봤던 중국의 고전 모습들. 즉,

뭐, 이런 풍경.-_-v

시원한 바람맞으며, 혹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라 할지라도 저기 정자(?)쪽에 앉아서 처자 하나랑 희희낙락거리는 것도 얼마나 운치있는 일이겠슴메. 다만, 이 날처럼 너무나 무더워 숨쉬는 것조차 불편한 날이라면... -_- 망구 환상땡이랍지요. 일단 환상을 뒤로 미뤄두고... 출구를 통해 드디어 이 대단원(?)의 관광코스를 마치고 나오면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바로 관광지 기념품거리.-_-; 이것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기념품들을 보는 재미가 솔솔할 것 같지만, 역시나 호객행위를 하는 아줌니들의 들이대는 수위가 높다보니-_- 중국의 여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꼭 이런 코스는 피하고 싶어지더라고. 이 날은 그나마 낫았다. 왜, 한적한 평일이었지라.-_-v (문닫고 영업을 하지 않던 곳도 적지 않았지비.)

여기 기념품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디카로 찍은 것은 단 두장밖에 되지 않는데, 이도 이유가 있다. 같이 갔던 후배 둘... 이 둘이 또 마침 이 곳에서 살 선물용 기념품을 산다고 이것저것 물건들을 골랐기 때문. 뭘 샀드라... -_- '차상'이라고 부르던데, 茶세트를 올리는 차받침대를 살 모양.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군.) 나야 옆에서 가급적 茶壶 세트는 이 곳에서 사지말거라, 하고... 나중에는 가격 흥정할 때 도와줄려고 폼을 잡았지비. 뭐... 알아서 잘 깎더니만. (후배들아, 너네들은 이제 배울게 없다, 하산혀라.-_-; 근데 나 같았음 더 깎았다.-_-v) 한 보따리 사서 들고 드디어 관광코스를 탈출하기에 이르렀다. 몇개 사지 않았는데, 부피가 좀 컸으니. 으아, 이걸 들고 어떻게 귀국혀... 이 날이 귀국 3일 전인가 그랬지비. 게다가 여기뿐만 아니라 이후 일정에 쑤저우(苏州), 상하이(上海), 저우장(周庄)... 도 있었는디. 하기사 뒤의 관광지에서는 정말 살만한 것이 없지비.

사람이 정말 없다.

평일이었던지라 정말 오래간만에 한적한 중국 관광지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만... 왠지 을씨년스럽더니만. 게다가 돌아가는 차를 찾는 것도 직접 찾아야 했고. 딱 입구쪽에서 택시용의 승용차를 타고 터미널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돈없는 학생들이 어찌 그런 고급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겠소. 타고 들어올 때처럼, 승합차를 찾아... 찾아 해맸다.

밥집도 제대로 영업을 하지 않았기에

슈퍼에서 음료수나... -_-


이런저런 교통수단들이 있는데, 일명 빵차(面包车)나 3륜차로는 터미널까지 갈 수 없었다. 미니버스 그러니까 흔히 小公이라고 부르는 차량을 찾아 드디어 타기에 이르렀지비. 어찌나 덥든지, 그리고 얼른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배고픈 것도 신경쓸 수 없었을 지경. 이 날 아무것도 먹지 않지 않았나?-_-;

문제는... 터미널까지 가더라도 시간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차량을 타고 터미널까지 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을 뿐더러, 터미널까지 간다고 해도 우시터미널에 도착해서, 또 택시를 잡아타고 학교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후배들의 그... 结业式라고 해야하나, 거기 행사시간에 맞추기 힘들기 때문. 게다가 인솔을 맡았던 나까지 늦어버리면-_- 으윽. 사실 이 날 새벽에 일어나서... 나 혼자 가기도 뭐해서,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음직한 얘들을 깨워서 데리고 갔다. 오전수업 들을봐에는 나 따라서 宜兴 한번 구경하고 오는게 더 낫지 않겠느냐... 이런 식으로 꼬득였는데, (물론 선배로써 잘한 짓은 아니지만-_-) 이왕 온거, 그리고 걔네들은 그때까지 수업을 거의 빼먹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도는 감당하고 여기 올만하다, 생각했던 것. 이것도 인솔선배니까 가능한 것이지, 내가 만약 인솔교사였으면-_-;;;

하여간 그래도 공식행사는 꼭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그 미니버스를 타고 가다가, 원래 우리가 이싱에서 내렸던 터미널말고, 또다른 터미널 앞에서 무작정 내렸고, 거기서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가격을 흥정하고-_- 우시의 江南大学로 가자고 했지비. 행여나 싶어서 미터기켜고 가자고 했고. 차 안에서 후배들은 뻗어자기 바빴고-_- 나는 택시 기사 아저씨와 이러쿵 저러쿵 얘길 나누면서 갔는데... 그때 이싱화(宜兴话)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유튜브 동영상 댓글에... 어느 중국인이 친절하게도 번역본을 댓글로 달아줬더군. ㅋ)

하여간 이로써, "宜兴物语"는 드디어 마무리 짓게 되는구마이.


택시 안에서 '潘家'라는 이름을 가진 주유소를 지나쳐 갔다. 그 당시에는 '아, 이런 식으로도 주유소 이름을 짓는구나.' 신기해서 찍어뒀는데... 나는 이 潘家를 보고, '양가장(杨家将)'이라는 홍콩 TVB의 단편 드라마(1985)가 생각이 났다. 이 드라마는 당시 초호화 캐스팅으로 구성하여 만든 드라마였던 것 같은데, (대강의 줄거리는 송나라 개국공신 楊가와 신화의 인물들을 접목시킨 이야기) 남자 배우는 주윤발(周润发), 유덕화(刘德华), 양조위(梁朝伟), 만자량(万梓良), 황일화(黄日华), 오진우(吴镇宇), 모교위(苗侨伟)등이 출연하며, 여자 배우는  유가령(刘嘉玲), 증화청(曾华倩), 장만옥(张曼玉), 사녕(谢宁), 모순균(毛舜筠)등... 당시 홍콩 연예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한꺼번에 대거 출연한 드라마이다.

06년 江西 南昌에선 이런 것도 있더군. 또 양가장.

근데, 극중에서 우리편인 양가(杨家)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집안이 반가(潘家, 거의 진회와 비슷하게 송나라 초기에 금나라에 달라붙는 간신집안으로 나온다.)인데, 그 중 막내 아들이 양가의 막내아들(양조위)와 비무를 벌이다가 죽어버린다. 그 죽은 반가의 막내 아들역을 맡았던 배우! -_-;;; 이 배우가 한때 유덕화(刘德华)와 동성애 관계에 있었다고 떠들썩 했던 남정네더군.-_-+ 이 배우 역시 姓이 潘씨이다.-_-; 반굉빈(潘宏彬)이라는 배우군. 요즘 유덕화 결혼 때문에 중화권 연예계가 떠들썩한데, 마침 이때 무심결에 찍은 사진에서 이 潘家를 보니...-_-;;;

1985년. 이 얼마나 정겨운 모습이던가.-_-+

이 '양가장'이라는 드라마는 이곳에서 관람할 수 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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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시 : 2007년 7월 19일

앞서 중국 이싱(宜興)의 샨쥬엔동(善卷洞) 유람기.에 이어.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우는 민간전설이 하나있다. 바로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의 고사인데, 나는 소시적 봤던 영화 '양축'을 보곤 그려러니... 하고 그냥 생각했다. (드라마로도 몇번 채널을 돌리다가 본 적은 있지만, 시선 고정은 아니되더니만.) 뭐, 옛날 고전의 러브스토리는 뻔할 뻔자 아닌가. 신분이 맞지 않은 남녀가, 집안의 반대로 줄행랑을 치고... 잘되면 어디 숨어서 아들딸 잘 낳고 살아가는 것이고, 못되면 결국 둘이 죽음을 택한다... 뭐 이 정도. 다만 공통점이라고 갖다붙일만한 것은... 항상 여자쪽 집안이 남자쪽 집안보다 낫다는 점. 아마도 당시 사회상을 보면, 남자야 '三妻四妾' 할 수 있을만한 여건이 되었기에, 불행한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가 되려면 남자쪽의 신분이 떨어져야 한다는 점 정도. 내가 양채니(杨采妮)라는 배우를 제대로 익식하게 된 것도 바로 서극감독의  '양축(梁祝)'이라는 영화때문인 것 같다. (얼마전에 곰TV의 무료영화에서 '방콕 데인저러스'라는 영화에서 봤는데... 이쁘장한 태국 약사로 나오시더군. 대사 한만디 없는 벙어리역.-_-; 요즘 이 언니 뭐하시지?)

지난번 이싱(宜兴)의 샨쥬엔동(善卷洞) 이야기 이후에... 다음 코스를 포스팅하기가 너무 귀찮아졌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여유'인데, 그 동굴을 빠져나간 후부터는 시간이 촉박해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저 스쳐지나치는대로 사진만 찍어왔기 때문에, 머릿속에 남은 기억도 없거니와, 그런 기억들을 일부로 짜집어서 넣느니 아니 남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어차피 내가 거쳐간 과정이려니... 하고 남겨놓는 것일 뿐이라는거.-_-; (아, 변명 한번 길다.) 하여간, 별로 남지 않은 기억을 더듬어 더듬어, 그리고 평소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양축' 이야기도 알아볼 겸해서 포스팅을 해보기로 한다.


샨쥬엔동을 빠져나오니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바로 자그나만 폭포의 시원한 물소리였고, 그 폭포를 뒤로하고 가야할 길을 가다보니 왠 석상이 하나 보였다. 이건 또 누구시람. 이 양반의 이름은 쉬샤커(徐霞客, 1587~1641)로 명나라 말기의 '지리학자'이다. (쉽게 풀어보면 여행가이자 문학가이다.) 30년동안 열심히 돌아다니시어 260만자에 달하는 <徐霞客游记>를 남겼다. (그 중 200만자는 유실되었고 지금은 60만자만 남았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에서 따지면 '지리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는 정도. 28살때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의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람기를 남겼고, 55세에 윈난(云南) 지방의 리장(丽江)에 이르러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자, 고향인 장인(江阴)으로 돌아왔와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해각지를 떠돌아다니는 것을 결심하는데는 당시 그의 엄니의 영향이 컸다고.

“身为男子汉大丈夫,应当志在四方。你出外游历去吧!到天地间去舒展胸怀,广增见识。怎么能因为我在,就象篱笆里的小鸡,套在车辕上的小马,留在家园,无所作为呢?”

" 사내대장부로써 당연히 사해에 뜻을 두어야 하니, 너는 밖으로 나가 사해각지를 돌아다녀라. 하늘과 땅 사이에 이르게 되면, 가슴에 품은 뜻을 펼치고, 견식을 넓히도록 하여라. 어찌 내가 있다고 해서 너는 우리안의 새장안의 새나,  수레에 걸려있는 말처럼 있느냐. 집안에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으냐."

뭐... 한마디로 집에서 책만 보면서 데굴데굴해봤자 남는게 없으니, 돌아다녀라... 라는 아~주 친절한 말씀.-_-; 이 말을 듣고 뜻한 바 있어 1년동안 여행을 하게된 것이 바로 22살때의 일. 이후 갖은 고생을 하며 동으로는 쩌장(浙江)의 보타산(普陀山), 서로는 윈난의 텅충(腾冲), 남으로는 광시(广西)의 난닝(南宁) 일대, 북으로는 허베이(河北) 지시엔(蓟县, 지금의 텐진)의 판산(盘山)까지... 대부분의 중국 각지에 족적을 남겼다. 이 얘기는 이 정도까지만 하고... 흠흠.

앞서 말한 지명들을 표시하니 뭐 이 정도.


처음엔 사실 이 곳만 지나갈 때만 하더라도 이 곳이 梁祝과 관련있는 곳일 줄은 몰랐다. 왠 남정네? 왠 아낙네? 무슨 예전에 난징에 있을 때 가보았던 정려원(情侣园) 정도라고 생각을 했었지비. 에공... 이런 곳은 또 그냥 지인들과 오기엔 좀 막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비. 그래서 일단은 신경끄고 고고씽. 근데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徐霞客의 석상을 찍고나서, 디카 설정을 잘못해서 이후부터 사진들의 색감이 여엉~ 이상하게 나와버렸다. 뭐랄까... 색소빠진 사진이 되었다고 해야하남. 게다가 무더운 날씨에, 햇빛이 너무나 밝아서 사진 색감이 정말 이상해져 버렸다.-_-; (초간단 색감보정을 해도 별반 차이가 없네.)

조그나만 호수에 아담한 정자. 캬~ 여기서 한잔하면~ -_-;;;

왠 서재?

분명 입구쪽엔 한쌍의 남녀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왠 서재?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무슨 안내표지판도 전혀 없었으니 알 도리가 없었지. 다시 생각교정, '아... 그냥 상하이(上海)의 예원(豫园)과 같은 부호들의 정원이구나.'라고.-_-;

영대각(英台阁) ?

엇... 다시 눈앞에 나타난 누각.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름이 낯익다. 영대? 영대? 누구지? 어디서 많이 들었음직한 이름인디? 당췌 여긴 뭐하는 곳이냐 말이닷.

앗... 蝶園?

이거원... 안내표지 하나 제대로 없이 돌아다니니 발걸음은 더더욱 빨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다지 볼만한 것도 없었고. 에이, 어서 벗어나자고 일행들을 재촉하는데 눈앞에 나타난 蝶園. 여긴 뭐냐... '또 무슨 나비들 박제해서 액자 만들어놓은 그런 곳이냐?' 했지비. 거참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이네... 하면서 별 생각없이 그냥 지나칠려는 찰나, 왠지 모르는 떠오르는 한 이야기에 관한 발상. 에이 설마... 하필 여기 왜?-_-;

다시 나타난 영대. 영대찻집? -_-+

여기서 茶 한잔해도 되겠더니만.

아까 봤음직한 남녀가 다시 나타나고... 이때 눈치를 깠어야 했는디. (팔모양, 날개-_-;)


화원인지... 나비 전시실인지 모를 속닥한 실내를 바로 빠져나가자... 드디어 우리가 지나쳐온 곳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어찌나 힘이 빠지던지, 헛웃음만 연발.-_-; 나 중문과 맞나... 싶었을 정도.ㅠㅠ

드디어 정체가~ -_-;

아까 지나쳐 올 때의 '영대(英台)'는 그렇게 나에게 있어선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내가 그 언니 이름을 불러봤어~ 그렇다고 드라마도 제대로 본 적도 없으니. 그냥 단순히 낯익는 고유명사겠다, 생각을 했는데... 딱 그 곳을 빠져나가자... '양축(梁祝)'이라는 단어가 뇌리속에 팍~ 찔어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곤 속으로 '양채니!'를 외쳤다지.-_-v 무슨 미로찾기 하러 들어간 것도 아니고, 퀴즈대회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지도 모르고 룰루랄라 디카 셔터만 누르면서 지나쳤으니 얼마나 허무했겠는가. 그리 관심있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옆에 있던 후배들에게 아는 체(?)는 할 수 있었겠지비. 그나저나 양산백과 축영대가 여기 왜 있냐고오~ 하는 궁금증이 또 생기더라고.

'양축'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히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동진(东晋) 시대에 한 처자가 남장을 하고 공부를 하러 서당엘 갔다. 거기서 한 남정네를 알게되는데 처음엔 동창으로서 의기투합되었으나 이후에 처자인 축영대는 양산백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축영대의 신분이 밝혀지고 둘은 서로 이성으로써 좋아하게 되는데, 축영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잘난 집안 출신인 축영대는 당연히 부모의 반대에 부딫히고, 양산백은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결국 죽게된다. 양산백의 무덤가에서 통곡하고 있던 축영대. 순간 무덤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그 곳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무담이 닫히면서, 나비 한쌍이 하늘위로 날라가기 시작한다... 뭐, 이 정도가 내가 아는 양축의 이야기.-_-;

근데, 이 민간 설화에 관한 것은 모두 몇가지의 제각기 다른 역사적 기원이 있다고 한다. 그 中 이싱과 관련된 기원을 이야기해 보자면, 역사의 기재에 따르면 양축 이야기가 최초로 문헌에 기재된 것은 이싱에서였다고 한다. 중국 짱수성의 학술계, 역사계, 여행계(?)에서의 전문가들은 宋咸淳의 <毗陵志>에서부터 명대의 冯梦龙의 전기소설 속에서, 모두 대량의 증거가 되는 글들이 나타났다고. 거기에 따르면 양산백과 축영대는 모두 이싱 사람이라는 것. 뭐, 毗陵志나 冯梦龙의 전기소설을 내가 읽지 않아서 이러쿵 저러쿵은 못하고... 다만, 중국내에서도 이 양축 이야기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허난성의 여남(汝南)현, 후베이의 马坡村, 쩌장의 닝뽀(宁波)와 같이 지리적인 기원도 의견이 다를 뿐더러, 심지어 진(晋), 동진(东晋), 송(宋), 명(明)등과 같이 시대적인 기원도 의견이 제각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포스트의 제목과 관련된 글은 이 정도까진데...
아, 쓰는 김에 나머지 부분도 써놓는게 낫겠다. 또 다른 제목으로 새 포스트를 쓸려면 몇달 걸릴 듯.-_-;


그건 그렇고... 이싱의 샨쥬엔동 코스 中에 두번째는 이렇게 끝난다. '양축' 관련 건물 몇채 지나서 마무리는 나비전시실(?) 정도. 그 다음 코스는, 샨췝스(善权寺)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절과 궈샨비(国山碑)를 살짝 구경하고나면, 어쩌면 이 관광지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华东第一滑'이다. 이게 뭔고하니,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이래저래 구경 좀 하고 내려갈려고 하면, 도보로 갈 수 있는 길이나 케이블카가 아닌... 돌로 만든 긴 미끄럼틀이 나온다.-_-; 이게 말이 미끄럼틀이지, 경사도 만만치 않고, 게다가 돌로만든 미끄럼틀인지라... 겉보기에는 무서웠을 정도였다.-_-; 문제는 옷차림과 손인데... 만약 이것을 탈 때 짧은 반바지를 입어 살깢이 많이 데이면... 그리 쉽지 않은 놀이가 될 것이며, 아무래도 길이도 길이인만큼 손잡이를 잡고 사는 손을 보호해야 한다. (이래서 역시 따로 손장갑을 시중보다 비싸게 팔고 있더라고.) 우째우째 타고 내려오긴 했는데, 역시나 또 상업성~ 타고내려가는 찰나를 찍어 사진을 또 팔더라고. 이건 뭐 굳이-_-;;;

산정상에 있는 善权寺.

이 절도 생각치도 않게 오래된 곳이더군.

뭐가... 분명 '善卷洞'이라는 이름을 걸고 만든 관광코스인데, 없는 것이 없었다. 정상에서 또 보게된 것은 샨췐스(善权寺)라는 절. 이 절은 역사서에 따르면 중국의 남북조 시대, 즉 서기 480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2000년 보수공사를 하여 보존해 놓은 것. 그냥 향 하나 피우고 내려가면 끝.-_-; 입구 현수막에 자랑스레 절의 역사를 알려주는 샨췐스 탄생 1603주년.-_-; 오른쪽 사진의 길상종(吉祥钟)은 일반인들도 칠 수 있다. 아니, 일반인들을 위해 나둬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점. 종소리 한번은 무엇을 기원하고, 두번은 무엇을... 이런 식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표지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종 세번치는데 RMB 5元.-_-; 이건 뭐... 난징의 부자묘(夫子庙) 안에서도 몇번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관심끄고 돌아섰지비.

종 한번은 우리말로 하자면 만사형통, 모든 일이 돛을 단 배가 바람을 잘 받아 나아가는 듯이 되길 기원하는 것이고,
종 두번은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각인이 되어 잘 이루어져라, 라는 말 같고,
종 세번은 우리 가까이 있는 세 별, 즉 복성(福星), 녹성(禄星), 수성(寿星)의 신선들로 하여금 복, 재물, 장수를 기원,
종 네번은 사계절 항시 돈 많이~ 벌길 기원...
종 다섯번...이랑 여섯번은 안 보인다. (이것까지 지금 찾기엔... -_-;)

하여간 산정상에서 바라보는 이름모를 산-_-의 경치는 참 좋았다. 날 더웠던 것외엔 괜찮은 코스였3.

조용한 산길을 걷다보면...

또 나타난 왠 영님. 아... 누구세염!?

이 곳은 빠이도우탄(拜斗坛)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남북조 시대에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어느날 밤, 당시 수도였던 난징의 자금산(紫金山)에 왠 선인이 꿈에 나타나 阳羡国山에 물의 신(水神)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이후 양무제는 신하를 파견하여 여기에다가 기우제를 위한 제단을 만들었고... 뭐, 과연 영험했다고.-_-; 그래서 저 영감님은 水神이라는 말인가?-_-; 아님, 양무제? 아님 제단을 쌓은 신하?-_-;;;


아마도... 확실치는 않으나 이 산의 이름은 '阳羡国山'인 것 같다. 이 곳에 만든 비석이기 때문에 줄여서 '国山碑'라 하는 것 같고. 이 비석의 역사는 또 우리가 '삼국지'를 통해 잘 아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서기 276년, (물론 우리가 잘 아는 조조, 유비, 손권등은 다 세상을 떠난 이후다.-_-;) 그러니까 이 강남 지방은 알다싶이 오나라(吴)의 영토였고, 당시 오나라의 황제는 폭군으로 알려진 손호(孙皓)였다. 이 아저씨를 끝으로 삼국시대가 완전히 끝이 나고 사마염(司马炎)이 세운 서진(西晋)이 시작되지요. 하여간 당연히 제대로 된 황제가 아니니 나라는 망했을터인데, 손호가 한 짓이 또 만만치 않아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날 지방관료가 왠 동굴을 발견했는데, 이 동굴이 바로 善卷洞이었다. 이 일을 상서롭다고 여겨 손호에게 알렸고, 손호는 신하를 파견해 원래 묵산(墨山)이라 부르던 이 산을 국산(国山)이라 개명하고, 이 곳에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비석의 내용이야 뭐... 비석을 세운 기원, 상서로운 조짐이니 공덕을 노래하고... 뭐 이 정도. 장수성(江苏省)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이라고 하는데... 이 비석이 세워진 후... 5년 뒤에 동오(东吴)는 멸망하지비. 비석하나가 중요하기보다는... 역시 사람이 문제였지비. 시간관계상 안에까지 들어가서 비석을 직접보진 못했는데... 대강 이런 모양.

그리고 끝으로... 산을 내려올 때 타야했던 华东第一滑.

아무래도 현장에 집중하다보니 사진 찍을 생각을 못했다.-_-;

이번 포스트는... 에고야~ 이 정도까지 합시다.


하여간 이 샨쥬엔동(善卷洞) 코스의 표값(全价)은 120元이라는 것.-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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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3 17:54

    "집에서 책만 보면서 데굴데굴 해봤자 남는 게 없으니, 돌아다녀라... "라는 말이 콕콕 가슴에 와서 박히네요. 흐~
    저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니셨다니! 부러워요~ㅎㅎㅎ

    • 2009/09/03 18:04

      사실 경제적인 여건만 된다면 저라도 해보고 싶습니다요. ㅠㅠ 중국에 있을 당시에도 정말 여러 곳들을 돌아다니고 싶었습니다만, 항상 걸리는 것은 '시간'보다도 '돈'이었지요. 徐霞客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중에라도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찾아 읽어야겠군염. ㅎ (돈얘기가 제일 궁금합니다만.-_-;)

      저는 저 영감님 돌아다닌 여러 곳들 中에서도, 특히 普陀山이 가고싶어지는군염.-_-+

2008년은 중국 수천년 역사에서도 상당히 의미있는 한해일 것이다. 뭐... 올림픽이지비. 이래저래 듣던 믹거나 말거나 얘기 中에서, 1988년에 서울올림픽을 할 때, 중국도 여기에 가세해서 꼭 열고 싶어했다는 것. 진위를 떠나, 하여간 중국인들의 '8' 사랑은 과히 명불허전이다. (뭐, 어쩌면 또 나름대로의 의미를 둔 해인지는 몰라도.) 그 후 정확히 20년 후에 베이징(北京)에서 올림픽이 열였고... 별다른 사건사고없이 폐막을 했다.

몇년전 중국에 있을 때, 간간히 중국의 메일계정 만드는 취미를 가지곤 했었다. 개인적으로 메일계정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았을 때였고, 당시까지도 딱 마음에 드는 대표계정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 사이트에서라도 찾아보자, 라는게 취지였었지비. 원래는 Alang@hitel.net이 대표계정이었건만, 중국 유학과 동시에 집에 깔려있던 메가패스를 해지를 해서, 더이상 무료 pop3/smtp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에 잠시 wurifen@야후.co.jp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다른 이유는 없었고, 단순히 pop3/smtp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당시엔 거의 유일했는지도) 문제는 웹에서의 접속이었지비. 인코딩이 되지도 않고, 또 유니코드를 지원하지 않으니 한글로 된 메일을 야후 재팬 계정의 웹메일에서는 확인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gmail이라는 넘이 나왔고, 아직도... 여전히, 어쩌면 계속해서 대표계정으로 쓰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중국쪽 얘기로 돌아가서...

sina.com(新浪)이나 163.com (网易) yahoo.com.cn (雅虎)등과 같은, 일명 중국의 포털사이트의 메일계정은 다 만들어봤는데, 뭐... 특별한 점이 없었다. 단순하기도 단순하고... 그렇다고 계정용량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sina.com같은 경우엔 pop3/smtp를 제공한다고 표시는 되어있었는데, 이것도 원활하지 않더라고. 그러니 메일계정을 제대로 쓸 수 있겠수... 앞서 언급했지만, 그러던 차에 gmail.com 계정을 만들게 되었고, 당시엔 지메일도 초대방식으로 가입을 하는 베타였던지라, 나 역시 주변의 지인들에게 권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중국 아해들한테까지도 권했으니... -_-v 메인으로 쓰는 얘들도 있고, 나한테 연락할 때만 사용하는 얘들도 있다.)

아까 중국쪽 기사를 网易를 통해 읽고 있다가 문득 로그인이 하고 싶어졌다. 분명히 163.com이나 그렇지 않더라도 126.com 계정을 만든 기억이 있어 로그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왠걸... 비밀번호가 죽어도 맞지 아니하다.-_-+ 내가 쓰는 비밀번호가 5개이상씩 되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이것저것 입력을 해도 비밀번호가 맞지 않더라고. 계정 만들었단 말여~ (126.com은 지메일 인터페이스를 거의 모방했다고 해서 엄청 욕했던 적도 있었는디.)


혹시나 싶어서 생각난 김에 sina.com에 가서 로그인을 했다. 또 여긴 되는구만. 다중 계정이라고 해야하나... sina.com은 다중계정이 참 재미나다. 1년에 얼마씩 돈을 내고 이용하는 유료사용자의 계정은 sina.com 앞에 vip가 들어간다. 뭐, 그 외에도 다른 의미에서의 계정들이 있을터이고. 근데 보지 못했던  (어쩌면 한동안 전혀관심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2008.sina.com이라는 계정이 있더라고. 이유야... 당연히 올림픽 때문일 것이고. 그래서 호기심에 가입절차에까지 이르렀다. 가입했지.

2008.sina.com의 가입환영 메일.

가입해보이... 역시나 별다른게 없다. 단지 ID@2008.sina.com이란 계정이 생겼다는 것 외엔. 용량 2G도 더이상 메일계정의 장점이 될 수도 없고, 다른 특징들이라고 해봤자 다 거기서 거기다.-_-; 그래도 이왕 만든 것, '나에게 메일을 보내보기'라는 헛짓까지 해봐야 할 것 아니우. 했지... 메일을 작성하는데 인코딩 메뉴가 없어서 또 역시나~ 하며 한글로 나의 한메일, 지메일, 그리고 파란계정으로 메이을 보내봤는데, 도착할 생각을 안 하네.-_-; 에라이~ 행여나 싶어서 sina.com 그러니까 중국계정으로 메일을 보내보니 바로 도착을 한다.

역시나 인코딩은 개판이고~

베이징, 상하이(上海)라고 해봤자 고작 비행기로 1시간 반 걸리는 곳인데... 인터넷으로는 엄청나게 먼 거리인 것 같구마이. 간만에 한때 취미생활이었던 헛짓... 해보니까, 감개무량하구마이. 헐~ 사실 내가 중국 사이트를 오고가게 했던 첫번째 동기도 바로 이 짓이었으니께.


언젠가 西祠胡同(http://www.xici.net)이라는 유명 사이트에 가입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내 옆에 있던 중국아해가 했던 말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계정등록하는건 괜찮은데, 글은 절대 올리지말라."라는. 중국쪽 인터넷... 우리가 파고들기엔 아직까지도 무리는 많겠지비. 이럴 줄 알았음, 그때 영문으로 된 중국 인터넷에 관한 책을 제대로 좀 읽어볼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내용 자체는 참으로 재미났었는디.

<추가> 08:40

Opera 10이 드디어 정식출시 되었고, 특히 메일 클라이언트의 기능이 강화되었다길래 살포시 gmail imap계정으로 등록을 시켰더니, 지난 몇년간 gmail로 받은 메일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사실 지난 2,3년 사이에는 ID@wurifen.com을 이용한 Google apps 계정을 사용했던터라, 원래 주고받은 메일이 훨씬 더 많겠지만서도... 그래도 2004년 말부터 받은 메일 몇개를 읽어보니 (원래 메일을 지우진 않지만, 그렇다고 뒤져보는 짓도 어지간하면 하지 않는다. 아직은.) 기분이 뭔가 새롭네. 햐~ 일본의 어느 교수가 강연에서 그랬다지... 「인간의 망각이야 말로 소중하다.(人間の忘却こそ大切)라고. ㅋ

Opera 메일 클라이언트가 퍽! 쓸만해졌어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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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广东新闻의 뉴스 동영상부터.



대강 사건의 개요를 요약해보자면, 어떤 남자가 대낮에 차에서 끌어내려져 사람들에게 둘러쌓였다. 그리고 두들겨 맞았는데 마지막에 목부위를 가격당하고 죽어버렸다. 그걸 누군가가 동영상으로 찍었다. 왜!?

이 남자는 15세 여자아이를 강간했다는 혐의를 가지고 있었다. 근데, 그 여자 아이의 부모는 (경찰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직접 쫓아다닌 모양이다. 결국 이 남자를 차에서 끌어내리는데 성공했고, 남자 세명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결국 이 남자는 동영상이 찍히기 시작하고 15분정도 후에 현장에서 맞아 죽었다.

뉴스에서는 지명이나 목격자의 진술(이것도 사투리가 심해서 대강 자막만 보고 이해했다.)외에 별다른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전말이나, 혹은 후속처리 설명이 좀 부족하다. 문득 궁금해지는 것은 결국 강간범이 살인되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살인자들의 처분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동영상을 보면 손을 뒤로 묵인 남자가 상체가 벗겨진 채로 사람들 사이에 둘러쌓여져 있고, 어느 아줌마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사건의 정황으로 보아 여자 아이의 모친인 듯.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피해 여아의 부모 입장에서는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판인 것은 인지상정. 문득 성범죄범에 대해선 처벌이 가볍다고 하는 우리나라가 떠오르더마이. 하여간 중국인들 남의 일에 간섭하지도 않거니와, 그래서 생기는 여라가지 이해못할 사정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인들의 '군중주의' 역시 한번 떴다하면 정말 무시무시한 것은 사실이다. 댓글에도 역시... 맞아죽어도 싸다,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


'活活打死'으로 검색을 해보니... 참 무시무시한 일들이 꽤나 일어났었군.


<덧> 17:15


제목에 '강간'을 '간강'으로 친 오타를 범했다. (殷군의 제보-_-;) 생각해보니... 이 단어를 키보드로 쳐본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 근데 우째 본문에는 잘못친 게 없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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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4 09:53

    같은 버스를 타고 가던 사람이 칼에 찔려도 무신경하다던 중국사람이 의외네요.

    • 2009/07/14 15:20

      그 일이 얼마전에 있었던게 아닌가염. 버스 안에서 둘이 싸움이 나서 칼부림이 있었는데, 버스기사까지도 무관심해서리 어쩌고 저쩌고 했던 얘기. 이야기야 이렇게 전파가 됐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우리나라 버스에서도 둘이서 칼부림이 나면 누가 말리겠나...도 싶습니다. 무섭잖아염-_-; ㅋ

  2. 2009/07/29 17:03

    비밀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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