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20여년간 나는 운이좋게 '골목길 문화'를 접하면서 자라왔다. 굳이 '운이 좋다'라고 표현을 한 것은, 요즘 아파트 단지내를 왔다갔다하면서 보면, 단지내의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혹은 축구공을 주거니 받거니, 혹은 벽에 야구공을 혼자서 던지고 받고 하는 아해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처량하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자랐던 소시적의 추억에는 그런 놀이를 별다른 불편이나 위험부담이 없기 즐겼었다. 이래저래 아이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골목길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 형, 동생들이 생겼고... 지금은 기억이 뿌옇지만 참으로 신나게 달리고, 치고 뒹굴며 놀았었다. 요즘 아파트 단지에서 이런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운 일이겠지비.


사실 내가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뿐만이 아니라 요즘 어린 아이들의 놀이문화도 상당히 달라졌다. 예전보다 차량이 늘어남에 따라 어지간하면 밖에 나가서 놀지마라, 라는 부모들의 권고도 있을 것이고, 또 컴퓨터나 게임기와 같은... 굳이 밖에서 즐기지 않아도 되는 문화가 있다. 이런 경우엔 굳이 친구들끼리 옹기종기 모일 필요도 없지 아니한가.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건 갈수록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들이 좁아졌다는 사실이다. 사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을 나이먹은 사람들은 이용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아니한가. 가끔씩이나마 아파트 단지내의 놀이터에 앉아서 커피 한잔할 때면 괜히 마음이 편해지면서 나 역시도 동심으로 돌아가 그네를 타든지, 미끄럼틀을 타고 싶어지곤 한다.

간만에 본 연립주택의 전기 혹은 수도 계량기. 전기겠지비???

지난 주말에 우연찮게(?) 다가구 주택이 모여있는 곳을 찾았는데, 괜히 옛날 생각이 좀 났다. 골목길을 시끄럽게 누비며 숨박꼭질이라든지 진돌, 혹은 얼음땡을 했던 소시적의 추억, 그리고 간간히 정전이 되면 애들은 평소엔 가지고 놀 수 없는 후레쉬를 들고 신나게 뛰쳐나가놀았던 것, 뭐 또는 집문 앞에서 '누구야, 노올자~'라고 외쳤던 것들. 우리 세대는 분명 그렇게 신나게 놀았고, 이웃 아줌마, 아저씨들과도 허울없이 지내곤 했는데, 세상에 험악하게 변해가서인지... 아니면, 그 동네 자체가 원래 평균연령대가 높은건지, 어르신들 말고는 눈에 띄는 젊은 사람,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단 한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게다가 그 좁은 골목길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은 또 왜그렇게 많은지.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차지해버린 것이 아닌가. 흠흠.


집 문밖만 나서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또 어른들한테 좀 잔소리를 듣더라도 친구들과 편하게 놀 수 있었는 공간, 그런 동네들이 그립다. 그때는 분명 '거기 가서 놀아라'식의 말은 전혀 듣지 않았지만, 요즘은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등지에서 놀아라, 라는 어른들이 적지 않겠지비. 것도 위험하다,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위험을 만든 것도 분명히 어른들이 만들어 낸 세상 때문일터인데. 여름 휴가철마다 어디든 북적이는 그런 곳에서 날씨나 거리상의 문제보다는, 사람들에게 치여 휴가를 보내야만 하는 어른들은 또 자신들이 만들어낸 공간에 애들을 적응시킬 뿐이라는거, 참... 씁쓸하면서도 아쉬운 풍경 中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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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02 05:27

    저는 어릴때 부산에 살았었는데..
    한 10년만에 가봤더니..모두 없어지고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더군요..
    어릴적 그 동네에 대한 기억은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는..

    • 2010/08/02 11:51

      어느 동네이냐...가 문제겠지욤. ^^

      제가 어릴 적 살던 동네는 아직도 안바뀌나~~~ 하면서 지나갈 때마다 혀를 차곤 합니다.-_-; 아파트 들어서는거야, 부산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똑같은 문제지욤.


사실 블로그에 개인 일상다반사를 적는다는게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中의 하나이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姓만 써놓을 뿐, 실명까지 거론하지 않는 스타일이기까지 하기 때문에 개인적 일은 어지간하면 온라인상에 남기지 않을려고 노력(?)한다. 내 블로그를 찾아오는 누군가가 '아, 이 사람 이렇게 살고있구나.'라고 판단하는걸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데 우째 오늘은 무슨 날인지는 몰라도, 사부자기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을 몇개 남겨보고자 한다.


첫째, 방청소를 하다가, 문득 눈에 띄지않던 스패어 안경을 찾는답시고 침대 구석을 뒤졌다. 뒤지고 뒤지고 있는데... 어랏? 왠 종이쪼가리가 발견된 것이 아닌가. 크기를 보아하니 그냥 종이가 아니라 '돈'처럼 보이는 것이다. 뭐, 천원짜리 한장이려니... 했는데, 왠걸, 구석에서 광명(?)을 보자마자 색깔이 녹색이다. 으하하. 청소하다가 만원짜리 줏은 그 기분, 상당히 상쾌했다. 가끔 생각치도 않게 벗어놓은 옷을 다시 입을 때, 지갑이 아닌 주머니 속에서 천원짜리나 혹은 오천원짜리가 잡힐 때 기분과는 또 다르다. 왠지 꽁돈 줏은 그 기분... 와,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당연히 내 돈인걸 알지만서도 길거리에서 천원짜리 줏은 그 기분보다 더 좋은 것 같다. 이 만원자리를 어디다 쓸까나... 부터가 그 재미의 극치라 할 수 있겠다.


핸드폰이 기어이 맛이 갔다. 스마트폰이랍시고 내 딴에는 큰 맘 먹고 핸드폰을 교체했다. 물건에 대해서 그리 애정을 갖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핸드폰의 구입과는 별도로, '교체'를 했다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뭐, 부가설명을 하자면 고장난 것도 아니고, 분실한 것도 아닌데... 굳이 기존의 핸드폰은 서랍속에 짱박아두고, 새 핸드폰을 구입한 것은, 어떻게보면 낭비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몇년간 썼던 통신사를 바꾸었음도 물론이고. 스마트폰이랍시고 다양한 기능에 매료가 되어 갖고 놀기 시작했는데, 남들이 하는 핸펀생활 이전에, 무슨 상전대하듯이 고이 모시고 다닐 지경이었다. 동호회까지 가입을 하고 드나들었는데, 액정이 약하네... 램이 적네, 다양한 단점들을 지닌 핸드폰이었다. 근데 결국 맛이 갔다. 이유도 모르겠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대책이 안서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걸 들고 또 A/S 센터까지 찾아갈려니... 왠걸~ 싶기도 하다. 시대가 변하고, 또 유행이라는 것이 찾아오면서 스마트폰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이 다음 핸드폰은 차라리 일반폰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이폰이 좋은 줄 나도 알고, 다음달이면 구글의 넥서스원이 들어오는거 정도야 나도 안다. 근데 말이다, 핸드폰 기능이 다양해졌다고 해서 내 인생까지는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말씀이야.-_-; 하여간 이 정들어버린 핸드폰, 수리를 맡겨야 할까, 아니면 새 폰으로 교체할까... 아직까지도 고민이다. 핸드폰 없는 삶, 뭐 처음은 아니지만... 일단 전화가 오든, 문자가 오든... 잠시나마 느낀 조용한 삶이라는 것를 나름 만끽하고 있는 中이다.


나는 날짜에 상당히 민감하다. 어떤 특정한 날이다, 싶으면 몇년이고 몇십년이고 기억한다. 심지어 중딩 이후로 연락이 끊긴 초딩때 반 친구의 생일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숫자에는 약한 내가, 날짜에 민감한 이유는 '사람'과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이 사람이지, 또 따지고 보면 인류와도 관계되는 날짜도 있다. 글고보니 내일은 '육이오'다. 그 넘의 육이오 때문에 동족상잔, 이라는 말을 소시적부터 들어왔고, 그 넘의 이념 때문에 반공사상이니 반공교육을 거쳐왔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그리고 하루 전에, 김일성이라는 인물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지금 한반도 정세는 어떠했을까. 아니, 그 아저씨 말고도 소련이나 중국측에서 원조를 해주지 않았으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전쟁'이라는 것은 역사학에서는 인류의 '불가피한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그 전쟁 때문에 후대가 겪어야 할 짐은 너무나 많다. 앞세대가 일으킨 짓거리를 왜 후대까지 되물려 주어야 하는가. 공산주의가 어쩌네, 민주주의가 어쩌네 하지만서도, 사람 개인의 행복으로 따진다면 각자 느끼는 만족에 따라 인생이 바뀔 법한데, 왜 윗대가리들의 하는 짓거리 때문에 나를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까지 그 책임을 져야하는지, 당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남정네들은 태어나자마자 20년 뒤에는 군대에 가야한다, 라는 세뇌를 받아야 하는걸까. 결국엔 그 전쟁이라는 것을 일으키고, 또 지금 나라를 이끌어간다라는 윗대가리들의 자제들은 어떻게든 병역면제를 위해 발악을 하시는데 말이다. 그래놓고 민주주의란다. 대놓곤 말하진 않지만, 천안함 사태니 뭐니 하면서 정치공작한 인간들을 보면 기가 차서 이민이라도 가고싶은 심정이다. 전쟁 운운하지마라,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 단 한번이라도 있어봤느냐. 나 같이 평범하게 군제대를 한 사람도 그런 상황을 겪어봤다. 전쟁에서 죽이고 싶어서 안달나기보다는, 살고싶어서 그 넘의 생존본능 때문에 총이라도 잡고 쏘는 것이다. 또 하나 있지. 전쟁전쟁 운운하지만, 인류 역사상 모든 전쟁에서는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는다. 더 많이 죽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민간인들에겐 총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인들은 전쟁에 대한 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다. 말로만 전쟁, 전쟁 운운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이제는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아니, 딱 깨놓고 얘기하나 해줄게. 군대나 갔다와서 그런 소릴 해라. 몇주짜리 훈련소 입소라도 한번 해보고 그런 소리를 하시라고. 아님 입닥치고 그냥 월드컵 8강 기원이나 하시든가.


나는 일문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또 내가 알고지냈던 일본 친구들에겐 지극히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친일파는 아니다. 차라리 반일감정을 내재한 조선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득문득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생각은... 만약 우리가 '일본'이라는 이웃나라에 대해 열등감부터 시작해서 생긴 라이벌 의식이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 마음 속 깊은 곳의 주적은 북한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일본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에게 고맙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일본 때문에 이만큼 발전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 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친일이네 뉴라이트네 하던데, 이 양반들이 말하는 것 역시 무언가의 목적의식 때문에 과장이 되었을 뿐, 사실 객관적으로 제3자 입장에서 보면 그리 틀린 얘기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제면 기사에서 지금보다 일본과 관련된 이런저런 기사가 다른나라와 비슷해질 때, 그때서야 우리는 열등감부터 시작된 라이벌 의식이라는 뿌리깊은 감정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은... 우리의 이웃나라이고, 세계 경제대국이라서가 아니라, 일본 입장에서 봐라본 일본이라는 나라에서였다. 부득이하게 본의아니게 이 나라에서 태어나서 그 역사 때문에 무조껀 일본을 배척해야 한다라고 우리나라 교육의 정규과정에서 세뇌를 당했지만, 그것부터가 열등감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역사로써 인정을 하고, 이제는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다른 나라 눈을 의식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발전해 가야하지 않을까나. 어느 분야든 자신이 가고있는 길에 열심히인 사람들은 스스로도 깨달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먼저 월드컵 16강 갔다고 일본은 갈 수 있겠나? 라며 위에서 바라만 보지 말고, 같은 아시아 지역의 국가로써 조별예선 티켓 몇장을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자, 오늘의 잡담은 이만큼만 하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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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25 01:08

    근데..일본어 중국어가 다 능통하신건가요?
    아..정말 부럽습니다.ㅠ.ㅠ
    제 꿈이 졸업 전까지 일어 중국어 능통까진 아니더라도..
    능숙한정도로 하는거거든요..흑..

    • 2010/06/25 16:51

      둘 다 그저그렇지요. 어학공부 제대로 안한지가 꽤 됩니다.
      -_-;
      그냥 아는 분야에 대해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
      그래도 사전은 필수지요. ^^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상대를 좀 더 이해하고 싶을 때 조심해야 할 항목이 바로 '허영'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가 아닌, 가식적인 모습, 어쩌면 상대에게 보이기 위해 일부로 만들어 놓은 그의 계획적 이미지에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속게 되는가.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거리가 가까워지면, 그 사람의 참모습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어랏? 이것밖에 안되네?', '뭐가 말이랑 행동이랑 다르노?'라는 생각이 잦으면서 결국 그 의심아닌 의심은, 그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변하게 된다. 그냥 실망만 한다고 끝날 문제는 아니다. 그 사람과 인연을 끊어버린다고 만사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상대에 대한 감정, 믿음등에 있어서 내 자신의 감정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엔 '내가 사람을 볼 줄 몰랐구나.'라며 자신을 질책하기 때문이다.

나 아닌 누군가가, 혹은 평생 인연을 끊을 수 없는 가족외의 사람들에게 내가 바라는 모습을 강요할 순 없다. 아니 강요를 한다는 것도 '관심' 혹은 '간섭'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가서야 한다. 이건 이렇게 해야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한다, 라고 상대에게 떠벌리는 것도, 결국엔 관심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런 사람의 감정이며, 되려 그게 지나쳐서 간섭이 되어버리면 나 스스로가 한발 물러서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필요가 있다. 얼마나 각박한 세상이 되었으며, 얼마나 사람과 사람의 신뢰가 희미해져 버린 세상이 되었는가. 아니, 세상탓을 할 것도 아니다.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내가 가진 상대의 이미지가 얼마나 허영에 차 있었는지도 간과해선 아니될 문제라는 얘기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혼자서 결정하고, 혼자서 이어나가며, 혼자서 계산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무언가, '사랑'이라는 변명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세상살이를 잘하고 있으면 그만큼 자신 스스로도 더욱 분발하여 그 사람과 평행선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며, 행여 이건 아니다... 싶은 문제가 있다면 '대화'를 통해 소통을 하든, 납득을 시키든 무언가 해결은 봐야한다. 그저 '니는 그렇게 살아라, 나는 이렇게 살란다.'라는 무관심의 행동은 둘 사이에 있어서는 아무런 발전은 물론, 도움조차 되지 않는다. 서로 배워가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살이에, 괜히 쓸데없이 관심 가져주는 척, 혹은 상대를 배려해주는 척은 시간낭비일 뿐일 것이다.

오해는 불신을 낳고, 불신은 곧 단절을 의미한다. 괜한 오해는 아닐 법한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니가 뭔데 이러쿵 저러쿵 하느냐'라는 식으로 대응을 해오면 상당히 당황스럽다. 내 입에 '모터'가 달려서 괜히 하는 얘기도 아닐지어인데, 그러한 관심을 간섭으로 받아들이며... '에이, 이건 아니잖아'라며 쉽게 지나쳤다가... 그 언젠가 주변 사람이 절실할 때 지나간 인연에 대해 후회와 함께 스며드는 자기자신에 대한 원망의 감정은... 또 우리가 살면서 몇번이나 반복해야 했던 경험들이던가.

상대의 가식적인 모습에 속지 말지어이다, 또 그런 이미지를 가슴속 깊은 속에 간직한 채, 그 이미지를 또 자신이 만드는 이미지로 변형시킨 채 간직하지도 말지어이다. 결국 모든 환상이 깨어지고 난 후에 남는 것은 자신과 상대에 대한 원망,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질  뿐이니, '허울'보다는 사람의 속마음, 그리고 자신의 속마음과 끈을 이어보고... 서로 마음을 터놓는 흉금없는 사이가 진정으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믿을 수 있는, 기댈 수 있는 관계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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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22 00:17

    비밀댓글 입니다



사실 내가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넘은 고작해봐야 두넘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동갑나이로 인해 나도 모르게 '친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벌나니까, 또 그렇다고 그냥 '아는 사람'이라기엔 너무 정내미가 떨어지니, 그냥 통용적으로 쓰이는 '친구'라고 해두자. 하여간 이 서로 친구라고 부르는 넘과 거의 꽤나 오랜시간을 함께 있었고, 그 중 3~4시간동안은 소주 잔을 기울이며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순진하게 살아온 것 같진 않은 아해인데, 이번 사랑은 좀 벅찼나보다. 아니, 기대심리가 컸다고 말하는게 정확하겠지. 지금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저 바람처럼 스쳐가는 '여자관계'로 기억될 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남녀관계'에 대해선 관심은 많아도, (아직은 유부남이 아니니까-_-;) 그렇다고 해서 딱히 조언까지 해줄만한 그릇은 되지 않는다. 한참을 듣고, 또 맞장구도 치다가... 그냥 내딴에 든 생각은 지금의 이 '상처'가 훗날 너의 뼈와 살이 되는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다, 였다.

남녀관계의 문제에서 생기는 서로간의 혹은 일방적인 '상처'를 그냥 그려러니 넘어가선 절대 되지 않는다.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할 필요까진 없으나, 상대방의 행동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나의 행동에 대한 반응이 아닐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해를 할 필요도, 또 그렇다고 이해를 바랄 필요도 없다. 서로의 반응을 확인해가면서 쌓이는 것이 남녀간의 '사랑타령' 아니겠는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니, 그냥 이 골방 블로그 안에서 '화이팅'을 외쳐줄 수 밖에.


정승호 아저씨가 그랬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아 생각난 김에... 그 詩를 좀 펌해야겠다.-_-;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숲속에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있다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이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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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24 19:13

    헉...저거 어묵 아닌가요? 완전 맛있겠군요.
    부산은 먹을 거 천국이네요.


서로 웃다가도 칼부림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관계'라는 것이다. 사랑하다가도 증오할 수 있는 관계 역시 남녀관계이기 이전에 '사람관계'이다. 지금 당장,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신의 소유물 혹은 친인이라고 쉽게 단정짓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이제껏 내가 봐왔던 '사람의 관계'를 통해 알게된 나름대로의 진리는, 쉽게 가까워진만큼 멀어지기 역시 쉬운 법이며, 서로가 원해 자주 만나는 사이라 할지라도 일순간 그 중간에 '매개체'가 존재하지 않게된다면 재회를 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라는 것이다. 괜히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사람관계를 더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끼리끼리' 현상이다. 모든 이가 같은 마음일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무리 속에서 그나마 '마음'이 맞는 이들이 모여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형성하며, 그 무리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나면 되려 울타리밖의 이들과는 담을 쌓게 되기도 한다. 그 무리에 오래있었다고 해서 무슨 우월감 따위나, 혹은 자신감 따위는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편이 좋다.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에 나 역시도 그럴 때가 있었고, 그런 깨달음이 뒤늦게와서 끼어들려고 하는 이도 있으니... 울타리 속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이 역시 막으면 아니된다는 얘기이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사람은 결국 가족외에는 모든 '남'들 앞에 있어선 '자기본위'이다. 어느 누군가와 조금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내가 그 사람을 대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그 사람 역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기대감은 결국 부질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인지, '사람관계'에서 가장 애매한 경우가 두 사람 사이에 내가 중간에 끼어져버린 경우다. 나는 이런 경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쪽 말을 들으면 이쪽이 맞는 것 같고, 저쪽 말이 맞으면 저쪽 말이 맞다. 그렇다고 내가 중재하기에도 아직은 그만한 그릇이 되지 않거니와, 또 그렇다고해서 굳이 그 둘 문제로 인해 내 머리까지 복잡해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 바로 '그저 들어주기'이다. 방관자라 해도 좋고, 무관심하다고 해도 좋다. 괜한 간섭했다가 양쪽으로부터 질타를 당할 경우를 생각해봤는가. 아까 언급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자기본위적'이라고.


아무리 연약해 빠지고,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 '사람'이라는 동물이라지만, 필요 이상으로 주변인까지 끌여들여서 괜한 문제를 복잡하게, 그리고 크게 만들어버리는 나쁜 버릇은 없애버리는 것이 좋다. 단순한 '투정' 때문에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변하기 마련이니까.


오늘 새벽은 江美琪의 '夜的詩人'이 나를 괴롭히는누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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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시적부터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허벌나게 잔소리를 들어왔다. 그렇다. 뭐 하나 필이 꽂히면 한동안은 그 분야나 물건이 빠져있다가 어느정도 익숙하다 싶으면 나 몰라라~하고 뒤돌아 섰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디 분야나 물건만 그럴까나, 공부를 할 때도 그랬고, 사람과의 만남을 가질 때도 그랬다. 순간 확~ 달아올랐다가, 어느새 급랭하는 내 마음, 내 기분을 느낄 때면 그 당시엔 절대 몰랐겠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아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조선 사람하면 또 '냄비근성'을 빼놓을 수가 없다는데... 이거 원, 나는 내 인생 자체가 냄비처럼 살아온 건 아니었는지, 사못 걱정어린 시선으로 나 자신을 한번 흘겨주고 싶다.-_-;;;

그렇다. 무슨 일이든지 간에 시작을 했으면 끝장은 못 보더라도, 어느 정도 꾸준함을 지니어야 한다. 처음 시작은 자신의 호기심내지 스스로의 특출난 다짐으로 발을 내딛게 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하거나 혹은 또다른 흥미거리가 생겼을 경우, 아니면 귀차니즘으로 인한 지겨움으로 인해 언제 그랬냐는 듯 흐지부지 된다면, 그 알량한 시작이 안타깝지 않을쏘냐. 뭐, 그래도 이 정도야~ 사람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아니 누구나 다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용납도 해준다 치자. 하지만, 그 따위로 발만 살짝 담궜다가, 그 따위로 맛만 봤다가 언젠가 그때를 뒤돌아보며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왕년에는~"이나 "내가 ~를 좀 했었지~" 하면서 자랑스런 창작 무용담을 내뱉는다는 자체가 역겹다. 차라리 그렇게 하기보다는 좀 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때 왜 하다가 말았을까 내지, 내가 잠시 경험한 적이 있다, 라며 간단히 말하는 편이 훨씬 낫다.

뭐가 그렇게 자기 자신을 포장하고 싶은지, 그 잠시동안의 시간이 무슨 자기 자신의 인생의 굳은 시간이 된 것처럼 자랑스레 떠벌리는 짓거리는, 스스로를 위해서도, 또한 지금까지 자신을 믿어오던, 믿어주던 사람에게는 득되는 일이 절대 아닐 것이다. 과거의 어떠한 시기의 경험이 세월이 흘러 현재의 자기자신에게 어떻게 남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단지 그 일시적 경험으로 남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포장해버리는 짓거리... 오늘 하루 밖에 나가 신선한 공기 마시는 것조차도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지어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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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4 03:50

    아...참 좋은 글입니다.


원문글 : 2008년 11월 7일

언젠가부터 짬이 날 때마다, 그러니까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나, 심지어 아파트를 내려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혹은 잠이 안와 잠시나마 딴짓거리를 할 때... 일명 '시간 떼우기'를 할 때마다 핸드폰이나 전자사전 안에 있는 '텍스트 뷰어'를 이용해서, 10년전, 아니 근 20년전에 읽었던 김용(金庸) 선생의 작품들을 짬짬히 읽어나가고 있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단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멍하니 창밖이나 사람들을 둘러보기엔 별다른 재미가 없거니와, 그렇다고 읽어야 하는 책들을 읽기엔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런저런 음성화일들을 들으며 잠을 잤지만, 언젠가부터는 잠이 들기 직전, 그 고요한 상태가 어찌나 평온한지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 눈이 감기고 잠이 들기 직전 몽롱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 뭐라도 하나 더 읽기로 했다. 책을 읽기엔 자기 전에 불끄기가 귀찮고, 또 휴대용으로는 핸드폰이나 전자사전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용하는 것 뿐이다. 그려러니 했는데... 벌써 이 짓거리가 반년이 훨씬 넘었다.-_-; (우째우째 구해진 김용선생의 무협지 TXT화일들, 특히 그것들을 타자화 시킨 분들에게 고마울 따름.)

이제까지 읽은 것은 영웅문 2부, 3부인 신조협려와 의천도룡기, 그리고 소오강호였으며, 또한 책으로는 읽지못한 연성결까지도 전부다 읽을 수 있었다. 요즘은 천룡팔부를 갓 읽기 시작했다. 연성결은 80년대에 홍콩의 TVB에서 찍은 곽진안, 여미한, 증강, 사녕 주연의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드라마의 내용과 원작 내용과는 별로 다를 바는 없었던 것 같다. (역시나 8,90년대 홍콩 TVB 무협물들은 00년대부터 나온 대륙판 시리즈물보다 좀 더 원작에 충실한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책으로 다시 읽는 재미도 있겠지만, 나는 소시적부터 책보다 무협시리즈를 영상으로 먼저 본 것이었고, 책이 주는 재미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었다. 내용이나 전개방식이 비슷하다면, 원작인 글이 낫은지, 영상으로 된 2차 창작물이 낫은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있는 숙제이긴 하지만, 일단 내 경험 자체가 영상 먼저, 글자 이후였으니... 별다른 바 없이, 그냥 확인 단계를 거쳤던 것 같다. 이게 고딩 1학년때까지 이야기이다. 초딩때부터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 있는 무협시리즈를 섭렵하기 시작했는데, 중학교때부터는 책을 직접 사서 읽어나갔었다. (아, 책값~ 이 돈으로 딴 책을 샀으면...-_-;) 물론 그렇다고 김용선생의 모든 작품들을 구매했던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것들, 특히 내가 본 비디오에서 기억에 남는 것들만 사게 되었는데, 딱 '연성결'은 빠져있더라고. (아참, 협객행도... -_-; 이건 원작과 내용이 다른데, 스토리 전개상으로는 영상물이 좀 더 낫은 듯.) 아무래도 다른 작품들보다는 짧은 편이었고, 이에 더불러 협객행 역시 당시 동네 서점에는 팔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암튼 난, 초딩때부터 어지간한 김용 선생의 작품들은 영상을 통한 드라마로 거의 다 보았고, 또한 고1때까지 어지간한 김용선생의 작품들을 글로써 다 읽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친구들보다는 '무협'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오타쿠로 취급되었고, 또한 나 역시도 자연스레 중국에 대한 나라와 가까워지고, 최근 몇년까지도 '무협'을 주제로 중국인과 대화를 할 때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단, 김용선생의 작품에 한해서이다.-_-;

그런데 말이다, 확실히 소시적에 보았다, 읽었다라고는 하지만, 나이를 좀 더 먹고 다시 보거나 읽었을 때는 감흥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재미를 위해, 마약과 같이 할 수 없이 자연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면, 지금에 와서는 별 생각없이, 꼭 보고싶어서 혹은 읽고 싶어서 읽는 것도 아닌데, 그때의 해석과 지금의 해석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뭐, 세상 조금 더 살아봤으니까 그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지만서도,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생각은, 나 역시 무협의 영향을 받아 내 나름대로의 가치관의 형성과 관련이 있겠지만, 나이를 좀 더 먹고 읽어보니, 차라리 예전에 읽지 않았다면, 그 당시에 별다른 실수없이 그냥 넘어가게 된 경우도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소오강호(笑傲江湖)의 영호충(令狐冲)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협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일반화 되어버린 가정 中의 하나가, 한 여인의 향한 일편단심과 또한 그렇다고 해서 주변의 다른 여인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 '다정(多情)', 그리고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어 자신의 능력이 향상되는 '기연(奇緣)', 마지막으로 항상 정의를 위하면서도, 결국엔 그가 추구한 정의가 무엇인지 고뇌를 하다가 모든 것을 이루기 바로 전에, 명예과 권력을 뒤로 하고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모습' 정도라고 하겠다. 이런 점들은 김용선생의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는데, 일단 생각나는대로 소오강호의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영호충은 고아이다. 그리고 부모님같은, 아니 부모님 역할 뿐만 아니라 스승의 역할을 하는 군자검(君子劍) 악불군(岳不群)의 밑에서 자라지만, 엄한 스승의 영향보다는 자신의 천성인 자유분방함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소오강호의 내용이 끝날 때까지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면 바로 악불군의 딸, 영호충의 사매인 악영산에 대한 일편단심이다. 소오강호의 시작과 동시에 의림이라는 비구니와 또한 이후에 인생을 더불어 사는 임영영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어릴적부터 같이 자라온 악영산에 대한 집착은 절대 버리지 못한다. 임영영 또한 그러한 영호충의 모습에서, 남자로써의 책임감 혹은 숭고한 사랑을 높이 사며, 그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처음엔 그렇다 치더라도, 나중에는 정말 미련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악영산을 잊지 못한다. 6,70년대식의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인가... 이걸 남녀간의 사랑이라고 해야하는지, 죽마고우의 정(情)이라고 해야하는지... 지금에 와서보면 절대 그렇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 속 한켠에는 이미 지나가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아있기만 해야지, 남은게 쓸모가 있어져 버리면 큰일난다.-_-;) 

영호충은 (사실 영호충 뿐만 아니라, 김용선생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대게 다 그렇다만) 의림, 그리고 임영영과 알게 되면서도 그녀들에게 자신 스스로는 최소한 俠의 명분으로 위험에서 구해주며, 만남에 있어 존중한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또 그렇지 않다. 상대방은 해야할 도리를 다 한다고 잘해주거나, 혹은 도움을 주는 것이겠지만, 사람에게는 '받음'의 행위보다는 스스로 느끼는 '받음'의 의미가 마음 속 깊이 새겨지므로, 비구니 신분인 의림 역시 작품의 결말 때가 될때까지 영호충에 대해 이루지 못하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그의 행복을 기원하는 순정을 가지며, 임영영은 악영산에 대해 여러모로 집착을 가지는 영호충에 대해 그녀의 여자로써의 질투를 절대 그에게 보이기는 커녕, 되려 미리 이해를 하기까지 한다. (이게 소설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하다.) 사실 따지고보면, 김용 작품내에서의 여자들의 질투하는 모습은 여러 차례 그려져 있기는 하나, 그 문제 때문에 야기되는 것은 주변인물들에게 일어나는 부수적인 사건들밖에 없다. 주인공은 결국 정해진 인연에 따라가는 것이다.
 

아, 영호충役의 윤발형과 악불군役의 증강 아저씨는 찰떡궁합이었다.

사부의 명으로 사과애에서 면벽을 해야하는 영호충에게 찾아온 필연적인 기회, 바로 '풍청양(風清揚)'이라는 같은 파 선배고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 역시도 풍청양이라는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소오강호의 이야기는 더이상 전개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증진된 영호충의 무공에 은근 시기하는 악불군의 모습에서, '청출어람'이라는 유교적 성어보다도, 사람의 내면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낳은 것은 아니지만, 키워준 분들 부모로써 대하는 것이 있다면, 키움으로써 자식같이 대하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소오강호에서의 군자검 악불군은 자신의 사숙인 풍청양이라는 인물이 영호충에게 전수해준 무공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며, 더우기 사람의 추잡한 본능을 보이기 시작한다. 고사성어 또는 4사성어라는 말들은, 중국인들의 지난 수천년동안 뇌리속 아니 뼈속깊이 파고드는 인생의 진리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보다 먼저 서양을 향한 문을 열게된 중국이 1900년대에 이르러서는 일본보다 더 늦을 수 밖에 없었던 것 또한 그들이 갖고 있던 습성, 관습등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용작품내에서의 일명 '군자검'이라는 별칭을 가진 악불군은 자기보다 잘난 제자를 절대 용납하지도, 그리고 인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래서 그의 야망을 향한 목표에 눈이 멀어, 거세를 하면서까지 피사검법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야망이나 명예를 위해 눈앞의 이익을 쫓으며, 가족은 물론이고, 제자들과 주변인들까지 안중에 두지 않고 자신을 버리기까지 한다. 소시적에 이 대목을 보았을 때는 단지, 악불군이라는 사람이 욕심이 많아서, 야망이 커서 자기 스스로 무너진 꼴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든 생각은 어릴적부터 직접 키우고 가르친 제자가 자신보다 더 뛰어나게 된 것으로 인한 자격지심의 영향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짜등가 영호충은 세속의 규율에 굳이 얽메이지는 않으면서도, 그래도 '협(俠)'을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겪고, 해결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그 역시도 이후에는 모든 세속의 지위 그리고 짐들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배우자인 임영영과 더불러 은거를 하게 된다. 세상사 일장춘몽, 결국 여느 작품에서와 같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강호라는 세상을 겪으며 느꼈던 것들에 대한 답이 바로 '소오강호(笑傲江湖)'라는 제목의 뜻이 아닐까 싶다. 강호에 몸담으며 그 곳의 도리와 규칙에 따라 평생을 행동하였건만, 결국에는 '강호'라는 세상 역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욕심의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파(正派)든, 사파(邪派)든 편만 갈랐을 뿐이지,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같다. 그들이 하는 행동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소오강호(笑傲江湖)'의 어원.

 사실 김용선생의 작품의 전반적인 결론을 보면, 중후반부에서는 꼭 대의를 위해 이 한몸 받치는 주인공이 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할만큼 다 하고, 그래서는 아니지겠지만 결국은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간에 그 자리를 털고 사라지는 것이다. 몽고여자인 조민을 위해 명교의 교주를 버리고 떠나는 의천도룡기의 장무기의 모습이나, 강호 제일의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척방의 아이를 안고 변방으로 떠나는 연성결의 적운의 모습, 그리고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 살겠다는 신조협 양과는, 남들에게 대협의 칭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묘로 들어가 은거를 한다. 사실 역사적 사실과 혼합한 내용을 주로 쓴 김용선생 작품의 한계라고도 말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는, 결국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세상, 생활을 위한다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요번이 소오강호를 끝까지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는 바로 '믿음(信)'이었다. 믿음이 없다면 오해를 할 수 밖에 없으며, 오해는 곧 불신을 말한다. 믿음은 쌓기 힘들지만, 또한 무너지기도 쉬운 것으로, 이는 인간관게에 있어서 상당히 무서운 것이다. 믿어주길 원하거나, 혹은 이제까지의 나를 수십년간 봐왔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왜 영호충의 말이나 언행을 사부인 악불군이나 그의 첫사랑인 악영산은 믿지 못했을까였다. 한번이라도 제대로 얘기를 했다면, 아니 그래도 고아때부터 키워오고, 같이 자란 죽마고우라면... 어떠한 행동을 보였든지 간에 믿음을 보여줄 수 있을텐데... 라는 안타까움이 남았을 수 밖에......


김용 작품을 시대순으로 보면 사조영웅문(南宋) -> 신조협려(宋末) -> 의천도룡기(元末) -> 소오강호(明初) 정도이다. 사조영웅문에서는 스승을 어버이 같이 보라는 유교의식이 팽배해져 있으나, 신조협려에서는 스승을 아내로 삼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의천도룡기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의 스승이 분명치 않다. 소오강호에 이르러서는, 스승 역시 사람이며, 사리사욕을 가진 이를 스승으로 삼아야 하겠냐는 문제제기를 해놓지 않았을까, 하는 망구 내 생각.-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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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0 18:29

    비밀댓글 입니다

  2. 2010/06/13 00:57

    비밀댓글 입니다

  3. 2010/07/18 01:20

    비밀댓글 입니다


PC통신을 하면서... '번개'라는 단어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었다. 어느 동호회의 채팅방에서... 어느 날 저녁, 날도 더운데 광안리 백사장에 앉아서 맥주나 한캔할까? 로 모였던 것이 내 인생 최초의 번개였다. 물론 고딩 신분이었던지라, 맥주캔은 손에 잡지도 못했지만.-_-; 이후 번개든 모임이든 줄기차게 나갔다. 대인 접대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 즐거움을 찾았던 나로서는 당연했던 일. 근데, 군제대를 하고나니 이전의 그 인스턴트식 만남에 대해서 차츰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그리 공통관심사가 없는 사람들이 단지 '사람이 좋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어 나름 각자의 외로움을 해소시키는 만남, 그리곤 어느덧 그 즐거웠던 한때를 보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개인적인 연락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제외하곤, 그 어떤 누구도 지금 내 주소록에 남아있지 않다.

중국에서 유학할 당시에 어리버리 받아들였던 '감투' 때문에 이런 모임을 아예 주선까지 해야만 했었다. 모임을 준비하고, 모여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하고, 그리고 이후 그때를 되돌아 봤을 때 내 스스로도, 그리고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마냥 놀지만은 않았다, 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나름 분주히 뛰어다녔다. 이 역시도 지금 돌이켜보면 머릿속에 기억만 남았을 뿐, 추억으로 돌이키기에도 역부족한 듯 싶다. 이후로는 인터넷을 통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아니, 그냥 쉽게 생각해서 다 부질없다, 그것이 정답이었겠지비. 이상스레... 어릴 적부터 그냥 내 생활을 통해 만나는 사람과,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는 사람들 사이의 묘한 금을 그었던 것이다. 분명 똑같은 사람인데, 인연을 맺는 동기나, 혹은 그 만남을 이어가는 주제 따위에 신경을 썼나보다.


몇일 전에 Twitter를 통해 한 사람을 만났다. 나이차가 꽤나 있었지만 그건 나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어린 아해들과도 별다른 부담없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철부지 같은 성격을 연마해 왔었기 때문에,-_- 절대 나이가 많다,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권위적이거나, 혹은 잘난 체를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관심사... 아니 어쩌면 나도 그 나이 때 비슷한 고민도 했었고, 비슷한 길을 가고자 생각했었기 때문에 비어드는 술잔과 함께 이바구는 이어져 갔다. 근... 2시간 반, 더 이상 계속 자리를 같이 하게되면 상대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았다. 또한 언제부터인지 새벽 2시 이후의 술자리는 그리 좋은 결과(?)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는지, 2시가 땡~ 하자, 살포시 자리를 마무리 지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갔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풀었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지금은 각자의 인생에 가장 집중해야 할 시기이기에 다음의 만남을 기약할 여유도 없다. 인연이 닿는다면, 혹은 이런 간단한 만남을 통해 서로에 대해 조그나만 신뢰가 생긴다면 또 자리를 하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여러가지 종류의 만남이 있는데, 가끔은 그냥 상대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혹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람과 사람은 만나는 것이다.

青山不改, 绿水长流, 后会有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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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을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솔직히 '사랑'이라는 어휘를 쓴다는 자체도 어색하다.-_-; 그래도 좋아한다는 감정은 알고, 그런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약간 알 것 같다. 또한 그러기 위해선 어떠한 책임감이나, 혹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약간은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릿속이나 혹은 이론상으로 알고만 있을 뿐이지, 그것을 제대로 표현을 하든지, 혹은 상대에게 그 마음을 전달하는지는 아직도 아리달쏭하기만 하다.

그래, 혼자서 돈 안 들고, 그래도 덜 어색한 '글'을 이용해보자. 사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멋드러진 문장으로 마음을 전해볼까? 아니, 남이 쓴 멋드러진 문장을 내 식대로 꾸며볼까. 사실 그럴 필요없다.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자신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 역시 말로야~ 그려러니 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_-+ 어쩌면 차라리 드래곤볼에서 나오는 상대의 파워를 측정할 수 있는 안경으로... 내가 상대에게 얼마나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숫자라도 산출해 낼 수 있다면 모르겠다. 어쩌면 차라리 내 배를 가르고 내 심장이 콩닥콩닥 뛰어서 가슴이 터질것만 같은 것을 직접 보여줄 수 있다면 모르겠다. 참으로 어려운 것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또 그것으로 인해 이해받을 수 있는 일일터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시간'이 아닐까나. 잠시나마 사랑에 눈이 멀어 미친 척, 다 해주는 척, 간이나 쓸개 빼주는 척 하는 것이야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 그리고 '시간'이라는 기간을 통해 이래저래 얻게된 신뢰감으로 서로에 대한 어느정도의 믿음만 있다면, 적어도 척~ 한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말이나 글이 아닌, 실제 현재에 닥쳐진 상황에서 행동으로써 상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도 약간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혼자 생각해도 이렇듯 복잡한 문제가, 결국엔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결론에 이르면 참으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나 혼자서 좋다고 이러쿵 저러쿵 오도방정 뜬다고 그 누구하나 제대로 알아주는 것도 아니며, 나는 아닌데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호감을 가진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맞장구를 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Give & Take라는 것이 단지 물질적으로나 행위에 있어서 주거니 받거니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아무런 조건없이 서로간에 주고받을 수 있는 호감을 탁구나 테니스처럼 주거니 받을 수 있다는 자체 역시 행복한 일 아니겠는가.

허무맹랑한 소리같지만, 분명 '사랑'에 대한 이런저런 좋은 글을 쓴 이들은 글로써 표현한 것 이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분명 본인이 느낀 그대로 쓰고싶었으나, 글로써는 100% 다 표현하지 못해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그리하여 따뜻하게 된 감정을 위안삼아 좀 더 행복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답내지 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그 자체가 자기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이려니...~ 아니, 어쩌면 '사랑'이라는 넘은 나 스스로 깨닫기보다는, 그 상대로 인해 내가 배워가는 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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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인가... '한달 그리고 10日'이라는 포스팅을 했었다. 당시 누군가와의 만남을 고대하는 설레임에 벅차 망구 생각나는대로 지껄였을 뿐인데, 데자뷰인가... 아니면 재현인가,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그때는 한달하고도 십여일이었지만, 지금은 하루 그리고 한시간... 즉 25시간이다. 참 이런 기분, 감정 갖는다는 것이 일상생활에선 찾기 힘든 일일터인데, 나는 벌써 두번째 겪고 있다. 만나길 희망한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머리가 크고나서 처음으로 했던 첫사랑이든, 나 혼자 마음 졸이며 밤을 지새며 했던 짝사랑이든, 혹은 100일이든 1000일이든, 어쩌면 10년, 어쩌면 30년이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다라고 믿고 싶다. 아니, 믿고 있다. 사실 여유를 부릴만한 상황도 아닐 뿐더러, 어쩌면 앞으로 더욱 주변에 대해 신경써야 할 때이다. 하지만, 이렇게 느지막한 시간에... 나 홀로 이럴까, 저럴까 오도방정을 떨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만족한다. 또한 이런 감정을 다시 갖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요즘 간간히 드는 생각이 나는 내딴에 주변사람들을 소중히 한다, 라고 생각했건만 실질적으로 나 자신만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고, 또 어떤 행동을 취하든지 간에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망구 내 마음대로 해왔다, 라는 것을 반성하기도 한다. 사실 예전에는 '시간이 지나면 이해해주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세상에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테니까. 음악을 통해 뜻이 맞는 이를 지음(知音)이라 했고, 나를 알아주는 이를 지기(知己)라고 했다. 과연 살면서 이런한 이들을 몇이나 옆에 두고 살아갈 수 있을까.

가깝게는 친구든, 연인이든... 모두 그런 관계로 묶어서 정해버리기 이전에, 사람 對 사람, 인간 對 인간으로서의 끈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친구라서 모든 것을 이해해 줄 수 없듯이, 애인이라고 모든 이해를 바랄 수 없듯이... 어쩌면 '緣'이라는 이름으로 이 드넓은 세상,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이어진만큼, 나와 상대와의 일대일 관계부터 생각해야 할지어이다.

가끔 南京의 하늘은 요상한 깔을 내기도 한다.

구닥다리 같은 얘기지만, 나도 경험한 적이 있고, 또 오늘 우연찮게 어느 고민게시판에서 나온 '의남매였으면 좋겠다.'라는 말... 그런 사이를 원하는 이라면 분명 욕심이 목구멍까지 차서 결국엔 일정 시간까지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줄, 그리고 소중히 대해줄 이를 찾지 못하고 방황을 하리라. 아니 어쩌면 그런 관계라도 승락하는 상대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랑의 바보일지도 모르겠지비. 그런 순진무구, 순수... 그리고 유치찬란한 남정네가 이 세상에 얼마나 남아있을까... 싶기도 하고.


햐~ 재미난 것이 링크글과 이 글의 발행시간이 거의 비슷하구마이.-_-; 새벽 3시는 사람들이 적당히 미치기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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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uri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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