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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글 : 2008년 11월 7일

언젠가부터 짬이 날 때마다, 그러니까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나, 심지어 아파트를 내려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혹은 잠이 안와 잠시나마 딴짓거리를 할 때... 일명 '시간 떼우기'를 할 때마다 핸드폰이나 전자사전 안에 있는 '텍스트 뷰어'를 이용해서, 10년전, 아니 근 20년전에 읽었던 김용(金庸) 선생의 작품들을 짬짬히 읽어나가고 있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단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멍하니 창밖이나 사람들을 둘러보기엔 별다른 재미가 없거니와, 그렇다고 읽어야 하는 책들을 읽기엔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런저런 음성화일들을 들으며 잠을 잤지만, 언젠가부터는 잠이 들기 직전, 그 고요한 상태가 어찌나 평온한지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 눈이 감기고 잠이 들기 직전 몽롱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 뭐라도 하나 더 읽기로 했다. 책을 읽기엔 자기 전에 불끄기가 귀찮고, 또 휴대용으로는 핸드폰이나 전자사전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용하는 것 뿐이다. 그려러니 했는데... 벌써 이 짓거리가 반년이 훨씬 넘었다.-_-; (우째우째 구해진 김용선생의 무협지 TXT화일들, 특히 그것들을 타자화 시킨 분들에게 고마울 따름.)

이제까지 읽은 것은 영웅문 2부, 3부인 신조협려와 의천도룡기, 그리고 소오강호였으며, 또한 책으로는 읽지못한 연성결까지도 전부다 읽을 수 있었다. 요즘은 천룡팔부를 갓 읽기 시작했다. 연성결은 80년대에 홍콩의 TVB에서 찍은 곽진안, 여미한, 증강, 사녕 주연의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드라마의 내용과 원작 내용과는 별로 다를 바는 없었던 것 같다. (역시나 8,90년대 홍콩 TVB 무협물들은 00년대부터 나온 대륙판 시리즈물보다 좀 더 원작에 충실한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책으로 다시 읽는 재미도 있겠지만, 나는 소시적부터 책보다 무협시리즈를 영상으로 먼저 본 것이었고, 책이 주는 재미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었다. 내용이나 전개방식이 비슷하다면, 원작인 글이 낫은지, 영상으로 된 2차 창작물이 낫은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있는 숙제이긴 하지만, 일단 내 경험 자체가 영상 먼저, 글자 이후였으니... 별다른 바 없이, 그냥 확인 단계를 거쳤던 것 같다. 이게 고딩 1학년때까지 이야기이다. 초딩때부터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 있는 무협시리즈를 섭렵하기 시작했는데, 중학교때부터는 책을 직접 사서 읽어나갔었다. (아, 책값~ 이 돈으로 딴 책을 샀으면...-_-;) 물론 그렇다고 김용선생의 모든 작품들을 구매했던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것들, 특히 내가 본 비디오에서 기억에 남는 것들만 사게 되었는데, 딱 '연성결'은 빠져있더라고. (아참, 협객행도... -_-; 이건 원작과 내용이 다른데, 스토리 전개상으로는 영상물이 좀 더 낫은 듯.) 아무래도 다른 작품들보다는 짧은 편이었고, 이에 더불러 협객행 역시 당시 동네 서점에는 팔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암튼 난, 초딩때부터 어지간한 김용 선생의 작품들은 영상을 통한 드라마로 거의 다 보았고, 또한 고1때까지 어지간한 김용선생의 작품들을 글로써 다 읽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친구들보다는 '무협'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오타쿠로 취급되었고, 또한 나 역시도 자연스레 중국에 대한 나라와 가까워지고, 최근 몇년까지도 '무협'을 주제로 중국인과 대화를 할 때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단, 김용선생의 작품에 한해서이다.-_-;

그런데 말이다, 확실히 소시적에 보았다, 읽었다라고는 하지만, 나이를 좀 더 먹고 다시 보거나 읽었을 때는 감흥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재미를 위해, 마약과 같이 할 수 없이 자연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면, 지금에 와서는 별 생각없이, 꼭 보고싶어서 혹은 읽고 싶어서 읽는 것도 아닌데, 그때의 해석과 지금의 해석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뭐, 세상 조금 더 살아봤으니까 그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지만서도,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생각은, 나 역시 무협의 영향을 받아 내 나름대로의 가치관의 형성과 관련이 있겠지만, 나이를 좀 더 먹고 읽어보니, 차라리 예전에 읽지 않았다면, 그 당시에 별다른 실수없이 그냥 넘어가게 된 경우도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소오강호(笑傲江湖)의 영호충(令狐冲)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협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일반화 되어버린 가정 中의 하나가, 한 여인의 향한 일편단심과 또한 그렇다고 해서 주변의 다른 여인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 '다정(多情)', 그리고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어 자신의 능력이 향상되는 '기연(奇緣)', 마지막으로 항상 정의를 위하면서도, 결국엔 그가 추구한 정의가 무엇인지 고뇌를 하다가 모든 것을 이루기 바로 전에, 명예과 권력을 뒤로 하고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모습' 정도라고 하겠다. 이런 점들은 김용선생의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는데, 일단 생각나는대로 소오강호의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영호충은 고아이다. 그리고 부모님같은, 아니 부모님 역할 뿐만 아니라 스승의 역할을 하는 군자검(君子劍) 악불군(岳不群)의 밑에서 자라지만, 엄한 스승의 영향보다는 자신의 천성인 자유분방함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소오강호의 내용이 끝날 때까지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면 바로 악불군의 딸, 영호충의 사매인 악영산에 대한 일편단심이다. 소오강호의 시작과 동시에 의림이라는 비구니와 또한 이후에 인생을 더불어 사는 임영영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어릴적부터 같이 자라온 악영산에 대한 집착은 절대 버리지 못한다. 임영영 또한 그러한 영호충의 모습에서, 남자로써의 책임감 혹은 숭고한 사랑을 높이 사며, 그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처음엔 그렇다 치더라도, 나중에는 정말 미련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악영산을 잊지 못한다. 6,70년대식의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인가... 이걸 남녀간의 사랑이라고 해야하는지, 죽마고우의 정(情)이라고 해야하는지... 지금에 와서보면 절대 그렇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 속 한켠에는 이미 지나가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아있기만 해야지, 남은게 쓸모가 있어져 버리면 큰일난다.-_-;) 

영호충은 (사실 영호충 뿐만 아니라, 김용선생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대게 다 그렇다만) 의림, 그리고 임영영과 알게 되면서도 그녀들에게 자신 스스로는 최소한 俠의 명분으로 위험에서 구해주며, 만남에 있어 존중한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또 그렇지 않다. 상대방은 해야할 도리를 다 한다고 잘해주거나, 혹은 도움을 주는 것이겠지만, 사람에게는 '받음'의 행위보다는 스스로 느끼는 '받음'의 의미가 마음 속 깊이 새겨지므로, 비구니 신분인 의림 역시 작품의 결말 때가 될때까지 영호충에 대해 이루지 못하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그의 행복을 기원하는 순정을 가지며, 임영영은 악영산에 대해 여러모로 집착을 가지는 영호충에 대해 그녀의 여자로써의 질투를 절대 그에게 보이기는 커녕, 되려 미리 이해를 하기까지 한다. (이게 소설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하다.) 사실 따지고보면, 김용 작품내에서의 여자들의 질투하는 모습은 여러 차례 그려져 있기는 하나, 그 문제 때문에 야기되는 것은 주변인물들에게 일어나는 부수적인 사건들밖에 없다. 주인공은 결국 정해진 인연에 따라가는 것이다.
 

아, 영호충役의 윤발형과 악불군役의 증강 아저씨는 찰떡궁합이었다.

사부의 명으로 사과애에서 면벽을 해야하는 영호충에게 찾아온 필연적인 기회, 바로 '풍청양(風清揚)'이라는 같은 파 선배고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 역시도 풍청양이라는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소오강호의 이야기는 더이상 전개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증진된 영호충의 무공에 은근 시기하는 악불군의 모습에서, '청출어람'이라는 유교적 성어보다도, 사람의 내면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낳은 것은 아니지만, 키워준 분들 부모로써 대하는 것이 있다면, 키움으로써 자식같이 대하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소오강호에서의 군자검 악불군은 자신의 사숙인 풍청양이라는 인물이 영호충에게 전수해준 무공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며, 더우기 사람의 추잡한 본능을 보이기 시작한다. 고사성어 또는 4사성어라는 말들은, 중국인들의 지난 수천년동안 뇌리속 아니 뼈속깊이 파고드는 인생의 진리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보다 먼저 서양을 향한 문을 열게된 중국이 1900년대에 이르러서는 일본보다 더 늦을 수 밖에 없었던 것 또한 그들이 갖고 있던 습성, 관습등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용작품내에서의 일명 '군자검'이라는 별칭을 가진 악불군은 자기보다 잘난 제자를 절대 용납하지도, 그리고 인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래서 그의 야망을 향한 목표에 눈이 멀어, 거세를 하면서까지 피사검법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야망이나 명예를 위해 눈앞의 이익을 쫓으며, 가족은 물론이고, 제자들과 주변인들까지 안중에 두지 않고 자신을 버리기까지 한다. 소시적에 이 대목을 보았을 때는 단지, 악불군이라는 사람이 욕심이 많아서, 야망이 커서 자기 스스로 무너진 꼴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든 생각은 어릴적부터 직접 키우고 가르친 제자가 자신보다 더 뛰어나게 된 것으로 인한 자격지심의 영향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짜등가 영호충은 세속의 규율에 굳이 얽메이지는 않으면서도, 그래도 '협(俠)'을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겪고, 해결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그 역시도 이후에는 모든 세속의 지위 그리고 짐들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배우자인 임영영과 더불러 은거를 하게 된다. 세상사 일장춘몽, 결국 여느 작품에서와 같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강호라는 세상을 겪으며 느꼈던 것들에 대한 답이 바로 '소오강호(笑傲江湖)'라는 제목의 뜻이 아닐까 싶다. 강호에 몸담으며 그 곳의 도리와 규칙에 따라 평생을 행동하였건만, 결국에는 '강호'라는 세상 역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욕심의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파(正派)든, 사파(邪派)든 편만 갈랐을 뿐이지,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같다. 그들이 하는 행동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소오강호(笑傲江湖)'의 어원.

 사실 김용선생의 작품의 전반적인 결론을 보면, 중후반부에서는 꼭 대의를 위해 이 한몸 받치는 주인공이 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할만큼 다 하고, 그래서는 아니지겠지만 결국은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간에 그 자리를 털고 사라지는 것이다. 몽고여자인 조민을 위해 명교의 교주를 버리고 떠나는 의천도룡기의 장무기의 모습이나, 강호 제일의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척방의 아이를 안고 변방으로 떠나는 연성결의 적운의 모습, 그리고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 살겠다는 신조협 양과는, 남들에게 대협의 칭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묘로 들어가 은거를 한다. 사실 역사적 사실과 혼합한 내용을 주로 쓴 김용선생 작품의 한계라고도 말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는, 결국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세상, 생활을 위한다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요번이 소오강호를 끝까지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는 바로 '믿음(信)'이었다. 믿음이 없다면 오해를 할 수 밖에 없으며, 오해는 곧 불신을 말한다. 믿음은 쌓기 힘들지만, 또한 무너지기도 쉬운 것으로, 이는 인간관게에 있어서 상당히 무서운 것이다. 믿어주길 원하거나, 혹은 이제까지의 나를 수십년간 봐왔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왜 영호충의 말이나 언행을 사부인 악불군이나 그의 첫사랑인 악영산은 믿지 못했을까였다. 한번이라도 제대로 얘기를 했다면, 아니 그래도 고아때부터 키워오고, 같이 자란 죽마고우라면... 어떠한 행동을 보였든지 간에 믿음을 보여줄 수 있을텐데... 라는 안타까움이 남았을 수 밖에......


김용 작품을 시대순으로 보면 사조영웅문(南宋) -> 신조협려(宋末) -> 의천도룡기(元末) -> 소오강호(明初) 정도이다. 사조영웅문에서는 스승을 어버이 같이 보라는 유교의식이 팽배해져 있으나, 신조협려에서는 스승을 아내로 삼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의천도룡기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의 스승이 분명치 않다. 소오강호에 이르러서는, 스승 역시 사람이며, 사리사욕을 가진 이를 스승으로 삼아야 하겠냐는 문제제기를 해놓지 않았을까, 하는 망구 내 생각.-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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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을 하면서... '번개'라는 단어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었다. 어느 동호회의 채팅방에서... 어느 날 저녁, 날도 더운데 광안리 백사장에 앉아서 맥주나 한캔할까? 로 모였던 것이 내 인생 최초의 번개였다. 물론 고딩 신분이었던지라, 맥주캔은 손에 잡지도 못했지만.-_-; 이후 번개든 모임이든 줄기차게 나갔다. 대인 접대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 즐거움을 찾았던 나로서는 당연했던 일. 근데, 군제대를 하고나니 이전의 그 인스턴트식 만남에 대해서 차츰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그리 공통관심사가 없는 사람들이 단지 '사람이 좋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어 나름 각자의 외로움을 해소시키는 만남, 그리곤 어느덧 그 즐거웠던 한때를 보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개인적인 연락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제외하곤, 그 어떤 누구도 지금 내 주소록에 남아있지 않다.

중국에서 유학할 당시에 어리버리 받아들였던 '감투' 때문에 이런 모임을 아예 주선까지 해야만 했었다. 모임을 준비하고, 모여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하고, 그리고 이후 그때를 되돌아 봤을 때 내 스스로도, 그리고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마냥 놀지만은 않았다, 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나름 분주히 뛰어다녔다. 이 역시도 지금 돌이켜보면 머릿속에 기억만 남았을 뿐, 추억으로 돌이키기에도 역부족한 듯 싶다. 이후로는 인터넷을 통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아니, 그냥 쉽게 생각해서 다 부질없다, 그것이 정답이었겠지비. 이상스레... 어릴 적부터 그냥 내 생활을 통해 만나는 사람과,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는 사람들 사이의 묘한 금을 그었던 것이다. 분명 똑같은 사람인데, 인연을 맺는 동기나, 혹은 그 만남을 이어가는 주제 따위에 신경을 썼나보다.


몇일 전에 Twitter를 통해 한 사람을 만났다. 나이차가 꽤나 있었지만 그건 나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어린 아해들과도 별다른 부담없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철부지 같은 성격을 연마해 왔었기 때문에,-_- 절대 나이가 많다,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권위적이거나, 혹은 잘난 체를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관심사... 아니 어쩌면 나도 그 나이 때 비슷한 고민도 했었고, 비슷한 길을 가고자 생각했었기 때문에 비어드는 술잔과 함께 이바구는 이어져 갔다. 근... 2시간 반, 더 이상 계속 자리를 같이 하게되면 상대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았다. 또한 언제부터인지 새벽 2시 이후의 술자리는 그리 좋은 결과(?)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는지, 2시가 땡~ 하자, 살포시 자리를 마무리 지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갔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풀었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지금은 각자의 인생에 가장 집중해야 할 시기이기에 다음의 만남을 기약할 여유도 없다. 인연이 닿는다면, 혹은 이런 간단한 만남을 통해 서로에 대해 조그나만 신뢰가 생긴다면 또 자리를 하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여러가지 종류의 만남이 있는데, 가끔은 그냥 상대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혹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람과 사람은 만나는 것이다.

青山不改, 绿水长流, 后会有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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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을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솔직히 '사랑'이라는 어휘를 쓴다는 자체도 어색하다.-_-; 그래도 좋아한다는 감정은 알고, 그런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약간 알 것 같다. 또한 그러기 위해선 어떠한 책임감이나, 혹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약간은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릿속이나 혹은 이론상으로 알고만 있을 뿐이지, 그것을 제대로 표현을 하든지, 혹은 상대에게 그 마음을 전달하는지는 아직도 아리달쏭하기만 하다.

그래, 혼자서 돈 안 들고, 그래도 덜 어색한 '글'을 이용해보자. 사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멋드러진 문장으로 마음을 전해볼까? 아니, 남이 쓴 멋드러진 문장을 내 식대로 꾸며볼까. 사실 그럴 필요없다.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자신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 역시 말로야~ 그려러니 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_-+ 어쩌면 차라리 드래곤볼에서 나오는 상대의 파워를 측정할 수 있는 안경으로... 내가 상대에게 얼마나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숫자라도 산출해 낼 수 있다면 모르겠다. 어쩌면 차라리 내 배를 가르고 내 심장이 콩닥콩닥 뛰어서 가슴이 터질것만 같은 것을 직접 보여줄 수 있다면 모르겠다. 참으로 어려운 것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또 그것으로 인해 이해받을 수 있는 일일터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시간'이 아닐까나. 잠시나마 사랑에 눈이 멀어 미친 척, 다 해주는 척, 간이나 쓸개 빼주는 척 하는 것이야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 그리고 '시간'이라는 기간을 통해 이래저래 얻게된 신뢰감으로 서로에 대한 어느정도의 믿음만 있다면, 적어도 척~ 한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말이나 글이 아닌, 실제 현재에 닥쳐진 상황에서 행동으로써 상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도 약간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혼자 생각해도 이렇듯 복잡한 문제가, 결국엔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결론에 이르면 참으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나 혼자서 좋다고 이러쿵 저러쿵 오도방정 뜬다고 그 누구하나 제대로 알아주는 것도 아니며, 나는 아닌데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호감을 가진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맞장구를 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Give & Take라는 것이 단지 물질적으로나 행위에 있어서 주거니 받거니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아무런 조건없이 서로간에 주고받을 수 있는 호감을 탁구나 테니스처럼 주거니 받을 수 있다는 자체 역시 행복한 일 아니겠는가.

허무맹랑한 소리같지만, 분명 '사랑'에 대한 이런저런 좋은 글을 쓴 이들은 글로써 표현한 것 이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분명 본인이 느낀 그대로 쓰고싶었으나, 글로써는 100% 다 표현하지 못해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그리하여 따뜻하게 된 감정을 위안삼아 좀 더 행복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답내지 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그 자체가 자기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이려니...~ 아니, 어쩌면 '사랑'이라는 넘은 나 스스로 깨닫기보다는, 그 상대로 인해 내가 배워가는 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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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Yi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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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인가... '한달 그리고 10日'이라는 포스팅을 했었다. 당시 누군가와의 만남을 고대하는 설레임에 벅차 망구 생각나는대로 지껄였을 뿐인데, 데자뷰인가... 아니면 재현인가,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그때는 한달하고도 십여일이었지만, 지금은 하루 그리고 한시간... 즉 25시간이다. 참 이런 기분, 감정 갖는다는 것이 일상생활에선 찾기 힘든 일일터인데, 나는 벌써 두번째 겪고 있다. 만나길 희망한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머리가 크고나서 처음으로 했던 첫사랑이든, 나 혼자 마음 졸이며 밤을 지새며 했던 짝사랑이든, 혹은 100일이든 1000일이든, 어쩌면 10년, 어쩌면 30년이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다라고 믿고 싶다. 아니, 믿고 있다. 사실 여유를 부릴만한 상황도 아닐 뿐더러, 어쩌면 앞으로 더욱 주변에 대해 신경써야 할 때이다. 하지만, 이렇게 느지막한 시간에... 나 홀로 이럴까, 저럴까 오도방정을 떨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만족한다. 또한 이런 감정을 다시 갖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요즘 간간히 드는 생각이 나는 내딴에 주변사람들을 소중히 한다, 라고 생각했건만 실질적으로 나 자신만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고, 또 어떤 행동을 취하든지 간에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망구 내 마음대로 해왔다, 라는 것을 반성하기도 한다. 사실 예전에는 '시간이 지나면 이해해주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세상에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테니까. 음악을 통해 뜻이 맞는 이를 지음(知音)이라 했고, 나를 알아주는 이를 지기(知己)라고 했다. 과연 살면서 이런한 이들을 몇이나 옆에 두고 살아갈 수 있을까.

가깝게는 친구든, 연인이든... 모두 그런 관계로 묶어서 정해버리기 이전에, 사람 對 사람, 인간 對 인간으로서의 끈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친구라서 모든 것을 이해해 줄 수 없듯이, 애인이라고 모든 이해를 바랄 수 없듯이... 어쩌면 '緣'이라는 이름으로 이 드넓은 세상,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이어진만큼, 나와 상대와의 일대일 관계부터 생각해야 할지어이다.

가끔 南京의 하늘은 요상한 깔을 내기도 한다.

구닥다리 같은 얘기지만, 나도 경험한 적이 있고, 또 오늘 우연찮게 어느 고민게시판에서 나온 '의남매였으면 좋겠다.'라는 말... 그런 사이를 원하는 이라면 분명 욕심이 목구멍까지 차서 결국엔 일정 시간까지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줄, 그리고 소중히 대해줄 이를 찾지 못하고 방황을 하리라. 아니 어쩌면 그런 관계라도 승락하는 상대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랑의 바보일지도 모르겠지비. 그런 순진무구, 순수... 그리고 유치찬란한 남정네가 이 세상에 얼마나 남아있을까... 싶기도 하고.


햐~ 재미난 것이 링크글과 이 글의 발행시간이 거의 비슷하구마이.-_-; 새벽 3시는 사람들이 적당히 미치기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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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동성이든, 이성이든지간에... 내가 좋아한다, 라는 생각이 들면 당연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터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어느 날 하루 생각치도 않게 후배넘 전화를 받고 나가 그 후배넘이 무슨 문제가 있네... 하면서 솔직담백한 얘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진지하게 얘기를 듣게되며 또한 '나에게 이런 얘기도 하는구나...'라며 그런 얘기까지 하는 그 후배의 하소연을 '믿음'으로까지 승화시켜버린다. 뭐, 당연히 얇은 지갑에서 살포시 만원짜리 몇장을 꺼내 술값을 내게되고... 그러면서 후배에게는 '괜찮을꺼야.'라고 말은 해주지만, 사실 그러는 동안 '내일부터 또 얼마나 굶어야 하는가...' -_-; 부터 걱정을 하게 된다. 없는 살림에 꼴에 선배랍시고 술값을 내긴 하지만, 그래도 내 능력 이상의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내 앞의 상대방을 위해 무언가를 해준 것이다. 아니, 술값 뿐만이 아니라 남들에겐 그닥 중요하지 않은, 내 시간까지 내준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적어도 '누군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대인 관계 뿐만 아니라, 이성 관계라면 더더욱 골이 아프다. 눈에 콩깍지가 분명 씌였을 법한데... 언제나 궁핍한 지갑내지, 혹은 당췌 이 사람에겐 무엇을 해줘야 호감을 얻을 수 있느냐... 라는 고민에 빠지게 되며, 그럼으로 인해서 내가 할 수 없는 범위내에서의 일들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계산적인 넘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계산은 할 수 있는 넘일터인데... 우째 이성 문제에 있어서 오버를 할 수 밖에 없는지... 그 오버를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천하의 카사노바가 아니겠는가. 아니, 카사노바라 함은 그런 오버도 필요없이 적당히 상대방의 그릇에 맞춰 호감을 이끌어 낼지도 모르겠지. 나는 보통사람이다. 고로, 나는 결국 오버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해주고 싶어 하게된다. 하지만 그 범위가 맞아떨어진 사람이 이제까지 없었기에 지금 이 모양인지도 모르겠고.-_-;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거나, 혹은 명품으로 눈을 가리는 일은 이제까지도 또 앞으로도 할 재간이나 용기가 없을 듯 싶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럼으로 인해 상대가 부담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면 당연 서로 윈윈전략이 아니던가. 아니 어쩌면 나의 오버스러움을 부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내가 상대를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비. 결국 서로를 알려면 직접 겪는 수 밖에 없다. 절대 상상하지 말라, 그러다보면 그러한 상상은 망상으로 이어질지어이니.

괜한 착각에 빠져 지낼 필요도 없다. 내가 이 정도하면 이렇게 따라오겠지... 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면, 그러한 착각의 정도가 커진만큼 돌아오는 실망감도 더 커지게 될지 모른다. 너무 솔직한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굳이 믿음을 줘야, 그리고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가식으로 포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느 관계든, 깨놓고 말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은 참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그런 각고의 시간을 거친 후에서야,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될지어이니.


오늘 약속이 두개 겹쳐버렸다. 당연히 하나를 깨트릴 수 밖에 없었는데... 그냥 망구 내 생각대로 조금 더 나를 필요로 하는 약속을 선택했다. 밥을 먹었고, 차를 마셨다. 얘기를 듣는내내 속이야 상했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이 또한 사람들의 세상살이 이야기지 않겠는가. 좋은 세상만 본다는 것이 살면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순간 깨달았다. A는 A다, B는 B다... 라는 공식이 어쩌면 보편적인 사람들의 공식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받는 일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알고 있는 세상보다는, 모르는 세상 그리고 현실이 많이 남아있기에, 나는 상대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산다. 그 얘기를 바탕으로 간접체험을 하는 일만으로도 어쩌면 고마운 일일지도.

잘난 것도 없다. 잘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진 것도 없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라는 자체에 내 스스로 만족하며 산다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존재 자체만으로 내가 고마워하는 이들이 몇 있다. 나 역시 그러한 존재가 되기 위해선 좀 더 부지런히 살아야 하겠지비.

환경 탓하지 말자. 이왕 이렇게 된 상황이라면... 적어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이 필요한 법이다. 화이팅!~


헹... 앞으로 송정에서 '식사'를 할 일은 없겠다.-_-; 그... 태국 레스토랑도 결국엔 사라져 버렸더마이. 그냥 트럭커피나 하러 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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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최근 이런저런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딱 맞아떨어져 떠올려지게 되는 말이 있으니 바로, '人美不在貌, 而在思想'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대할 때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곳이 '눈'(시각)이고, 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글쎄... 어디 보이는 것으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더라. 또 어떻게보면 이런 시각적인 뽕빨로 인해서 생기는 폐해는 남자쪽에서 훨씬 더 일어날 가능성이 큰 것 같기도 하다. 이쁜 여자보면... 첫눈에 띠옹~ 하는 경우가 많지 않더냐. (사실 나는 정말 겪은 바 없음.-_-v 심지어 내 바로 옆 김태희까지도 이쁘다고 생각이 안 들었으니. 눈이 나쁜 죄인가? ㅋ) 무협물의 교과서격인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에서 주인공의 엄니인 은소소(殷素素)가 아들래미에게 남긴 유언은 다음과 같다.

얘야, 네가 커서 어른이 되면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 예쁘면 예쁠수록 더 잘 속인단다.
10살짜리 꼬마한테 남긴 유언치고는 참 그렇다. 하지만 은소소 자신도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을, 특히 남편까지도 10여년을 진실을 감춘 채 살아왔기 때문에 어쩌면 진심어린 유언일지도 모른다. (사형제들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아내에 대한 실망으로 자살한 남편을 따라 자살하는 상황이다.) 우짜등가 얼굴 이쁜 딸래미라고 무조건 정신 팔지 말라, 이 말이겠지비. 자, 지금 이 시대에 와서는 다른 방향으로도 좀 생각해 보자고. 이쁘다고 해서 사람들을 모두 잘 속이는 것은 아니다. 미추의 여부 이전에, 그 사람의 인간성이나 상황을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눈앞에 보이는 여성(혹은 남성)이 시각적인 만족을 주기 때문에, 당사자가 상대에 대해 더욱 신뢰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2006. 2. 5... 분명 南京에 있는 어느 한국식당일터인디.

언젠가~ 여친에게 감정표현이 서툴기는 커녕... 쪽시러워서 아예 하지도 못하는 내가 남들을 통해 쓰는 가장 강도가 쌘 외모에 대한 찬사는 이랬다. 내 눈이 좀 높다... 이 정도.-_-+ 이렇게 말하면 괜히 자기 여친 이쁘다고 자랑이나 하는 팔불출을 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은근슬쩍~ 나도 아부성 발언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찌를 수 있지비. 우헤~ 허나, 이 방법 절대 장기간 효과는 없다.-_-;;; 남자는 시각이 약점이라고, 여자는 청각이 약점이라고 하지 않더냣.

하여간... 얼굴도 몬난기 심뽀도 고약하다, 라는 소리를 안 들을려면, 열심히 수양을 쌓아가야겠구마이. 허나, 제대로 된 사람한테나 나도 착한 척 해야겠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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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9 10:19

    아 우리팬님 딱 맞는 말씀인듯...ㅎㅎ 남자는 시각..여자는 청각..ㅋㅋ

    • 2010/01/19 13:16

      남녀관계가 아리송하다지만,

      은근 정의화된 것들이 종종 있더군요. ㅋ

      도리상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 제목으로는 우견아랑(又見阿郞)이라는 영화가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원제는 아랑의 이야기(阿郎的故事)인 것 같고. 소시적부터, 그리고 고딩때 이 영화의 대본을 우연찮게 구입하게 되었고, 대학 1학년때 영화를 다시 찾아보면서 이 영화에 대해 꽤나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뭐, 사실 영화내용은 그냥 산파극이다. 우리나라 영화로치면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고나 할까. 뻔한 스토리에, 뻔한 결과이지만... 사람의 인성은 시대가 변해도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뭐, 사실 지금도 그렇다. 분명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보게되더라도 진지하게 보게될 것이며, 또 눈물 찔끔찔끔하겠지 뭐.-_-+



윤발형(周润发)의 보기드문 모습을 봐서 좋고, 또 장애가(张艾嘉)라는 감독의 배우시절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게다가 감초역은 맹달(吴孟达) 아저씨니 더욱 감칠맛 나고. 이런저런 영화 이야기보다 더욱 가슴 시린 것은 바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당시의 이 영화 카피라이터 문구이다.

내 살아온 날 후회없으나, 그대 사랑할 날 너무나 짧아라.

사실 이 문구를 보고 누가 지었는지 참 멋드러지게 지었구나, 라며 영화와 참 맞다고 생각을 했다. 근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애가누님에 대한 윤발형의 사랑은 그다지 보이진 않는다.-_-; 말했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미워도 다시 한번'과 별다를 바가 없다고. 그래도 가슴 아픈건 똑같다.

아마, 이 문구를 지은 이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라는 생각도 해본다. 영화에서는 다 풀지 못한 얘기, 혹은 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들이 바로 저 문구가 아닐까... 싶더라고. 여자는... 사실 얘 때문에 다시 옛날 어두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홀애비 밑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새로운 인생을 선사해 주고자 하지만, 결국 부자간의 情을 뛰어넘진 못한다. 남자는... 이 두 모자를 위해 목숨 건 오토바이 레이스에 참가하며 거금의 상금을 손에 쥘 수 있을 찰나 사고를 당해 죽어버린다. 그리고 영화 끝. (참~ 군더더기 없이 잘 끝맺은 것 같다.)

따지고보면 영화 속의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는 그저 철부지 시절의 불장난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서 이 두 사람은 그 이후로 각자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아들 덕분에(?) 재회, 잠시 옛날 기분에 잠기려 하지만 거부하는 여자. 참... 없다. 카피라이터 문구에 비해 영화 속에서 보여준 사랑 이야기는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쉽지만, 이 문구만으로도 만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또 이 영화인 것 같다.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걸랑.

이렇게 생각을 해보자. 남자가 있다. 여자가 있다.

1. 각자 20살이다. 서로 사랑한데.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2. 각자 30살이다. 서로 사랑한데.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3. 각자 40살이다. 서로 사랑한데.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

뭐, 그렇다. 당시엔 절대 모른다. 아니, 콩깍지까지 씌여져 있는 상태라면 죽을 때까지, 아니 자신들의 사랑이 영원할 것만 같다. 그래, 열심히 꿈꾸어라, 불로장생의 꿈을. 사람은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그러면서 현실에 더욱 충실해지며, 그러면서 이전부터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생각까지 바뀔지도 모른다. 아, 물론 안 바뀔 수도 있다. 현실이 바뀔 수도 있다.-_-; 단순히 생각해서 이런 식으로 가정을 하거나, 혹은 열거를 해버리면 간단한 문제 같으나, 사실 인생살이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며, 살면서 수많은 환경을 거쳐야 할 것이며, 살면서 수많은 즐거움 그리고 시련을 맞이할 수 있다. 심지어 '사랑'에 대한 정의가 바뀌기도 한다. (내가 드라마상에서 꽤나 싫어했던 대사 中의 하나가 유부남이 바람피울 때 쓰는 대사... '내가 한 결혼은 사랑이 없어. 이젠 나의 진정한 사랑을 찾고싶어.'라는 유치뽕 작업성 멘트이다. 우리나라 아침드라마가 종종 나올꺼로? 거 왜... 그러곤 결국 이혼 못잖우.-_-;)

문제는 나 혼자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앞으로 함께 할 시간들. '우견아랑'이라는 영화속에서의 사랑은 비록 짧았지만, 그 사랑의 결정체인 자식에게 사랑을 쏟아 살아온 날은 후회가 없으나... 다만 아쉬운 것은 그대를 앞으로 사랑할 시간이 짧다는거, 참 애처롭기 짝이 없는 현실이지비. 뜨업~ 하여간... 영화의 결론은 '홀애비는 꿋꿋했다.' 정도.-_-v


새로 시작하는 사랑보다는 다시 사랑하는 사랑이 분명 힘이 들다. 허나, 분명히 다르긴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망구 내 생각.-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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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7 01:41

    왠지 느린 광동어 노래를 들으면 좀 슬퍼진다는,,,,,,
    중국어 공부할 때,,,서점에서 산 우견아랑 책도 생각나고, 좋아했던 당시 영화도 생각나고 갑자기 기분이 묘해지는...

    • 2010/01/18 17:36

      몇 글자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중화권 노래를 듣다보면,
      분명히 광동어 노래가 뭔가 와닿는 듯한 느낌이 오더군요.
      소시적의 아련한 추억일수도 있고,
      어느 가수가 그랬듯이 광동어 노래의 묘미일 수도 있고.
      우견아랑 주제가... 저 노래말고 그... 밝은 노래도 있던데, (세가족이 호수로 놀러갈 때 차안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그건 일단 올리진 않았슴다.
      許冠傑 - 阿郎戀曲 이군염.

OUTLOOK을 2000년부터 써왔다. 줄기차다. 사용했던 컴퓨터만 해도 몇대인디... 컴퓨터를 바꿔 사용할 때마다 꼭 챙긴 화일이 outlook.pst였다. 이제는 불어불러 몇백메가나 되었고... 그나마 이제는 이런저런 잔머리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좋아져서 그냥 대용량메일을 이용해 옮기는 것이 훨씬 편해졌다. 허나 이런저런 원인으로 몇번이나 그 화일을 분실했었다. 메일도 날라가고... 연락처도 날라가고... 몇번이나 날려먹긴 했어도, 그래도 03년부터는 아주 잘 보관을 하고 있다. 사실 메일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지나간 과거려니... 그리고 내가 받았던 메일 中에 일회성으로 도움을 요청한 메일의 수도 만만치 않았으니. 그러나 연락처만은 분명 내가 살아온 모습이었다. 단지, 그 사람의 이름과 당시 연락처만이 아닌, 가능하면 많은 것을 입력하고 살았었다. 집전화, 주소... 그리고 내가 입력할 수 있는 간단한 프로필 정도.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시했던 것은 아마도 이메일 주소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은 아닐테지만, 핸드폰 번호는 쉽게 바뀌더라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이메일주소인 것 같았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에야 이제껏 3,4번은 대표메일 주소를 바꾼 것 같다만, 그래도 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표주소를 잘 바꾸지 않는 것 같더라고. (아, 한메일에서 이사간 사람들의 수는 적지 않았다. 이 역시 한메일이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메일이라고 하기엔 조금 멋쩍지.) 전화는 아니더라도, 편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내가 어디로 사라지든, 이메일로나마 사람들에게 연락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랬다.

내 기억이 맞다면 02년에 중국으로 떠나기 전의 연락처에 등록된 사람의 수는 200명이 약간 넘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면 수정은 귀찮아서 못했지만, 아주 가끔씩 연락처 삭제를 했었다. 그러면서 내 나름대로 내 대인관계를 끊어버린다. '이 사람은 더이상 연락할 일이 없다.', '이 사람은 연락해도 껄끄러울 것이다.', '이 사람은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다.', '이 사람은 연락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 뭐 등등의 이유로, 한명씩... 한명씩 잠시동안 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살포시 Del키를 누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이제는 2010년 1월, 오늘 정말 몇년만에 다시 Del키를 누르게 됐는데 남은 인원이 고작 131명이 남았다. 그 중에 필요에 의해 만들어놓은 연락처 2개를 빼면 129명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129명 모두 연락하고 지내진 않는다. 단지 그들과의 공통된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일단 담아둔다. 뭐,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는 생각에. 사실 나도 왜 이 사람들이 남아있을까 의심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선 나에게 고마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이름만 봐도 얼굴이 떠오르는건 선청적으로 우등한 잡다한 기억력 덕분인 것 같다. 살면서 좀 필요한 것만 기억해도 될련만... 난 왜 잡다한 기억력이 이렇게도 좋은건가.-_-; 예를들면 한국인뿐만 등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아니 갈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나라인 Laos에서 지금쯤은 각자의 생활에 매진하고 있는 아해들, 몇년전에 일정기간동안 잠시 알게된 아해들도 얼굴이 다 기억이 난다. 그리고 파편적이지만, 그들과의 공통된 시간이었던 기억, 혹은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도 생각이 난다. 그러다보니 쉽게 지울 수가 없다. 나라고 그렇게 모진 넘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선 그들의 이름과 당시의 핸드폰 번호, 그리고 이메일 주소라도 있어야 그 기억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언젠가 그 이메일을 통해 다시 손을 내밀지도 모른다.


아직은 산 날보다는 살 날이 더 길다는 생각에 기억을 먹고 살아가긴 싫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기억들을 되새기며 내 인생을 정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그나만 소망도 가져본다. 그리고 그 누군가와 일상적인 대화에서... 이런 아해들도 있었고, 이런 아해들과 이런 일도 있었지... 라며 흐믓해 할지도 모르지. 정말 그때가 올까, 그때가 왔으면 좋으련만.


사람은 욕심쟁이이다. 좋았던 것만 기억하고 싶고, 좋았던 것만 담아두고 싶다. 나 역시도 이 남아있는 연락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나도 욕심쟁이다. 그래서 이 연락처의 숫자가 앞으로 훨씬 더 늘었으면 하는 욕심도 가질 수 밖에 없다. '人緣'이란거... 절대 아무도 쉽게 볼 수 없는 세상살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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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의 의미라 하면, 첫째 부산 사투리로 만들어 흥행한 첫번째 영화라 함과, 또 하나가 '친구'라는 의미를 영화의 내용을 통해 진지하게 생각해주게끔 했다는데 있다고 하겠다. 사실 소시적부터 '친구'라는 개념은 참으로 불분명했다. 동네에서 치거니 박거니 하다가 또래든지, 혹은 동갑인 경우엔 무조껀 '친구'가 되었으며... 학교에 들어가니 같은 반 아이들도 모두 '친구'가 되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즈음에는... '대학에서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라는 말이 이래저래 돌고 돌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내 대학동기들은 초중고등학교때 부르던 '친구'의 개념을 신앙처럼 믿고 있었던 아해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그 진정한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직접 보진 못했다.

이런 경우도 있다. 같은 반만 아니되었을 뿐이니,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어랏, 같은 학교였네? 라면서 만나게 되는 경우... 그 반가움은 더 커질 수 밖에 없고, 사는 동네까지 비슷하다면 거의 찰떡궁합이다. 이제 성인인만큼, 집도 근처인데 '어이, 친구 한잔해야지?'라며 쉽게 불러내거나 달려와서 이런저런 각자의 주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역시 이래서 친구는 좋은거야.'라고 잠시 '친구'라는 환상에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허나, 아무리 '친구'라는 사이라 할지라도... 결국엔 살아봐야 안다는 점. 수많은 친구들 역시 하나의 어휘인 '친구'로 부를 수 밖에 없지만, 그 친구가 나에게 있어 어떠한 친구이며, 그리고 나를 어떻게 생각해주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친구 역시 나의 대인관계 中의 하나이며, 그 친구들 역시 필요에 따라 나를 찾으며, 필요가 없어지는 경우 멀리하는 경우도 있다. 주위를 돌아보라, 진정으로 내 친구는 몇이나 되는지...

이 나이가 되니, 나를 친구로 생각해주는 이는 몇 없는 것 같다. 아니, 나 역시도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2,3명에 불과하다. '친구'라는 명목하에 술자리나 만드는 친구보다는... 나에게 뭔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축하해주며, 나에게 뭔가 안좋은 일이 생겼을 때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사람 몇만 있으면 된다. 혹은, 나와 함께 성장한 친구이기에 그 나름대로의 경험담이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친구라면 더할나위도 없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아가야 할 이 험난한 세상에... 진정으로 나라는 사람을 알아주며, 진정으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그게 곧 '친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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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4 00:04

    요즘 블로그 컨텐츠 자주 쓰셔요~~^^
    그 포스트처럼 정말 자동차 여행하러 듕국 가시옵니까?^^

    • 2010/01/14 01:57

      조만간 서식지가 바뀐다 생각하니 심기가 불안하야-_- 이것저것 낙서나 하고 있슴다요. ㅎ
      자동차 여행하러 듕귁에 가는건 아닙니다. 자동차 여행으로 듕귁에 가는건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갈 수 있잖아염. ㅋ

    • 2010/01/14 13:03

      어랏? 중국으로 이사하시나요?

    • 2010/01/14 15:05

      확정적이진 않습니다만,
      분명 지금 있는 이 곳은 아닙니다.-_-v

      부산에 너무 오래 살았어염.
      어떤 식으로든 벗어나야죠. ㅋ

한국 사람들이 잘 쓰는 부사 '좀', 일본어? 適当, 중국어 比较... 뭐, 뜻이 중요한게 아니라 하여간 대강 이런 의미의 말들은 정확한 수치가 불분명하다. 무엇이 적당히일까. 그 기준은 무엇일까. 나한테만 맞으면 되는 것일까. 식당에서,

아줌마, 물 좀 주세요.
라고 말했을 때, 아줌마가 컵으로 한잔을 주던지, 아니면 물주전자로 갖다 주든지 하면야 모르겠지만, '좀'이라는 부사의 의미에는 아예 옥상에 있는 물탱크를 갖다준다고서 해서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적당껏 하자, 적당히 하자... 이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이제 여기서 그만하자? 그만하지? 도를 지나쳤으니까 꺼져?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답은 하나다. '적당'라는 기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뭉칠 수 밖에 없다는 것. 생각의 기준, 생활의 기준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결국 한패거리가 되기 나름이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스스로 정한 '적당'이라는 기준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맞추고,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사람을 진지하게 보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주변인들을 역시 중시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는 이것이 기본이 되어야할터인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 아무리 주변인이라고 해도 꼭 본인과 비슷한 '적당'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본인의 결정을 존중하고, 선택을 기다리는 것에는 이의가 없으나, 뭔가 아니다... 혹은 잘못되었다, 라고 생각이 든다면 분명 그 주변인들은 '적당'의 기준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게 사람사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세상은 절대 혼자사는 세상이 아니며, 독불장군은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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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uri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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